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4
24. 그건 양보 못 합니다
김 이사와 최 이사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솔직히, 나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라 생각했다.
평소 점잖은 최 이사까지 이번 일에 욕심을 내도록 만들었으니까.
“전략기획부는 단 한 번도 실패하거나,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건 특판 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재고도 없이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왔습니다.”
“이사님. 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건 기획자가 하는 일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건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직접 사설 창고를 찾고, 단가를 조율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MD 사업부나 물류 팀에서 하고, 올라온 보고서를 기반으로 전략기획부에서 새로운 프로세스를 기획해야죠.”
“보고요? 누가 누구에게 보고한다는 말입니까?”
그들의 공방이 끝나지 않자.
중앙에 앉아 있던 정근영 대표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제가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양주영 부장님!”
최 이사의 오른팔 양주영 부장.
그는 전략기획부의 총괄로 미국에서 성공한 그룹폰의 실질적인 브레인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예, 대표님!”
“양 부장님의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이사님의 말처럼 MD 사업부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정 대표는 한 손을 턱에 가져가고 잠시 망설였다.
“음……. 그럼 함께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양주영 부장님과 원지훈 팀장님. 두 분 다 우리 회사의 인재들입니다. 둘이 함께하면서 어떤 시너지가 날지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대표님!”
김 이사가 소리를 지르자.
정 대표는 한 손을 들어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MD 사업부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발의하고 사전에 많은 경우들을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김 이사님의 말처럼 MD 사업부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유리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전략기획부에서는 양 부장님과 2~3명 정도의 인원을 지원하고, TF 팀의 팀장은 MD 사업부에서 정하도록 하세요. 그럼 되겠습니까?”
정근영 대표는 단 한 번도 특판 팀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냥 MD 사업부라고 크게 뭉뚱그려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MD 사업부에 있는 정 대표의 아들인 정진택 팀장.
비록 이번 프로젝트에 끼워 넣을 수는 없지만, 아들이 속한 MD 사업부가 잘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TF의 팀장은 원지훈 팀장입니다. 그가 발의했고, 직접 가능성 조사를 했으니까요. 이에 이의는 없으시죠?”
“예. 그렇게 하세요.”
김지영 이사의 말에 최구열 이사가 너무도 쉽게 답했다.
무슨 속셈인가?
나는 최 이사와 양 부장을 번갈아 봤다.
그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태연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어떻게 됐습니까?”
사무실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 마 과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팀원들 또한 모든 일을 멈추고 내 입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와!”
“거봐요, 제가 된다고 했죠?”
“팀장님! 이제 뭐부터 하면 될까요?”
흥분한 팀원들.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MD 사업부와 전략기획부에서 새로운 TF를 구성하게 될 겁니다.”
TF라는 말에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대성이 크게 소리쳤다.
“그냥 우리 팀이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준비는 다 했잖아요!”
“맞아.”
“그럼 우리가…….”
“우리 업무는 어떻게 하고?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다 할 수 있겠어?”
“그게…… 네, 하겠습니다. 몸이 부서져도 하겠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1~2주 바짝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의 팀원들로는 길게 끌고 갈 수 없다.
이미 이를 잘 알고 있는 마 과장이 김대성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성아. 이건 당연한 거야. 우린 기존에 해야 할 업무가 있잖아.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
“잘된 거야. 우리 생각이 회사에 받아들여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운 거야.”
“…….”
“이번 프로젝트 잘 끝나면, 팀장님이 알아서 잘 챙겨 주시겠지. 안 그러냐?”
마 과장은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김경일 대리는 차분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최 이사나 양 부장의 밑에서 일했던 김경일 대리.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김 대리. 커피 한잔할까?”
“예.”
커피를 받아서 올라간 옥상.
김 대리는 주머니에 있는 전자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오늘은 영 맛이 안 나네요. 팀장님. 담배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요.”
담배에 불을 붙여 주자.
김 대리는 깊게 빨아들이고 공중에 연기를 내뱉었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마 과장님 빼고는 다 편하게 하시는데, 왜 저한테만 존대하십니까?”
“나이도 같고, 혹시나 불편할까 봐서요.”
“지금 이게 더 불편합니다.”
나는 씩 웃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참 맑죠? LA도 이랬어요?”
“양주영 부장님은 최구열 이사님보다 더 많은 실무 경험을 가진 분이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내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룹폰을 매각할 때도 그쪽에서는 양 부장님에게 총괄을 맡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최 이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고,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오신 겁니다.”
“…….”
“양 부장님은 절대 쉬운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무슨 수를 써서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하가 뚜렷한 사람입니다. 밑에 사람이 기어오르는 것을 절대 보지 못하는 그 성격 때문에 미국에서도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럼 김 대리는요?”
“네?”
“난 양 부장인지, 양조장인지 하는 사람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
아무런 답이 없는 김경일 대리.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김경일이라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았고, 좋아하는 취미는 뭐고, 연애는 하는지, 부모님은 잘 계신지 등이 궁금하군요.”
