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56
56. 모르면 물어보세요
“할 수 있습니다!”
“예! 그것도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다 할 수 있다는 스타일.
불합격.
우린 쌍팔년도의 군대가 아니다.
“휴식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외근은 얼마나 나가나요? 차량 지원은요? 제가 평발이라.”
하나하나 묻고 따지는 스타일.
불합격.
우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결과로만 판단한다.
“영어 면접 안 하시나요?”
“그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을 뽐내고 싶어 하는 스타일.
불합격.
우리에겐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상도 못 하는 일을 하고 온 사람들이 많다.
MD가 되고 싶다며, 마켓 프레시 공채에 지원한 사람은 3,000여 명.
이중 서류전형을 통과한 사람은 총 176명으로, 나와 각 팀의 팀장들이 며칠 동안 꼼꼼히 이력서들을 확인했다.
200대 1의 경쟁률.
청년들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느껴졌다.
나와 박대영 차장, 김태하, 장선영, 마성근, 정진택 팀장은 면접관의 자격으로 깨끗한 테이블 앞에 앉았다.
57번째 면접자가 밖으로 나가자.
옆에 있던 박대영 차장이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부장님. 방금은 어떻습니까?”
“너무 수동적이지 않나요?”
“흠……. 이 정도면 A급이죠. 학점, 사회봉사, 어학연수까지 이런 스펙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너무 평범해요.”
“하……. 서울대 식품공학과 나온 애가 평범하면 도대체 누굴 보시려는 겁니까?”
“특별한 사람이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음 면접자가 들어왔다.
도수가 높은 안경에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가득한 그는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김준위 씨. 먼저 우리 회사에 입사 지원하게 된 동기가 어떻게 됩니까?”
김태하 팀장이 묻자, 면접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마켓 프레시에서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회원으로, 새로운 콜드 체인과 보냉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이 그런 시스템들을 만들고, 도입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제품은 구매해 보셨나요?”
“예! 물론입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구매합니다.”
능글맞은 표정으로 답하는 지원자.
샌님처럼 생긴 얼굴인데 넉살이 제법 있어 보였다.
김태하는 그의 이력서를 넘겨보며 다시 질문을 이었다.
“학교를 자퇴하셨네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울 게 없다라……. 본인이 성실하지 못하거나, 오만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습니까?”
“글쎄요. 능력이 있다면 오만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요놈 봐라?
오만한 듯하면서, 김태하의 질문을 잘 받아친다.
김태하는 면접자를 빤히 쳐다보다, 다시 이력서를 넘기며 물었다.
“마켓 프레시에서 구매한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무엇이고, 이유는 뭡니까?”
“비벼요 만두를 좋아합니다. 오프라인 마트보다 더 싸고, 완벽한 냉동 상태의 제품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에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구매하고, 배송 시간과 냉동 상태를 확인합니다.”
“냉동 상태요?”
“네. 처음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보냉팩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준위 씨. 제가 가공식품팀 팀장입니다. LJ 제품은 저희 사이트에 없어요.”
“……!”
당황한 표정의 면접자 김준위.
사실, LJ의 비벼요 만두는 마켓 프레시에 판매한다.
김태하 팀장이 일부러 면접자의 반응을 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자, 과연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할까?
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몸을 숙이며 김준위라는 면접자를 바라봤다.
김준위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아까와 달리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이 일을 똑바로 안 하셨나 보군요. LJ 제품들은 비벼요 만두를 제외하고 갈비탕, 순두부찌개, 김치말이 국수, 육개장의 레토르트 제품을 판매합니다.”
정확하다. 우리가 파는 LJ의 제품군이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김태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 방 먹었는데?”
김태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면접자에게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보냉팩은 뭐가 특별했나요?”
“기존 보냉팩들의 가장 문제는 접착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접착테이프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 접착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켓 프레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상단을 선물을 포장하는 것처럼 리본으로 묶었더군요. 그런 방법이 어떻게 보면 간단할 수도 있는데, 참 신선했습니다. 지우개 달린 연필을 발명한 하이만처럼요.”
