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03
203. 일행 없으시면 저랑 같이 가시죠
“대표님은 같이 안 오세요?”
패션 사업부 이준하 과장의 결혼식 날.
1층 입구에서 서성이던 김명진 부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응, 오늘 집에 일이 좀 있어서.”
“그 집은 맨날 일이있습니까? 이럴 때 좀 오시지.”
지영이는 남의 결혼식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결혼이 늦는 사람 중 그런 사람을 종종 봐 왔는데, 지영이는 특히 더 심했다.
“명진 부장은 왜 안 올라가고 여기 있어?”
“사람이 많아서요. 축의금만 내고 갈까 했습니다.”
“그렇게 많아?”
“네. 역대급이네요.”
경조사를 가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특히, M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많은 협력사를 상대해야 하기에 화환이나 손님들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를 잘 알 수 있다.
“그래? 얼마나 많길래?”
“아주, 아주 많아요. 근데 패션 MD라 다르긴 다른가 봐요.”
“왜?”……
“하객 의상들이 뭐 그리 화려한지……. 누가 보면 영화 촬영하는지 알겠어요. 그리고 모델로 보이는 사람도 여럿 와 있던데…….”
김명진 부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나는 이상한 마음에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며 반강제로 끌고 갔다.
그렇게 듣게 된 김명진 부장의 기억.
하객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구나.
김명진 부장에게는 큰 콤플렉스가 있다.
그것은 바로 170이 안 되는 키.
회사에서도 키높이 구두를 벗지 않았고, 신발을 벗는 식당은 안 들어갈 정도였다.
나는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고 그를 잡아당겼다.
“식 시작하겠다. 가자.”
“아……. 그게.”
“뭐해? 빨리 가자고.”
그렇게 올라온 결혼식장.
양쪽 벽에 줄지어 있는 화환은 김명진 부장의 말처럼 역대급이었다.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와……. 진짜 많네.”
“네. 결혼식 많이 다녀 봤는데, 진짜 이런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그나저나 이사님은 결혼 안 하세요? 제 예상에는 이사님 결혼은 이거보다 두 배는 더 많을 거 같은데?”
“나?”
“네. 이사님이요. 이제 1년 넘으셨죠?”
“……아니 아직.”
내가 머뭇거리자, 김명진 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오늘 며칠인지 까먹으신 건 아니겠죠?”
“아니거든.”
“에이……. 까먹었네. 까먹었어. 요즘 좀 식은 거 아닙니까? 전에는 그렇게 둘이 붙어 다니더니.”
“아니야. 요새 아주 불타고 있어.”
“그래요? 우리 이사님 뭐가 불이 탈까?”
“애들은 몰라도 돼.”
내 말에 눈썹을 치켜뜨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 김명진 부장.
나는 무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있던 마성근 팀장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마 팀장님!”
“이사님! 오셨습니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다가오는 마성근 팀장.
그의 옆에 있던 아내도 내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이사님?
마성근 팀장의 아내는 나를 김경일 팀장으로 알고 있다.
딱히 밝힐 필요가 없어서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아……. 저.”
“뭘 그렇게 놀라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TV로 봤어요. 우리 동네. 그거 나오셨잖아요.”
“아……. 그랬죠.”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이이한테 물었더니, 계속 아니라고 딱 잡아떼더라고요.”
그녀는 마성근 팀장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고 미간을 좁혔다.
“아……. 그랬군요.”
“진작 말씀해 주시지……. 저만 완전 바보 됐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네. 알아요. 그나저나 저번엔 제가 너무 설레발이었죠?”
“네?”
“저희집 오셨을 때, 이사님 욕했던 건, 잊어 주실 수 있을까요?”
늦은 시간 마성근 팀장의 집에 가서 선물을 준 그날.
그녀는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했었다.
일만 하는 워커홀릭에 직원들까지 맨날 늦게 퇴근시킨다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마성근 팀장의 아내는 그 말을 한 것이 영 걸렸나 보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푸훗.”
마성근 팀장의 아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사님! 언제 오셨어요?”
“여기 뷔페 후기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요? 준하 과장이 A 코스로 했다고 했죠?”
“넌 먹는 것 생각뿐이냐?”
“결혼식은 원래 뷔페가 8할입니다.”
내 옆으로 다가오는 최충연 팀장과 이진성 차장.
“결혼식장이 삐까번쩍 하구만. 뭐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많아요?”
“아까 저기 지나간 사람 모델이죠?”
“왜 관심 있어요?”
“아니. 아니. 내가 무슨 관심이……. 크흠.”
하객들을 보며, 숙덕거리는 박대영 부장과 장선영 차장.
“오……. 이 옷 어디서 샀어요? 오늘 완전 신경 썼나 본데?”
“태하 차장. 여기가 무슨 소개팅인 줄 알아?”
“왜요?”
“뭐 이렇게 입술이 빨개? 설마 남자 새끼가 루즈 바른 건 아니겠지?”
“루즈가 뭡니까? 루즈가. 촌스럽게.”
“뭐?”
“립밤입니다. 그리고 차장님은 피부 좀 신경 써요. 누가 보면 농사짓다 올라온 줄 알겠네.”
