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33
33. 내 새끼는 내가 챙긴다
달빛 배송은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매출은 60% 이상 상승했고, 배송 만족도도 기대 이상이었다.
부천 사설 창고에서 제품 출하가 2시간 늦어진 것 말고는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창고들 관리를 철저하게 해 온 마 과장의 공이 컸다.
또한.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들과 3일 동안 실시간 검색어 10위 안에 들면서, 별도의 외부 마케팅 없이도 신규 회원이 늘어났다.
7일 동안 가입한 회원은 총 36만 명.
이들 중 제품을 구매한 회원은 무려 7만 명이나 됐다.
회사 로비.
외근을 마친 나는 1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로비로 들어왔다.
그때.
“지훈아!”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원스몰의 대표였고, 현재 마켓 프레시의 사외이사인 김재열.
그는 여전했다.
명품 옷과 액세서리들.
머리를 말끔히 넘긴 얼굴에는 포동포동 살이 붙어 있었다.
“대표, 아니 이사님.”
“와! 이 현실 적응 존나 빠른 놈 같으니라고. 바로 대표가 아니라 이사라고 부르네?”
“모르셨어요? 제가 좀 빠릅니다.”
“알지. 내가 널 어떻게 모르겠냐? 근데 너 전화 한 통 없더라?”
“이사님도 안 하셨잖아요. 잘 지내셨어요?”
“참 빨리도 묻는다. 나 어제 들어왔어. 한 3개월 크루즈 다녀왔거든.”
그는 아직도 여행이 그리운지 실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봤다.
“크루즈? 누군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주 신이 나셨네.”
“응, 좋았다. 아주 좋았지. 하하하 그래. 달빛 배송? 그거 네가 만든 거라면서? 오면서 기사들 봤는데, 와……. 이번엔 제대로 사고 쳤던데?”
“그렇게 됐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해서. 체인마켓 장상익 대표 알지?”
BO커머스가 체인마켓과 원스몰을 인수 합병할 당시, 각각의 대표이사들에게 사외이사직을 줬다. 이는 두 대표이사가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그럴싸한 감투만 준 것이었다.
“네. 알죠. 그분도 오신 건가요?”
“응. 먼저 올라갔을 거야. 근데 네가 차 부장 내쳤다면서? 장 이사가 아주 열 받았던데?”
“그것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제 잠깐 술 한잔했는데, 내가 그 인간 상대하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김재열 이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근데 말이지. 잘했어. 정말 잘했어. 그 여우 같은 놈한테도 이기고, 역시 내 새끼답다.”
“제가 왜 이사님 새끼입니까?”
그는 손목의 시계를 보고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 까칠하기는. 늦겠다. 13층 가려면 저거 타면 되지?”
“네.”
“이따 끝나고 연락할게. 잠깐 보자.”
그는 손을 흔들고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오후 7시.
회의가 길었나 보다.
로비로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보고,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벤치에 앉아 기다리던 김재열 이사는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손바닥만 한 상자를 내게 건넸다.
“뭡니까?”
“작은 선물이야. 크루즈에서 너 주려고 산 거야.”
“정말 작긴 하네요.”
“그거 그래도 10불이 넘는 거야!”
“10불……. 고맙네요. 아주 고맙네요.”
나는 선물 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배 모양의 열쇠고리.
나름 정교하게 만든 물건이긴 했다.
김재열 이사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이런 거 미리 스포하면 안 되는데, 내가 기분이 좋아서 좀 해야겠다.”
“뭔데요?”
“축하한다. 원지훈 부장. 아이고 어색해라. 그 코 찔찔 흘리던 놈이 300명이 넘는 회사의 부장이 다 되고.”
원지훈 부장?
사외이사들을 소집한 것이 인사 관련 일 때문이었나?
아니, 겨우 부장 인사에 사외이사를 소집할 리가 없다.
뭔가 다른 일이 있는 거 같은데…….
“결정 난 겁니까?”
“뭐야 이 표정의 일관성은? 무슨 포커페이스야?”
“…….”
