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45
45.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MD들은 하루가 부족하다.
하루 평균 세 건의 미팅과 지난 판매 데이터를 확인하고, 새롭게 판매할 상품을 기획한다.
또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먹어 보고, 조리해 보며, 제품의 촬영까지 신경 써야 한다.
사내 정치?
할 시간도, 할 여력도, 할 생각도 없다.
“부장님. 오늘은 저랑 식사하시는 거죠?”
유아동팀의 김민정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지난번 전략기획부 최진영 대리의 사건 이후,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온 그녀였다.
“네. 그래야죠.”
내가 부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매일 각 팀의 팀장들과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음료팀의 장선영 팀장을 제외하고는 이 시간을 기다리는 눈치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내가 묻자, 김민정 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짜장면이요.”
“그럼 중국집으로 가죠. 둘이 가나요?”
“어허.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어요. 저희 팀 애들 둘 데려갈 건데 괜찮으시죠?”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한국말을 잘 못하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제법 한국 사람처럼 말을 했다.
“괜찮죠. 근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서당 개 3년이면 라면은 끓인다고 하잖아요.”
“흠……. 아직 덜 배우셨네. 아기는 잘 크죠?”
“네. 시어머니가 봐 주시는데, 자꾸 할머니 말투 따라 해서 죽겠어요.”
“애들이 뭐 그렇죠.”
“어머. 애도 안 키워 보신 분이 뭘 그렇게 잘 알아요?”
“글쎄요. 전 왜 이렇게 잘 아는 걸까요?”
내가 머쓱한 표정을 짓자, 김민정 팀장은 내 팔을 툭 치며 물었다.
“부장님은 연애 안 해요? 그 얼굴에 연애 안 하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요?”
“흠…….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내가 좀 생기긴 했지.”
나는 그녀와 가벼운 농담을 나누고, 유아동팀 팀원들과 함께 인근 중국집을 찾았다.
유아동팀은 3분의 2가 여자다.
김민정 팀장도 아이의 엄마고, 최미진 대리와 이유정도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아줌마 셋이 모이면…….
“오늘 예진이가 처음 걸었어요.”
“진짜? 영상 찍었어?”
“네.”
“와 귀엽다. 우리 서준이는 언제 걷지. 얘가 좀 느려.”
“금방이에요. 금방 뛰어다닐 거예요.”
“이유식은 직접 해 줘?”
“아니요. 요새 바빠서 저희 제품 사다가 먹여요.”
“어떤 거? 셀리앤맘?”
“아뇨. 거긴 좀 퍽퍽해서 아이 글로리 먹여요.”
“아, 나도 거기 거 먹여 봐야겠다. 얼마 전에 후기 봤거든.”
이럴 거면 내가 왜 있는 건지…….
나는 그녀들의 말에 끼어들지 못하고 묵묵히 볶음밥을 먹었다.
그리고 먼저 다 먹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 부장님 다 드셨네?”
김민정 팀장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천천히 드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아 참, 부장님. 이번에 베비쿡 제품 들여오는 거요. 수량이 좀 부족한데 어떡하죠?”
“베비쿡 어떤 제품인데요?”
“쌀가루 들어간 초기 이유식이요.”
“며칠 정도 버틸 수 있어요?”
“지금 판매 속도로 보면 한 3일? 근데 생산 일정이 좀 밀려서 새 제품은 10일 후에나 들어와요.”
“그럼 맘라이스 제품 받아서 이벤트 한번 해 보는 건 어때요? 다른 몰 보니까 요새 맘라이스 잘 나가는 거 같던데?”
“거긴 이미 접촉해 봤죠. 근데 오픈마켓 위주로만 돌린대요.”
“수수료 때문에요?”
오픈마켓의 수수료는 평균 10%.
우린 평균 30%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는 위탁과 사입의 차이다.
오픈마켓은 제조사나 벤더가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우린 미리 일정 수량을 사들여서 우리가 판매한다. 따라서 소비자 인지도가 좋은 브랜드는 오픈마켓에만 판매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네. 사입해 준다고 해도 시큰둥해요.”
“그럼 한번 질러 볼까요?”
“어떻게요?”
“걔네 실패한 제품들 있죠?”
“네. 보리랑 당근, 감자로 만든 제품들 있어요.”
“그거 다 들고 오라고 하세요. 특판팀에서 특가 쳐서 팔아 준다고요.”
“오픈마켓에서 빛도 못 본 제품들인데 우리가 팔 수 있을까요?”
“해 봐야죠.”
김민정 팀장은 자신의 휴대폰에 뭔가 메모를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부장님.”
“네?”
“제가 아는 동생 중에 괜찮은 애가 있는데요.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으시면 보실래요?”
