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57
57. 그렇게 물컹거리다가는 아무 일도 못 해
이틀 후.
“부장님, 오늘 저랑 점심 어떠세요?”
이진성 팀장이 아침 일찍부터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한다.
“오늘 좀 바빠서 빨리 먹고 와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 앞에 맥도날드 갈 겁니다.”
시간만 나면, 맛집 탐방을 다니는 이진성 팀장.
오늘은 의외였다.
“그래요? 팀장님이 웬일이래요?”
“오늘 인턴 면접 최종 회의하신다면서요. 어떤 놈들이 올지 궁금해서요.”
새로운 직원 열다섯이 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설레는 일이었다.
이진성 팀장뿐 아니라, 김민정, 최충연 팀장과 말수가 적은 김경일 팀장까지 자신의 팀에 좋은 인원을 배정해 달라고 졸라댔다.
점심시간.
나는 이진성 팀장과 함께, 회사 옆의 맥도날드로 향했다. 그리고 가벼운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와서 앉았다.
“이번에 맛집 마니아 있다면서요? 바이크도 타고?”
“아……. 김미나 씨요?”
“네. 그 친구 어때요?”
이진성 팀장은 자신의 취미와 비슷하다는 면접자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글쎄요. 저는 순수한 것 같은데, 다른 팀장님들이 어떻게 평가했을지 모르겠네요.”
“순수하다고요? 외모는 장선영 팀장 뺨친다던데?”
“외모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좀 의외군요.”
“그렇게 관심 있으면 직접 면접 들어오시지?”
“저도 그러고 싶었죠. 요즘 저희 팀 애들 죽으려고 해서 잠깐도 자리를 못 비우겠어요. 부장님, 우리 팀에도 꼭 두 명 이상 배정해 주셔야 합니다.”
회사의 인원 배정은 인사부에서 진행한다.
단, MD 사업부는 사업부 부장이 직접 하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이는 김지영 이사가 준 특권으로 매우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맨입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 그럼요?”
“오늘은 감자가 맛있네.”
“넵! 당장 가져다 바치죠.”
이진성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면접에 참여했던 팀장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전 이렇게 서른 명을 추려 봤습니다.”
박대영 차장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출력한 파일을 원탁의 가운데로 밀어 놨다.
팀장들과 내가 종이를 겹쳐서 올려놓자.
김태하 팀장이 종이를 일렬로 펼치고 형광펜으로 중복되는 이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일치하는 사람은 김준위, 이안나, 김현희……. 셋이 전부네요.”
김태하 팀장은 그들의 이름을 별도로 적어 놓고, 내 눈치를 봤다.
저건, 빨리 결정을 해 달라는 뜻이다.
“그럼 다수결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차장님, 이해하시죠?”
“네. 그래야죠.”
김태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장 많이 이름이 적힌 면접자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두 명이 추가로 이름이 적혔다.
이를 물끄러미 보던,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김미나는 왜 없습니까?”
“너무 건방지잖아요.”
박대영 차장의 답에 장선영 팀장이 미간을 구겼다.
“우리가 무슨 군대입니까? 제가 그 버릇 고쳐 놓겠습니다.”
“무슨 우리가 학교도 아니고 고치긴 뭘 고칩니까?”
“차장님이 좋아하시는 스펙도 완벽했습니다. 외모만 보고 사람을 어떻게 판단합니까?”
“그래요. 외모는 뭐 그렇다 칩시다. 장 팀장님도 한 포스 하시니까. 태도는 어쩔 생각입니까?”
“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고쳐 놓겠습니다. 딱 한 달 안에요.”
둘의 불꽃 튀는 대결을 하는 사이.
나는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찬성입니다. 안민용 씨보다는 김미나 씨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우리 부장님은 사람 볼 줄 안다니까.”
장선영 팀장이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박대영 차장을 노려봤다.
그러자.
