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7
7. 누구나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
다시 돌아온 사무실.
“마 과장님!”
내가 부르자, 마성근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팀장님!”
“지금부터 평소 친했던 제조, 유통, 수입, 창고, 핸드 캐리(보따리상)들까지 싹 전화 돌리세요.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에 1만 개 이상 사입할 수 있는 제품들 준비해 주세요.”
“그걸 왜…….”
“사이트 오픈과 동시에 12시간 타임 이벤트 들어갑니다. 소비자가는 3만 원 이상, 브랜드 인지도는 높고, 최근 1년간 사고가 터지지 않은 제품이어야 합니다. 아 그리고, 공급가는 30% 이하로 맞춰오세요.”
“30%요?”
“왜요? 못 하시겠어요?”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모습이 영 시원치 않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김경일 대리에게도 똑같은 지시를 했다.
“김 대리도 들었죠?”
“예.”
“광고 시간은 12시간, 12개의 제품이 돌아갑니다. 두 분 다 최소 하나씩 들고 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책상 위에 다이어리를 내려놓고, 옷걸이에 상의를 걸쳤다.
“대성 씨는 지금 내려가서 냉동 창고 공간 확보하고, 우진 씨는 다른 팀에서 리스트 넘어오면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주세요.”
“저……. 창고는 얼마나 확보해둘까요?”
“중형 박스로 1만 개 이상의 자리는 잡아 놔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덩치는 큰데, 동작은 빠르다.
김대성은 의자에 걸어 뒀던 상의를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가만히 앉아 커다란 눈을 깜빡이던 하연두가 손을 살짝 들었다.
“팀장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연두 씨는 나 따라와요.”
“네?”
“제조사 미팅 갑니다.”
* * *
1시간을 달려, 포천의 작은 공장에 도착했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대충 주차하고, 한쪽에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로 다가갔다. 그리고 컨테이너 철문에 세게 노크했다.
쾅쾅!
“위생 상태 점검 나왔습니다.”
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씩 웃으며, 속으로 셋을 세고 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원 팀장 놀랐잖아.”
치렁치렁한 곱슬머리에 배가 산만한 40대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양지푸드의 함중식 사장.
그는 내가 원스몰에 있을 때 크게 도움을 줬던 인물이기도 하다.
“왜 찔리는 거라도 있으시나?”
“아니! 아니거든, 난 단속 한 번도 걸린 적 없어. 그거 알지? 내 신조가 더러운 놈과는 일하지 않는다는 거.”
“알았어요. 알았어.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뭐 똑같지, 근데 원 팀장 BO푸드로 갔다며?”
“BO푸드가 아니라 BO커머스, 사이트는 2주 후에 오픈해요.”
“그래? 이름이 뭔데?”
“마켓 프레시.”
“이름 그럴싸한데? 하하하 근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요즘 온라인에 군만두 안 보이던데? 장사 안 해요?”
양지푸드의 주력 상품은 군만두.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다.
인터넷에 나오면 1시간 이내로 품절됐고, 오프라인 마트에는 아예 납품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양지푸드의 군만두는 레어템 중의 레어템이다.
“아니, 너무 잘돼서 공장을 늘릴까 고민 중이야. 하하하.”
나는 씩 웃고, 함 사장의 책상 위에 걸터앉아 그의 물건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모니터, 볼펜, 다이어리, 수첩, 재떨이까지.
그리고 그의 지난 생각들을 모조리 읽어 냈다.
“요새 공장 가동률 50% 미만이라면서요?”
“누가 그래? 아니야 우리 잘 돌아가!”
“에이……. 누구를 속이려고, 소문 다 났어요.”
“그…… 그래?”
“무슨 일인데요? 말을 해야 돕든가 하지. 혼자 끙끙 앓으면 누가 알아주나?”
“그게 사실은 말이지…….”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함 사장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대형 마트에서 PB(Private Brand)상품 제안을 받고, 무리한 투자를 해서 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대형 마트는 납품일 하루 전에 공급가를 터무니없이 낮춰버렸고, 협상하는 사이에 매입한 고기와 채소들이 모두 썩어 버렸다고 했다.