김 대리는 피식 웃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팀장님은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내가 좀 그렇긴 하죠. 나는 누구랑 일하느냐보다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팀원들 보면 스타일이 다 다르잖아요. 심지어 돼지고기에서 좋아하는 부위도 다 다르고. 근데 신기하게도 일할 때면 하나로 뭉칩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서 팀에 큰 도움을 줍니다.”
“네. 저도 그래서 즐거웠습니다.”
“전략기획부에서 어떤 사람들이 올지 모르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네요.”
나는 김경일 대리의 어깨를 툭 치고,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렸다.
“TF에는 마 과장님과 대성 씨, 연두 씨를 데리고 가세요.”
“네?”
“그동안 특판 팀의 일들은 저와 우진 씨가 처리하고 있겠습니다. 이미 1개월 이상의 제품을 섭외해놔서 충분히 둘이 할 수 있습니다.”
TF 팀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참여자들은 모두 진급을 할 것이다.
그래서 다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건데…….
김 대리는 그 기회를 양보하겠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고 있다.
“괜찮겠습니까?”
“네.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잖아요.”
“내가?”
“지금 TF에 필요한 건 저같이 페이퍼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 과장님처럼 현장에서 뛰어다닐 사람입니다. 그리고 팀장님 없이, 특판 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음…….”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회식을 하거나 하면 꼭 불러 주세요. 그건 양보 못 합니다.”
* * *
며칠 후, TF 팀의 인원들이 확정됐다.
MD 사업부에서 차출된 인원으로는 특판 팀의 마성근 과장, 김대성, 하연두.
유아동 카테고리의 최치성 대리와 가공식품 팀의 이미선이 전부였다.
그리고 전략기획부에서는 양주영 부장과 최진영 대리, 박혜선이 합류하기로 했다.
우린 17층 MD 사업부의 대형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9개의 책상 배치가 끝난 상황이었다.
창을 등지고 있는 상석에는 나와 양 부장의 자리가 붙어 있었고, 그 앞으로 팀원들의 자리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처음 뵙네요.”
말끔한 슈트 차림의 양주영 부장이 손을 내밀었다.
“네, 원지훈입니다.”
“그나저나 이거 참 난처하게 됐군요.”
“네?”
“한 팀에 팀장이 둘이나 있고…….”
정 대표는 MD 사업부에서 진행하고, 전략기획부에서 이를 지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여우처럼 약은 양주영 부장이 선을 넘고 있다.
아마 그는 조금씩 이런 식으로 넘으면서 상황을 볼 것이다.
김 대리의 조언처럼…….
“어디 둘이겠습니까? 여기 마 과장님도 충분히 팀장직을 하실 수 있는 분이고, 최진영 대리님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얼렁뚱땅 내가 둘러대자, 양 부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최 대리님은 잘 모르지만, 우리 마 과장님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네?”
“이번 프로젝트를 처음 발언하신 분이고, 물류 경력만 15년이 넘습니다.”
양 부장은 마 과장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다 들립니다.”
“뭐요?”
“그렇게 중얼대면 누군가는 듣는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그런 행동은 주의해 주세요.”
내 말에 양 부장이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팀원들은 기 싸움을 하는 나와 양 부장을 두고 조용히 자신들의 자리로 향했다.
“무슨 냄새 안 나요?”
“응? 이게 무슨 냄새야?”
코를 막고 대화를 하는 박혜선과 최진영 대리.
다른 부서에서는 MD 사업부를 비하할 때, 이런 냄새가 난다고 놀리곤 했다.
“무슨 쓰레기 냄새가 난다는 겁니까?”
처음부터 양 부장과 팀원들을 흘겨보던 김대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럼 나는 걸 난다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이 사람들이 진짜? 당신들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닙니까?”
“뭐 당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정리한 것은 양 부장이었다.
“다들 뭐 하는 겁니까?”
말없이 고개를 숙인 최진영 대리와 박혜선.
하지만 김대성은 씩씩거리며 양 부장에게도 대들려 했다.
그때.
“하핫, 죄송합니다. 부장님.”
마 과장이 김대성의 입을 틀어막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양 부장은 마 과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MD 사업부는 다들 이럽니까? 아래위도 없이?”
역시 김경일 대리의 조언처럼, 그는 상하 구조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이거 너무 코리아스러운데요? 부장님 좋아하시는 아메리카 분위기랑 다른데요?”
내가 끼어들자, 양 부장은 미간을 구기며 나를 바라봤다.
“뭐요?”
“부장님은 LA에서 큰일을 하고 오셨다고 해서 조금은 다를 줄 알았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완전 꼰대네, 꼰대.”
“말 다 했습니까?”
“아직 남았는데, 오늘은 아껴두고 다음에 하죠.”
이런 식의 힘 싸움.
원한다면 해 주마. 나보다 5살이나 많고, 경력도 많지만 난 이길 수 있다.
지금 내 오른손으로 그의 기억들을 충분히 읽었으니까.
나는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서 그의 책상에 올려놨다. 그리고 씩 웃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상사가 아래 직원을 대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