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32
32.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대 회의실.
벌써 한 시간째 임원 회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전과 다르게 프레젠테이션 중간에 질문을 받는 형식이라, 더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나는 각 부서장을 둘러보며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었다.
“새로 개발한 보냉팩과 배송 시스템으로 배송비를 1,236원씩 절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새로 고용할 직원과 시스템 비용을 고려해도, 약 740원 정도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지금처럼 월 170만 건 이상 배송될 경우, 연간 130억 이상을 세이브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보냉팩의 성능 테스트는 끝났나요?”
최구열 이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마지막 페이지에 BO푸드 식품연구팀과 서울대학교, 전문 용역 회사 세 곳에서 받은 테스트 결과를 첨부해 놨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연구 기관들의 결과에는 거의 오차가 없었습니다. 냉동의 경우 29도 이하에서 최소 176분, 23도에서 27도 사이면 600분 이상이 유지됐습니다. 이는 단순 보냉팩만 포함한 결과고, 드라이아이스를 추가하면 1시간에서 2시간까지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송 시간이 너무 이른데, 택배사와 협의는 끝났습니까?”
“기존의 단가에서 15% 인상해 주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습니다. 17페이지 택배사와의 계약 내용을 요약해 뒀습니다.”
내가 답을 끝내자.
전략기획부의 양 부장이 손을 들고 질문을 이었다.
“사설 창고들의 시설 때문에 제품에 문제나 배송에 차질이 생길시, 이는 어떻게 됩니까?”
“계약 시 보증 보험에 가입하도록 해 놨습니다.”
“만약 보증 보험의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면요?”
“마치, 문제가 생기길 바라시는 것 같네요.”
내 말에 양 부장은 드디어 꼬투리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의 경우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생겨도 소비자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양주 창고는 제품의 재고 10%를 항시 보관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놨으며, 창고의 잘못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부분을 계약서에 명시해 놨습니다.”
“명시만으로 될까요?”
“사설 창고들은 우리가 엠로지스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만약 유사한 문제가 생긴다면 똑같이 처리할 생각입니다.”
양 부장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지영 이사는 미소를 머금고,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갔다.
“기대효과는 얼마나 됩니까?”
“저희 TF는 달빛 배송으로 월 500억 이상의 추가 매출과 연간 1,500억 이상의 영업이익을 예상했습니다.”
“근거는요?”
“커머스의 후기들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것으로 식품 카테고리의 경우 배송에 대한 불만이 36.21%나 됐습니다. 이 중 11.67%가 심한 클레임을 표했고 이들의 유입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그런 회원들은 마켓 프레시에서도 클레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준비해 놨나요?”
“예. 이미 CS 사업부에 스크립트를 배포해 놨습니다. 또한, CS 인원은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놨습니다.”
구석에 있던 마케팅 사업부의 김태석 부장이 손을 살짝 들었다.
“마케팅 플랜은 잡았습니까?”
“이미 마케팅팀에 내부 배너 여섯 구좌 노출을 요청했습니다. MD 사업부의 다른 배너들은 그 이후로 일정을 잡도록 했습니다.”
“외부 마케팅은요?”
“마켓 프레시 내부 DA(배너광고, Display AD) CTR(클릭률, Click Through Ratio)이 5%를 넘을 경우, 세부안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흠……. 그렇군요. 특별히 생각하신 매체는 있으세요?”
“TV, 라디오, 옥외광고 등 30대 여성층을 공략할 수 있는 매체들을 선정 중에 있습니다.”
김 부장의 질문이 끝나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때.
짝짝짝!
정근영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다음으로는 김지영 이사가 일어나자, 각 사업부의 부장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표정이 좋지 못한 최구열 이사와 전략기획부의 양 부장까지 박수를 보내왔다.
정근영 대표는 부서장들을 둘러보고.
허리를 숙여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갔다.
“일주일 안에 이번 서비스를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부서는 MD 사업부 TF의 일에 최우선으로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부족한 장비와 시스템, 인력을 충원하는 데 일주일이 더 소요됐다.
