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34
34. 그래도 그놈들이 의리는 있네요
인수인계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
경험이 많은 마성근 과장이라면 당연히 팀장 업무를 금방 숙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마 과장은 창고나 물류 쪽 일에는 특출났지만, 다른 분야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전산을 다루거나, 인터넷 마케팅에 관련한 일은 거의 백지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직원이 퇴근한 사무실.
나는 마 과장에게 특별 과외를 해 주기 위해 남았다.
“별표 있는 필드는 다 등록하셔야죠.”
“뭐 이렇게 등록이 어려워요? 연두 씨는 매번 이걸 등록한 겁니까?”
손가락 하나로 키보드를 치는 마 과장.
그는 잠시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상품 판매가에 9 대신 6을 넣고 말았다.
“금액 또 틀렸잖아요.”
“그래요?”
“제가 말했죠. 0 하나 잘못 넣는 것은 과실로 인정돼서 공정위에 보고하고 취소 처리해도 되는데, 지금처럼 9를 6으로 적으시면, 이건 취소도 안 되고 100% 상품 나가야 하는 겁니다.”
“아……. 예. 예.”
“마 과장님, 꼭 전산 숙지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연두 씨나 우진 씨가 등록을 다 한다고 해도 이건 팀장이 알아야 합니다.”
마 과장이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BO푸드라는 오프라인 회사에서는 지금처럼 전산을 다룰 일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
“꼭 숙지하겠습니다.”
“이미지 등록하실 때는 분할된 이미지들로 등록하셔야 합니다. 통 이미지를 그대로 올리시면 회원들이 볼 때 느려질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건 우진 씨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이니까 특별히 더 신경 쓰셔야 합니다.”
“아, 네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이제 주말이 지나면, 마 과장은 특판팀의 팀장 자리에 앉게 된다.
그래도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킨 보람은 있었다.
그는 상품 등록이나 간단한 마케팅 용어들은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특판 상품 등록하고 상품 노출 수 대비 구매율 체크하세요. 10% 미만이면 실패한 제품이니까, 제품을 교체하거나 상세 페이지를 수정해야 합니다.”
“네.”
“디자인을 수정할 때는 꼭 김 대리한테 PPT 제작해서 보내라고 하세요. 오탈자 체크하시고, 김 대리가 메인 카피는 약하니까 디자인팀에 보내기 전에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마 과장은 내가 하는 말을 노트에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피 문구, 오타 체크…….”
“매일 오전에는 대성 씨한테 고객 클레임 리스트 받으세요. 대성 씨가 유형별로 정리해서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대성 클레임 오전…….”
그렇게 나의 불금이 지나갔다.
오후 11시 30분.
나는 마 과장에게 몇 가지 체크할 점들을 더 알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따르릉! 따르릉!
토요일 오전에 걸려 온 전화.
마 과장이다.
TV나 보면서 잠이나 푹 자려고 했는데…….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전화를 받았다.
– 팀장님 주무셨습니까?
마 과장이 잔뜩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잤습니다.”
– 아이고 죄송해서 어쩌죠? 끊을까요?
“이미 깼습니다. 말씀하세요.”
– 관리자에서요. 상품 판매 로그 보는 페이지가 어디라고 하셨죠? 제가 분명 잘 적어 놨는데…….
“매출정보에 개별상품 판매관리 들어가셔서요. 원하는 상품 코드로 검색해서 보세요. 날짜 지정하는 거 잊지 마시고. 시스템에 오류가 있어서 날짜 지정 안 하면 결괏값 안 나옵니다.”
– 네네, 감사합니다.
잠깐 후회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팀원들에게 묻지 말고 나에게만 물으라 했던 것을.
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켜 주고 싶었는데…….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리얼을 우유에 말았다.
그때, 또 걸려 온 전화.
– 죄송합니다. 팀장님.
“이번엔 또 뭔데요?”
