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4
4. 이 사람들이 내 팀원?
“꽤 잘나간다면서? 내가 너 딴 건 몰라도 남 등쳐 먹는 건 잘할 줄 알았어.”
김태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내게도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무슨 등을 쳐 먹어? 내가 얼마나 정직하게 벌어먹었는데. 근데 넌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미안……. 일이 좀 있어서 연락도 못 하고 떠났네.”
김태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학교 땐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들어갈 무렵 연락이 끊겼고,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어디 있었는데?”
“미국.”
“유학? 아니면 도망?”
“듣기 좋게 유학이라고 해 두자.”
“그럼 왔으면 바로 형님한테 연락했어야지!”
“형님? 하하하 그 말도 참 오랜만이네. 너 특판 팀 팀장이지?”
“어떻게 알았어?”
김태하는 손에 쥐고 있던 사원증을 목에 걸며,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누나가 알려 줬어. 우리 누나 기억나지?”
“아……. 지영이 누나?”
학교 때, 처음 본 지영이 누나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았다.
170이 넘는 큰 키에 매끈한 몸매.
맑고 초롱초롱한 눈과 강남 조물주가 깎아 놓은 코는.
예술…… 그 자체였다.
“이름도 기억해?”
“당연하지.”
“그래. 하여간 지금은 여기 이사로 있거든.”
“지영이 누나가?”
내가 소리치자, 김태하는 화들짝 놀라며 내 입을 막았다.
“쉿! 다른 사람들은 누나인지 모른단 말이야. 너 이거 절대 비밀이다.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형님은 가공식품 팀 팀장님이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뭐 봐서 예쁜 짓 하면 이것저것 가르쳐 줄 테니까.”
“예쁜 짓?”
“그래 말 나온 김에 귀여움 한번 떨어 볼래?”
“이게 10년 만에 만나서 긁어 대네. 근데 너, 설마 나랑 같은 급의 팀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뭔 소리야?”
“넌 아버지 빽으로, 난 오로지 내 능력으로 이 자리까지 온 거잖아.”
“나 낙하산 아니거든, 그리고 네 소문 전부 다 MSG 팍팍 쳐진 거라면서?”
“미국에서 개그 공부를 하다 왔나, 개그가 만렙이 됐네?”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장난을 주고받았다.
학생 때도 그랬다.
금수저라는 그의 신분은 내게 재미있는 놀림거리일 뿐이었고 김태하도 늘 이렇게 장난을 받아쳤다.
우리는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한참 동안 학생 때의 얘기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김태하는 손목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야! 10분 남았다. 빨리 내려가자.”
“로열패밀리가 뭐 이래? 차기 회장님 빽 믿고 더 놀다 가면 안 돼?”
“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 몰라?”
“누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홍길동 주제에…….”
“홍길동이건 변학도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빨리 가자.”
김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의 MD 사업부로 들어왔다.
“너희 팀 자리는 저쪽이야. 가봐.”
“그래. 금요일에 소주나 한잔하자.”
“오늘은?”
“팀원들 챙겨야지.”
“그래. 알았다.”
김태하는 몸을 돌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나를 불렀다.
“지훈아.”
“응?”
“아마 김지영 이사님이 부를 거야. 내가 한 말 기억나지?”
“알아!”
“그래. 절대 잊지 마라.”
김태하는 내 엉덩이를 툭 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원지훈 팀장님?”
40대 후반?
아니 50대로 보이는 깡마른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네. 그런데요?”
“안녕하십니까! 특판 팀 과장 마성근이라고 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인 중년의 남자.
정수리 주변이 꽤 비어 있다.
그는 바지가 자주 흘러내리는지 검은 멜빵을 메고, 흰색 와이셔츠에 어울리지 않는 시뻘건 토시가 돋보였다. 안경은 또 왜 그리 큰지, 안 그래도 볼품이 없는 외모가 더 초라해 보였다.
나는 과분한 90도 인사에 놀라, 재빨리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팀원들 데려올까요?”
나를 바라보는 회사 사람들…….
그리고 멀찍이서 당황한 나를 보고 킥킥대고 있을 김태하가 그려졌다.
“설마 전부 이러시는 건 아니죠?”
“네?”
“이런 거 말고, 차나 한잔하시죠. 여기 25층 휴게실 잘 되어 있던데.”
“먼저 올라가 계십쇼. 필기구 챙겨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그냥 오셔도 됩니다.”
마성근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하나씩 불러 모았다.
* * *
“뭐 드실래요? 여기 커피 비싸다던데……. 제가 사겠습니다.”
내 말에 마성근 과장에게 끌려 온 장신의 남자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리고 목에 걸린 사원증을 카페의 카운터에 내밀며 입을 열었다.
“BO푸드 사원이면, 이곳 베이커리와 음료는 무료입니다.”
김태하 이 자식…….
또 장난을 쳤구나.
“아……. 그래요?”
“뭐 드시겠습니까?”
“그냥 아무거나 시켜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아무거나 입니다.”
뭐지 이 살기 가득한 남자는?
거기다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마치 표적을 찾은 킬러처럼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시원한 거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원래 시원합니다.”
“하핫, 네.”
그는 다른 직원들의 음료까지 주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김대성이라고 합니다.”
“네, 대성 씨. 원지훈이라고 합니다.”
“저 기억 못 하시나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김대성이라는 이 남자, 흔한 인상이 아닌데…….
