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29
29. 진짜 수원 왕 갈비탕
전략기획부가 TF를 떠나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마 과장과 김대성은 이틀 만에 서른 개가 넘는 사설 창고들과 계약했고, 나도 택배사와의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또한, 연구소에 틀어박혀 살던 하연두는 연구팀을 닦달해 가며, 기존보다 10%나 성능이 좋아진 보냉팩의 개발을 끝마쳤다.
TF에 새로 합류한 정진택 팀장.
그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곧바로 어딘가로 사라졌고, 퇴근할 무렵이나 기어 들어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화를 냈겠지만, 나는 그런 그의 행동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점심시간이 되기 10분 전.
“식사하셨습니까?”
김경일 대리가 TF팀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TF로 나오면서 그와는 메신저로 가끔 대화만 했을 뿐,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제 해야죠.”
“약속 없으시면, 저랑 하시겠습니까?”
말수가 적고 붙임성이 부족한 김 대리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다.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보다 의자에 걸어 둔 상의를 걸치며 답했다.
“우리 김 대리님이 맛집이라도 찾으셨나? 그럼 당연히 가야죠. 여기서 멀어요?”
“아니요. 탕비실에 준비해 놨습니다.”
이건 신제품을 시식해 보자는 말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상의를 다시 의자 뒤에 걸어 두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네?”
“아닙니다. 무슨 제품인가요?”
“갈비탕입니다.”
“햇살식품? 조앙푸드? 리치푸드? 아니면 BO푸드?”
“브랜드 레토르트는 아닙니다.”
“제품명이 뭔데요?”
“진짜 수원 왕 갈비탕입니다.”
처음 듣는 제품이다.
그리고 한번 들으면 까먹지 않을 정도로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런 제품이 있었어요?”
“네. 얼마 전에 에이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김 대리가 신경 쓸 정도면, 잘 팔렸나 본데?”
“일일 100개만 한정 판매를 하는데, 5분 만에 완판됩니다. 가져온 두 팩도 일주일 만에 겨우 구한 겁니다.”
“미팅은 해 봤어요?”
“전화는 두 번, 한 번은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거절당했습니다.”
“왜요?”
“공장이 아닌 직접 조리하는 방식이라, 당장은 추가 생산이 어렵답니다.”
“그럼 나중에 공장에서 생산하면 가져오면 되겠네.”
“일단 드셔 보시죠.”
나는 김 대리를 따라 탕비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갈비탕을 담을 빈 뚝배기와 엉성하게 포장된 제품이 놓여 있었다.
“이건가요?”
“네.”
이렇게 성의 없는 디자인은 처음이다.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적힌 진짜 수원 왕 갈비탕이란 글씨 뒤로, 50대의 여성이 제품을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지…….
엉성하게 보정이 된 사진은 어떻게 보면 웃기기까지 했다.
김 대리는 말없이 제품의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나도 그를 따라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폴리프로필렌 팩에 담긴 국물과 커다란 갈비 한 대.
그리고 잘게 썰린 파, 다진 마늘, 생강 슬라이스, 액상 수프, 조미료 같은 가루가 따로 포장되어 있었다.
컨셉인가?
보통은 하나나 두 개의 분말로 만드는데, 왜 이렇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모르겠습니다.”
“흠…….”
대부분의 MD는 레토르트를 시식할 때.
포장지 뒷면에 적힌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래야 제품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제품 뒷면의 조리법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김 대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게 뭐죠?”
“형편없죠?”
많은 재료처럼, 길고 장황한 조리법을 기대했는데…….
전자레인지에 5분간 돌리라는 말과 그냥 기호에 맞게 섞어 먹으라는 말이 전부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건가?”
“팀장님은 거기 있는 거 전부 넣어 보세요.”
“김 대리님은?”
“저는 인터넷 블로거가 남긴 조리법대로 해 보겠습니다.”
나는 작은 봉지에 따로 담겨 있는 것들을 뜯어, 뚝배기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5분의 타이머를 맞추고, 뒷면에 적힌 원재료와 함량, 칼로리 등의 상품 정보를 확인했다.
띵!
5분이 지나고, 뚝배기 안의 갈비탕을 확인했다.
둥둥 떠 있는 기름 덩어리와 시들시들해진 파.
숟가락을 저어 보니, 다진 마늘 덩어리도 그대로 보였다.