보냉팩의 문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관상의 이유로 이런 식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확하네요. 만약 입사한다면 어떤 팀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내 질문에, 면접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특판팀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이유는요?”
“가장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긴 거랑 다르게 성질이 좀 급합니다.”
김태하가 씩 웃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게 속삭였다.
“저 꼬마, 너랑 닮았는데?”
나는 씩 웃고, 김준위라는 면접자에게 질문했다.
“때론 빠른 성과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진행한 아이템이 팔리지 않아서, 재고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준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까운 봉사 단체에 기부하겠습니다.”
“기부요?”
“기부한 금액만큼 세금으로 감면을 받아서, 손실을 최소화하겠습니다.”
보통의 쇼핑몰이나 기업들은 저런 방법을 많이 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들을 기부하고, 이를 통해 세액을 공제받는다.
하지만 이는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글쎄요.”
내 눈치를 살피던 김준위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실패를 교훈 삼아 최소한의 마진으로 판매해 보겠습니다.”
“아니요. MD에게 실패는 실패일 뿐입니다. 그냥 모르면 물어보세요. 김준위 씨보다 경력이 많고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
그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김준위 씨, 만약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년, 후년에도 도전할 겁니다.”
“우린 김준위 씨가 또 서류를 접수하면 떨어트릴 건데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받아 줄 건지, 진심으로 묻겠습니다.”
나는 그의 초롱이는 눈을 보고, 씩 웃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가 면접을 마치고 나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면접자가 앉았던 의자로 걸어갔다. 그리고 의자를 똑바로 놓는 것처럼 하면서 방금 면접을 본 김준위의 기억을 찾았다.
이 의자를 스쳐 갔던 수많은 사람의 기억들.
그리고 드디어 김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가장 끝에 앉아 있던 마성근 팀장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합격! 저는 완전 합격입니다. 저 친구 말하는 본새가 우리 원 부장님을 보는 것 같네요.”
“글쎄요. 좀 돌아이 기질이 있는데요?”
“부장님도 돌……. 아, 아닙니다.”
마성근 팀장은 헛기침을 하고, 급하게 물을 마셨다.
잠시 휴식이 끝나고.
새로운 면접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마켓 프레시에 지원한 김미나입니다.”
긴 머리를 빨갛게 탈색을 한 여자 면접자가 면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린 그녀의 범상치 않은 외모를 보고.
면접관의 자리에 앉아 포스를 풍기는 장선영 팀장을 번갈아 봤다.
묘하게 닮은 듯한 비주얼이 신기할 정도였다.
“네. 앉으세요.”
장선영 팀장이 말하자.
김미나라는 면접자는 남자처럼 다리를 떡 벌리고 의자에 앉았다.
헤어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검은 정장을 입은 그녀.
“옷은 그래도 신경 좀 쓰셨나 보네요.”
내 질문에.
김미나는 남자처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마성근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미나 씨! 면접입니다. 예의를 갖춰 주세요.”
“그래야 합니까?”
“네. 이력서 사진에는 이렇게 정상적인데…….”
“그럼 지금의 저는 비정상이라는 말입니까?”
당황한 표정의 마성근 팀장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짙은 눈화장을 한 장선영 팀장이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봐요! 똑바로 앉으라는 한국말 몰라요?”
맹수는 맹수를 알아보는 법.
장선영 팀장의 아우라에 눌린, 지원자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모았다.
“연대 정치 외교학과를 나오셨군요. 학점도 괜찮고. 근데 학과랑 전혀 상관없는 우리 회사에 지원하신 이유가 뭡니까?”
“저는 바이크와 맛집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국에 안 가 본 맛집이 없습니다.”
“그래서요?”
“먹는 것을 파는 건 자신 있습니다. 먹어 본 사람이 잘 팔지 않겠습니까?”
“마켓 프레시의 직원 중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먹어 본 음식만 판다.
저건 회사 사람들만 아는 슬로건이다.
장선영 팀장은 그제야, 눈에 힘을 빼고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재미있군요.”
“전 재미없습니다. 긴장돼서 죽겠습니다.”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은데…….
그녀는 처음부터 손에 뭔가를 쥔 상태로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손에 든 게 뭔가요?”
