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3
23. 내가 먼저 올라가야
사업부 내에서는
분기 실적이 가장 좋은 팀장이 부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이제 2주 후면 각 팀의 첫 분기 실적이 나온다.
MD 사업부의 실적 평가는 참 쉽다.
누가 얼마를 팔았고, 얼마를 남겼는지가 너무도 쉽게 숫자로 표기되니까.
매출만 놓고 보면 우리 팀은 가공식품 팀보다 10% 더 많았지만, 이는 안심할 수준이 아니었다. 영업이익과 방문자 대비 판매율, 카테고리 상품 수와 소비자 만족도 등의 수치는 그들이 월등했다.
그래서 그런지 팀원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열심이었다.
아마도 내가 먼저 부장으로 올라가야.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른 팀에 지기 싫다는 생각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나와 김경일 대리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마성근 과장은 수도권 사설 창고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우진은 식품 연구팀과 함께 보냉팩 테스트에 집중했고.
김경일은 택배사들의 조건을 비교했으며.
하연두는 잠재 고객들에게 리서치를 실시했다.
그리고 우린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늦은 밤.
“하아!”
마 과장이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세요.”
내가 말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그리고 열심히 키보드를 치는 김경일 대리의 모니터를 힐끔 봤다.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끝나 갑니다.”
“그럼 끝나고 치맥 할까? 팀장님! 금요일인데, 그냥 들어가기 아쉽지 않으세요?”
처음부터 마 과장의 목적은 퇴근이 아닌 치맥인 것 같았다.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팀원들.
그들 모두가 금요일 밤의 치맥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럴까요? 집에 가실 분은 가세요. 매번 말하지만, 그냥 간다고 불이익이나 뒷담화 같은 거 없습니다. 또한, 연애하시는 분은 언제든 가셔도 좋습니다.”
“여기서 연애하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팀장님이 쏘는 치킨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마 과장은 김 대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크게 웃었다.
회사 인근의 치킨집.
저녁을 김밥으로 부실하게 때운 우리는 1인 1닭을 하기로 했다.
10인용 테이블에 앉아, 치킨 6마리와 생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할당량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팀장님. 한 마리 더 시켜도 됩니까?”
가장 먼저 클리어한 김대성이 치킨 뼈 무덤을 가리키며 물었다.
“벌써 다 먹은 거야? 그래 시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다 시켜.”
“그럼 두 마리 시키겠습니다. 간장 양념이랑 마늘 바사삭 이거 둘 다 먹고 싶었거든요.”
“그래 얼마든지.”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음껏 시키라는 손짓을 했다.
“팀장님. 저는 소주 한 병 시켜도 될까요?”
술을 좋아하는 이우진도 살포시 손을 들어 올렸다.
“일주일 내내 야근시켰는데, 그것도 못 사줄까 봐? 누구든 먹고 싶은 건 다 시켜! 그리고 주말에는 푹 쉬는 거다.”
“전 그러면 생맥 좀 시키겠습니다. 갈증이 가시질 않네요.”
마 과장은 빈 잔을 들어 올려, 점원에게 생맥을 주문했다.
“과장님은 집에 안 들어가세요? 형수님도 기다리실 텐데?”
“흠……. 그래서 안 들어가는 겁니다. 기다릴 것 같아서…….”
“네?”
“아, 그런 게 있습니다. 팀장님도 나중에 결혼하시면 제 마음을 아실 겁니다. 그나저나 팀장님은 연애 안 하세요?”
“왜요? 소개팅이라도 시켜 주시게?”
마 과장은 팀원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개팅이라……. 우리 그러지 말고 말 나온 김에 팀장님 장가보내기 프로젝트 한번 해 볼까? 다들 어때?”
김대성이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찬성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제가 꼭 소개팅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도 찬성. 팀장님 모시고 매주 클럽을 돌겠습니다. 물론 돈은 팀장님이…….”
평소 클럽 마니아인 이우진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조용히 앉아 맥주를 들이켜는 하연두.
그녀는 아까부터 이상하게 말이 없었다.
“연두 씨, 팀장님이랑 5살 차이지? 혹시 주변에 괜찮은 친구 없어?”
마 과장의 느닷없는 질문에 하연두가 고개를 저었다.
“친구 없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없다니까요! 저 왕따였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7년 내내 친구 한 명도 없었다고요!”
하연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 장가가기 프로젝트는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남은 맥주를 입안에 털어 넣은 김경일 대리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는 반대입니다.”
“뭐야? 김 대리까지 왜 이래?”
“팀장님이 연애하면 이런 자리 가질 수 있겠습니까? 부장 다시고 나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흠……. 냉정한 놈. 하지만 그 말도 일리는 있네.”
나는 마 과장과 김 대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이분들이 갑자기 훌륭한 프로젝트를 망치려고 하시네? 부장이랑 연애랑 무슨 상관입니까? 대성 씨랑 우진 씨는 아까 말한 프로젝트 그대로 할 거지?”
김대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생각해 보니까 김 대리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팀장님, 그냥 조금만 참으시죠.”
* * *
평일에 자지 못했던 잠을 몰아서 잤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토요일 내내 조용하던 내 휴대폰이 일요일 오전에 울렸다.
나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팀장님. PPT 수정해서 보냈습니다.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의 김경일 대리였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토요일에 작업한 겁니까?”
– 아니요. 방금 일어나서 조금만 수정한 겁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안 봐도 알 것 같다.
토요일 내내 잡고 있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는 것을…….
“제가 주말엔 쉬자고 했잖아요.”
–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요.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 수고했어요. 일요일은 제발 좀 푹 쉬고 월요일에 봅시다.”
