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70
70. 불가능이 있겠습니까?
“왜! 왜 안 되는 건데요?”
양지푸드의 대표이사실.
함중식 사장이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생각할 게 꽤 많다고.”
“갑자기 왜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척해요? 사장님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내 캐릭터가 뭔데?”
“불가능이 없는 최고의 사업가. 100% 성공하는 럭키 가이!”
함중식 사장은 칭찬에 약하다.
그는 헛기침으로 입가의 미소를 숨기며 답했다.
“그야 그렇지만. 뜬금없이 물만두를 만들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양지에 불가능이 있겠습니까?”
“물만두는 군만두랑 전혀 달라, 피랑 소에 들어가는 재료도 완전 다르게 구성해야 해.”
“그러니까 제가 사장님한테 부탁하러 왔죠.”
보통의 식품회사라면, 다양한 만두 제품군을 생산한다.
하지만 함중식 사장은 달랐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제품은 건드리지 않는다며, 군만두 외의 다른 만두는 생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PB라니. 너도 알잖아. 내가 마트 들어갔다가 박살 난 거.”
“알죠. 완전 개박살 난 거.”
“개박살 정도는 아니고…….”
개박살이라는 단어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제가 사장님한테 양아치 짓 하겠어요?”
“물론 우리 사위는 내가 100% 믿지. 근데 사위가 마프에서 나가면?”
“안 나가요! 1등 한번 해 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도 나가면?”
“그럼 계약서에 특약 하나 달까요? 원지훈이 퇴사하면 계약을 파기한다. 이런 조항.”
함중식 사장은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일주일만 시간을 줘.”
나는 함중식 사장의 옆으로 걸어가, 그를 가볍게 안았다.
“5일.”
함중식 사장은 나를 떼어 내며, 다시 미간을 구겼다.
“너 진짜!”
“사장님이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면 제 마음이 무너집니다. 5일, 딱 5일 만에 끝냅시다.”
“하……. 진짜 못 당하겠네. 서 실장 불러줄 테니까 네가 설득해.”
서보미 실장은 내가 양지에 소개해 준 인물이다.
그녀는 레토르트만 담당하는 것으로 아는데…….
“서보미 실장이 냉동도 담당해요?”
“응. 그 친구 재능이 있어서 이번에 새롭게 맡겨 보려고.”
나는 실눈을 뜨고.
함중식 사장의 속마음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대충 만들려는 거 아니에요?”
“응. 맞아.”
“사장님!”
내가 소리치자.
함중식 사장은 귀를 틀어막으며 미간을 구겼다.
“야! 귀청 떨어지겠다. 농담이야 농담! 네가 소개해 준 사람이면서 그 정도 믿음도 없는 거야?”
“이건 그거랑은 다르잖아요. 테스트 제품은 안 받습니다.”
“테스트하려는 게 아니야. 서 실장, 진짜 재능 있어. 우리 군만두 레시피도 금방 익히더라.”
“그래요?”
“그래. 내가 언제 뻥 치는 거 봤어? 진짜 우리 사위는 인복은 타고난 것 같아.”
잠시 후, 서보미 실장이 대표이사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제시한 일정보다 하루 더 당겼다.
이전부터 물만두를 준비했다면서 말이다.
그녀는 내가 처음 마켓 프레시 회의실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
온몸에서 풍기는 자신감에 조금의 의심도 가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난 미팅에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 * *
사무실 안은 전쟁터였다.
가전팀은 독일의 인덕션 회사와 MOU 계약을 준비 중이었고, 다른 팀들은 PB 상품 확보에 혈안이었다.
신선식품의 정진택 팀장은 손바닥만 한 용기를 들고 내 앞으로 달려왔다.
“부장님! 부장님!”
“네?”
“잠시 회의실로.”
“아. 네네.”
정진택 팀장은 내 등을 떠밀어 회의실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용기와 일회용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짙은 초록색의 진흙 같은 모양.
나는 고개를 들어, 정진택 팀장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뭔가요?”
“아보카도 퓌레입니다.”
“아보카도 퓌레요?”
“신선식품팀 매출 3위 아이템이 아보카도인 건 아시죠? 이거 꾸준하잖아요.”
“네. 알죠.”
“아보카도는 후숙이 어렵습니다. 바쁜 소비자들이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요?”
“저희가 판매 중인 아보카도를 태청에서 퓌레로 작업해 준답니다.”