“부장님, 김미나 씨는 다리 쩍 벌리고 앉아서, 스펀지 공이나 만지작거리고 태도가 영…….”
“차장님. 이번엔 절 믿어 주세요. 생각보다 순진한 친구 같아서요.”
“순진이요? 그 빨간 머리가 순진이라고요?”
“외모로 평가하긴 좀 그렇죠. 여기 장선영 팀장님도 얼마나 순진한데.”
장선영 팀장은 양팔로 가슴을 가리고 큰 눈을 껌뻑이며, 순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박대영 차장은 그런 그녀를 애써 못 본 척 외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안민용 씨는 안 됩니다.”
“왜요?”
“스펙과 예의, 모든 것이 완벽한 친구입니다.”
박대영 차장의 방어에, 장선영 팀장이 공격을 시작했다.
“에이, 차장님. 토익 점수가 이렇게 낮은데요?”
“우린 해외 영업 파트는 없습니다. 학점 보세요. 완벽하잖아요.”
“차장님 말씀을 빌려서 하자면 토익이 낮다는 건 게으른 겁니다. 김미나 씨는 차장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학점, 토익, 봉사 점수가 훨씬 더 높습니다.”
“그래도 태도가……. 어휴. 다른 팀장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성근 팀장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 부장님의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
“다른 분은요?”
“저도 역시, 부장님 생각에 힘을 실어 드리고 싶네요.”
정진택 팀장의 답에.
가만있던 김태하 팀장까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저도 뭐. 그럼 살포시.”
“에이, 이런 간신배들.”
박대영 차장은 원탁 위의 서류들을 마구 흐트러트리고 미간을 구겼다.
“차장님. 제가 책임질게요. 좋은 친구인 것 같습니다.”
어설픈 면접 전략이었지만.
확실히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먹어 본 것만 팔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박대영 차장은 내 눈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저도 부장님의 판단을 믿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우린 열다섯 명의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 MD 사업부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다.
* * *
새로운 인턴들의 첫 출근 날.
긴 머리를 휘날리는 여성이 1층 로비에 서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출입증 때문인가?
이곳으로 첫 출근을 하던 이은지가 떠올랐다.
나는 피식 웃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출입증 때문이죠?”
“어머……. 그때 면접 보셨던……. 맞죠?”
그녀는 가장 마지막에 합격이 결정된 김미나였다.
면접 때는 분명 새빨간 머리였는데, 지금은 긴 검은색 생머리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스타일이 많이 변하셨네요.”
“아……. 첫 출근인데 얌전하게 하고 와야죠.”
그녀는 부끄러웠는지, 새빨개진 얼굴로 어렵게 답했다.
“네. 지금이 더 보기 좋네요.”
“고맙습니다.”
“임시 출입증은 저쪽 안내 데스크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이름하고 생년월일 말하면 자세히 알려 줄 겁니다.”
“고맙습니다.”
김미나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전.
누군가 달려와 닫히는 문에 손을 집어넣었다.
“죄송합니다.”
검은 백팩을 메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김준위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네. 김준위 씨.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내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MD 사업부 부장님이시죠?”
“어떻게 알았어요?”
“면접 때 포스가 딱 그래 보였습니다.”
“그래요?”
그는 면접 때 김태하에게 보인 다소 건방진 태도를 지운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김준위는 고개를 돌려, 내게 다시 질문을 이었다.
“저……. 부장님. 저는 어느 부서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안내문 안 보셨나?”
“네?”
나는 엘리베이터의 15층과 17층의 버튼을 눌렀다.
“오늘 처음 입사한 인턴분들은 15층 인사부에서 사내 교육 먼저 받고 올라오면 됩니다. 올라오면 MD 사업부에서 내부 메뉴얼대로 교육을 할 겁니다.”
“아……. 네. 그래서 어느 부서로?”
특판팀에 가고 싶다던 그는 역시 성질이 급했다.
궁금한 것은 꼭 알아야겠나 보다.
