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1
21. 사십 칠억 삼천 이백십육만 삼백이십 원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엠로지스 김청연 이사는 멍한 표정으로 나와 마 과장을 바라봤다. 내가 앞으로 다가가자, 그는 두 팔을 들어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이…… 이게 무슨 행팹니까?”
“이거 안 보여?”
바닥을 뒹구는 드라이 아이스팩을 가리켰다.
“……!”
“냉동만두 8팩이면 어떤 드라이아이스가 들어가야 할까? 10cm짜리 2개로는 이 커다란 제품이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는지.
김청연 이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뭔가 착오가 생긴 것 같은데 창고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상에 있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가 버튼을 누르기 전, 전화기 버튼을 손으로 막았다.
그 순간 들려오는 그의 생각들.
우리뿐 아니라 수많은 업체에 장난을 쳐 왔다.
국내 1위 3PL 업체라는 엠로지스가…….
추악하고 더럽다.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 같다.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김청연 이사의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지난 세 달간 마켓 프레시에서 배송된 냉동은 이십 육만 이천 백오십 세건. 드라이아이스 팩을 바꿔치기해서 챙겨 간 돈은 대략 일억 천사백 삼십 이만 이천구백 오십 원.”
“……!”
“위탁 계약서 8조 2항, 을은 갑의 재산에 손실을 입혔을 경우 이를 10배의 금액으로 배상한다. 배상금은 총 사십 칠억 삼천 이백 십육만 삼백 이십 원.”
“뭐…… 뭐 하자는 겁니까?”
“금주 내로 정확히 계산해서 내용증명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김경일 대리가 보내 준 이메일을 통해 배송 건수와 총 배송된 제품의 가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다.
“아직 사실 여부를 확인도 안 했고, 설령 우리가…….”
변명하려는 김충연 이사.
나는 미간을 구기며,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이거 어쩌나. 그렇게 자랑하던 대한민국 최고의 3PL 엠로지스가 실수를 하셨네? 사람들은 이걸 실수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고의라고 생각할까요?”
“…….”
“그리고 10년간 엠로지스와 거래한 에이몰과 씨마켓도 과연 실수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 줄까요?”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은데, 당신들은 고의로 횡령을 했습니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김청연 이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핑곗거리를 찾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마 과장님! 그만 갑시다.”
내가 등을 돌리자, 김청연 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팀장님! 실수입니다.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과 비슷한 사고가 터졌어야죠. 창고 관리자를 문책하고 이번 건에 대해서는 배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김청연 이사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번 건?”
“네. 이번 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배상을…….”
“담당자의 단순 실수로 해서 보증보험에서 돈 나가게 하려고요? 그렇게는 못 하죠. 그건 너무 비겁하잖아요.”
“……!”
“엠로지스 법무 팀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 난 그 돈에서 일 원도 깎아 줄 마음 없으니까.”
“팀장님!”
“아 참! 그동안 B2B 쪽으로만 사업해 와서 홍보 팀은 필요 없었죠? 이번 기회에 채용하시거나, 잘하는 홍보 대행사를 구해야 할 겁니다. 조만간 우리 홍보 팀이 기사들을 쏟아 낼 테니까.”
식품 회사의 홍보 팀은 다른 어떤 곳보다 막강하다.
이는 큰 사고가 터지면 회생할 수 없는 카테고리기에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김청연 이사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티…… 팀장님!”
김청연 이사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 말은 아까 하셨어야죠.”
“사실 너무 계약 조건이 박해서 이건 실제로…….”
“그럼 계약하지 않으셨어야죠.”
“처음입니다. 정말 이번이 처음…….”
“그만하시죠. 처음인지 아닌지는 법정에서 가리면 됩니다.”
나는 김청연 이사의 팔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마 과장은 양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박스를 문 옆에 고이 내려 두고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어이구 무서워라. 사람을 그냥 잡아먹겠네요.”
* * *
돌아온 사무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팀원들은 퇴근하지 않고, 나와 마 과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김경일 대리가 가장 먼저 물었다.
나는 팀원들을 모아 놓고 오늘의 일을 소상히 얘기해 줬다. 한참을 듣던 김대성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내가 이 새끼들을 그냥……. 가요! 당장 가서 뒤집어 버리든가 해야지!”
마 과장은 손을 뻗어 김대성의 큰 주먹을 감싸며 말했다.
“김대성이, 너까지 그러고 가면 우리 살인미수로 고소당한다.”
“네?”
“네가 엠로지스 이사 표정을 봤어야 해. 완전 겁에 질려서……. 어휴, 옆에 있던 나도 오줌을 지리겠더라. 이 선한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무섭게 변하는지, 정말 신기했다고.”
마 과장은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지이이잉, 지이이잉!
책상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원 팀장! 엠로지스 가서 완전 뒤집어 놨다면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김지영 이사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벌써 소문이 났어요?”
– 응. 방금 엠로지스 김청연 이사한테 전화 왔었어.
“그 인간이 뭐랍니까?”