– 등록은 이제 눈 감고도 하는데요. 로그나 데이터 보는 부분이 영 헷갈려서요.
아무래도 주말 내내 이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시리얼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후……. 마 과장님. 그냥 사무실로 나오실래요?”
–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1시간 후에 사무실에서 뵙죠.”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팀장님…….
“네?”
–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원 팀장님은 물류, 전산, 마케팅, 상품 개발까지 전부 다 잘하셨잖아요. 근데 저는 겨우…….
자신감이 떨어진 마 과장.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지금까지 잘하셨고, 앞으로도 잘하실 겁니다.”
“그……. 그럴까요?”
“전산은 저보다 연두 씨가 더 잘하고, 물류는 마 과장님, 마케팅은 김 대리가 훨씬 더 많이 압니다. 팀장은 꼭 다른 직원들보다 월등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냥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확인해 주는 자리입니다.”
“……!”
“팀원들이 마 팀장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네 팀장, 아니 부장님.”
그렇게 황금 같은 토요일도 마 과장에게 뺏겼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틀리고 또 틀려도 불만 없이 하나씩 다시 하는 마 과장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나이는 좀 많지만, 그래도 내 새끼 아닌가?
그래서 성장하는 모습이 더 뿌듯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가장 신이 나는 노래를 틀었다.
* * *
일요일에도 마 과장과 긴 시간 통화했다.
그래서 그런지.
월요일 오전에는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하필이면 오늘.
부장을 달고 첫 출근날인데…….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걸었다.
아침 8시 57분.
다행히 3분 전에 도착했다.
책상의 짐을 옮기고, 사원증도 새로 받고, 관리자의 권한도 확인해야 한다.
나는 해야 하는 일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자리로 걸어갔다.
“좋은 아침!”
평소와 같이 인사를 하고 특판팀의 내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 책상 위에 진열된 것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싸구려 두피 마사지기, 효자손, 물음표 모양의 지압봉.
뒤돌아 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마 과장.
그는 의자를 빙글 돌리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제 물건들은요?”
“저랑 대성이가 다 옮겨놨습니다. 아 참, 연두 씨도 같이 했고요.”
“그래요?”
“네. 부장님 자리에 가 보시죠. 이전 자리 사진 찍어서 똑같이 만들어 놨습니다. 선 하나 틀리지 않을 겁니다.”
부장의 자리는 한 눈에 모든 부서원이 보이는 중앙이다.
가운데 열에는 가공식품팀, 오른쪽에는 신선식품팀, 왼쪽에는 특판팀이 위치한다. 그리고 두 번째 열에는 가전, 건강식품, 유아동, 커피/음료팀들의 자리가 있다.
박 차장의 자리는 반대쪽.
두 번째 열을 바라보며 벽을 등지고 있는 자리다.
나는 책상 앞에 서서 사무실을 둘러봤다.
MD 사업부의 공간이 이렇게 넓었나?
시야가 달랐구나. 내가 보던 시야와 부장이 보는 시야가.
70명이 넘는 부서원들이 빽빽이 앉아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책상을 확인했다.
책상 위에 놓인 원지훈 부장이라고 적힌 사원증.
누군가 미리 받아 둔 것인가 보다.
그리고 마 과장의 말처럼 마우스와 키보드, 작은 전선들까지 내가 쓰던 그대로였다.
컴퓨터에 전원을 켜고 곧바로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자, ‘원지훈 부장님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문구가 보였다.
팀장이 아닌, 부장.
나는 그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더 많은 관리자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특판팀의 제품들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마켓 프레시의 모든 제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장님 나오셨습니까?”
또 장난을 치려는 김태하.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내 책상 위에 결재서류를 올려놨다.
“뭐야?”
“이번에 아프리카 케냐에서 감자 큐브 15톤을 수입하려고 합니다. 사인해 주십쇼. 내일 당장 들여오겠습니다.”
좀 진부한 장난질이다.
