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40
40. 아니 꼭 해야겠습니다
월요일 오후 3시.
지난주 매출과 금주 계획을 세우는 회의가 진행된다.
박대영 차장과 각 팀의 팀장들은 주간 보고서를 출력해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갔다.
그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도재문 대리가 출력한 제안서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부장님.”
“네?”
“제안서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데요? 저는 그냥……. 관리만 편하게…….”
“그래서 이렇게 만들려던 거 아니었나?”
“이건 너무…….”
“이거 다 토요일에 나랑 얘기했던 부분들이잖아요. 도 대리가 팀장들 설득해 봐요. 정 힘들겠으면, 그냥 수식 만들어 둔 엑셀만 나눠 주든가.”
도재문 대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욕심이 생긴 내가 제안서에는 너무도 많은 내용을 추가했으니까.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 걸음 더 다가가 속삭였다.
“도 대리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현해 봐요.”
마른침을 삼키는 도재문 대리.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부장님.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누가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회의실로 들어갔다.
“부장님! 부장님! 주말 통계 보셨죠?”
마성근 팀장이 나를 보자마자 설레발이다.
“네. 당연히 봤죠.”
“하하하, 역시 김경일입니다. 일어선 김에 특판팀 먼저 보고 드려도 될까요?”
“그러세요.”
마 팀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주머니에 있는 USB를 노트북에 힘껏 끼워 넣었다. 하지만 노트북이 USB를 인식하지 못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노트북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마 팀장님! 거꾸로.”
그는 그제야 USB를 돌려서 꼽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꽉 끼더라. 하핫.”
스크린에 PPT 화면이 나왔다.
맑은고딕 글씨체와 깔끔한 표지.
김경일 대리가 만든 것으로 보였다. 마 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팀장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특판팀에서 이번에 출시한 진짜 수원 왕 갈비탕이 지난주 토요일부터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첫날은 시험 삼아 1천 팩을 판매했는데, 놀랍게도 17분 만에 완판이 됐습니다. 이에 일요일은 수량을 3천 팩으로 급하게 조절했고, 이 또한 1시간 만에 완판됐습니다.”
“오! 마 팀장님 시작이 좋네요!”
박대영 차장이 다리를 꼬고 앉아,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마 팀장은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연극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것처럼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자 다음 페이지의 통계 데이터를 보시면, 첫 구매 회원이 무려 19.23%나 되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 팀은 고민했습니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갈비탕을 구매한 것일까? 그리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뜸을 잠깐 들이고, 감동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에이마켓에서 갈비탕을 구매했거나, 구매에 실패했던 회원들이 넘어온 것이라고요. 그래서 오늘 오전 11시까지 이 회원들이 갈비탕 외에 다른 제품들을 구매한 통계를 만들어 봤습니다.”
마 팀장이 노트북의 엔터를 치자.
삐융, 삐융하는 효과음과 함께 그래프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극적인 효과를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요란한 소리 때문에 각 팀의 팀장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어때유? 멋있쥬?”
신규 회원의 구매 수와 금액을 체크한 그래프.
생각보다 타 상품군으로의 추가 구매가 많았다.
마 팀장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는 완전히 에이마켓의 회원을 가로채 온 거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수치 아닙니까?”
“김경일 대리가 분석한 겁니까?”
정진택 팀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하……. 마 팀장님은 좋겠네. 김경일이 같은 부하 직원이 있어서.”
“하하. 당연히 좋죠.”
“말 나온 김에 한 달만 좀 바꿔 봅시다. 내가 우리 팀 도 대리 보내 줄 테니까.”
“바꾸긴 뭘 바꿔요?”
“요즘 특판팀 인원 부족하다면서요. 내가 특별히 두 명 보내 줄게. 어때요?”
구석에 앉아 있던 도재문 대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을 앞에 놓고 하는 농담이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정진택 팀장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정 팀장님. 장난은 회의 끝나고 하세요.”
“흠……. 흠…….”
정 팀장은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어색했는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들먹거리거나 자주 툴툴댔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그 이후로 입을 닫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렇게 다른 팀들의 주간 보고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신선식품팀의 도재문 대리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떨리는 목소리와 눈의 초점을 아무도 없는 곳에 두는 도 대리.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제가 준비한 것은 수유, 아니 수요.”
“수유? 재문아, 긴장 풀어. 누가 보면 우리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
정진택 팀장이 또다시 도 대리를 놀리며 낄낄댔다.
도 대리는 덕분에 더 위축된 것 같았다.
나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정진택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계속하세요. 도 대리님.”
“아……. 알겠습니다. 지난달 신선식품의 폐기가 8%를 넘었습니다. 이는 총 7억 원 규모의 금액으로…….”
“재문아! 네가 관리를 잘했어야지! 내가 그래서 재고 파악 확실히 하라고 했지? 사입도 적당히 하고, 무슨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알아?”
또 나서는 정진택 팀장.
“정 팀장!”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정 팀장은 화들짝 놀라 딴 곳을 바라봤다.
“대리님 계속하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도 대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문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신선식품만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도 재고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할인 이벤트로 재고를 줄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어……. 그리고 초기 사입 수량을 예측하고 회원들이 자주 구매하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예측? 예측한다는 놈이 재고를 그렇게 관리했어?”
