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60
60. 너무 위험합니다
“부장님! 부장님!”
아침부터 마성근 팀장이 설레발이다.
그는 출력한 종이 뭉치를 펄럭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게 바로 우리 범준이 작품입니다.”
어제까지는 생활이 개그라고 하더니…….
오늘은 아예 딴사람처럼 우리 범준이라고 불렀다.
이미 그의 제안서를 본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봤습니다.”
“그래요? 신박하죠? 과자 선물 세트도 아니고, 찌개, 탕, 국류를 묶어서 선물 세트로 만들다니. 이거 먹힐 것 같죠?”
“예. 먹힐 것 같네요.”
“주부들이여, 빨리 그리고 몰래 구매하라! 이제 냄비에 끓이기만 하면 끝날지어니!”
마성근 팀장은 허공을 응시하며, 마치 뮤지컬 배우처럼 말했다.
“감동은 일단 넣어 두시고, 내일까지 상품 포장이랑 제품군, 네이밍까지 정해 주세요. 아시겠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추석까지는 앞으로 2주.
최대한 빨리 상품 기획을 확정 지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다 달라붙어서 조속히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성근 팀장은 거수경례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
우리에게 이 비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고개를 돌려, 신선식품팀의 텅 빈 자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정진택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 부장님! 죽을 맛입니다. 와……. 내가 진짜 이거 뭐 하는 짓인지.
퍼붓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
전화만으로 현장의 상황이 그대로 느껴졌다.
“과수는 어때요?”
– 빨리 나와서 망정이지, 늦었으면 다 떨어졌을 겁니다.
땅에 떨어진 과일은 겉면의 상처로 가치가 하락하는 법.
정진택 팀장과 신선식품팀은 갑작스러운 폭우 소식에 부랴부랴 이천의 배 농장으로 향했다.
낙과가 생기기 전, 과수를 수확하는 농가를 도우려는 생각이었다.
“인원은 부족하지 않아요?”
– 네. 부족하죠. 주변 인력사무소에 싹 전화 돌렸는데, 주변 농장들도 다 오늘 따 버린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인턴들 좀 이쪽으로 보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현재 나가 있는 신선식품팀은 열둘.
사무실의 인턴 열셋을 더하면, 스물다섯 명이 된다.
“예.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하죠. 주소는 문자로 보내요.”
– 고맙습니다.
정진택 팀장은 보기와는 다르게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구마 사건도 그의 지나친 책임감이 불러온 사건이었다.
나는 팀장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특판팀의 김대성을 불렀다.
“대성 씨. 차량은 두 대 지원받아 놨으니까 그걸로 움직이면 돼. 인턴들 잘 챙기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비는 차에 준비해 놨어.”
“알겠습니다.”
“비 오는데 운전 조심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김대성은 씩 웃고, 인턴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그 사이 마성근 팀장이 내 옆으로 다가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진짜 미친 듯이 오네요. 뭔 가을에 태풍이래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추석에 과일값 엄청나게 오르겠네요.”
나와 마성근 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점심시간.
여전히 하늘에서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식사를 마치고 온 김태하 팀장을 불렀다.
“태하야! 바쁜 일 있어?”
“이천에 가 보려고?”
“응. 시간 되면 나랑 같이 좀 가자.”
“까먹었어? 이따 3시에 임원 회의 있잖아.”
잊고 있었다.
오전에 갑자기 최구열 이사가 임원 회의를 소집한 것을.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정진택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어때요?”
– 이제 절반은 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 걱정하지 마세요. 대성이랑 인턴들까지 와서 이제 충분합니다. 앞으로 한 두 시간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식사는 하셨죠?”
– 교대로 먹고 있어요. 오후에 임원 회의 있다면서요? 여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마무리하고 바로 그쪽에서 퇴근시키도록 하세요.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전화 주시고요.”
– 네네. 끝나면 전화 드릴게요.
오후 2시 30분.
갑작스러운 이정우 이사의 호출에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원 부장, 왔어?”
바짝 세웠던 머리를 단정하게 내린 이정우 이사.
그는 평소보다 기운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네.”
“앉아. 커피 한 잔 내려 줄까?”
그는 항상 사무실 문 앞에 앉아 있는 비서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비서가 앉아 있던 자리는 깔끔히 치워진 상태였다.
“비서는요?”
“그만뒀어.”
“그렇게 심부름을 시키시더니…….”
“내가 그랬나?”
이정우 이사의 비서가 그만뒀는지 몰랐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구석의 캡슐 커피 머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누르고, 벽에 기대어 섰다.
“지훈아.”
“네.”
“너 전략기획부에 새로 온 고동수 부장 알지?”
고동수 부장.
최구열 이사가 2천억의 펀딩을 받은 후 데려온 인물.
40대 초반의 남자로 뚱뚱하고 온화한 인상의 소유자다.
그리고 나와는 가볍게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다.
“인사만 해 봤습니다. 고 부장은 왜요?”
이정우 이사는 내 답을 듣고, 커피 머신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들고 왔다.
“이거 갤러리아에서 한정판으로 파는 비싼 캡슐이야.”
