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12
212. 누구 라인이라는 말 많이 하지?
늦은 밤, 회사 인근의 실내 포차.
“왜 최구열 이사가 만들어 온 것을 바꾸려 하십니까?”
마주한 김현중 대리가 물었다.
나는 술병을 비스듬하게 들고 마지막 남은 술을 잔에 따랐다.
“이제 내가 해야 하니까.”
“네?”
“최구열 이사님이 아닌, 내가 해야 하니까.”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한국적인 조직 문화로 성공을 일군 최구열 이사.
그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내부 팀들 간의 경쟁을 부추겨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온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단점이 있는 법.
그의 시스템은 지금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절대자가 사라질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다. 특히 경쟁의 승자인 서인수 부장 같은 사람이 현실에 안주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김현중 대리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지금 전략기획부 실세들은 전부 서인수 부장의 라인입니다. 아무리 이사님이라도 단체로 덤비면…….”
“걱정하지 마. 뭐가 더 효율이 높은지만 판단하려는 거니까. 그리고 서 부장님도 업무 능력은 뛰어난 분이니, 금방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야.”
“…….”
“그나저나 현중 대리, 요즘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지?”
내 말에, 김현중 대리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괜찮아. 문제 삼으려는 거 아니니까.”
잠시 머뭇거리는 김현중 대리.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업무 끝나고 아르바이트하는 투잡족이 요새 얼마나 많은데.”
“…….”
“대신 회사에 있는 시간에만 집중해 주면 되지.”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좀 어려웠습니다.”
“근데 그거 핑계인 거 알아?”
“네?”
“핑계잖아. 노력했으면 진급할 수 있었잖아. 우리 회사만큼 특별 진급이 많은 회사도 드물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정말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기회라는 거, 제 생각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중요 프로젝트에 포함되길 바랐는데, 한 번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매번 특판팀에서 올라온 기획안 조정만 하다…….”
“그게 뭐 어때서?”
“네?”
“특판팀 기획안 조정하는 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엔 네가 좀 성급했어. 최 이사님이 갑자기 그만두시면서 그런 거지, 정상이었다면 지난달에 진급했을 거야.”
김현중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알바는 그만둬. 일단 급한 돈은 내가 빌려줄 테니까.”
“…….”
고개를 푹 숙이는 김현중 대리.
나는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퇴직금에 압류라도 걸어서 꼭 받을 거니까. 이번엔 받아.”
“고맙습니다. 꼭 빨리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사님.”
“응?”
“저랑 주식 대리, 소정 씨만 데리고 TF가 가능할까요?”
“셋이 어떻게 그 많은 분량의 기획서를 만들어? TF는 조창연 팀장, 김재원 과장, 김경수 대리, 정아현 씨까지 총 일곱이야.”
경험이 많은 조창연 팀장.
그는 이전 전략기획부의 수장인 양주영 부장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 대부분의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였고, 이제 그의 팀에 남은 인원은 넷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인수 부장에게 완전히 밀려나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김현중 대리는 놀란 눈을 하고 되물었다.
“UX 3팀. 조창연 팀장이요?”
“응. 왜?”
“아…… 아닙니다.”
말을 아끼는 김현중 대리.
하지만 함께 마주한 이 간이 테이블에서는 그의 기억이 숨김없이 들려왔다.
MD 사업부에서는 누구 라인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불필요하다 생각한 내가 가장 먼저 없앴으니까.
하지만 최구열 이사의 전략기획부는 달랐다.
그는 직원들의 경쟁을 중요시했고, 이는 양주영, 고동수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내가 손대지 못했던 이곳.
전략기획부에서는 서인수라는 인물에 의해 최구열 이사가 만든 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하고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전략기획부는 아직도 누구 라인이라는 말 많이 하지?”
“그게…….”
“또 그게네. 내가 여기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 말인 거 알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습관이 됐나 보네요.”
“다들 자기 생각을 똑바로 말 못 하잖아. 그놈의 라인 때문에…… 왜 개인을 하나로 묶어 버린 거야? 난 그냥 현중 대리 생각이 듣고 싶어서 물은 거야.”
“그러네요. 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네요.”
내 말에, 김현중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최구열 이사님은 팀들 간의 경쟁을 중요하게 여겼었지. 그게 회사에 시너지가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분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이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경쟁을 시킨다는 있는 거……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
“바꿀 수 있을까요? 서인수 부장이 인정할까요?”
“응 그럴 거야. 꼭 그럴 거야.”
나는 씩 웃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가자.”
“어딜요?”
“옆에 고깃집에 조창연 팀장이랑 팀원들 오라고 했거든.”
“지금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현중 대리는 부랴부랴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렇게 우린 10여 분을 걸어 UX 3팀이 있는 고깃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선택한 여섯의 직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재원아, 팍팍 먹어! 남자 새끼가 왜 그렇게 깨작거려?”
