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55
55. 내일부터 면접이죠?
“아이고! 아이고!”
장소형의 노모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고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남편은 그런 아내를 말없이 토닥였다.
나는 장소형의 옆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고 위에 CCTV 있던데, 확인해 봤어?”
“그거 가짜입니다. 그냥 폼으로 걸어 둔 거였어요.”
장소형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때.
연락을 받고 도착한 경찰 둘이 우리의 앞으로 걸어왔다.
“창고에 넣어 둔 것들이 다 털렸다는 거죠?”
“맞아! 맞구먼. 서울분들이 잘 따서 창고에 다 넣어 놨는디…….”
“얼마나 됩니까?”
“한 천 개가 좀 넘을걸? 김순경, 잡을 수 있제?”
1,000박스면 소비자가로 5천만 원.
이 과수원 수확량의 4분의 1 정도가 되는 수량이다.
“과수는 괜찮아요?”
“썩을 놈들이 박스에 담아 둔 것만 홀랑 가져갔구먼!”
“창고만 털어 갔더라…….”
경찰은 한 손으로 턱을 잡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오늘 서울 사람들 내려오는 거 아는 사람 있습니까?”
“글씨, 박 씨랑 최 씨한티 말혔는디.”
“일단 서로 가시죠. 입구 쪽에 CCTV랑 돌려보면 나오겠죠.”
경찰의 말뿐인 추리가 이어지는 사이.
나는 창고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뜯긴 자물쇠와 문고리를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때.
“어이! 어이 이봐요! 지문 나오니까 함부로 만지지 마요!”
장소형의 아버지와 대화 중이던 경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미 들었다.
문고리에 있는 기억들을.
젊은 남자의 목소리.
분명, 은행의 구린 냄새가 지독하다고 말했다.
자물쇠를 잡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면, 창고까지 은행나무가 있는 길을 따라왔을 확률이 높다.
주변을 둘러봤다.
창고로 들어오는 길 세 곳에 모두 은행나무가 드문드문 있었다.
어느 쪽일까?
나는 경찰이 있는 입구 쪽으로 걸어와 물었다.
“CCTV가 어디 있죠?”
“왜요?”
퉁명스럽게 답하는 경찰.
아마도 나서는 내가 보기 싫었을 것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몇 개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건 왜요?”
“그 많은 양을 훔쳐 가려면 최소 1톤 트럭 두 대 이상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고 서울서 탐정 양반 오셨네. 이 사람 뭡니까?”
경찰은 내 말을 끊어 내고, 장소형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 소형이 회사 부장님이구먼.”
“요즘 부장은 탐정도 하나 보죠? 괜히 이거저거 손대지 말고 가만있어요.”
경찰은 나를 밀치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장소형의 아버지는 아내를 토닥이고, 경찰차의 뒷좌석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는 뒷좌석의 문이 닫히기 전 재빨리 문을 잡았다.
“소형 씨.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아버님이랑 같이 갔다 올게.”
“부장님이 가시게요?”
“응. 소형 씨는 어머니 챙겨야지.”
“아……. 예예.”
내가 뒷좌석에 타자.
운전석에 앉은 경찰이 다시 미간을 구겼다.
“왜? 탐정 양반도 가시게?”
나는 그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장소형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혹시 마을에 은행나무가 많나요?”
“은행나무? 많제. 아주 많제.”
“주로 어느 쪽에 많습니까?”
“그기 음……. 저짝 산길 따라오면 많을 텐디. 거기 은행 냄새가 장난이 아니여. 근디 은행나무는 왜?”
“산길이라……. 알겠습니다.”
20여 분을 달려 작은 파출소에 도착했다.
불이 켜진 파출소 입구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있었다.
“김순경! 김순경! 우리 집도 털렸어! 그 써글 놈들이.”
“빨리 CCTV 돌려보라고!”
“잡아야지. 빨리 잡아야 물건을 찾지!”
경찰을 기다린 것 같은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거나 경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경찰은 사람들을 어렵게 진정시키고, 마을로 들어오는 큰길 CCTV 화면을 확인했다.
큰길을 활보하는 트럭들.
경찰은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CCTV를 멈추고 차량 번호를 적었다.