이런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순진한 제조사 사장들은 지금처럼 닳고 닳은 유통사의 감언이설에 속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안 들어왔을 때 날 불렀어야죠! 그럼 이제 그 식재료들은 다 못 쓰는 건가요?”
“폐기 비용만 2천이 넘게 들었어.”
“개새끼들……. 그걸 그냥 둬요?”
“벌써 석 달 전 일인데……. 이젠 뭐 그러려니 해.”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함 사장의 동공이 떨려 왔다.
“일단 공장 먼저 돌리죠.”
“어떻게?”
“BO에서 1만 개 사입할게요. 당연히 대금은 선금이고.”
“진짜?”
“그럼! 양지 군만두는 나도 좋아해요. 안 팔리면 내가 싹 다 먹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치? 우리 군만두가 좀 괜찮긴 하지.”
“당연하죠. 양지 군만두가 아시아 탑이죠!”
자신의 제품이 최고라는 말에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함 사장은 자신의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얼마 전에 중국에서 기사 난 거 봤어?”
“아, 그럼 봤죠. 봤죠.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 1위, 양지 군만두! 그거 당연히 봤죠.”
“나 그거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암……. 암요. 그래야죠.”
“그래. 원 팀장. 공급가 얼마에 해 줄 거야?”
“400g짜리 한 봉에 1,200원.”
방금까지 껄껄대고 웃던, 함 사장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원 팀장! 장난해? 그거 원가도 나오지 않아!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에이……. 그건 공장 50% 돌릴 때 얘기잖아요. 100% 돌리면 1,000원 이하로 맞출 수 있으면서. 왜 그래요. 선수끼리.”
“이게……. 날 그냥 벗겨 먹으려고 작정했나. 안 해. 나 못해.”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반응 나오면 쭉 가겠다고. 마켓 프레시의 메인 탑 상품으로 팔겠다고.”
함 사장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말 믿어도 돼?”
“사장님! 나 원지훈이야. 원지훈이라고. 내가 언제 뻥 치는 거 봤어요?”
함 사장은 말없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수첩을 찢어 나에게 건네며, 씩 웃었다.
“1,350원. 그 이하로는 절대 안 돼!”
“콜! 계약서는 이메일로 보냅니다. 컴퓨터 할 줄 알죠?”
미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하연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팀장님.”
“네?”
“아까 양지푸드 사장님이 찢어 주신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왜요? 궁금해요?”
“네……. 그게 좀…….”
“이건 좀 그런데…….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거예요.”
“팀장님! 꼭 보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요.”
하연두가 이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 건 처음이다.
나는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었던, 찢어진 종이를 그녀에게 건넸다.
—
♥♥ I LOVE YOU ♥♥
—
하연두는 내용에 놀라 들고 있던 종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봐요? 장난이에요. 장난. 함 사장님이 원래 장난이 좀 심해요.”
“정말이죠?”
나를 이상하게 보는 하연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라니까! 이래서 보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 정말.”
* * *
오후 6시.
퇴근 시간에 걸려 차가 좀 막혔다.
나는 시장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두 씨 괜찮으니까 먼저 가요. 퇴근 시간인데.”
“아닙니다.”
“정말 가도 돼요. 나 뒤끝 그런 거 1도 없으니까.”
“뭐든 다 배우고 싶습니다.”
“국밥은 좋아해요?”
“네?”
“양지 고기 들어간 국밥.”
“네. 좋아합니다.”
10분여를 걸어 시장 중간쯤의 허름한 국밥집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엄마 밥 줘!”
내 목소리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무신……. 내가 와 니 어무이가?”
“밥 주는 사람이니까 엄마지. 할매라 부르면 싫어할 거잖아? 국밥 두 개만 말아줘요.”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사발에 국밥을 담았다. 그리고 긴 배추김치를 썰지 않은 채로 접시에 내왔다.
“묵고 가라.”
이 국밥집의 메뉴는 단출하다.
밥은 말아서 나오고, 국물을 머금은 소면은 달기까지 하다. 그리고 양지고기를 잘게 썰어 넣어서 노인이나 아이까지 먹기 좋게 만들어 놨다.