“하여간 물건은 물건이야. 날고 긴다는 놈들 다 모아 놨는데, 팀장에서 부장까지 바로 올라가 버리고. 차장은 그냥 패스한 거냐?”
부장 승진에 대해서는 이미 자신이 있었다.
박 차장은 포기한 상태였고.
김태하나 장선영 팀장과도 격차가 많이 벌어졌으니까.
솔직히 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이 영입되지 않는 한, 내가 부장이 될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들으니, 나도 사람인지라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나 보다. 김재열 이사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래도 이 돌부처 같은 놈이 좋긴 좋은가 보네. 히죽거리고 말이야. 가자! 한턱내야지?”
“저희 팀원들은 어떻게 됐어요?”
“팀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과장이나 대리 이런 애들 인사까지 나한테 말해 주겠어?”
그는 마 과장이나 김 대리의 인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사외이사를 불러놓고 그렇게 작은 인사까지 논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따지듯이 물었다.
“근데 제가 왜 쏩니까? 이사님이 쏴야지?”
“내가?”
“새끼가 승진하는데 어미가 쏴야죠.”
“말이 그렇게 되나? 하여간 누가 쏘건 가자. 술 고파서 안 되겠다.”
회사 인근의 고급 바.
김재열 이사는 17년산 양주를 한 병을 주문하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구열 이사 무섭더라.”
“네?”
“너 그 인간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아주 못 잡아먹어서 난리던데?”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요? 그냥 일한 것뿐이죠.”
“정 대표님이랑 김지영 이사가 어렵게 설득했어. 김지영 이사 새로 봤다.”
“왜요?”
“너를 아주 끔찍이 챙기던데? 아 참, 내가 또 한몫하긴 했지. 장 이사 놈이 툴툴대는 거 찍소리 못하게 막아 버렸거든.”
안 봐도 훤하다.
인생의 90%가 로비라고 말했던 그는, 아마 어제 술자리에서부터 장 이사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근데 이사님.”
“응?”
“겨우 부장 인사 때문에 사외이사들을 다 부른 건 아닐 테고, 무슨 일 있어요?”
김재열 이사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오른팔을 소파에 걸치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눈치 빠른 것도 여전하네.”
“말하기 어려우면 하지 마시고요.”
“내가 너한테 뭘 숨기겠냐. 여기 좀 복잡하긴 하더라.”
“뭐가요?”
“정 대표랑 김 이사가 편 먹고 최 이사를 몰아붙이는데……. 나 같으면 정신을 못 차렸을 거야.”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 명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최 이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요?”
“근데 최 이사가 그냥 묵묵히 버티는 거야. 그리고 한방에 팡 터트렸지.”
“뭘요?”
“최 이사, 그 인간이 300억 펀딩 받아왔어. 그리고 마케팅 이사를 하나 집어넣겠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어.”
마켓 프레시는 오픈 석 달 만에 당당히 커머스 순위 5위 안에 들었다.
아직 손익분기점이 넘지는 못했지만.
이대로 가면 6개월 이내에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였다.
누구든 탐이 났을 것이다.
이 정도로 성장하는 커머스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마케팅 이사요?”
“퍼플 카우라고 들어 봤지?”
“이정신 대표요?”
퍼플 카우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출신의 이정신 이사가 만든 회사로, 방송 광고 관련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다.
“맞아 이정신. 거기서 300억을 투자한대. 아마 조만간에 퍼플 카우 쪽에서 사람들이 넘어올 거야.”
어차피 MD 사업부는 가끔 내부 DA 구좌를 받을 때 말고는 마케팅 사업부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김 이사와 내 잔에 술을 따랐다.
“그게 전부예요?”
“응. 그나저나 우리 원지훈 부장님이 회사 일에 그렇게 궁금하셨어?”
“부장…… 그 말, 듣기는 좋네요.”
“그래? 내가 10번 불러 주면 이거 쏘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 이사를 불렀다.
“이사님.”
“왜?”
“제가 돈 잘 쓰게 생겼습니까? 왜 다들 저만 보면 쏘라고 합니까?”
“하하하.”
“저 진지합니다.”
“몰랐어? 너 완전 허여멀건 한 게 금수저 같이 생겼어.”