경찰들은 예상외로 꼼꼼했다.
물건은 찾지도 않고 도둑만 잡고 끝낼 생각인가?
이대로 두면, 내일 아침이 되도 끝나지 않을 판이었다. 초조해진 마을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고, 파출소 안에 고성이 오고 갔다.
“빨리 돌리라니까! 그건 아니고!”
“아저씨 좀 조용히 해요!”
“그럼 빨리하든가, 물건 다 사라지고 나면 김순경이 책임질 거야?”
늦으면 범인을 잡아도, 물건을 찾을 수 없다.
그럼 이들은 1년 내내 농사지은 과수들을 하루아침에 잃고 만다. 나는 경찰의 뒤로 가서 허리를 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은행나무가 많은 산길 있죠? 큰길은 그만 뒤지고 그쪽 먼저 봅시다.”
“거긴 왜요?”
CCTV를 보던 경찰이 건성으로 물었다.
“그럼 도둑놈이 큰길로 들어왔겠습니까?”
“이 양반, 정말 귀찮게 하네. 좀 떨어져요! 이렇게 많이 훔쳐 가려면 큰 차가 왔을 거고, 당연히 큰길 먼저 봐야지!”
“이렇게 8톤 차량이 많이 다니는데, 언제 잡아요? 1톤 트럭 여러 대로 오면, 충분히 산길로도 올 수 있습니다.”
“아 진짜. 성질머리하고는. 당장 떨어져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경찰이 짜증을 내자.
가만 지켜보던 장소형의 아버지가 나섰다.
“김순경! 서울 부장님 말이 맞구먼! 도둑놈이 나잡아갑슈 하고 큰길로 오겄어? 은행나무 길부터 보자고!”
“맞아. 장 씨 말이 맞아!”
“은행나무길 거기 음침해서 도둑놈들 드나들기 딱 좋아!”
마을 사람들이 동의하자.
경찰은 툴툴대며, 산길 쪽 CCTV를 먼저 돌려 봤다.
조용한 산길.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두 시간 전.
호루를 씌운 수상한 트럭 세 대가 줄지어 지나갔다.
“이거 뭐야?”
경찰은 트럭의 번호판을 확인하고 시간을 빨리 돌렸고, 2시간 후 다시 그 길로 돌아가는 똑같은 트럭 세 대를 확인했다.
“잡았네. 잡았어. 이놈들이네.”
경찰은 차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 이후 차량의 번호를 수배했고.
차량의 위치까지 파악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다시 어딘가와 통화를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자자! 내가 잡는다고 했죠? 서울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에서 잡았답니다. 지금 차 돌려서 온다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대부분 도둑질한 농산물은 빠르게 처리한다.
큰 부피의 제품들을 쌓아둘 수가 없어서, 판매처를 미리 알아보고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다른 길들을 뒤지느라 늦었다면, 범인은 잡아도 과수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운이 좋네. 물건도 찾고. 서울 양반, 어떻게 아셨어?”
경찰이 여전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냥 촉이죠. 그럼 제품은 다 찾은 거죠?”
“예. 차 돌려서 다 가져온답니다. 서울로 넘어가기 전에 잡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원래 이렇게 물건까지 찾는 경우는 드문데…….”
“운이 좋았네요.”
“예. 운이 좋았어요. 정말.”
이진성 팀장의 말처럼.
이번 워크숍은 굉장한 워크숍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린 장소형의 과수원에서 재배한 엔비 사과는 물론, 도둑맞았던 제품들과도 새로운 계약도 맺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장소형이 커다란 가방을 내 옆에 내려놓았다.
“부장님. 어머니가 드리랍니다.”
“이게 뭔데?”
“물김치랑 젓갈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좀 싸셨답니다.”
“그래. 고맙네. 꼭 잘 먹겠다고 전해 드려.”
“정말 고맙습니다. 부장님 아니었으면, 사과 다 날렸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뭘 운이 좋았지.”
장소형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내려놓고 간 커다란 가방을 손잡이를 잡고 미소를 지었다.
* * *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월요일 아침.
인터넷 기사를 보던, 부서원들이 시끌시끌해졌다.