내가 답하기도 전에, 최미진 대리와 이유정이 먼저 물었다.
“누구요 누구?”
“팀장님, 사진 있으면 좀 보여 줘요!”
김민정 팀장이 휴대폰에서 그녀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보여 주자, 다들 난리다.
“와, 완전 예쁘네요.”
“부장님 좋겠네. 뭐 하는 아가씨예요?”
“스튜어디스야.”
“어머. 쩐다.”
“그지?”
“둘이 아이 낳으면 진짜 예쁘겠네.”
“엄마, 아빠 유전자가 좋으니까 아마 그럴 거야.”
“그죠? 그죠?”
셋은 벌써 내가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까지 상상하고 있다.
나는 그녀들을 차례로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 벌써 결혼하는 겁니까?”
“아 참, 음료팀에 장준수 대리 결혼한다면서요?”
“응. 어디서 한대?”
“테크노마트일걸요? 거기 식사는 해 보셨어요?”
“아니.”
“이번에 새로 들어온 주방장이 글쎄, 5성 호텔 출신이래요.”
“그래? 이번에 신랑 데리고 꼭 가야겠네.”
그녀들은 또 결혼이란 주제로 자기들끼리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고, 그때 나를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부장님. 여기서 식사하셨어요?”
팀원들과 식사를 마친 정진택 팀장.
그는 나와 유아동팀의 직원들을 둘러보고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네. 정 팀장님은 어디 있었어요?”
“저 안쪽에요.”
정 팀장은 자신의 카드를 같이 식사한 팀원에게 건넸다. 그리고 먼저 올라가라는 손짓을 하고, 내 옆자리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부장님. 교통정리 좀 해 주십쇼. 특판팀 애들 요새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일 있어요?”
“저희 팀 애들이 한 달을 비벼가며 물건 받아오려고 했는데, 저번 주에 특판팀이 들어가서 쏙 빼 가 버렸어요.”
“어떤 물건이요?”
“마장동 정진푸드 소갈비 팩이요. 같은 식구끼리 서로 밥그릇은 지켜 줘야죠. 안 그렇습니까?”
저렴한 단가에 단기간 판매하는 특판팀과 신선한 제품을 상시로 파는 신선식품팀은 취급하는 제품군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 정 팀장은 특판팀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시작부터 불리하다는 것을 호소하려는 것이다.
“특판에서 좋은 성과 있으면, 신선에도 들어오겠죠.”
“정진이 마장동 1등이에요. 1등. 연간 100억 좀 넘게 하는데, 온라인 자체를 귀찮아합니다.”
“그럼 다른 애들 잡지, 왜요?”
“다른 데는 거기만큼 단가가 나오지 않아요. 아무리 후려쳐도 이상하게 거기 단가와 수량을 맞추지 못하더라고요.”
“흠……. 그래요?”
“네. 그리고 정진푸드 성 대표도 사람이 좀 이상해요.”
“어떤 스타일인데요?”
“웃을 때도 음흉하게 흐흐흐, 막 이래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건 마성근 팀장이랑 개그 코드가 잘 맞는다는 겁니다.”
“마 팀장이랑요? 흠……. 그건 좀 이상하군요.”
“그죠? 하여간 영 정이 안 가는 캐릭터입니다.”
다음은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다.
그리고 정 팀장은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를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새 마장동에 새로 장사 시작한 애들 있거든요. 청년고기라고, 어린 애들이 장사하는 데 아주 열심이에요.”
“단가랑 수량 맞출 수 있어요?”
“이제 조금씩 맞춰가는 단계니까 조만간 맞출 수 있겠죠.”
미리 실드를 쳐 두려는 것이다.
정진푸드 쪽이 이상하니, 청년고기 쪽을 밀어주겠다고.
나는 정 팀장의 어깨를 툭 치고,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가와 수량만 맞춰와요. 그렇다고 퀄리티 떨어트리면 안 됩니다. 알죠?”
“그……. 그야 잘 알죠.”
정 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 *
사무실의 김태하는 이어폰을 끼고 온종일 유튜브만 봤다.
먹방을 찾아, 그들이 먹는 제품을 꼼꼼히 확인하고 맛 표현에 대해 중요한 문구들을 일일이 적어 놨다.
나는 그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저거 맛있겠는데?”
김태하 팀장은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휙 돌렸다.
“뭐?”
“냉동 돈가스.”
“응. 저거 홈쇼핑에서 빵 떴잖아. 물건 좀 집어 오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
“그래? 제조사가 어딘데?”
“성주식품. 홈쇼핑 때문에 배가 불러서 커머스는 아예 미팅도 안 해 줘.”
“성주에 박 부장 있잖아.”
“그 인간 내 전화는 아예 씹는다. 수량 늘려서 사입해 간다고 해도 저 지랄이야.”
