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50
50. 오늘 난 두 가지를 얻었다
대한민국 뉴스는 참 빠르다.
점심을 먹고 오니, 벌써 J푸드의 비리에 관한 기사가 가득했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에는 정진푸드가 아예 대놓고 올라가 있었다.
뉴스 기사를 클릭하자.
어느새 정진택, 마성근, 김태하 팀장이 내 모니터 뒤로 다가왔다.
“내가 저 새끼 저럴 줄 알았어. 몽타주부터가 아주 심오하잖아.”
“원래 저런 놈이었나 보네.”
“하하. 이번에 고소미 제대로 먹인 것 같은데요?”
마 팀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양손을 펼쳐 보이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다들 몰라요? 고소미? 어려서 그런가? 정 팀장님은 알죠?”
“저도 어리거든요?”
“에이, 얼굴만 보면 나랑 거의 비슷한 연배인데?”
“하……. 마 팀장님! 제가 어딜 봐서 팀장님이랑 비슷합니까?”
정진택 팀장의 나이는 서른셋.
하지만 심한 노안이다.
마 팀장과 동년배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마성근 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슬슬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정 팀장이 그를 따라갔다.
“마 팀장님! 그 말 당장 취소해요! 요즘 담배 사러 가면 종종 신분증 검사도 하거든요?”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하……. 나랑 퇴근하고 클럽 갈까요?”
“나이트 클럽이요? 국빈관? 백악관?”
“아 진짜! 갑자기 확 올라오네? 홍대만 가거든요?”
둘이 떠드는 사이.
김태하 팀장이 내 책상에 걸터앉았다.
“퇴근하고 약속 있어?”
“아니.”
“장선영 팀장이랑 와인 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고.”
“나는 왜?”
커피/음료팀의 장선영 팀장과는 아직 서먹하다.
그녀는 유일하게 나를 인정하지 않는 팀장이었고, 강력한 걸 크러시로 여직원들의 대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장 팀장이 할 말이 있다네. 갈 거지?”
“그래. 알았어.”
* * *
진한 재즈가 흘러나오는 와인 바.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김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취향을 마음껏 표출했다. 가끔은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닥이며, 보기 흉하게 몸까지 흐느적거리기까지 했다.
“좋지?”
“별로. 내 취향은 아니야. 그리고 그 짓 좀 그만할래?”
“뭐?”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거 말이야. 고개도 좀 가만있고!”
“이게 다 그루브라는 거야. 뇌를 장악한 소울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거야.”
나는 미간을 구기며, 입맛에 맞지 않는 와인을 마셨다.
그때.
“부장님, 제가 늦었죠? 면담이 좀 길어져서요.”
장선영 팀장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검은 가죽 바지에 웨스턴 스타일 부츠.
코에 건 은색 피어싱과 남자처럼 삭발한 헤어스타일.
그녀는 이태원에서도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쳐다볼만한 스타일이었다.
“여기 좋지?”
자연스럽게 태하의 옆에 앉아,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장선영 팀장.
김태하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에 답했다.
“응. 아주 좋은데? 여긴 어떻게 찾았어?”
“내가 누구야? 나 LA의 여신 헤라야! 헤라!”
헤라는 장선영 팀장의 영어 이름.
둘은 꽤 친한 사이였다. 아니, 김태하의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둘은 그 이후에도 나를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주로 음악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입맛에 맞지도 않는 와인을 홀짝대며, 다른 테이블들을 둘러봤다.
“부장님!”
장선영 팀장이 아이를 혼내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여기 어떠세요?”
“좋네요.”
“그죠? 하하하.”
여장부 스타일의 장선영 팀장이 허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마치, 삼국지의 장비가 거하게 술을 마신 것처럼.
“그나저나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그럼, 이제부터 좀 진지한 얘기 좀 하겠습니다.”
장선영 팀장이 갑자기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까지 이미정 대리랑 면담하고 왔는데요. 얘가 고민이 좀 많아요.”
“어떤 고민이요?”
