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69
69. 마켓 프레시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MD 사업부 회의실.
“두 달을 벌었습니다.”
두 달.
BO푸드의 주가를 올리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다.
박대영 차장과 팀장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경력, 인맥, IQ, EQ, 가능하면 초능력까지 모두 동원하세요. 그래야 마켓 프레시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저, 부장님!”
정진택 팀장이 먼저 답을 보내왔다.
“네.”
“제 친구 중에 작전을 짜는 놈들이 있습니다. 혹시 이 친구들에게…….”
“안 됩니다. 단기간에 치고 올라가면, 빠지는 속도도 빠를 겁니다.”
“후……. 그럼 어떻게 두 달 만에.”
“우린 원칙대로 갑니다. 정 팀장님은 도재문 대리와 함께 빅데이터를 확인하세요. 마켓 프레시가 어떤 프로모션을 진행했을 때 BO푸드의 주가가 반응했는지를 찾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성근 팀장을 바라봤다.
“특판팀은 현재의 두 배로 특판 물량을 준비하세요.”
“예?”
“다른 팀들도 특판팀에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죠?”
“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죠.”
특판의 제품군이 화려하면 언론과 SNS 등이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판매량이 늘어나면 BO푸드의 주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진성 팀장님!”
“네?”
“가전팀은 해외 수입 가전에 집중해 주세요. 그리고 김태하 팀장과 김경일 팀장이 지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해외 명품 수입 가전 브랜드와의 MOU에 주가는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김태하와 김경일은 미국 그룹폰 출신으로 아무래도 이런 쪽에 더 인맥이 넓다.
“음료팀은 기프티콘 기획을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적어도 한 달 안에 오픈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 문제없이 하겠습니다.”
기프티콘은 음료팀에서 오래 준비한 아이템이다.
이 또한 새로운 사용자의 증가로 주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김민정 팀장님, 육아 카테고리는 작은 아이디어에도 크게 반응합니다. 팀원들과 회의해 보시고, 뭐든 얘기가 나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예!”
“마지막으로 차장님은 각 팀에서 올라오는 사업들 홍보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BO푸드 홍보팀이 지원해 줄 겁니다.”
“네!”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매체는 언론이다.
우린 실적과 기대치를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언론에 알려야 한다.
나는 팀장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두 달, 짧을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도 지나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회의가 끝나고.
팀장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곧바로 팀별 회의가 이어졌고, 그렇게 우린 두 달이라는 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이사님. 딱 두 달만 저희 사정 좀 봐주세요.”
“입고일 하루만 당겨 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에 반응이 너무 좋아서요.”
단기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각 팀에서는 기존 협력사들에 제품 공급과 단가를 조정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많은 협력사의 도움에 생각보다 빠르게 매출이 올라오고 있었다.
“실장님. 이번에는 정말 온라인 최저가 주셔야 합니다!”
– 알았어요. 알았어. 대표님께 품의 올렸으니까 내려오는 대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근데, 부장님 무슨 일 있어요? 뭐 그렇게 급하게 일을 처리해요?
“저는 좀 급해지면 안 됩니까?”
– 그래도 너무 달라지셔서.
급한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존 거래처들에 100원이라도 더 소비자가를 내릴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최저가 경쟁은 회원과 매출을 빠르게 올릴 방법으로, 지금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전화를 끊고, 건강식품팀으로 향했다.
“팀장님! 카드사 프로모션은 어떻게 됐어요?”
마침 자신의 팀원과 얘기 중이던 최충연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우선 현대, 롯데, 삼성이 컨펌 났습니다.”
“다른 카드사는요?”
“더 재촉해 보겠습니다.”
카드사의 할인 프로모션은 제품의 판매가를 무너트리지 않고 할인을 해 주는 방법이다. 커머스는 이를 통해 온라인 최저가를 만들고, 카드사는 실적을 챙겨 간다.
“일단 나머지 기다리지 말고, 컨펌 난 카드사 먼저 이벤트 거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카드사도 컨펌 나면, 곧바로 페이지 제작 들어가야 합니다.”
“네네, 물론이죠.”
나는 그 외 다른 팀들의 진행 사항도 확인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과연 단기 매출만으로 실적이 나올까?
좀 더 확실한 액션이 있어야 한다.
주주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할 만한 아주 큰 성과가.
나는 자리에 앉아, 도재문 대리가 만든 데이터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TV 광고를 제외하고.
펫 카테고리가 만들어졌을 때 주가가 반응했다.
아마도 새로운 제품군의 판매가 주주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나 보다.
나는 데이터를 마저 확인하고, 의자 뒤에 걸린 상의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 * *
삼일식품.
새롭게 만들어질 베이커리 카테고리를 위해 계약한 곳.
규모는 작지만, 건강한 빵을 만든다는 신조가 우리와 잘 맞는 곳이기도 하다.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한 1층을 지나,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삼일의 유신주 이사는 내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2층 회의실 앞에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빠글빠글 파마를 한 40대의 여성.
유신주 이사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네.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죠. 이번에 마켓 프레시랑 계약한 물량을 맞추려고 설비를 늘렸습니다. 필요하시면 일정을 당기셔도 됩니다.”
그 말을 하러 왔는데, 일이 술술 풀린다.
“예. 잘됐네요. 저도 사실은 일정을 당겨 보려고 왔습니다.”
나는 씩 웃고, 유신주 이사가 안내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회의실 안 냉장고에서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꺼내 왔다.