“나 성주에 최 이사 아는데, 전화해 볼까?”
내 말에, 김태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십니까? 우리 부장님은 참 발도 넓으셔.”
나는 씩 웃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김태하의 책상에 걸터앉아, 성주식품의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잘 지내시죠? 마켓 프레시에 원지훈입니다!”
– 아! 부장님!
“이번에 돈가스 대박 쳤다면서요? 축하합니다.”
– 다 부장님 덕분이죠.
“저요? 제가 뭘 해 드린 게 없는데?”
– 아니 뭐…….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는 말이죠.
성주식품의 최 이사가 머쓱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사님. 저희가 진짜 신경을 써드리고 싶은데, 저희 쪽에 제품 좀 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게 요새……. 후……. 찾는 데가 하도 많아서요. 홈쇼핑 2차 들어가는데, 그쪽에 들어갈 물량도 부족해요.
“그래서 요즘 같은 시기에 온라인을 버리고 가겠다는 겁니까?”
– 저희도 두 군데 다 판매하고 싶죠. 근데 아시잖아요. 홈쇼핑 애들이 판매 기간 동안 다른 채널에 판매 중지 거는 거.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예전처럼 홈쇼핑에 목을 거는 제조사나 벤더가 줄었고, 홈쇼핑의 이런 독점 판매 조항들은 없어지는 추세다.
“그런 쌍팔년도 계약을 했어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홈쇼핑 애들이 천하의 성주를 너무 물로 본 거 아닙니까?”
– 그……. 그래요?
“진주 간장게장 알죠? 홈쇼핑에서 1차분 띄우고 지금 2차 물량은 온라인에서 꾸준히 나가잖아요.”
– 그래요? 홈쇼핑 애들이 그냥 둬요?
“제조사가 원하는 데 자기들이 어떻게 맘대로 해요? 예전처럼 판매 플랫폼이 갑인 세상이 아닙니다. 특히 성주처럼 대박 제품 쥐고 있으면 당연히 꼬리를 내려야 하는데, 이사님이 너무 순진하셨나 보네.”
– 흠……. 좀 더 알아봐야겠군요.
“네. 잘 알아보시고 다른 거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내가 당장 달려가 드릴 테니까.”
– 부장님 역시 든든합니다. 하하하
“이사님 이래 놓고서 온라인 판매 딴 데서 하시면 알죠?”
– 네,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야 마켓 프레시가 조건이 제일 좋은 거 아는데 왜 딴 데를 가겠습니까?
“조만간 뵙겠습니다. 계약서 꼼꼼히 보시고요!”
– 예, 고맙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눈을 초롱이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김태하 팀장에게 말했다.
“일단 삼 일만 쉬고 다시 전화해 봐.”
“고맙다.”
* * *
오후 8시.
오랜만에 도재문 대리와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가끔 일하다 저녁도 거른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같이 먹어 준 것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사무실에 있는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얼굴이 상기된 마성근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라? 우리 부장님 아직 안 가셨네?”
“도 대리 밥 좀 먹이고 가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요새 부장님이 여기저기 신경 써 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부장님 너무 고생하셔서 죄송하기도 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마성근 팀장.
그는 이른 저녁임에도 꽤 취한 것 같았다.
“많이 마셨어요?”
“조금, 아주 조금 마셨습니다.”
“누구랑요?”
“정진푸드라고 마장동 큰손하고요. 하하핫.”
오늘 점심때 정진택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팀장님이랑 개그 코드 맞는 분? 근데 왜 사무실에 다시 오셨어요?”
“그 인간이 말술이라 조금만 쉬려고요.”
마 팀장은 술이 약하다.
그래서 종종 술이 센 사람을 접대할 때는 김대성에게 맡기고 도망을 가곤 한다.
“그럼 대성 씨가 고생하고 있겠네.”
“대성이랑 연두가 잘 커버 쳐 줄 겁니다.”
“연두 씨도 있어요?”
“네. 정진푸드 물고 온 게 하연두예요.”
마 팀장은 말을 마치고, 비틀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때.
쿵.
바닥에 떨어진 노래방의 무선 마이크.
취해서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온 건가?
나는 마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처음 듣는 목소리.
정진푸드의 성 대표라는 사림인가?
그리고 마 팀장과 김대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덩치 큰 놈은 김대성을 말하는 것 같고, 귀엽다는 것은 하연두인가?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김대성과 하연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팀장님! 애들 어디 있어요?”
“애들이요?”
“어디 노래방이냐고요?”
“저기 먹자골목에 스타 노래방. 하…… 흠.”
하품하는 마성근 팀장.
그는 이미 취해서 인사불성의 상태다.
나는 마이크를 꽉 움켜잡고, 곧바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