나는 커피잔을 힐끔 내려 보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근데 고동수 부장은 왜요?”
“이건 내 예상인데, 아마 새로운 사업부가 생길 것 같아.”
“어떤 사업부요?”
“글쎄. 나처럼 끈 떨어진 연이 어떻게 알겠어. 혹시 너는 알까 해서 물으려고 했지.”
씁쓸한 표정의 이정우 이사.
예전의 자신감과 패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아, 전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 * *
오후 3시.
최구열, 김지영, 이정우 이사와 각 사업부의 부장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대형 스크린 앞에 나와 서 있던 고동수 부장은 사람들이 모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동수입니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고동수 부장.
그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그때.
끼익.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정근영 대표이사와 BO푸드의 김상만 회장이 들어왔다.
지주회사인 BO푸드와는 한 건물을 쓰지만, 커머스의 회의에 회장님이 직접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대한 위압감에 쑥덕대던 임원들 모두가 입을 닫았다.
김상만 회장은 가장 가운데, 정근영 대표가 앉던 자리에 앉았다. 비서 중 한 명이 재빨리 노트북을 세팅하고, 옆에 출력된 문서를 내려놨다.
김상만 회장은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하세요.”
스크린 앞에 서 있던 고동수 부장이 앞으로 걸어 나와 허리를 굽혔다.
“회장님을 뵐 수 있어서 큰 영광입니다. 그럼 제가 준비한 자료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PPT 표지가 보였다.
“맘마미아,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그리스, 빌리 엘리엇. 이 공연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한 목소리.
정확한 발음과 시선 처리.
고동수 부장은 온화하던 표정을 지우고 좌중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모두 10분 만에 예매가 끝나는 공연들입니다. 심지어 암표의 가격이 두 배를 넘기도 합니다. 그리고 BTS, 싸이, 나훈아, 이승환 등의 뮤지션들의 공연도 10분, 아니 1분 만에 매진이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문화 공연에 관한 이야기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그리고 공연과 티켓에 대한 것은 이정우 이사가 더 적격일 텐데.
왜 고동수 부장일까?
그가 손짓하자, PT를 돕던 전략기획부의 직원이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이는 각 공연의 매출입니다. 각종 PPL이나 광고는 제외하고 티켓 판매에 대한 매출만 잡아 봤습니다.”
최소 10억에서 최대 300억이 넘는 매출 그래프.
PT를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큰 매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매출들은 오로지 티켓 예매 기간인 10분 만에 생긴 매출입니다.”
“……!”
“마켓 프레시의 식품 카테고리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대형 물류 회사, 3PL, 오프라인 마트, 오픈마켓까지.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식품 카테고리의 성공할 수 있던 이유를 뭐라고 보십니까?”
고동수 부장은 임원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바로 사입 정책입니다. 이 정책으로 수수료를 높일 수 있었고, 소비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조용해진 회의실.
그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이정우 이사였다.
“문화 공연 티켓들과 사입 정책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사님은 잘 아실 텐데요?”
고동수 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PT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자. 이번 페이지에 보시면, 하나의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투자사가 붙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공연 티켓의 일부 판매권을 갖거나, 판매된 금액의 일정 비율을 가져갑니다.”
“투자로 얻은 좌석을 마켓 프레시에서 판매하자는 겁니까?”
“예. 정확합니다. 지금 식품 쪽 마진율은 평균 30%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화 공연은 적게는 30% 많으면 50%까지 순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식품만으로 커머스의 1등을 하기는 어렵다.
나도 이는 인정한다.
그래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고민했으니까.
하지만 티켓 시장은 엄연히 다르다.
“MD 사업부의 원지훈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고동수 부장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원 부장님.”
“식품과 티켓을 동일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식품은 재고가 생기면 할인해서라도 판매할 수 있지만 티켓은 판매되지 않으면 모두 회사의 부담이 됩니다.”
“그야 그렇죠. 하지만 문화는 유통기한이 짧은 상품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본금의 회전이 빠른 사업이기도 합니다.”
투자하고 예매까지는 길어야 1개월.
즉 1개월 안에 손익과 손실의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도 많다.
열 번을 성공하고, 한 번의 실패에 휘청거릴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사업이다.
내가 위험성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원 부장님!”
가만 앉아 있던 최구열 이사가 입을 열었다.
“네?”
“원 부장님의 공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내년도에 상장하는 것입니다. 식품 커머스만으로 가능할 것이라 보십니까?”
“티켓은 너무 위험합니다. 한 번의 실수만 해도 회사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답에, 최구열 이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때, 단상 위에 서 있던 고동수 부장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부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문화 공연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 오셨던 이정우 이사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이거였나?
처음 이정우 이사를 끌어들일 때부터 방패로 삼으려 했던 것인가?
나는 고개를 돌려, 이정우 이사를 바라봤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고동수 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그 침묵이 가득한 공간에서 김상만 회장이 마이크에 대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최구열 이사님. 세부 계획안이 완성되면 저도 공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기대되는군요.”
회사의 최고 권력자 김상만 회장.
대한민국 3대 식품회사인 BO푸드의 창업주.
마켓 프레시의 최대 지분 소유자.
그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