“괜찮겠죠?”
“뭐가 걱정이야? 원 이사님이 밀어주신다는데.”
“…….”
“원 이사님이 이 회사 실세인 거 몰라?”
“팀장님은 모르시겠어요? 이건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뭐가?”
“떨거지들 한 번에 몰아넣고 결과 나오지 않으면 그냥 내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최 이사님이 최종 평가한다면서요? 그분이 언제 우리 기획서에 한 번이라도 만족하신 적 있으셨습니까?”
“이번에 만족하게 해 드리면 되지. 그리고 왜 우리가 떨거지야? 내가 볼 때는 원 이사님이 완전 에이스들만 초이스 하신 것 같은데?”
나까지 팔아 가며 분위기를 만들려는 조창연 팀장.
하지만 UX 3팀의 팀원들은 이미 풀이 죽어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경쟁에서 패한 것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 조창연 팀장도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계셨습니까?”
“하하하 그냥 뭐 이런저런 얘기들 하고 있었습니다. 이사님이 앞으로 우리 UX 3팀을 팍팍 밀어주실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요.”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UX3 팀은 여기서도 라인 타령인가요?”
“네?”
“지금까지 라인 때문에 밀렸다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오해가 생길 만한 것은 처음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그들의 라인이 되어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닌, 능력을 보일 기회를 준 것뿐이니까.
내 말뜻을 이해했을까?
조창연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그냥 힘 좀 내라고 애들한테 뻥 좀 쳐 봤습니다.”
“…….”
“압니다. 이사님이 전략기획부의 라인 같은 거 다 지워 버리려 하신다는 거요. 그래서 여기 주식 대리, 현중 대리, 소정 씨를 TF에 포함시키셨잖아요.”
이미 내 생각을 파악하고 있었구나.
하긴, 경험이 많은 조창연 팀장이 내 생각을 읽지 못했을 리가 없겠지.
“네. 잘 아시네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
“서인수 부장은 저희한테 제대로 된 업무도 준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는 이사님이 아닌, 저희 힘으로 꼭 잡아낼 겁니다. 아현 씨 안 그래?”
조창연 팀장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정아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와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네. 그럴 겁니다.”
공유한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들의 기억.
특판팀 마성근처럼 열정이 넘치는 조창연 팀장.
그동안 이 넘치는 열정을 어떻게 참아왔는지 모르겠다.
김경일처럼 상황 판단이 빠른 김경수 대리.
팀 내의 모든 기획서를 작성한다는 인물이라 그런지, 그는 이미 기획서의 초안을 잡고 있었다.
하연두처럼 포기를 모르는 스타일의 정아현.
작고 여려 보이지만 어금니를 꽉 깨문 그녀의 표정에서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게 만들어 줬다.
닮았다.
MD 사업부에서 가장 작은 팀이었던 특판팀과 너무도 닮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그러자 조창연 팀장이 재빨리 두 손으로 잡은 잔을 내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뭐가요?”
“기회를 주셔서요.”
“그 얘기는 경쟁에서 이기면 그때 듣도록 하죠.”
“네.”
* * *
이튿날 오전 주차장.
“이사님.”
차를 주차한 서인수 부장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TF 대부분이 UX 3팀이라고요?”
참 소문 빠르다.
어제 퇴근 직전에 그들을 불러 말했었는데, 벌써 알고 있다니.
“네.”
“조창연이 예전에 큰 사고 친 건 기억하시죠?”
조소가 섞인 표정으로 말하는 서인수 부장.
겨우 그런 팀을 TF에 넣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난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조창연 팀장의 UX 3팀이 주도하에 개발한 페이지에 오류가 생겨 한동안 마일리지 적립이 되지 않았던 것을.
“네. 압니다.”
“정말 아세요? 그때, UX 3팀이 테스트만 잘했더라도 그런 일은 안 생겼을 겁니다. 매사에 덤벙거리는 조창연 팀장이 그래서 차장 진급에서 빠졌던 겁니다.”
“부장님. 리타깃팅은 UX 3팀이 기획한 서비스 아닌가요?”
회원이 본 상품을 우측에 보여 주는 서비스.
다른 커머스에도 있는 기능이지만, 우리는 이를 더 강화했다. 체류시간과 빈도, 구매율, 이전에 구매한 카테고리 등을 별도로 저장해 실제 구매율이 높을 것 같은 상품을 위주로 뽑아냈다.
그리고 이 서비스를 통해 2퍼센트 이상의 매출이 상승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알죠. 하지만 UX 3팀은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그거 말고 현재 사이트에 적용된 기획은 하나도 없습니다.”
“라인 놀이 하느라 기회를 안 준 건 아니고요?”
“…….”
내 말에, 서인수 부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
아마 내가 이사의 직급을 달고 있어 이 정도만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눈 풀어요. 레이저 나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