–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김 대리가 보낸 파일을 확인했다.
새로운 통계와 그래프들이 추가되어, 두 페이지나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다시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딩동! 딩동!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대충 눈곱을 떼고 걸어 나갔다.
“누구세요.”
“팀장님! 김대성입니다.”
“대성 씨?”
“주무셨죠? 잠깐 이것만 드리고 가려고요. 문 앞에 두고 가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내려놓는 김대성이 나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그거 뭐야?”
“어머니가 올라오셨는데, 잔치 음식들이 좀 생겨서요. 혼자 먹긴 좀 많아서…….”
“이거 주려고 아침부터 우리 집으로 온 거야?”
“네. 내일 큰일 치르셔야 하는데, 드시고 힘내시라고요.”
나는 묵직한 스티로폼 상자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생각들.
음식을 한 김대성의 어머니 생각들이 가득하다.
“잠깐 들어와. 커피 한 잔 줄까?”
“아닙니다. 어머니 터미널에 모셔다드려야 해서 바로 가야 합니다.”
“그래? 그럼 잠깐만.”
나는 냉장고 앞으로 뛰어가, 내려놓은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왔다. 그리고 지갑에 있던 지폐들을 꺼내 하얀 봉투에 담았다.
“가자.”
“네?”
“이렇게 맛있는 거 해 주셨는데 어머니께 인사는 드려야지.”
“팀장님이요?”
“이건 대성 씨 운전하면서 마시고.”
나는 텀블러를 김대성에게 떠넘기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며 까치집이 진 머리와 눈곱을 정리했다.
“어머니! 뭐 이렇게 많이 주세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대성의 어머니가 차 밖으로 나왔다.
“아따! 팀장님! 안 내려오셔도 되는디…….”
“맛있는 거 많이 주셨는데, 어떻게 그냥 받아만 먹습니까?”
“아니지라. 원래 맛있는 거 있으면 요로코롬 거시기 해야죠잉.”
“네, 그럼 저도 거시기 해야죠.”
나는 주머니에 있던 봉투를 김대성의 어머니 주머니에 넣어 줬다.
“시방! 요것이 뭐시여? 아따 팀장님!”
“재룟값 반도 안 될 겁니다. 가실 때, 선물이나 좀 사 가세요.”
옆에서 가만 보고 있던 김대성이 미간을 구겼다.
“팀장님!”
“어머니 잘 모셔다드리고.”
나는 김대성의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 *
월요일 아침.
팀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난 일주일간의 야근과 노력이 오늘로 결정이 나기 때문이었다.
마 과장은 목에 걸고 있던 빨간 넥타이를 풀어, 내 목에 걸어 줬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이게 제 부적 같은 겁니다. 오늘만 특별히 빌려 드리겠습니다.”
“왜 이러세요?”
“팀장님이 부장님이 되어야 제가 팀장이나 차장이 될 테니까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 과장을 바라봤다.
“너무 대놓고 이러시는 거 아닙니까?”
“대놓고 이래야 기억을 하시죠. 하하하.”
나는 USB 메모리와 노트북을 챙겨, 임원 회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대표이사와 두 명의 이사.
그리고 각 사업부 부장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불이 꺼지고, 준비한 PPT의 첫 페이지가 커다란 스크린에 보였다.
“3PL 업체의 비리와 부정은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 팀에서는 직접 배송하는 방안을 마련해 봤습니다.”
이미 회의 주제는 처음부터 공개되었기에, 반응이 조용하다.
나는 PPT의 다음 장을 넘기며, 설명을 이어 갔다.
“스티로폼 박스 대신 보냉팩을 이용하면, 현재 배송 비용의 70%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인력 비용을 제해도 최소 30% 이상의 절감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저희가 테스트한 보냉팩 샘플입니다.”
보냉팩의 가장 큰 문제점은 테이프의 접착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보냉팩의 위 공간을 보라색 끈으로 묶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고급 선물의 이미지도 있고, 무엇보다 갑자기 상온에 노출될 위험이 줄어들어 온도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보기 좋네요.”
김지영 이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팀의 노력을 이들이 조금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3분 정도의 발표가 끝나자.
최구열 이사가 가장 먼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군요.”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MD 사업부에서 가능하겠습니까? TF(task force, 목적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는 인원들로 구성한 팀)를 구성해야 할 것 같군요.”
최 이사의 말이 맞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팀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 이사님. TF는 제가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십쇼.”
“아니요. 이 정도 하셨으면 됐습니다. 나머지는 전략기획부의 양주영 부장이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략기획부의 양주영 부장.
그는 최 이사의 오른팔로 마켓 프레시의 모든 정책을 만든 인물이다.
이렇게 고생한 프로젝트를 그냥 넘기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마 과장이 목에 걸어 준 넥타이를 꽉 움켜쥐고 마이크 앞에 입을 가져갔다.
그때 김지영 이사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특판 팀이 준비했는데, 전략기획부가 결과만 쏙 빼먹겠다는 겁니까?”
“특판 팀이 어떻게 이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합니까? 사설 창고 섭외와 택배사 조율, 배송 관련 인원 충원 등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특판 팀이 그 많은 걸, 일주일 만에 구체화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마무리 지어 주겠다는 말입니다.”
최 이사와 김 이사가 서로를 견제하는 건 처음 본다.
중앙에 앉은 대표이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며 턱을 괴었고, 모인 부장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최 이사와 김 이사.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바로 김지영 이사였다.
“특판 팀이 아니라 MD 사업부에서 마무리 하겠다는 말입니다. 사설 창고와 택배, 제품에 관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 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