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46
46. 말려 죽이게?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
이 넓은 거리에서 마 팀장이 말한 노래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며 찾고, 또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때.
“어, 부장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을 동그랗게 뜬 김대성.
옆에 있어야 할 하연두가 없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물었다.
“대성 씨가 왜 여기 있어?”
“성 사장님이 술 깨게 컨디션 하나만 사달라고 해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럼 하연두만 두고 나온 것인가?
더 조급해졌다.
“어디야?”
“네?”
“노래방 어디냐고!”
“저기…….”
김대성이 커다란 건물 하나를 가리켰고, 그곳 5층에 노래방 간판이 보였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건물로 뛰어갔다.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 분이세요?”
노래방 알바의 말을 무시하고 앞에 있는 방들을 하나씩 문을 열었다.
노래하던 손님들이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지만, 나는 다른 방문을 열어 재끼며 하연두를 찾기 시작했다.
“하연두! 하연두!”
계산대 앞에 있던 알바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고, 방을 청소하고 나온 알바 한 명이 더 달라붙었다.
“저 손님!”
“손님!”
그리고 그때.
내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온 김대성이 노래방으로 들어왔다.
“하아……. 하아……. 부장님? 왜요? 왜 그러세요?”
“김대성! 어디야?”
“저기 17번이요.”
나는 알바들을 힘껏 밀쳐 내고, 김대성이 가리키는 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힘껏 문을 열었다.
“거 참! 비싸게 구네. 다른 회사 여자들은…….”
건장한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서서, 하연두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잡고 강제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100킬로가 넘을 것 같은 체구.
면도를 안 한 지저분한 얼굴.
소도 때려잡을 듯한 두꺼운 팔뚝.
레깅스처럼 꽉 달라붙은 면바지까지.
놈은 내가 상대할 체급이 아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하연두를 보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돌진했다.
쿵!
나와 남자가 부둥켜안고 쓰러졌고.
소파들 가운데 있던 테이블이 산산조각이 났다. 남자의 배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일반인의 싸움에서 체급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법.
남자가 나를 밀쳐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고, 커다란 주먹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때.
탁!
씨름선수 출신의 김대성이 남자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190이 넘는 거구의 김대성을 올려다봤다.
“이거 안 놔?”
남자의 거친 음성이 켜진 마이크를 타고 노래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노래방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 왔지만, 아무도 이들의 싸움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대성은 남자의 손목을 꽉 움켜잡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못 놓습니다.”
“놔!”
“절대 못 놓습니다.”
“저 새끼가 먼저 들이받았단 말이야!”
“말조심하세요. 우리 부장님입니다.”
“뭐?”
나는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하연두의 어깨를 감쌌다.
“가자.”
눈물을 쏟아 내는 하연두.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 남겨진 것이 서럽고 힘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발정 난 놈의 몸짓에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펑펑 우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노래방 문 앞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길을 터줬고, 김대성은 남자를 밀쳐 내고 나와 하연두를 따라 나왔다.
“부장님.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대충의 상황을 감지한 김대성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펑펑 우는 하연두의 어깨를 꽉 안았다.
1층으로 내려와 말없이 걸었다. 그 안에서 당했을 수모와 무력감에 우는 하연두를 달래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용히 뒤를 따라오던 김대성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 대처했어야 했는데…….”
“김대성!”
“…….”
내가 소리를 지르자, 김대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런 자리에 연두 씨를 데려간 거야?”
“죄송합니다. 연두 씨가 처음부터 메이드한 자리라……. 그리고 성 대표 그 새끼가 그렇게 나올 줄은…….”
하연두는 눈물을 닦아내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올려 갑자기 내 얼굴을 만졌다.
“저……. 부장님 피 나요.”
넘어지면서 긁혔던 것인가?
그제야 눈 밑이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미간을 구기자, 하연두는 재빨리 핸드백 안에서 작은 밴드를 꺼냈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 밴드의 포장을 벗기고, 내 얼굴에 붙여 줬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주머니에 있는 차 키를 꺼냈다.
“타고 가.”
“괜찮아요. 아직 버스가…….”
“타고 가라면 타고 가!”
달리는 차 안.
나와 하연두는 아무런 말 없이 30여 분을 달렸다.
하연두의 집 앞에 도착했고,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부장님이 왜요? 제가 그만 의욕이 넘쳐서…….”
“들어가. 그리고 내일은 집에서 쉬어.”
“저…….”
“그냥 ‘네’ 하면 안 돼?”
“네.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하연두를 올려보내고, 차 안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사님.”
– 응? 무슨 일이야?
사외이사 김재열.
마장동에서 오랫동안 고기 유통을 했고, 이 바닥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인물.
떠오른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한 그뿐이었다.
“정진푸드라고 아세요? 성 대표라고 하던데.”
– 아! 성진환이?
“성질환이요?”
– 아니 성! 진! 환! 근데 걔는 왜?
“성질환, 그 새끼랑 친하세요?”
내 심상치 않은 말투에.
오랫동안 함께 일한 김재열 이사는 상황을 눈치챈 것 같았다.
– 밟아야 하는구나?
“도와주실 거죠?”
– 사실, 나도 그 새끼 마음에 안 들었어.
“알겠습니다. 우선 정진푸드가 등심, 안심을 제외한 다른 부위들 납품하는 업체들 좀 알아봐 주세요.”