그리고 우린 당당하게 달빛 배송의 서비스를 오픈할 준비를 마쳤다.
TF가 해산되고, 원래의 자리로 짐을 가져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김경일 대리가 가장 먼저 반겨 줬다.
이우진은 평소처럼 김대성과 티격태격했고, 마 과장은 아이처럼 의자에 앉은 채로 빙빙 돌며 환하게 웃었다.
“내일입니다! 오늘 모두 좋은 꿈 꾸시고, 자 그만 퇴근합시다.”
“팀장님! 그냥 퇴근하겠다는 거 실화입니까?”
김대성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럴 때 한잔 싹 부어야죠. 신선식품팀에 가서 정 팀장님도 모셔 오겠습니다.”
그때.
“그럴 필요 없어요. 벌써 왔으니까.”
정진택 팀장은 팔짱을 끼고, 파티션에 기대 있었다.
나는 팀원들을 둘러보고,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좀 피곤한데?”
“에이 그러지 마세요. 팀장님!”
마 과장이 나를 거의 반강제로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김대성과 이우진이 달려와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었다.
“갑시다! 오늘은 팀장님이 소고기를 쏘신답니다.”
김대성이 입가에 손을 대고 소리쳤다.
“내가? 내가 언제?”
“배에 기름칠을 좀 해놔야 내일 전쟁을 치르죠.”
“그러니까 오늘은 좀 쉬어야지!”
“에이 팀장님! 그러지 마시고, 내일 딱 성공하고 쉬죠?”
“거짓말하지 마! 내일 데이터 잘 나오면 또 한잔하자고 할 거잖아!”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회사 인근의 포차.
마 과장과 김 대리, 하연두, 이우진은 내일 일이 많다며, 먼저 집으로 갔다.
그리고 2차를 가야겠다고 우기는 정진택 팀장 때문에, 나와 김대성은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초반부터 달린 정진택 팀장은 혀가 꼬부라진 상태로 중얼거렸다.
“좋아서 그래. 아주 좋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정진택 팀장.
그에게는 치명적인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보다 못하면 하대하고, 반말하는 것이다. 몇 번 지적했는데,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정 팀장의 술잔을 치우며 말했다.
“취했네요. 그만 드세요.”
“어라? 원지훈이다. 너무 잘나서 재수 없는 원지훈이다. 하하.”
김대성이 내 표정을 살피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 팀장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밖으로 데려나가려 했다.
“정 팀장님 그만하시죠.”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아냐고? 나 정진택이야! 정진택이라고!”
“알아요. 알아. 그만하고 일어납시다!”
“내가 뭐!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나? 나도 씨발! 잘하고 싶다고!”
정 팀장은 김대성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 그 잘난 아버지가 그러더라. 원지훈이 너 재수 없지만, 자기랑 너무 닮았다고. 나는? 아빠 피 물려받고 태어난 나는 뭔데?”
“…….”
“나도 잘할 수 있다고! 나도! 원지훈처럼 잘할 수 있다고!”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정진택 팀장은 언제나 아버지라는 큰 산에 가려져 살아왔다.
성공한 아버지가 나와 자신을 비교했을 것이고, 이에 나를 경쟁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TF에 들어와서, 확연한 격차를 느꼈을 것이다.
난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 이 일을 배울 때, 기억을 읽는 이 능력 때문에 금방 최고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넉살 좋게 거래처를 구워삶는 선배들은 언제나 나보다 위에 있었다.
닮아보려고 했는데, 경험이란 것을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1년, 또 1년.
나는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했다.
그래서 겨우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정 팀장의 잔에 술을 따라 줬다.
“아직 멀쩡하네. 한 잔 더 해요.”
정 팀장은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야! 너 몇 살이야? 내가 너보다 몇 살이 많은데 어디서 이게 콱!”
그는 한 손을 들어 올려 나를 치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대성이 손목을 꽉 움켜잡았다.
