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15
215. 준비는 끝났다
두 달 만에 큐레이션 서비스가 오픈했다.
그리고 우리의 예측은 정확했다.
7퍼센트 이상 급상승한 매출.
15퍼센트 이상 증가한 방문자에 개발팀은 급하게 서버를 증설했다.
이에 가장 공이 큰 UX 3팀의 조창연 팀장은 차장으로 진급했다. 또한, TF에 함께했던 팀원들 모두가 그의 팀에 배정됐다.
그렇게 변화가 시작됐다.
콘크리트처럼 굳건했던 벽이 사업부 내에서 가장 힘없던 UX 3팀의 진급 사례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중 과장! 기획서 올려놨나?”
“네!”
“재원 팀장은 개발팀에 지난주 데이터 좀 요청해 줘.”
“안 그래도 미리 받아 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전략기획부.
키보드 소리만 들리던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나는 전략기획부 사무실을 둘러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몇달 후, 오전 8시.
일산 물류센터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오늘은 오프라인 마트 1호점의 최종 점검 날.
그동안 설비 시공과 직원 교육까지 마친 우리는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잠시 시험 운영을 하기로 했다. 마트 앞의 긴 줄을 보던 정진택 차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와……. 이렇게 많이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러자 그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마성근 팀장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다 우리 특판팀 덕분입니다. 특판팀이 준비한 100원 이벤트에 다들 기대 중이라고요.”
특판팀이 특별히 준비한 품목은 총 12가지
체리, 블루베리 등의 수입 과일 5종과 옛날 치킨, 호떡 등의 조리 식품 7종이 오늘 특별히 100원에 판매된다.
“이봐요. 마 차장님. 체리랑 블루베리는 우리 신선팀이 집어다 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아니요. 우리가 직접 벤더들에게 제안한 건데요?”
“그러니까! 그 벤더들 다 우리 신선팀이 데려온 거잖아요.”
“데려만 오면 뭐 합니까? 이렇게 바로바로 결실을 만들어야죠.”
어이없다는 표정의 정진택 차장.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 좋아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도 100원 이벤트 손실이 70% 이상인데, 그걸 가지고 특판팀의 공이라고 하는 건 너무 억지 아닙니까?”
“저 많은 사람이 100원짜리 체리 500g만 사 가겠습니까? 차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이런 상품 하나로 이슈를 만들고…….”
그냥 두면 끝이 없을 논쟁이다.
나는 둘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으며 씩 웃었다.
“자자 그만들 하고. 안에 들어가서 진열 상태 좀 확인하시죠. 경일 차장 혼자 힘들 테니까.”
“아……. 네.”
“가시죠.”
나는 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
신선 식품과 정육, 수산물 코너.
우리가 가장 공을 들인 곳으로 최대한 전통 시장과 유사하게 인테리어를 했다.
입구 근처에는 각종 길거리 음식의 진열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매대 위에 가득한 과일과 채소들의 향긋한 향이 풍겨 왔다.
“오! 팀장님이 직접 나오셨어요?”
정육 코너에 멈춰 선 정진택 차장.
그는 청년 고기의 장문영 팀장에게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오늘 시험 운영하는데 제가 직접 나와야죠. 어머, 이사님도 오셨네요?”
내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장문영 팀장.
오늘은 긴 머리를 위로 묶어서 그런지 얼굴이 더 갸름해 보였다.
“네. 직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에게 기회를 주셔서 더 감사하죠. 오늘 갈빗살 특판 물량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본사에 요청 넣어 놨습니다.”
벌써 준비했구나.
마트 입구에 서 있는 줄을 보고, 추가 물량을 준비해 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다음 코너로 향하려는 순간.
정진택 차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뒤를 따라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소매가 내 오른손을 스쳤고, 나는 그의 조금 전 기억을 들었다.
어쩐지 요즘 청년 고기에 너무 자주 간다 했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정진택 차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 유난히 머리에 힘을 줬네요?”
“네?”
“이 옷도 못 보던 거 같은데? 새로 산 건가요?”
“아닙니다. 작년에 산 건데, 옷장에 처박혀 있던 거 꺼낸 겁니다.”
“그나저나 청년 고기 장문영 팀장님은 갈수록 예뻐지네요.”
“그죠?`
내 말에 자신도 모르게 동의를 표한 정진택 차장.
곧바로 실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런 분야에만 눈치 빠른 마성근 차장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정 차장님! 혹시?”
“혹시 뭐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뭘 그렇게 시작해요?”
“제가 얘기했었나요? 우리 마누라가 협력사 경영지원팀 직원이었다는 걸요?”
“하……. 마 차장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에이. 척 보면 척인데. 귀신을 속이지, 저를 어떻게 속입니까?”
“무슨 얘기 하는 겁니까?”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정육 특판 진열대에 멈춰 섰다. 그리고 포장된 갈빗살 팩을 보며 정진택 차장을 불렀다.
“진택 차장님!”
“네?”
“이거 포장이 좀 헐거운 거 같은데요? 진공 포장 팩, 체크 좀 해 보시겠어요?”
“아……. 그러네요. 제가 가 보겠습니다.”
정진택 차장은 재빨리 내가 들고 있는 제품을 들고 등을 돌렸다. 그것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성근 차장은 멀어지는 그를 보고, 씩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전, 딱 석 달 봅니다.”