“5분 맞죠?”
“네.”
“근데 왜 이거 안 녹았을까요? 파는 나중에 넣어야 했는데……. 마늘은 냉동이었나? 조리법에는 분명 처음에 같이 넣으라고 되어 있었죠?”
“네.”
김 대리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고 다시 전자레인지로 가져갔다.
“30초만 더 돌려보겠습니다.”
그렇게 30초씩 추가하기를 6번.
8분간 전자레인지에 돌리자, 하얀 기름 덩어리들이 녹아 있었다. 김 대리는 숟가락으로 다시 국물을 떠먹고 고개를 저었다.
“식당이랑은 많이 다르네요.”
나는 국물을 살짝 떠서 맛을 봤다.
액상과 분말 가루를 반만 넣을 걸 그랬다.
짜고 단 양념들에서 오는 맛이 너무 강해, 국물의 깊이를 방해했다.
내가 미간을 구기자, 김 대리는 블로거의 조리법대로 조리한 자신의 것을 내밀었다.
“이거 드셔 보세요.”
조리법을 그대로 지킨 내 것과는 너무도 차이가 컸다.
국물은 깊었고.
별도로 포장되어 있던 갈빗대에서 간장 양념이 느껴졌다.
“이거 양념 갈비인가 본데?”
“네. 그런 거 같네요.”
“그래서 내 것은 맛이 그랬구나. 이거 패키징은 에이마켓에서 했죠?”
“그럴 겁니다.”
“하기 싫으면 아예 하지 말든가. 좋은 제품을 이따위로 포장하고, 조리법도 엉터리로 적어 두고……. 이거 그냥 이벤트 제품 같은데?”
“네.”
아무리 인기가 좋은 제품도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매일 한정 100개만 판매.
이런 이벤트가 오래갈 수 있을까?
아니,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그냥 오프라인 식당의 명성을 업고 가는 마케팅용 미끼일 뿐이다.
그럼 왜 MD들은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낼까?
그 이유는 이렇게 급조한 상품을 위에 걸어 두고 다른 상품을 할인 판매하거나, 번들로 구성을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이벤트로 만들어진 제품은 판매가 꾸준하면 그때 공장에 생산을 요청하고, 그렇지 못하면 버리면 그만이니까.
아마 이 갈비탕도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갈빗대 제가 먹어도 되죠?”
“그러세요. 근데 식당에서 먹던 것만은 못하네요.”
“그래요? 그렇게 맛있었어요?”
“네.”
나는 갈비를 손으로 들고 한 입 베어 먹었다.
식감도 좋고, 양념도 강하지 않아 딱 좋았다.
아깝다.
다른 제품 판매를 돕는 들러리로 묻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제품이다.
조금만 수정을 하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제품인데…….
공급만 맞출 수 있다면 가능한데…….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전할 수 있죠? 난 마무리할 일이 좀 남아서 옆에서 일 좀 할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사악한 인간, 그러려고 나 데려와서 이거 먹인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아셨군요.”
“오늘은 일단 사전 답사입니다. 알았죠?”
김 대리는 말없이 씩 웃고는 내가 건네는 차 키를 받아 들었다.
* * *
삐빅! 삐빅!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김 대리가 차 키를 눌렀지만, 응답이 없다.
그제야 집에 두고 온 것이 기억났다.
“내가 요새 정신이 없네. 차 두고 왔네요.”
“그럼 택시 타고 가시죠.”
“네, 그래야겠어요.”
그때.
주차하고 사무실로 올라가려는 정진택 팀장이 보였다.
“잠깐. 더 좋은 차가 생긴 거 같은데?”
나는 김 대리의 앞을 한 손으로 막고, 다른 손을 올려 정 팀장을 불렀다.
“정 팀장님!”
“네?”
“식사했어요?”
“아뇨, 이제 해야죠.”
“잘됐네. 갈비탕 괜찮죠? 우리랑 같이 먹으러 가요.”
“갈비탕이요?”
나는 그의 옆구리에 팔을 집어넣고, 반강제로 그의 고급 세단 앞으로 갔다.
“차 좋네. 로열은 역시 로열이야.”
“이거……. 어머니가 몰던 차인데…….”
그런 건 관심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수원 왕 갈비탕 어때요?”
“네 괜찮긴 한데……. 진짜 수원은 아니죠?”