“글쎄요. 좀 낯이 익긴 한데, 어디서 봤더라…….”
“BO커머스에 입사하기 전에 원스몰 AMD 면접을 본 적이 있습니다.”
2개월 전에 이은지를 뽑을 때, 지원했었나 보구나.
그때 지원자들이 꽤 몰렸기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여직원을 뽑으려 했기에, 남자는 대충 면접을 봤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랬군요.”
“제가 그때 원스몰에 입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많이…… 읍.”
내가 난처해하자, 마성근 과장은 자리에서 뛰어올라 30센티나 큰 김대성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야 김대성이! 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는데?”
“과장님 이거 엄연한 폭행입니다.”
“그래? 그럼 신고해! 그 전에 몇 대만 더 쥐어박자 응? 이건 어떠냐? 응?”
“어라? 저 진짜 합니다!”
이 사람들이 내 팀원들인가?
나는 비정상적인 이들의 분위기에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뒤에 있던 어린 여직원이 쟁반에 음료들을 옮겼다.
“팀장님! 이쪽으로 가시죠.”
마성근은 허리를 굽히며, 휴게실의 구석을 가리켰다.
회의실처럼 별도로 준비된 방.
그곳의 앞에는 이미 팀원 중 한 명이 문을 막고 서 있었다. 마치, 자리를 잡아 둔 것처럼 말이다.
“아…… 네.”
나는 팀원들에게 이끌려 파란색 벽이 쳐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에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고, 간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방 같았다.
마성근은 보드마커를 양손으로 가지런히 잡고, 트로트 가수들이 인사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특판 팀의 과장 마성근입니다. BO푸드에서 물류 관리직에 있었고, 이번에 커머스로 발령을 받아 왔습니다. 올해 마흔셋이며, 중학생 딸이 둘 있습니다. 근데 얘네들이 연년생이라 엄청나게 돈이 깨져요. 하하하.”
“많이 버셔야겠네요.”
“네, 그래야죠! 그래서 이렇게 팀장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라는 겁니다. 하하하! 자, 그리고 이 친구는 우리 팀의 에이스, 김경일 대리입니다.”
네이비색 셔츠에 하얀 바지.
연예인들이나 하는 쉼표 머리를 한 잘생긴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김경일입니다. 미국 그룹폰에서 근무했고, 최구열 이사님 따라서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앞으로 동생처럼 생각해 주세요.”
“네. 원지훈입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김경일 대리와 인사가 끝나자.
피곤한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달 전에 체인마켓에서 AMD일을 하던 이우진, 이우진이라고 합니다. 원 팀장님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소문이요? 좋은 소문이었으면 좋겠는데…….”
“물론입니다. 물론이죠! 다들 팀장님 칭찬을 어찌나 하던지…….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네네. 물론, 물론입니다.”
“근데 우진 씨.”
“네? 네?”
“원래 그렇게 말을 두 번씩 반복해요?”
“아…… 아……. 제가 그랬나요?”
나는 겸연쩍은 표정을 한 이우진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김대성입니다. 아까 카페 앞에서 인사드렸는데, 이제 기억하시죠?”
“글쎄요. 좀 낯이 익긴 한데, 어디서 봤더라…….”
“팀장님!”
190이 넘는 거구의 김대성.
그는 덩치와 달리, 꽤 뒤끝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놀렸을 때 오는 반응이 재미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미간을 구기며, 아이처럼 입을 삐죽이 내민 김대성을 보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장난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석에 있던 여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하연두라고 합니다. 입사한 지는 2개월 조금 넘었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원지훈입니다. 앞으로 저도 열심히 할 테니 많이 도와주세요.”
160cm 정도의 작은 키에 짧은 단발머리를 하연두.
그녀는 작은 얼굴 안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상당한 미인이었다.
“연두 씨는 2개월 전에 새로 들어온 인턴입니다.”
나는 팀원들의 가정사, 관심사,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최대한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30여 분을 떠들다가, 휴대전화 벨 소리에 얘기를 멈췄다.
– 너 어디야?
아침에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김태하의 전화였다.
“옥상인데 왜?”
– 빨리 내려와. 이사님 호출.
“어떤 이사님?”
– 김지영 이사님.
“그래.”
– 아까 내가 말한 거 명심하고! 유도 질문에 넘어가면 안 된다!
“알았다.”
나는 팀원들을 돌려보내고, 김태하가 알려 준 12층의 김지영 이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 * *
똑똑.
30대 후반의 여자가 문을 열고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어머. 네가 진짜 지훈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네. 이사님.”
김지영 이사.
그녀는 나보다 10살이나 많았으니까, 지금은 서른아홉일 것이다.
외모는 변한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젊어진 것 같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말투는 부드럽고 상냥하다.
예전에도 그랬다. 태하의 집에서 본 지영이 누나는 간식까지 손수 챙겨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둘이 있을 때는 그냥 누나라고 불러.”
그 순간, 김태하의 조언이 떠올랐다.
이 표정과 말투에 넘어가,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던 말이…….
“그래도 회사인데요. 다음에 퇴근하고 사석에서 뵈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이, 왜 그래 딱딱하게?”
“아닙니다.”
“커피 괜찮지? 앉아.”
김지영 이사는 소파의 상석으로 걸어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짧은 치마 사이로 그녀의 매끈하고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그냥 물 주세요.”
“왜?”
“아침부터 커피를 많이 마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