“왜 농사가 어때서? 너 생산자 비하하는 거냐?”
“여기서 무슨 비하가 나옵니까?”
“그게 그거잖아!”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평소처럼 티격태격 대는 정진택 차장과 김태하 차장.
“팀장님. 저기 보세요. 저 사람 TV에 나왔던 사람이죠?”
“글쎄.”
“잘 좀 보세요. 확실히 TV 나왔던 모델이에요.”
“왜? 사인이라도 받게?”
“아니 그건 아닌데…….”
“연두 씨는 잘생긴 남자만 보면 그러지?”
“제가 언제요?”
요즘 썸을 타고 있는 김경일 팀장과 하연두.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때.
“이사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얀 와이셔츠의 팔을 걷은 곽원호 부장.
그는 이준하 과장과 친형제 같은 사이다. 넥타이를 셔츠 단추 사이로 넣어 둔 것을 보니, 일찍 와서 결혼식을 도왔나 보다.
“하객이랑 화환이 많네요.”
“준하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증거겠죠. 오신 김에 협력사 사람들 좀 소개해 드릴까요?”
“저를요?”
“네. 저희가 마프로 갔다고 하니까, 다들 원 이사님을 물어보더라고요.”
“그랬어요?”
“네. TV까지 나오셨으니까 그렇겠죠. 자, 이쪽으로 가시죠.”
곽원호 부장은 나를 데리고 결혼식장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에게 소개받은 협력사의 담당자나 대표들만 무려 스물세 명.
이제 가져온 명함이 다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인사를 나누다, 구석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깔끔한 슈트에 머리를 뒤로 넘긴 최두영 이사.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평소보다 더 과하게 꾸미고 온 것 같았다.
나는 곽원호 부장을 두고, 홀로 그에게 다가갔다.
“이사님.”
“아……. 원 이사님!”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최두영 이사.
몇 주 전 내게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던 모습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이었다.
“여긴 어떻게…….”
“준하 과장은 예전에 제가 데리고 있던 직원 아닙니까? 당연히 와야죠.”
무슨 속셈인가?
전에는 곽원호 부장의 이름도 틀렸던 그가 이준하 과장을 알 리가 없다.
“그래요?”
“네.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고 좋더군요.”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최두영 이사.
지금 코너에 몰린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그리고 그 돈을 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결혼식장은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근황을 파악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셨군요.”
그때, 식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재빨리 최두영 이사의 등을 살짝 떠밀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시작하나 보네요. 가시죠.”
그의 슈트에서 들려는 오는 기억.
역시 내 예상대로다.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고, 자본금을 마련하려는 수작이다.
최두영 이사는 내가 함께 들어가자고 하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일행 없으시면 저랑 같이 가시죠.”
최두영 이사의 슈트에서 들려오는 지금의 기억.
“네. 그래요. 그나저나 이사님은 언제 결혼하세요?”
“글쎄요.”
“듣자 하니 마프 대표님이랑 만난다고 하시던데.”
“아…….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요?”
“그럼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요?”
“이거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
“결혼하시면 꼭 청첩장 보내 줘요.”
“네. 그러죠.”
나는 일부러 그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 많은 사람 중 김선녀 여사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최두영 이사와 붙어서 오래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의 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이렇게 만드는 것.
대놓고 디몰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하면 의심만은 김선녀 여사는 믿지 않을 것이다.
최두영 이사는 나와 대화를 하며 계속해서 하객들을 둘러봤다.
마치, 중요한 사람을 찾는 것처럼.
“누구 찾는 사람 있어요?”
“아……. 아닙니다.”
그때, 불현듯 생각이 났다.
최두영 이사의 기억에서는 한참 찾아다녔던 성진 어페럴의 회장.
곽원호 부장이 소개해 줬던 사람 중에 회장은 아니고, 성진 어페럴의 이사라는 사람은 있었다. 과거에 이준호 과장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었는데…….
누구였더라?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새하얀 백발의 키가 큰 성진 어페럴의 이명균 이사가 눈에 들어왔다.
“저쪽으로 가실까요?”
“네?”
“저기 자리가 좀 비었잖아요.”
나는 최두영 이사를 데리고 이명균 이사가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명균 이사 옆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사님. 여기 자리 없죠?”
“네. 앉으세요.”
“준하 과장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음…….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진도 없었을 겁니다. 디몰의 초창기 때, 저희 브랜드 제품군을 유명 해외 브랜드 사이에 섞어 줬죠. 덕분에 저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옷만 만드는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 당시 마케팅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차근차근 설명하고 준비하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죠.”
“그랬군요.”
성진이라는 말에 최두영 이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이명균 이사에게 내밀었다.
“디몰의 최두영입니다.”
“아! 최 이사님. 소문은 들었습니다. 전, 성진의 이명균입니다.”
“반갑습니다. 혼자 오셨나요?”
“네. 혼자 왔습니다.”
“성진 회장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으셔서 부득이하게 못 오셨습니다.”
“그렇군요.”
급했구나.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최두영 이사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충분히 그림은 만들어졌다.
성진 어페럴과 내가 최두영 이사와 한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소문은 퍼져 나갈 수 있다.
나는 일부러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