MD 사업부 부장.
70여 명의 직원들을 거느린 가장 큰 사업부다.
인원이 많은 만큼 회사 내에서도 큰 영향력이 있는 자리다.
박 차장은 이미 내가 부장이 될 것을 예상하고 돕겠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팀장들은 받아들여 줄까?
나이도 가장 어린 나를?
나는 술잔의 술을 들이켜고, 생각을 정리했다.
사람은 생각하지 말고. 나와 사업부가 할 일만 하자고.
* * *
이른 아침.
MD 사업부 직원들이 사내 게시판 앞에 몰려 있었다.
그들은 출근하는 나를 동시에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던 김태하가 내 앞으로 달려왔다.
“아이고. 원 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김태하.
놈의 이런 장난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다.
나는 그를 무시한 채로 내 자리로 걸어갔다.
특판팀 파티션 앞.
가슴에 손을 모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마 과장이 서 있었다.
내 인사 결과는 어제 이미 들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지금 내 관심사는 오직 마 과장과 김 대리의 승진 여부였다.
근데 마 과장의 저 표정은 뭐지?
혹시 이번 인사발령에 누락된 것인가?
불안하다.
너무 술술 잘 풀리는 것이 그냥 불안하다.
“마 과장님. 어떻게 됐어요?”
마 과장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내 손을 움켜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이라뇨. 이제부터는 특판팀 팀장 마성근이라고 불러 주세요.”
“발표 난 겁니까?”
“네. 일주일 후 정식 발령입니다. 하지만 미리 팀장이라 불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존버 정신의 승리군요. 그럼 김 대리는요?”
“그게…….”
나는 마 과장의 표정을 보고, 재빨리 게시판에 붙어 있는 인사발령 공고문을 확인했다.
—
인사발령 공고문
인사발령이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발령자: 원지훈 외 3명
특판팀 원지훈 팀장 > MD 사업부 부장
특판팀 마성근 과장 > 특판팀 팀장
가공식품팀 유영진 대리 > 특판팀 과장
신선식품팀 최춘식 사원 > 가공식품팀 대리
—
김경일 대리의 이름은 없다.
가공식품팀의 유영진 대리가 특판팀의 과장으로 발령받았다.
TF에 그를 데려가지 않은 게 실수였을까?
생각이 복잡했다.
나는 김 대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없이 위로의 표정을 보냈다. 그러자 김 대리는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
“유영진 대리가 저보다 경력이랑 나이가 많습니다. 정당한 인사였고, 전 조금의 불만도 없습니다.”
“미안해요. 내가 TF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정말 괜찮습니다.”
김경일 대리는 내 걱정과는 달리, 차분하고 태연했다.
그때.
펑! 펑!
눈치 없는 김대성과 이우진이 싸구려 폭죽을 터트렸다.
“원 부장님 축하합니다!”
“우리 특판팀에 두 명이나 승진하고 빛이 들어오려나 봅니다. 자, 다음은 대리님 차례일 테니까 걱정 마세요. 대리님 일 잘하는 건 MD 사업부 식구들이 전부 다 아는데요. 뭐.”
그들은 김 대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경력, 나이를 빼면 사업부 내에서 김 대리만큼 깔끔하게 일하는 친구는 없다.
김재열 이사가 나를 챙긴 것처럼, 나도 내 새끼는 챙길 것이다.
“그래요. 곧 좋은 소식 있겠죠.”
나는 씩 웃어 보이고, 내 책상으로 걸어왔다.
키보드 위에는 A4지만 한 선물 상자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이건 뭐죠?”
“글쎄요. 모르겠어요. 아침 일찍부터 거기 있었어요.”
하연두의 대답을 듣고, 선물을 뜯었다.
안에는 하얀 와이셔츠 한 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빨간 포스트잇에 정성껏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
원지훈 부장, 승진 축하해!
—
글씨와 말투.
그리고 포스트잇에 담긴 생각.
이건 김지영 이사가 보낸 선물이다.
나는 포스트잇을 와이셔츠 포장에 붙인 상태로 책상 마지막 서랍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