“정 팀장님, 적당히 하시죠.”
“넌 또 뭐야?”
손을 빼내려고 힘을 쓰는 정진택 팀장.
하지만 김대성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는 발버둥을 치다가,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파! 아프다고!”
나는 정 팀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놀고 다닐 동안 나는 죽어라 일했어요. 근데 팀장님은 어땠나요? 아버지 그늘 밑에서 갑질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았잖아요.”
“……!”
“뒤처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닥치고 뛰어다녀요. 이 바닥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다 당신보다 위에 있으니까. 팀장님이 함부로 반말할 정도로 낮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
“이미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으니까, 두 배는 더 뛰어 봐요. 혹시 알아요? 그럼 조금이라도 따라올지?”
정 팀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김대성에게 잡혔던 팔을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우리 원 팀장님이 너무 뼈를 때리시네. 덕분에 술이 확 깨네.”
* * *
이튿날 오전 10시.
MD 사업부 전체가 조용했다.
새로 시작하게 될 달빛 배송의 시작 시각이 이제 1시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목이 반쯤 쉰 마 과장.
그는 오전 9시부터 새로 계약한 사설 창고들에 전화하며 서비스 시작을 알렸다. 김대성과 하연두는 남양주 창고로 나가, 새로운 보냉팩과 포장을 담당할 새 직원들을 교육 상태를 점검했다.
김태하 팀장은 양손에 커피를 들고 내 책상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한 잔을 내밀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마셔.”
“땡큐.”
“가공식품팀 전체 상품에 달빛 배송 적용해놨어. 고객이 구매할 때 체크만 하면 모두 달빛 배송으로 나갈 거야.”
“그래.”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야. 전부 설정 확인했대.”
“나도 들었어.”
“마케팅팀에 배너는 확인했지?”
“응. 구좌 여섯 개 오픈 준비 중이야. 그리고 마케팅팀 김 부장 지인들에게 외부 DA 구좌도 세 군데나 받았어.”
“떨리냐?”
그건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젓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전혀. 냉동 제품들 재고 수량 체크했어?”
“에이. 달빛 배송 때문에 하루 만에 주문량이 늘어나겠어?”
“물론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부 DA만 돌리는데 어디서 알고 들어오겠어? 많아져 봤자, 한 10%나 뛰겠지. 뭐.”
“내기할까?”
“어쭈? 자신감 만땅인데? 알았다. 천천히 체크할 테니까 걱정 마셔.”
김태하가 자리로 돌아가고, 모니터에 온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 마케팅 DA 세팅 준비 마쳤습니다.
– 개발팀 시뮬레이션 모두 마쳤습니다.
– CS 스크립트 숙지 완료했습니다.
각 사업부에서 온 메시지들.
이제 완벽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둘러봤다.
“우진 씨는 한 시간마다 일반 배송 구매와 달빛 배송 구매 건수 체크해 줘.”
“예!”
“마 과장님은 대성 씨에게 전화해서 사설 창고들로 나가는 수량 꼼꼼히 체크하고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CS팀에 전화해서 질문 올라오는 것들 확인해 주시고.”
“예.”
오전 11시.
드디어 달빛 배송의 DA가 사이트 곳곳에 걸렸다.
CS팀에서는 평소보다 2배나 전화가 많다는 메시지가 왔다.
마케팅팀은 내부 DA의 클릭이 늘어나, 12%를 훨씬 넘는다는 통계를 보내왔다.
오픈한 지 겨우 10분이 지나서 말이다.
“반응 좋습니다!”
“네이버에 실검도 잡혔어요!”
팀원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이는 파티션 너머의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선식품 배송은 97%가 달빛 배송입니다!”
“창고에 전화해 봐! 재고 수량 빨리 체크해 보라고!”
“창연식품에 전화해서 당장 물건 가져오라고 해! 이따 밤에 배송 나가야 하잖아!”
“이 대리! 남양주 창고 재고 수량 가져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흐뭇한 표정으로 각 팀의 상황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