“이미정 대리. 이번에 음료 들고 온 거 대박 친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미정이는 LA에서도 시니어급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너무 저평가된 거 같다면서 우울하답니다. 걔가 욕심이 좀 많아요.”
여직원들 중 가장 친한 하연두와 이은지를 통해 다른 여직원들의 성격은 조금씩 파악해 뒀다.
“네. 대충은 압니다.”
“그리고 유아동팀에 최인영이도 똑 부러져요. 걔랑 5년은 붙어 있었는데, 잔 실수도 한 적이 없어요.”
“네. 김민정 팀장님한테 들었습니다.”
“걔도 재고 관리나 하고 있을 애가 아닌데 아깝죠. 이렇게 능력 있는 애들 데려다가 이 정도밖에 못 쓰는 게 너무 아깝네요.”
이는 회사의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여러 회사의 직원들을 갑자기 떠안으면서 오로지 경력에 따라 나눌 뿐,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지 못했다.
“TO가 좀 있어야 하는데…….”
“잘하는 애들을 제대로 일을 시켜야지. 그래야 회사도 사는 거 아닙니까?”
회사는 새로운 투자에 대해서는 매번 망설였다.
그리고 이는 매출은 점점 높아졌지만, 식품 커머스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무턱대고 직원들의 직급과 급여를 올리자고 할 수도 없고…….
“저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휴…….”
그녀는 그 이후에도 자신의 팀원들은 물론.
다른 여직원들의 불만 사항들을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그녀는 더욱 흥분해서 목에 핏대를 세우기까지 했다.
“최 이사님이 그러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왜요?”
“최진영 대리 사건이요. 그냥 꼬리만 잘라 내고……. 까놓고 말해서 양 부장도 잘한 거 없잖아요.”
“네. 그야 그렇죠.”
“제가 가서 한번 따졌는데, 나서지 말라고만 하더라고요. 나 원 참. 내가 알던 그 최구열이 맞나 싶었어요.”
“흠…….”
“확 그냥 들이받을까도 생각했는데, 여긴 한국이야. 한국이야 하고 참았습니다.”
역시 거침이 없다.
이런 말까지 내게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그룹폰 출신 애들이 얼마나 잘하는데, 이런 어벤저스들을 모아 놓고 뭐 하는 건지. 그리고 경일이 있죠?”
“김경일 대리요?”
“네. 걔가 네슬레에서 근무할 때, 반려동물 심리치료까지 공부했어요. 그만큼 일에 대해서는 의지가 가득한 놈이라구요.”
“네슬레요?”
대부분의 사람은 네슬레를 커피 회사로만 안다.
하지만 그들의 펫 사업부는 오래전부터 세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준이다. 또한, 커피와 음료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펫 사업부의 안정적인 매출 때문이기도 하다.
“모르셨어요? 김 대리 그룹폰 전에 네슬레 펫 사업부에 있었어요. 거기서 연봉도 꽤 받은 거로 아는데, 최 이사님이 불러서 바로 넘어온 거예요. 걔 속은 어떻겠어요? 걔도 당연히 시니어급인데 와서 이런 찬밥 대우나 받고!”
“그랬어?”
김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도 몰랐나 보다. 하긴 김경일이 워낙 말수가 적어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장선영 팀장은 고개를 돌려, 김태하에게 되물었다.
“너도 몰랐어?”
“응. 전혀 몰랐어. 경일 대리가 말이 워낙 없잖아.”
“하긴……. 걔는 개나 고양이랑 더 말을 많이 할걸?”
“하하하, 예상왼데? 그 차가운 친구가 반려동물들을 좋아할 줄은 몰랐네.”
“집에 유기견, 유기묘 10마리 이상 키울 거야. 그리고 매주 동물보호단체 같은 거 나가서 봉사 같은 거도 하고.”
그 순간.
새로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나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장선영 팀장에게 물었다.
“장 팀장님! 우리 마켓 프레시에 새로운 카테고리 하나 파면 어떨까요?”
“네?”
“김 대리가 반려동물들 사료나 간식 이런 것들도 잘 알까요?”