그리고 종이컵에 우유를 따라 주며, 방긋 웃었다.
“오늘 아침에 가져온 우유예요.”
이곳에 오면 언제나 신선한 우유를 준다.
이들이 건강한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평창의 우유 농장과 전량 계약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건네는 우유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네요. 여기 우유는 뭔가 다른가 보죠?”
“우유는 보관법이나 유지 기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 됩니다. 이렇게 좋은 우유로 만드니까 저희 빵이 좋은 겁니다.”
“평창 농장에 무슨 다른 비법이 있는 건가요?”
“아뇨. 비법이라기보다는 돈이죠. 지금 이 우유는 농장에서 집유, 살균, 생산, 출하가 모두 당일에 이뤄집니다. 말만 들으면 간단해 보여도 절대 단순한 작업이 아니에요. 이런 설비를 만들려고 저희가 큰 금액을 투자했어요.”
대충은 안다.
우유를 만들기 위한 공정들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유신주 이사는 저번에도 빵을 만들 때, 우유가 가장 중요하다며 자신의 철학과 논리를 쏟아 낸 적이 있었다.
“그렇군요.”
나는 우유를 따라준 종이컵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조금 전 기억이 들려왔다.
납품을 늘린다라…….
왜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나는 옅은 미소를 짓고 종이컵 바닥에 남은 우유를 탈탈 털어 마셨다.
“한 잔 더 드릴까요?”
“네. 더 주세요. 제가 마시는 것처럼, 우리 회원들도 이 좋은 우유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희 우유는 위생과 유질에서 1등급 원유로 판정받았어요. 그리고 유통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농장이랑 독점 계약을 하고, 농장에 직접 설비들까지 투자했어요.”
“그렇군요. 알고 마시니까 더 맛있는 것 같네요.”
“온도만 잘 지켜 주시면 3일 정도는 이 맛을 유지할 수 있어요.”
“3일……. 짧긴 짧군요.”
“그래서 저희도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농장에서 나오는 이 귀한 우유를 빨리 소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랬구나.
납품량을 늘려 보겠다는 것이 우유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구나.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희가 소비를 좀 도우면 어떨까요?”
“마켓 프레시가요?”
“네. 하루 우유 생산량이 얼마나 되나요?”
“대략 2천 리터 정도 될 겁니다.”
“그럼 제빵에 들어가는 우유는요?”
“지금 정도면 천 리터 정도면 충분합니다.”
“남은 우유는 종이팩……. 아니, 유리병이 좋겠군요. 삼일식품에서 개별 포장이 가능한가요? 아니, 지금 설비로는 힘들겠죠? 그럼 저희가 다른 업체를 섭외해 보겠습니다.”
“네?”
유신주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너무 정신없이 물었나?
나는 씩 웃으며 차분히 다시 질문을 했다.
“삼일에 정식으로 PB를 제안 드려도 될까요?”
“PB요?”
“네. 이렇게 좋은 우유는 회원들도 마시게 해 줘야죠.”
PB(Private-Brand products).
인지도가 떨어지는 훌륭한 제품들에 인지도가 높은 우리 브랜드의 껍데기를 입힌다. 제조사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우린 훌륭한 제품들로 인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소비자에게는 낮은 단가에 판매할 수 있고, 새로운 PB 제품군이 성공을 거둔다면 주주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유신주 이사는 내 생각을 이해했는지,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PB라……. PB라…….”
“이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베이커리가 아니라 우유를요?”
“네. 베이커리는 지금도 좋은데, 굳이 PB로 할 필요는 없죠.”
“흠…….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네요. 우선 대표님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제조사들은 PB를 꺼린다.
이유는 유통사에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일처럼 자본금이 충분한 회사는 자사 브랜드를 고집하지, PB 제품을 수락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신 베이커리의 초기 납품 수량을 늘리겠습니다.”
“납품 수량을요?”
“그리고 하나 더요. 우유 패킷에 삼일의 고급 1등급 원유를 판매한다는 내용을 꼭 넣겠습니다.”
“…….”
“좋은 우유로 만드는 베이커리. 그리고 좋은 베이커리를 만드는 우유를 파는 마켓 프레시. 딱 맞아떨어지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이건 좀 민감한 얘기라.”
“전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음…….”
유신주 이사는 잠시 생각을 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금 얘기해 주신 것도 좋긴 한데요. 대표님을 설득하려면 뭔가 확실한 베네핏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베네핏이라……. 계약한 공급가의 10%를 더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베이커리 쪽 마진은 높다.
그리고 삼일식품 쪽이 주력이 아니기에, 이 정도의 제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말에 유신주 이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해 볼 만하겠네요.”
나는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사무실에 있는 박대영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장님!”
– 네. 부장님 어디 가셨어요? 홍보팀 일정 좀 조율하려고 하는데 안 계셔서요.
“그것보다 팀장들 회의를 준비해 주세요. PB에 관해 얘기해 볼 생각입니다.”
– PB요?
“네. 마켓 프레시 우유, 달걀, 스낵 등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박대영 차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 PB.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죠? PB면 확실히 반응이 오겠네요.
“네. 그럴 겁니다. 그리고 차장님은 포장 용기 쪽 회사들 좀 알아봐 주세요. 친환경 포장재만 알아보셔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제조사들에 PB를 제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어렵다.
대부분 미래를 위해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어 하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원하는 퀄리티를 가진 제조사들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린 그동안 MD로서의 무기를 수집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업체들.
이젠 그들로부터 보답을 받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