마치 나처럼.
“글쎄요. 두고 봐야죠. 아직도 특판팀에 가고 싶어요?”
“네. 꼭 가고 싶습니다. 선배님들께 묻고 또 물어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히 하겠습니다.”
15층이 문이 열리고.
김준위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인사부서로 향했다.
* * *
회사 옥상.
신입 인턴들의 교육은 차갑고 냉정한 김경일 팀장이 맡았다.
나와 김태하 팀장은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는 인턴들을 힐끔 보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재미있는 애들 많던데?”
김태하는 벌써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담배를 깊게 빨고 말을 이었다.
“오늘 최기연 씨 운동화 봤어?”
농사를 짓다가 서른이 넘어 서울로 올라온 최기연.
말끔한 슈트에 새하얀 운동화를 신었었던 것 같은데…….
“새것 같은 새하얀 운동화?”
“응. 내가 복도에서 만나서 물었어. 왜 운동화를 신고 왔냐고.”
“그러니까?”
“무기래. 자신은 발로 뛰는 MD가 될 거라면서, 많이 뛸 준비를 해 왔다네.”
제품을 팔아야 하는 MD.
그것도 수많은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는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고, 이것이 무기가 될 수 있다.
“나 벌써 기대되는데?”
“이안나는 면접 일등답게 잘할 거 같고, 문제는 박선호인데.”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했던 박선호.
그는 면접 내내 까칠한 장선영 팀장까지 웃게 한 인물이었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MD에게 사람을 대할 줄 아는 것은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박선호 씨는 왜?”
“너무 몰라. 간단한 용어들도 몰라서 공부를 좀 많이 해야 할 거야.”
“그래.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자고. 본인도 면접 때 노력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잖아.”
“그리고 김현희 씨는 특판팀에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버지를 도와 택배 일을 오래 했던 김현희.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창고와 물류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다.
“응. 그러려고.”
“그나저나 부장님. 우리 팀에 김준위 줄 거지?”
“글쎄. 아직 결정 못 했어.”
“아직도?”
인턴들은 식사가 끝나면, 각 팀으로 배정되어 가야 한다.
“아니, 다 했는데 김준위 씨랑 김미나 씨만 아직 못했어.”
“왜?”
“김준위 씨는 성질이 급하고 자신감에 차 있어. 그런 애가 특판팀에 가면 고생 좀 할 거야.”
“그래서 나 달라고 한 거잖아.”
“그럴까?”
“내가 사람 만들어 놓을게. 나만 믿어.”
자신의 가슴을 치고, 환하게 웃는 김태하 팀장.
이럴 때는 꽤 믿음직스럽다.
“그래. 그래야겠다.”
김태하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다시 질문을 이었다.
“김미나는 왜?”
“너무 순둥이야. 거래처 전화만 받아도 울 거 같아서 말이야.”
“그 빨간 머리가? 아……. 맞다 하긴 나도 오늘 보고 좀 놀랐어. 여자들은 진짜 화장만 바꾸면 완전 딴사람이 되더라.”
“음. 그래서 특판팀에 보내볼까 해서.”
“특판팀? 거기 보내서 맨날 울게 하려고?”
특판팀이 상대하는 거래처들은 대부분이 거칠다.
또한, 단가를 후려쳐야 하기에, 상대하기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버텨야지. 그렇게 물컹거리다가는 아무 일도 못 해.”
나는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자. 팀 배정 마무리해야 해.”
“알았다.”
우린 그렇게 사무실로 내려왔다.
열다섯 명이 더해졌을 뿐인데, 꽉 찬 것 같은 사무실이 보기 좋았다.
나는 기대했다.
지쳤던 우리에게 저들이 어떤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인지를.
그리고.
그 희망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말이다.
김경일 팀장이 인턴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간 사이, 나는 직접 인턴들의 팀 배정 공지를 한쪽 벽의 사내 게시판에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