“맞는데? 내비는 제가 찍을 테니까 정 팀장님은 앞만 보고 운전하세요.”
영 가기 싫은 표정의 정 팀장.
하지만 그는 내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운전대를 잡았다.
정 팀장은 운전하는 내내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툴툴댔다. 나와 김 대리는 그의 말에 가끔 맞장구를 쳐 주며 그렇게 수원에 도착했다.
역시 소문난 집이라 그런지.
밖에는 대기하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거 먹으려고 1시간이나 걸려서 왔는데, 줄까지 서야 합니까?”
주차를 하고 온 정 팀장이 툴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끌려 온 것도 그렇고, 이렇게 뙤약볕 아래 줄 서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일단 맛보시고 얘기하시죠.”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된 테이블과 삐걱대는 의자.
메뉴는 갈비탕 하나뿐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반찬들이 세팅됐다.
정 팀장은 배가 고팠는지, 먼저 깍두기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그리고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직접 담그나 보네. 깍두기는 일단 괜찮네.”
김 대리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벽에 있는 원산지 표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국산입니다.”
“아……. 어쩐지 대륙의 맛이 느껴진다 했어.”
나는 씩 웃고 방금 나온 갈비탕 국물의 맛을 봤다.
전자레인지에서 조리한 레토르트 제품과는 천지 차이였다.
깊은 국물과 딱 맞는 간.
고기의 육질은 레토르트보다 훨씬 훌륭했다.
“다르네.”
“그죠?”
“네. 완전히 다르네요.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도대체 에이마켓 애들은 무슨 짓을 한 거야?”
김 대리의 옆에 앉아 있는 정 팀장.
그는 벌써, 뚝배기를 비스듬하게 두고 국물을 떠먹고 있었다.
“와아……. 하아……. 하아…….”
“괜찮죠?”
“뭐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하네요. 근데 이거 갈빗대에서 독특한 양념 맛이 나는데요?”
“양념에 재워 둔 갈비를 그대로 넣어서 그럴 겁니다.”
“갈비탕 갈빗대도 양념해서 들어가요?”
“그게 여기만의 비법이겠죠.”
우린 갈비탕 세 그릇을 모두 비우고, 계산대로 걸어갔다.
내가 카드를 꺼내자, 정 팀장이 재빨리 지갑에서 자신의 카드를 꺼냈다.
“제가 살게요.”
“운전까지 하셨는데 제가 사야죠.”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그냥 넣어 두세요. 팀장님이랑 밥 한번 먹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뽀글뽀글 파마의 여자가 누구든 빨리 돈을 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만칠천 원입니다.”
커다란 순금 팔찌, 반지, 귀걸이, 목걸이로 장식한 여자.
레토르트 포장지 뒤로 보였던 심미옥 사장이 분명했다.
나는 계산대 옆에 진열된 레토르트 제품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거 에이마켓에서 판매하죠?”
“네에.”
“커피는 어디 있나요?”
“옆에요.”
심미옥 사장은 계산대 옆에 있는 자판기를 가리키며 귀찮다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자판기 버튼을 누르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거 인터넷에서 사 먹어 보고 궁금해서 와 봤거든요. 10팩만 주세요.”
나는 계산대 옆의 레토르트 포장지를 가리켰다.
심미옥 사장은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품을 포장하며, 많이 해 온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 들어간 양념들은 반만 넣으세요. 고기에 양념이 되어 있어서, 다 넣으면 짜요.”
“그럼 양념들 처음부터 반만 넣으시지. 전 처음에 다 넣었거든요.”
이건 제품 개발 단계에서 신경을 안 쓴 거다.
보통의 MD라면 분명 시식을 하고 양념을 줄이자고 말했을 것이다.
“아줌마. 나도 10개, 아니다. 20개 줘요. 계산은 이걸로 다 해 주고.”
계산을 마친 정 팀장도 계산대의 제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미옥 사장과 정 팀장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뒤에 싸여 있는 제품 박스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별다른 생각이 읽히지 않는다.
그럼 재고나 반품 상품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심미옥 사장이 건네는 제품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 순간.
거의 다 팔았다고?
그럼 재생산은 하지 않을 생각인가?
자식이 원수라는 건 무슨 뜻일까?
나는 정 팀장과 김 대리에게 이끌려 차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