– 말려 죽이게?
소고기를 싸게 유통하는 것은.
인기 부위인 등심과 안심을 포함한 정육을 통째로 들여온다는 말이다.
우둔, 설도, 양지, 앞다리, 우족, 사태 등.
인기가 좋지 못한 부위를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는 업체.
그 업체를 틀어막으면, 적자는 커질 수밖에 없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 알았다. 그리고 딴 건?
“마장동에 어린 애들이 장사하는 청년고기라고 있다는데요. 거기도 좀 알아봐 주세요.”
– 청년고기?
“네. 시간이 없습니다. 부탁드릴게요.”
* * *
이튿날.
출근길에 김재열 이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운전을 하며 블루투스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지훈아.
다급한 목소리의 김재열 이사.
그는 쩌렁쩌렁 울리는 화장실 같은 곳에서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화장실이에요?”
– 응? 근데 뭐?
“이따 일 다 보시고 전화 주세요. 더럽게…….”
전화를 끊으려 하는 순간.
김재열이 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야! 잠깐만! 청년고기 거기 있잖아. 거기 대표가 고재익이거든?
“그런데요?”
– 고준식 회장의 아들이야.
“고준식이 누군데요?”
– 아……. 넌 모르겠구나. 고준식 회장은 마장동 유일한 성골이야. 마장동의 역사와 함께하신 분이지. 그리고 나 같은 놈들에게는 아직도 신화 같은 인물이야. 성진환이도 고준식 회장 밑에 있던 직원이었고, 마장동 출신 중에서 회장님 모르는 사람 없을걸?
“그래요?”
– 성진환이가 고준식 회장님 거래처 빼돌려서 나가서 차린 게 정진푸드야. 걔가 정육 처리하는 게 완전 회장님 스타일이거든.
나는 차를 잠시 갓길에 세웠다.
재미있어지는 분위기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흠…….”
– 회장님 이름 팔아서 비인기 부위 떨이치는데, 요새 가격을 좀 올렸나 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원성이 장난이 아니네?
“그럼 바꿔야죠. 왜 못 바꾼대요?”
– 그만큼 안정적으로 물량 가져오는 게 쉬운지 알아? 지금 전국에서 성진환이 만큼 정육 다루는 곳이 없을걸?”
“그럼 물량만 더 가져가면 빼 올 수 있다는 말인가요?”
– 응. 고재익이면 더더욱 좋고. 그림 좋잖아. 성골의 후계자가 다시 나서서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그림말이야. 근데 넌 고재익이는 어떻게 안 거야?
정진택 팀장의 말이 생각나서 물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회사를 그냥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냥 저희 신선식품 팀장이 좋은 사람 있다고 해서 여쭤본 거였어요.”
– 그래. 정진이 납품하는 업체 리스트는 찾아보고, 메일로 보내 줄게. 일단 고재익이 먼저 설득해 봐.
“알겠습니다.”
– 나도 회장님한테 도움받았거든.
“믿어도 된다는 거죠?”
– 그래. 들리는 소문에도 회장님처럼 양심적으로 사업한다고 들었어.
“정말 믿어도 되는 거죠?”
– 그래! 그렇다니까! 오죽하면 내가 똥 누다가 전화했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김재열 사외이사는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가 믿을 수 있다는 말은 충분히 그 사람에 대해 알아봤고 확신을 한다는 말이다.
나는 씩 웃으며,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마성근 팀장과 정진택 팀장을 데리고, 마장동의 청년고기로 향했다.
작은 창고형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진택 팀장의 뒤를 따라 사장실로 올라갔다.
청년고기라는 글씨가 박힌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나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여드름투성이의 얼굴에 정갈하게 빗질한 머리.
나이가 들어 보이고 싶어서 억지로 8대2의 가르마를 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고재익이라고 합니다.”
“원지훈입니다.”
“네. 부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앉으시죠.”
고재익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어린 나이지만 제품의 퀄리티와 유통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뚜렷했다.
그리고 예의 바른 말투와 차분한 표정.
왜 정진택 팀장이 그와 거래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대표님. 고준식 회장님의 아드님이시죠?”
내 말에 고재익이 눈을 동그랗게 들고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시는 분이 회장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네. 긴 얘기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마켓 프레시 축산의 50% 물량을 책임져 주세요.”
“……!”
옆에 있던 마 팀장과 정 팀장이 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재익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입 대금은 원하시는 시기에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등심과 안심, 그리고 다른 부위 일체를 납품해 주세요.”
“비인기 부위는 마켓 프레시에서도 판매하기 어려울 텐데요?”
“저흰 보관만 할 겁니다. 정진이 거래 중인 업체들 정보를 드릴 테니, 직접 접촉해서 뺏어 오세요.”
“하지만…….”
“창고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임대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물량을 다루기 위해서는 창고가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작한 청년고기는 그런 창고가 없고, 많은 제품을 사들여 온다고 해도 단기간에 처리할 수가 없다.
자본과 창고, 그리고 인맥까지.
이를 동원한다면 충분히 정진푸드를 앞지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급가를 올린 정진푸드에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다.
나는 씩 웃으며, 가방에 있던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는 고재익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계약서였다.
“결정되시면 불러 주세요.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절대 우리만 아는 겁니다. 아셨죠?”
고재익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 싸움.
나는 이길 것이다. 반드시 이기고 말 것이다.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