그래도 친구가 승진했다고 나름 준비는 했나 보다. 나는 그럴싸하게 만든 발주 요청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김태하 팀장, 좋네요.”
“응?”
“태도 불량, 복장 불량, 말투 불량, 외모 상당히 불량.”
“…….”
“인사고과에 반영하도록 하죠.”
“알았어. 알았다고! 바빠? 안 바쁘면 담배 하나 피우러 갈까?”
항상 그가 장난을 치면 나는 배로 돌려줬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래 왔는데, 김태하는 아직도 비슷한 장난을 친다.
“정리 좀 하고 이따 놀아줄게.”
“정말? 아이 신나……. 내가 이럴 줄 알았냐?”
김태하 팀장은 입을 삐쭉 내밀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곧바로 관리자 페이지의 기능들을 확인했다.
인사고과라는 새로운 메뉴가 보였다.
메뉴에는 각 팀에서 올리는 일일 업무보고들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보이는 페이지였다. 나는 가장 먼저 특판팀의 내용을 확인했다.
하연두: 천진식품 외 17종 주간 특판 상품 등록 완료.
ㄴ 개인 사정으로 김경일 대리에게 상품 등록 업무 대행 요청.
김 대리가 상품 등록 업무를 대신했다고?
그럴 리 없다.
17종이면 하연두 혼자서도 3시간 이내로 끝낸다.
나는 이상한 마음에 김대성과 이우진의 업무보고도 확인했다.
그리고.
업무 분배 : 김경일 대리 50%
업무 분배 : 김경일 대리 60%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신의 업무 일부를 김 대리에게 분배한 것처럼 적어 놨다. 정작 김 대리의 업무보고 내용에는 일한 기록이 없는데 말이다.
김 대리의 승진이 누락된 것 때문인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이런 식으로 일일 업무 보고를 작성한 것인가?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 팀장의 보고서를 봤을 때, 참았던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정물류 8톤 트럭 17대 무상 임대.
ㄴ 김경일 대리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음.
지인은 무슨…….
이정물류는 마 팀장의 오랜 친구가 대표로 있는 곳이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산 김 대리인데, 무상으로 8톤 트럭 17대를 임대했다고?
누구나 이 말이 거짓이라는 잘 알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 팀장의 자리로 걸어갔다.
나무를 깎아 만든 물음표 모양의 지압봉을 어깨에 건 그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두고 가신 거 있으세요?”
“담배 하나 피우러 가실래요?”
“예, 좋죠.”
건물 옥상.
나는 마 팀장에게 팀원들의 업무보고 내용을 말해 줬다.
그러자 그는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김경일이 승진 누락된 거 때문에 많이들 속이 상했나 봅니다. 그래도 그놈들이 의리는 있네요.”
“김 대리는 제가 신경 쓸 테니, 마 팀장님과 팀원들은 지금 일에 집중해 주세요.”
“예. 부장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가장 아끼는 새끼인데…….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부장님.”
“네?”
“제가 처음 봤을 때 그랬죠? 제가 딴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다고요.”
“그래서요?”
“어디까지 생각하세요?”
“뭐를요?”
“부장에 만족하시진 않으시죠?”
나는 담뱃불을 끄고 씩 웃어 보였다.
“그런 건 급한 일들 먼저 끝내 놓고 얘기합시다.”
“…….”
“오늘 그리고 김 대리 좀 빌려 갈게요.”
“네?”
“수원 왕 갈비탕 벤더랑 미팅이 있다고 하는데, 같이 가서 만나려고요. 저는 약간의 서포트만 하고, 이번일 메이드를 김 대리에게 전부 시키려 합니다.”
“아……. 역시 생각이 있으셨군요?”
“에이마켓에서 한정 수량만 판매했던 제품인데, 2차 물량은 잘하면 우리가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지원할 게 있나요?”
“김 대리 집중할 수 있게, 업무 분배 좀 해 주세요.”
“옛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