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14
214. 그럼 결정 난 건가요?
D-4.
오후 11시 40분.
미팅을 끝내고 팀원들이 있는 호텔 근처를 지났다.
환하게 불이 켜진 꼭대기 층 스위트룸.
아직 일하는 걸까?
회사로 돌아가 샘플로 받은 레토르트들을 몽땅 쓸어 담았다. 그리고 다시 호텔의 스위트룸을 찾았다.
“이사님!?”
새빨간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 주는 김현중 대리.
나는 양손에 들고 있는 종이 가방을 보이며 씩 웃었다.
“야식 먹자.”
“야식이요?”
“응, 현중 대리만 있는 건가?”
“아니요. 소정 씨만 잠깐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갔습니다.”
“그래?”
어제도 집에 가지 않은 거로 아는데…….
김현중 대리는 급하게 내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을 받아 들었다. 나는 외투를 벗고 양팔을 걷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소파에 누워 출력한 기획서를 살피던 조창연 팀장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이사님. 이렇게 늦게 무슨 일로…….”
테이블과 식탁에 앉아서 기획서를 작성하던 팀원들도 일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그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식 먹자고요. 이 많은 걸 혼자 먹기는 좀 그렇잖아요.”
“주세요. 제가 할게요.”
팔을 걷으며 앞으로 나서는 팀의 막내 정아현.
나는 종이가방에서 레토르트를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현 씨. 이건 내가 조리해야 그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
“네?”
“아직 시판되지도 않은 따끈한 신상이라서 말이야.”
“그래도…….”
정아현이 어찌할 줄 몰라 하자, 장주식 대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현 씨 이사님 말 들어. 오늘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사님이 해 주는 요리를 얻어먹겠어? 안 그럽니까, 이사님?”
“맞아요. 다신 이런 기회 없을 겁니다.”
나는 냄비를 찾아 물을 끓이고, 레토르트들의 포장을 뜯어냈다.
* * *
D-3.
내 요청에, MD 사업부 도재문 팀장과 개발 팀 이을호 팀장이 호텔로 왔다.
도재문 팀장은 현재 MD 사업부에서 쓰는 예측 시스템의 기획자로 빅데이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현재 예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며 생긴 지식도 상급 개발자 수준이었다.
“도 팀장님. 데이터를 너무 쪼개 놓은 건 아닌가요? 이러면 서버에서 로드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텐데요?”
그의 설명 도중 장주식 대리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자 도재문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작은 화이트 보드에 설명을 이어 갔다.
“그래서 방문자가 없는 시간에 크론을 돌려놨습니다. 127서버부터 131서버까지요. 총 5대가 같은 시간에 데이터를 계산하고 그 결과값을 프론트에 뿌려 주는 구조입니다.”
“그럼 전일까지의 데이터 아닌가요?”
“네, 그렇죠. 실시간 데이터 구축까지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크론이라……. 저 이을호 팀장님!”
“네?”
“만약 같은 서버에서 다른 크론이 동시에 돌아가면 무리가 있을까요?”
이을호 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하가 심할 겁니다.”
“그럼 똑같은 크론을 사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죠?”
“네, 정확히 하려면 다른 랙에 들어가 있는 서버들을 확인해 봐야 하는데, 지금은 증설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크론 돌리는 용도로 새 서버를 들이기는 아깝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모두가 열심이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고, 밤을 꼴딱 새운 조창연 팀장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장 대리. 결국, 크론이 답이라는 거지?”
“네, 아무래도 그거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 우리 조금만 쉬었다 하자고.”
“팀장님은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오세요. 전 어제 잠깐 잤더니 괜찮습니다.”
“그래. 수고.”
* * *
D-2.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붙어 있는 테이블에서는 지난 기억들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지금까지 쓴 기획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을 구현하는 방법에는 완벽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뭔가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실현 방법이 없을까?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다들 모여 봐요.”
내 말에, 긴장한 표정을 한 팀원들이 소파 앞 테이블로 모였다. 나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 다들 초조하죠? 그리고 만족스럽지도 않고.”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는 팀원들.
나는 씩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카펜의 뚜껑을 열고 내 생각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큐레이션 서비스의 목적은, 회원들이 ‘오늘 뭐 먹지?’ 또는 ‘오늘 뭐 해먹지?’라는 생각이 들 때, 선택하기 쉽도록 도움을 주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까지 회원들의 패턴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 회원이 브로콜리를 골랐으면, 다음은 아보카도를 고를 것이라는 통계를 뽑고 그 데이터를 보여 주려고 했죠.”
“네. 그렇죠.”
“우리는 그 데이터가 너무 방대해서 지금까지 처리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요.”
“그래서요?”
“바꿔 봅시다. 데이터가 작지만 완벽한 표본이 있으니까.”
“회원들의 표본을 뽑겠다고요? 그건 UX 1팀이랑 같은 내용 아닌가요?”
조창연 팀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화이트보드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은 인원이지만 정확한 표본이 될 수 있는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켓 프레시의 MD들.”
우리 MD들.
이보다 정확한 표본이 있을까?
이들은 직접 먹어 본 제품만 팔겠다는 의지로 모든 제품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샘플로 온 제품뿐 아니라 직접 구매를 하면서 말이다.
“MD들이요?”
“네. 모든 식품의 맛을 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MD들이요.”
“하긴 그거 말이 되네요. 어떤 식품이 신선하고 상태도 좋은지 잘 알면서, 맛이나 조리법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MD들뿐이니까.”