내가 묻자.
김미나는 씩 웃으며 손을 펼쳐 안에 있는 것을 보였다.
아이들이나 가지고 노는 스펀지 공.
왜 그것을 그렇게 만지작거렸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걸 계속 만지신 겁니까?”
“촉감이 좋습니다. 손으로 이렇게 꽉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가려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저도 만져 볼 수 있을까요?”
내 말에, 김미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와 작은 스펀지 공을 건넸다.
이게 면접의 전략이었다는 말인가?
순진한 건가?
개성이 있는 척하면 가산점을 주는 회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도를 넘었다.
“훗…….”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던 김미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촉감 좋네요.”
내가 스펀지 공을 돌려주자, 그녀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우린 그 후로도 100명에 가까운 면접자들과 마주했다.
작은 포차를 운영하면서, 요리와 마케팅을 했다던 최문식.
오픈마켓에서 3년간 AMD(보조 MD)로 근무했던 이안나.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짓다가 서른이 넘어서 서울로 올라온 최기연.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돌잔치 MC를 했다던 박선호.
외제차 딜러로 일했던 김혁진.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들을 해 온 구석호.
농수산 쇼핑몰을 운영하다가 원산지를 잘못 표기해 망했다는 최지섭.
아버지를 도와 배송 기사 일을 했다는 김현희까지.
나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 면접자들에게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는 박대영 차장을 제외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면접이 끝나고, 우린 원탁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너무들 하신 거 아닙니까? 무슨 스타킹도 아니고, 특이한 사람들에게만 점수를 후하게 주십니까?”
박대영 차장의 볼멘소리에 마성근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겁니다.”
“좋아요. AMD로 일했던 이안나는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농사만 짓다가 서른이 넘은 최기연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정진택 팀장이 한 손을 살짝 올리며 박대영 차장의 말에 답했다.
“저는 좋았는데요? 솔직히 우리 팀 사람들은 농사를 책으로 배웠지, 실제로 못 해 봤습니다. 그런 인턴이 들어오면 꽤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하,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혼자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정진택 팀장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차장님. 저도 정진택 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보고, 손으로 만진 사람은 책으로만 본 우리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 그럼 최지섭은요? 원산지 표기 실수는 범죄입니다!”
“그건 혼자 일할 때의 얘기죠. 같이 한다면,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정 팀장님?”
“예! 최지섭이라는 친구는 혼자 이것저것 다 해 본 것 같더라고요. 그만한 사람 구하기 힘듭니다.”
나와 정진택 팀장의 말을 들은 박대영 차장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을 표시했다.
“졌어요. 졌어. 대신 이 친구는 꼭 뽑겠습니다.”
그는 가장 위에 올려 둔 이력서를 테이블의 가운데로 밀었다.
“강전형 씨요?”
“네. 과학고에 서울대, 학점도 4.1, 3개 국어는 기본이고 사회봉사까지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밟고 온 친구입니다.”
“그게 좋아 보이나요?”
“네. 이렇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은 뭘 하든 잘합니다.”
“좋아요. 그럼 각자 모레까지 최종 합격자 서른 명씩 선발해서,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을 우선으로 선발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우린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김태하 팀장은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옆구리를 찔렀다.
“한잔하고 가야지.”
“피곤한데 그냥 들어가지?”
“넌 꼬마들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난 나 어릴 때 보는 것 같아서 좋던데.”
나는 피식 웃고, 김태하 팀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김준위?”
“응. 난 걔 바락바락 대드는 게 마음에 들더라.”
“데려와서 뺑이 돌리려는 거는 아니고?”
“그런 것도 좀 있긴 하지. 아 참, 아까 김미나라는 지원자 기억나?”
“누구지?”
“장선영 팀장 주니어!”
“아……. 그 빨간 머리?”
“응. 장선영 팀장이 예비 합격자에 넣겠지?”
“흠……. 글쎄. 캐릭터가 너무 겹쳐서 모르겠네.”
“내가 볼 때는 분명 넣을 거야. 아까 이력서 별 다섯 개 그리더라.”
“하하하, 그래. 재미있겠네.”
우린 면접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