“물론 잘 알죠. 네슬레 펫 사업부에서 시장 조사를 주로 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장 팀장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제가요?”
“네. 회사에서 새로 경력직 채용하겠다고 하면 분명 반대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인원들 가지고 새로운 TF를 만들어 볼까 하는데요.”
“무슨 TF요?”
“펫 사업팀이요. 김경일 대리와 이미정 대리, 최인영 씨까지 해서 셋을 묶어 보려고 합니다. 일단 마성근, 김민정 팀장님께는 제가 협조를 요청할 테니, 팀장님은 미정 대리와 인영 씨를 설득해 주세요.”
“괜찮겠어요? 괜히 애들 빼서 TF 만들었다가 성과가 없으면, 부장님한테 책임이 갈 텐데?”
“제가 확신도 없이 이런 짓을 하자고 말했겠습니까?”
“그럼 콜! 남자네. 남자야! 우리 부장님 남자네!”
장선영 팀장은 쿨내 진동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말인가?
내가 그녀의 손을 잡자, 아래위로 크게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요.”
“저도 몰랐습니다. 장 팀장님하고 통하는 곳이 있을 줄은.”
“하하하, 우리 앞으로 자주 와인 마셔요.”
“아니, 다음엔 소주입니다.”
“하하하 좋아요. 제가 말술인 건 알죠?”
“길고 짧은 건 대봐야죠.”
“오호 재미있겠는데요? 말 나온 김에 오늘 당장 어때요?”
“후회할 텐데.”
“이거 간만에 신이 나네요. 잘생긴 남자 둘이랑 소주라……. 갑시다!”
오늘 난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장선영이라는 여직원들의 대장을 내 편으로 끌어들였고.
다른 하나는 김경일 대리를 끌어올릴 명분을 찾았다는 것이다.
방금까지 시큼하던 와인이 갑자기 달게 느껴졌다.
* * *
이튿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마성근 팀장과 김민정 팀장을 불렀다.
그리고 어제 장선영 팀장과 나눴던 얘기를 전달했다.
당연히 둘은 내 말에 찬성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김경일 대리를 설득하기 위해 그를 옥상으로 불러냈다.
이른 아침 회사 꼭대기 층의 카페.
나는 김경일 대리와 둘이 마주하고 앉아, 어제 장선영 팀장과 한 얘기를 전달했다.
“제가요?”
김 대리는 놀란 표정을 짓고, 손에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할 수 있죠?”
“글쎄요. 하도 오래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꼭 해야 합니다.”
“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 오늘따라 아메리카노가 다네.”
김경일 대리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부장님. 저 그렇게 욕심 많은 놈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자리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TF가 잘못되면, 물론 나에게도 책임이 올 수 있다.
그리고 김 대리는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김 대리라면 잘해 낼 것을.
“야! 김경일! 내가 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부서에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 보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거짓말하지 마. 너도 하고 싶잖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잖아.”
진작 이럴 것을…….
속에 있던 말을 반말로 쏟아 냈더니.
가슴을 틀어막고 있던 답답한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차갑고 냉정하게 일만 하는 김경일 대리는 그만큼 나에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거리를 두는 그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나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김 대리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왜, 갑자기 반말해서 기분 나빠? 나이도 동갑인데 뭐 어때? 마지막으로 묻는다. 할 거야, 말 거야?”
내가 소리를 치자.
그는 그제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해 보죠. 잘못되면 부장님이 책임지실 거니까.”
“그래!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너는 열심히만 해!”
“그리고 하나 더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뭔데?”
“저 빠른입니다.”
하……. 어이가 없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김경일 대리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야?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면서?”
“한국에서는 한국의 법에 따라야죠.”
“법? 누가 그래 법이라고? 그럼 형이라고 불러 줄까?”
“해 달라면 해 줄 겁니까?”
“아니, 절대 못 하지.”
차갑고 말도 없는 김경일 대리는 어쩌면 나에게 마음을 다 열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진심으로 마음을 연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표정은 처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