– 뭐 뻔하지. 협상하자고 하는 거지.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 원 팀장하고 얘기하라고 했어. 난 그냥 원 팀장 의견만 따라갈 거라고.
김지영 이사는 지금처럼 내 의견을 먼저 물었고, 그 의견에 따라 줬다.
“잘하셨습니다.”
– 아직 사무실이지?
“네.”
– 내려와. 오늘 한 건 했으니까. 내가 술 한잔 살게.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 그래? 그럼 기다리지 뭐. 언제 끝나는데?
“들어가세요. 좀 걸릴 것 같습니다.”
– 아니야. 천천히 일 보고 와. 끝나면 전화하고.
나는 전화를 끊고 팀원들을 회의실로 모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이나 인상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김경일 대리가 안경을 추켜 올리며 물었다.
“다 받아 낼 겁니다.”
“어떻게요?”
법정까지 가면,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증거도 없는 지금, 이 금액을 받는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또한, 그동안 변호사나 각종 노력을 생각한다면, 적당한 금액에 합의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 돈을 지급하도록 내 방식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 돈을 주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이 있도록 만들어야죠.”
이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설마 보증보험을 끌어내려는 건가요?”
“이건 인재야. 미리 계획하고 저지른 범죄라고……. 보증보험은 나오지 않을 거야.”
옅은 미소를 짓는 김경일 대리.
그는 이번 일이 몹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팀장님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우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자! 내일부터 우리 팀은 더 바빠질 겁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도록 하죠.”
김대성이 가슴을 활짝 펴고 크게 웃었다.
“잘됐네요. 하하하 안 그래도 요즘 좀 심심했습니다.”
“대성 씨, 힘은 쓰지 않을 거야.”
“팀장님! 왜 그러세요? 저 머리도 좀 씁니다. 안 그래 연두 씨?”
“글쎄요.”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가지 않겠다는 팀원들을 억지로 집으로 보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9시.
김 이사에게 전화할까 했지만, 너무 늦었기에 조용히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하 주차장.
내 차 앞을 막고 있는 새하얀 포르셰 파나메라 보였다. 창문이 열리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김지영 이사가 내게 손짓을 했다.
“원 팀장!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전화하라고 했지?”
“지금까지 차에서 기다리신 거예요?”
통화를 하고 1시간이나 지났는데…….
김지영 이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제 나올지 몰라서.”
“하……. 정말 못 말리겠네요. 늦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겨우 아홉 시인데 뭐. 나 초보운전 딱지는 뗐으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타! 야간 운전도 꽤 잘해.”
나는 차 뒷유리에 초보운전 딱지가 떨어진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수석의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일식집의 조용한 룸.
김지영 이사와 단둘이 마주했다. 그녀는 음식을 주문하고, 먼저 나온 술을 내 잔에 따라줬다.
“잘했어. 안 그래도 게네들 마음에 안 들었거든.”
“무슨 일 있었나요?”
“엠로지스 애들 언제나 고자세잖아. 별것도 없는 것들이 이래라저래라하고. 계약할 때 얼마나 난처했는지 알아?”
“그랬어요?”
“응. 이건 아버지 라인 타고 위에서 내려온 계약이야.”
“흠……. 그랬군요.”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려고?”
“저는 사십 칠억 삼천 이백 십육만 삼백 이십 원. 일 원도 안 빼고 다 받을 겁니다.”
김지영 이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하겠어?”
“네.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정말? 그럼 꽤 길어질 텐데? 그리고 우리 법무 팀 가지고 부족해서 다른 법무법인을 껴야 할지도 몰라. 들어가는 비용이랑 시간은 계산해 본 거야? 승산은 있겠어?”
“이사님.”
“응?”
처음에는 내가 전면으로 나설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30대 여성의 비율이 60%가 넘는 마켓 프레시.
회사 내에 직위도 낮은 남자가 튀어나와서 떠드는 것보다 그들과 연령대가 비슷한 여자 임원이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얼굴이고, 또한 회사 내의 권력을 노리는 인물.
김지영 이사. 그녀는 분명히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방송 한번 타 보시겠습니까?”
“방송을? 내가?”
“한 달 전에 고구마 큐브랑 재냉동한 제품들 전부 다 폐기한 거 기억하시죠?”
“그건 왜?”
“정직한 커머스 마켓 프레시라는 컨셉으로 방송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게 될까? 사람들은 칭찬하는 것보다는 욕하는 것에 익숙해. 그래서 방송국 놈들도 그냥 헤집고 다닐만한 곳만 찾아다니는 거고.”
“찾아봐야죠. 그동안 이사님은 엠로지스 쪽의 시간을 끌어 주세요.”
“그래. 한번 해 볼게.”
그사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김지영 이사는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덜어 내 접시에 올려 줬다.
“먹어. 먹고 힘내야 싸우지. 사십칠억……. 얼마라고 했지? 하여간 그거 다 받아 내려면 배불리 먹어야지.”
김지영 이사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녀가 집어 준 회를 입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찬성하신 거로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