한때 방송을 타서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집이었는데.
장사가 잘되면서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문을 열지 못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문 닫은 국밥집을 지나쳤다.
30분 이상을 돌아가야 했지만, 퇴근 때마다 이 집이 문을 열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나는 다시 가게 문을 연 할머니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김옥순 김치.
평범한 국밥을 최고로 만들어 준 이 배추김치를 팔아보자는 제안을 말이다.
나는 국밥의 국물을 떠먹고, 김치를 젓가락으로 찢으려 했다.
이를 보고 있던 할머니는 답답했는지,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손으로 김치를 찢어 버렸다.
“이 문딩이 자슥아. 김치는 요래, 요래 손으로 찢어 먹는 기다.”
“역시 엄마 김치가 최고야.”
할머니가 찢어 준 김치를 입 안에 넣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엄마 설거지는 내가 할게!”
“걍 돈 내고 후딱 가라! 문딩이 자슥이 무신 설거지를 칸다고…….”
“허리 아프잖아. 잠깐만 쉬어요. 응?”
나는 할머니를 강제로 의자에 앉히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와이셔츠의 팔을 걷고 설거지를 시작하려 하자, 하연두가 헐레벌떡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제가 할게요.”
“아니야. 가서 할머니 말동무나 해 드려.”
설거지하는 이유는 하나.
할머니가 자주 쓰는 주방용품들로부터 기억을 읽기 위함이다.
설거지가 끝이 나고, 젖은 손을 대충 수건에 닦았다.
“엄마. 손주들 대학 갈 때 됐지?”
“그건 와 묻는디?”
“요즘 아들은 사고 안 쳐? 나 말고 진짜 아들 말이야.”
“그건 와?”
“에이……. 다 아시면서. 우리 또 김치 좀 팔아볼까? 이름도 내가 멋지게 지어 줬잖아.”
“그런 말 할끼면 걍 가라. 이제 허리도 아프고 나 못한다.”
“에이 엄마는 그냥 총감독. 딱 앉아서 아줌마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만 해.”
물건들에서 들은 기억은 정확하다.
돈이 필요한 할머니는 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할머니.
나는 이때다 싶어, 할머니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일단 1차로 만 포기.”
“이기 미친나?”
“미안……. 좀 많지? 재료들은 그전처럼 정리해서 보내 줘. 그럼 여기 예쁜 아가씨가 다 준비해 줄 거니까.”
나는 환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하연두를 가리켰다.
“저…… 저요?”
“그럼 여기 예쁜 아가씨가 연두 씨 말고 누가 있어?”
할머니는 하연두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디?”
“다음 주. 월요일.”
“이기 진짜……. 돌아삔나?”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거지. 응? 포장지는 벌써 인쇄 들어갔단 말이야. 엄마가 거절하면 나 회사 잘리는데 이래도 안 해 줄 거야?”
“휴……. 아라따. 이 문디 자슥아.”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국밥집을 나왔다. 하연두는 앞장서서 걷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할머니가 어떻게…….”
“연두 씨, 김옥순 김치 알지?”
“네. 알죠! 저희 집도 그 김치 사 먹었어요.”
“저 할머니가 바로 김옥순 여사야.”
“정말요?”
“그래. 완전 장인이야 장인. 김치의 장인. 연두 씨는 내일 여기 들러서 할머니가 적어 준 식재료들 받아 와.”
“알겠습니다. 저 팀장님……. 과장님이랑 대리님도 잘하고 계시겠죠?”
“왜, 걱정돼?”
“네…….”
“연두 씨, MD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지금처럼 급할 때 그 무기를 꺼내 쓰는 거야. 걱정하지 마. 내일 두 분 모두 좋은 소식을 가져올 거니까.”
하연두가 묘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날 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믿음이 느껴졌다.
마치, 2개월 전 원스몰에서 함께 일했던 이은지처럼…….
그 덕이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간, 혹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이 일을 해 온 마 과장과 김 대리가 더 좋은 무기들을 꺼내 올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