“네, 작지만 정확한 표본이 될 수 있는 거죠. 어때요?”
내가 묻자, 장주식 대리가 가장 먼저 동의를 표했다.
“맞아요. 그 생각을 왜 못했죠? 우리 MD들을 큐레이터로 삼으면 정확한 표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재원 과장과 김경수 대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가까이에 정확한 표본이 있는데 괜히 고민했군요. 하핫.”
“맞아요. MD들이라면 정확하겠죠.”
마지막으로 김현중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보탰다.
“도재문 팀장이 만든 크론 데이터를 합치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는데요? 거기에는 재고 예측이 나오잖아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내가 답하자, 조창연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독려 했다.
“자자! 이틀 남았다고! 방향이 정해졌으니까 이제는 페이퍼로 옮겨야지! 소정 씨!”
“네?”
“도 팀장님이 전에 준 스토리보드 있지? 그거 기반으로 뽑아 올 데이터들 다 추려 봐.”
“네. 알겠습니다.”
“아현 씨는 우리 MD들 아이디 확인하고, 구매한 품목들 다 뽑아 줘.”
“시뮬레이션 돌려 보게요?”
“그래. 시간 없으니까 다들 빨리 움직이자고!”
완벽한 서비스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가 우리 제품을 가장 많이 먹을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맛을 표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양한 제품을 주문하는 사람은?
이 모든 의문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 MD들뿐이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팀원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D-1.
오후 11시 40분.
“경수 대리. 경수 대리!”
조창연 팀장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김경수 대리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조창연 팀장의 손을 잡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냥 둬요. 제가 마무리하면 됩니다.”
“이사님이요?”
“쉿, 깨겠네요.”
나는 식탁에 엎드려 잠든 김소정과 턱을 괴고 코를 골며 잠든 김현중 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창연 팀장은 그들을 둘러보고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 * *
D-Day.
“오셨습니까?”
대회의실 앞.
긴장한 표정의 서인수 부장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뭐 이렇게 긴장했어요?”
“아닙니다. 이사님 얘기는 대충 들었는데, MD들을 표본으로 사용하신 겁니까?”
“네. 뭐 문제 되나요?”
“아……. 아니요.”
“긴장 풀어요.”
나는 서인수 부장의 어깨를 툭툭 치고 환하게 웃었다.
그때 들려오는 그의 기억.
UX 1팀을 지휘하던 서인수 부장.
어디서 우리 기획서를 봤는지, 그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그의 등에 손을 가져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시죠.”
회의실 안.
김지영 대표와 유화성, 유이나 이사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회사를 찾은 최구열 이사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네?”
“평소 원 이사님답지 않아서요. 혹시 어제 제대로 못 주무신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발 뻗고 편하게 잤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네. 아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하하, 여전히 솔직하시군요.”
“좀 쉬셨으면 돌아오시죠?”
“더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요즘 딸아이랑 목공 학원 다니는데 푹 빠져서요.”
나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UX 1팀의 차명주 차장의 PT가 끝났다.
결론만 말하자면 평범했다.
그냥 너무 평범하고 단순해, 지루할 정도였다.
그만큼 최구열 이사의 얼굴에도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차명주 차장. 표본을 매일 200명씩 뽑을 때 오차 범위에 대해 생각해 봤나?”
“네. 오차 범위는 플러스마이너스 5% 이내로 좁힐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수치를 뽑았지?”
“구매가 많은 상위 200명 회원의 시뮬레이션을 직접 돌려 봤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뭐가 정확한 데이터인지는 뽑아 봤느냐는 말이야.”
“그게…….”
“설마 정확한 값도 모르면서 오차 범위를 잡은 건가?”
당황한 표정의 차명주 차장.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서인수 부장이 대신 답을 했다.
“이사님. 지난 1주간 매일 200명씩 뽑은 데이터를 기초로 했습니다.”
“그 또한 완벽한 데이터는 아니지 않나? 기준값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걸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역시 최구열 이사다.
그는 정확히 문제점을 짚어 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한테는 그냥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로 들리는데?”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서인수 부장.
최구열 이사는 별다른 대꾸 없이, 단상 위에서 PT를 준비 중인 조창연 팀장에게 물었다.
“조창연 팀장.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도 이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자네가 해 보게.”
긴장한 표정의 조창연 팀장은 준비한 PT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보는 최구열 이사와 김지영 대표, 유화성, 유이나 이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갔다.
물론 나 또한 흐뭇한 표정으로 그의 PT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최구열 이사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조창연 팀장이 고개를 숙이자, 최구열 이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했네. 잘했어.”
“그럼 결정 난 건가요?”
김지영 대표가 묻자, 최구열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볼 것도 없겠네요. 처음 생각부터 차이가 있었고, 그 시스템을 구현하는 UI도 3팀의 것이 훨씬 훌륭했습니다.”
사실, 이는 처음부터 결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UX 1팀의 15명이 넘는 인원들 모두가 경력도 많고, 사업부에서도 많은 서비스를 기획했기에 더 자신감을 보였다.
더군다나 큐레이션 서비스는 그들이 반년 동안 잡았던 것으로 평소 무시하던 UX 3팀이 상대라는 말에 더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
나는 기획자가 아닌 MD다.
이들이 우리를 처음부터 무시한 것은 이들의 기억을 들은 내가 잘 안다.
하지만 자만은 실패를 불러오는 법.
그들은 오늘을 통해 자신들이 오만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서인수 부장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약속 지키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