또 정진택 팀장이 툴툴대며 도 대리의 말을 가로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정 팀장을 향해 소리쳤다.
“정 팀장님!”
“아……. 죄송합니다. 순간 욱해서.”
“또 PT 중에 끼어들면 그때는 바로 나가라고 할 겁니다. 도 대리님!”
“예?”
“빅 데이터로 수요 예측이 가능하겠습니까?”
도 대리는 제안서 파일을 두어 장 넘겨, 답변할 부분을 찾았다.
그리고 말을 살짝 더듬으며 답했다.
“예! 무……. 물론입니다. 이……. 이 시스템만 적용하면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신선식품팀의 제품은 총 3만 7천여 개입니다. 그리고 팀장님을 제외한 11명이 인당 3천여 가지의 제품을 관리합니다. 아무리 정리를 하고 알람을 맞춰 둔다고 해도 실수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긴 힘들지.”
“우리 팀 애들도 재고 관리 안 돼서 죽어 나가잖아.”
“이거 말이 되는데? 가능하겠어. 이 정도 데이터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어.”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다른 팀장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제안서 내용을 대충 훑은 그들은 이전과 달리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고래도 춤을 추는 법.
지금의 도재문 대리가 그랬다.
그는 아까보다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팀장들을 둘러봤다.
나는 씩 웃으며, 도 대리에게 말했다.
“도 대리님. 계속해 보세요.”
“예, 부장님.”
도재문 대리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출력한 제안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제안서의 내용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변해야 합니다. 자동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상품의 수요까지 예측할 수 있도록 빅 데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안으로 인력의 낭비를 막고, 회원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는 제품들을 시스템이 잘 선별해 줄 겁니다.”
그렇게 도 대리는 준비한 PT를 마무리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고.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도 대리에게 질문했다.
“도 대리. 가장 중요한 게 남았네요.”
“…….”
“할 수 있겠습니까?”
도 대리는 내 얼굴을 보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답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꼭 해야겠습니다.”
“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묻자.
박대영 차장은 도 대리가 나눠 준 문서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답했다.
“할 수만 있다면야 좋겠죠. 근데 지금 개발팀의 인력을 뺄 수 있을까요?”
“좋으면 해야죠. 다른 팀장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회의 내내 조용하던 김태하 팀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저희 가공식품 쪽에도 꼭 필요한 시스템입니다. 냉동은 유통기한이 길어서 괜찮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계속 제품을 사들여서 창고가 포화 상태입니다. 그리고 라면과 같은 상온 제품군도 유통기한이 짧은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유아동 카테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 이유식이나 분유는 무엇보다 유통기한 관리가 중요합니다. 또한, 엄마들이 유통기한을 꼼꼼히 체크하기 때문에, 2개월 이내의 제품들은 빨리 할인가로 쳐 내야 합니다.”
김민정 팀장이 거들었다.
그리고 최충연 팀장과 이진성, 장선영 팀장까지 찬성의 뜻을 보였다.
정진택 팀장은 달라진 분위기에 눈치만 살폈다.
“도재문 대리, 이거 엑셀 출력한 거 직접 만든 거야?”
박 차장이 묻자, 도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표로 수요를 예측했대?”
“마켓 프레시 오픈 이후 모든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이걸 다?”
“네.”
“하……. MD 사업부에 김경일이 말고 괴물이 하나 또 있었네. 아 참! 도 대리 토요일에 이거 때문에 특근한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출입한 기록 보다가 알았지. 원 부장님!”
박 차장은 근태를 꼼꼼히 챙긴다.
그래서 매일같이 직원들의 출입 데이터를 표로 만든다.
“네?”
“특근수당 올려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이미 올려놨죠.”
박 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도 대리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 대리. 야근, 특근수당 잊지 말고 꼭 챙겨. 직장인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위해 일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책상을 탁탁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모두 찬성하는 거로 생각하겠습니다. 개발팀 미팅은 저랑 도 대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팀장님!”
“네?”
“정 팀장님은 좋겠네요. 이렇게 훌륭한 팀원이 있어서.”
“아……. 예. 예.”
정진택 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정 팀장에게 혼나며 주눅이 들어 있었던 도 대리.
오늘은 달랐다.
MD 사업부의 부장과 차장.
그리고 다른 팀장들까지 칭찬하자 숨겨 왔던 그의 재능이 튀어나온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정진택 팀장을 따로 옥상으로 불러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부장님.”
“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도재문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이전에 도 대리의 제안서를 무시하셨어요?”
당황한 표정의 정 팀장이 내 눈을 피했다.
“하하. 누가 그래요? 도 대리가 그래요?”
“아뇨. 도 대리가 그런 말을 할 사람입니까? 그냥 찍었어요.”
“사실……. 뭐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리고 부장님, 이건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부장님은 어떻게 사람을 잘 판단해요? 나는 그냥 실수만 하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잘하는 것이 하나 이상은 있어요. 그러니까 마켓 프레시에 들어올 수 있었겠죠.”
“…….”
“윗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 쉽지만, 아랫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정말 어려워요. 그걸 잘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요?”
“흠……. 아랫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라…….”
“왜요? 어려워요?”
“네. 근데 꼭 해 보고는 싶네요. 부장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