“이정우 이사가?”
“500억이래. 와…….”
김태하 팀장은 태블릿을 들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기사를 내게 보였다.
[마켓 프레시 이정우 이사…… TV 광고로 500억 투자 유치] [마켓 프레시, TV 광고 대박에 이은 대박 투자 유치! ]“알고 있었어?”
“응. 대충.”
“흠…… 그래? 이거 예상외인데?”
“뭐가?”
“이러면 이정우 이사가 최구열 이사보다 지분이 많아지는 거잖아. 왜 이걸 받았을까?”
“별로 관심 없어.”
“나는 상관없어도 너는 관심이 있어야지. BO커머스에 네 지분도 들어가 있잖아!”
원스몰의 인수 당시, 조금의 지분과 현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빠삭한 김재열 사외이사가 알아서 관리해 줬기에, 아예 관심을 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된다고. 말 없는 거 보니까 다른 이사들만 지분이 쪼개졌을 거야.”
“훔…… 그럼 다행이고.”
김태하 팀장은 내 어깨를 툭 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모니터에 이정우 이사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 원 부장 잠깐 올라와.
아마 거들먹거리고 싶어서 불렀을 것이다.
– 급한 일인가요?
– 아니. 우리 예쁜 지훈이 얼굴 보고 싶어서.
– 그럼 일 좀 보고 올라가겠습니다.
– 바빠?
– 네 아주 바쁩니다.
이정우 이사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모든 사업부의 부장들이 그의 방을 드나들었고, 최구열 이사 사람들도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3일 후.
[마켓 프레시, 2,000억 규모 시리즈 E 투자 유치…… 누적 2,500억 원] [새벽 배송 ‘마켓 프레시’ 2천억 투자 유치] [마켓 프레시 최구열 이사…… 2,000억 투자 유치 성공 신화] [2000억 규모 시리즈 E 투자 유치한 마켓 프레시, “양적, 질적 성장 소비자 신뢰 보답”] [최구열 미국의 성공을 한국에서도 이을 수 있을까?]경제지 1면에 이전보다 더 많은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이정우 이사는 기사가 난 다음 날 병가를 내고 아예 회사에 나오지도 않았다.
2,500억의 투자금은 회사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회사는 가장 먼저 경기도 시흥에 새로운 창고 건설을 시작했고.
MD 사업부는 더 많은 제품을 사입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4만 개 이상의 새로운 상품을 사이트에 진열했다.
* * *
한 달 후.
“마켓 프레시 원지훈입니다.”
신선식품팀에 걸려 온 전화를 당겨 받았다.
부서원의 절반은 외근.
나머지 절반은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다.
“담당자가 통화 중이라서, 메모 남겨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외근을 다녀온 마성근 팀장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부장님.”
“네. 오정에서는 뭐래요?”
“이번에는 수량 꼭 맞추겠답니다. 제가 아주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어요.”
“네. 수고하셨어요.”
“아 참, 부장님 내일부터 면접이죠?”
경기도 시흥에 새로운 창고가 지어지면서.
창고 관리직 직원 100명과 사무직 50명을 새로 뽑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은 마성근 팀장이 말한 것처럼 신입 인턴들의 면접일이었다.
“예.”
“이번엔 정말 똘똘한 애들이 좀 들어와야 하는데……. 그리고 저희 팀에 두 명 배치해 주신다는 약속 잊지 않으셨죠?”
MD 사업부의 배정된 인원은 총 15명.
팀마다 충분히 두 명 이상을 배치해 줄 수 있다.
“네. 그래야죠.”
“부디 똘똘하고 빠릿빠릿한 애들 좀 배정해 주세요. 경일 팀장이 없어서 힘들어 죽겠어요.”
김경일의 펫 사업팀은.
단 세 명의 인원으로 한 달 사이에 두 배 이상의 매출을 끌어냈다. 내 꾸준한 노력에 그는 팀장으로 승진했고, 더 많은 매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직원들이 시급했다.
“이력서 보니까 똘똘해 보이는 친구들 여럿 있던데요?”
“그래요? 기대가 좀 되네요. 어떤 인재들이 들어올지.”
“네. 저도 기대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