“네?”
“석 달 안에 정 차장이 청첩장 들고 올 겁니다.”
“그렇게 빨리요?”
“아까 못 보셨어요? 장문영 팀장이 정 차장한테 눈웃음을 치는 거요. 장 팀장도 분명 마음이 있을 겁니다. 정 차장이 심각하게 못생긴 거 빼고는 다 괜찮잖아요.”
“풉.”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올렸다 하는 마성근 차장.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손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았다.
2층.
냉동, 냉장, 상온의 레토르트와 스낵 코너.
시식 행사를 담당하는 각 회사의 판촉 사원들이 각 진열대 앞에서 조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야에 진열대를 돌고 있는 김태하 부장이 들어왔다.
“태하 부장!”
그는 내 목소리를 듣고, 시식 코너의 떡갈비를 이쑤시개에 꽂아 왔다.
“이거 좀 먹어 봐. 찰진에서 나온 새 냉동인데, 장난 아니야.”
억지로 나와 마성근 팀장의 입에 밀어 넣는 김태하 부장.
나는 맛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이거 소스만 따로 포장한 거 맞지?”
“역시 원지훈은 바로 아네. 맞아. 떡갈비만 냉동시키고, 별도로 소스를 뿌려 먹게 해 놨어. 그래서 그런지 소스에 수분이 그대로 남아서 더 촉촉한 것 같더라고.”
“2층은 좀 어때?”
“보다시피 모든 것이 완벽해.”
“잠깐, 잠깐만요!”
갑자기 마성근 차장은 한 손을 올려, 나와 김태하 부장의 대화를 끊어 냈다. 그리고 이동 통로에 진열된 이벤트 스낵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덕산 레인보우 칩이요. 이번에 특가로 안 넣었는데, 왜 이게 여기 있죠?”
“네?”
“뭔가 전달이 잘못됐나 보네요. 이거 특판 품목에 넣었다가 어제 뺐거든요. 덕산에서 생산량 부족하다고 해서요.”
“그래요?”
“네. 저는 남아서 스낵들 단가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내가 답을 하자 마성근 차장은 가방에 있던 커다란 노트를 꺼내, 제품가를 일일이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거 제가 다 큐알로 찍어 본 건데?”
“큐알이요?”
“네. 이걸로 가격들 다 확인했어요.”
김태하 부장이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건네자, 마성근 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때론 이런 방식이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BO 푸드에서 창고 관리직을 했던 마성근 차장.
그렇기에 아직도 아날로그식의 방식으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론 그의 선택이 맞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나는 마성근 차장과 김태하 부장을 2층에 두고 마지막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건강식품과 가전, 코스메틱과 약간의 의류가 있는 곳.
그리고 계산대와 캐셔들이 있는 곳이다.
1층에는 겨우 3개의 계산대가 있었고. 이곳에는 무려 11개의 계산대가 준비되어 있다. 이는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주차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산대를 둔 것이었다.
분주하게 준비하는 계산대 캐셔들의 앞에 서 있는 김경일 차장.
그는 총책임자로 보이는 여자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렸다.
“경일 차장.”
“오셨습니까?”
다크서클이 심하게 내려온 김경일 차장은 곧바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요. 없습니다.”
“그래. 준비는 다 끝난 거지?”
“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답하는 김경일 차장.
이는 많이 긴장했을 때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서 들려오는 기억.
오프라인 마트의 총책임자로 걱정이 많았었나 보다.
나는 씩 웃으며,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1층 정육에 진택 차장 있어. 그쪽 진공 포장들 새로 보고 있을 거야.”
“그래요?”
“응. 그리고 2층에 마 차장님이 스낵이랑 레토르트들 가격 확인하고 있어.”
“왜요? 뭐 틀린 거 있었나요?”
“덕산 레인보우 칩, 그거 특판에서 이틀 전에 뺐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응.”
“제가 여기 나와 있느라 인트라넷을 확인 못 했나 보네요.”
그 말과 함께 부랴부랴 밑으로 내려가려는 김경일 차장.
나는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 마 차장님이 확인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제가 내려가야죠. 제가 책임을…….”
“그거보다 좀 쉬지?”
“네?”
“어젯밤에 나와서, 밤새 여기 있었다면서?”
김경일 차장은 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푹 숙였다.
“후……. 그래도 부족한 거투성이네요. 마음 같아선 하루만 오픈을 연기하고 싶어요.”
“아니야. 지금도 충분해.”
“…….”
“잘했어. 이제 보자고, 밖에 기다리는 우리 회원들이 얼마나 만족을 하는지 말이야.”
“네…….”
“다른 팀원들은?”
“김 팀장은 고객센터 직원들 매뉴얼 확인 중이고, 박 과장이랑 김 과장은 물류 센터 쪽 진입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재하 대리는 냉동고 점검하러 갔고, 연두, 정엽, 재영 씨는 진열대 돌고 있습니다.”
“그래.”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8시 55분.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실전이다.
앞으로 5분 후면 줄지어 기다려 준 사람들과 차들이 우리의 첫 번째 마트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 우리가 준비한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만족할 것이다.
나는 창가로 걸어가 1층을 내려다봤다.
아까보다 더 길어진 줄.
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조금씩 번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