태청식품은 고구마, 옥수수, 각종 과일의 퓌레를 판매하는 회사다.
우리와는 계속 거래를 해 왔고, 그들이 후가공을 해 준다면 제품의 퀄리티 또한 좋아질 것이다.
“단가는요?”
“하하하 부장님. 절대 놀라지 마세요!”
나는 이미 그가 건넨 용기와 숟가락에서 기억을 읽었다.
1년간 무상이라…….
아무리 설비가 갖추어진 회사라고 해도, 이는 함부로 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아는 척할 수도 없고…….
대충 눈을 껌뻑이며,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정진택 팀장은 내 눈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1년간 무상. 6개월 후에 판매량 보고 단가를 결정짓기로 했습니다.”
“1년 무상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내 감쪽같은 연기에 정진택 팀장은 더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예. 포장재는 100g당 120원이 안 넘을 겁니다.”
“대단하군요.”
“당연하죠! 제가 그동안 태청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죠.”
MD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무기가 사용됐을 때는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쁘다.
지금의 정진택 팀장도 그랬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빨리 퓌레의 맛을 보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퓌레를 숟가락으로 뒤적거렸다.
끈적한 점성과 일정한 초록색.
태청의 설비로 퓌레를 만든 것이라 그런지, 역시 비주얼은 합격이다.
그리고 맛 또한 합격이었다.
정확한 온도에서 후숙한 아보카도 퓌레는 버터처럼 고소하고 달았다.
“좋은데요?”
“그죠? 그죠?”
“네. 포장재 디자인 나오면 보여 주세요. 그리고 일 생산 물량도 체크하시고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진택 팀장은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나가는 마성근 팀장을 붙잡고 그의 입에 강제로 퓌레를 떠먹였다.
내가 먹던 숟가락인데…….
회의실을 나오자.
나를 본 장선영 팀장은 손에 들고 있는 플라스틱 음료수 용기를 들이밀었다.
“뭡니까?”
“드시고 맞춰보세요.”
나는 그녀의 기억을 읽고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청포도인가요?”
“네. 청포도 에이드입니다. 삼진에서 신제품 준비하다가 미끄러진 건데, 이번에 한번 주워 와 보려고요.”
“근데 이거 너무 단 거 같은데요?”
“그죠. 그래서 제품은 보완을 좀 할 겁니다. 저희 팀 이 과장이랑 최 대리 보내 놨어요.”
“흠……. 가능하겠어요?”
“네. 가능하게 해야죠. 이거 단가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도저히 놓지를 못하겠네요.”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장선영 팀장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100㎖당 40원.”
300㎖의 음료수 한 병의 소비자가는 평균 1,000원꼴.
물론 음료는 마진이 좋은 상품이다.
그래도 100㎖에 40원이라는 단가는 너무도 훌륭했다.
“괜찮은데요?”
“네. 그리고 이번 제품군 잘 나오면, 삼진에서 다른 제품들도 공격적으로 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삼진은 음료 회사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다.
연구팀이 빵빵한 그들은 매월 신제품을 출시했고, 몇 달 전에 출시한 비타민 음료도 대박을 쳤다.
“박 차장님에게는 전달했죠?”
“예. 안 그래도 삼진이랑 비타민 음료 엮어서 홍보자료 만들려고 하더라고요.”
“네. 그게 좋겠죠.”
“아 참, 부장님. 이정우 이사님한테 도움을 좀 받을 수 없을까요?”
“왜요?”
“이정우 이사님이 방송 쪽 많이 아시니까, PPL이라도 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정우 이사가 도움을 준다면, 확실히 더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켓 프레시를 바론에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연 그에게 제안할 수 있을까?
나는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번 얘기해 볼게요. 근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장선영 팀장은 씩 웃고, 고개를 숙였다.
* * *
이정우 이사의 사무실.
얼마 전에 입사한 비서가 나를 보고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MD 사업부의 원지훈입니다. 이사님 계신가요?”
“아……. 네. 오셨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게 닫힌 이정우 이사의 사무실 문에 노크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리고.
“들어오시랍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지?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조금 전에 그녀가 잡았던 사무실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이정우 이사는 참 힘든 인물이다.
이전에 일하던 비서도 개인적인 지시들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둘 정도였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이정우 이사가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
“지훈아! 미안, 내가 요새 좀 바빠서 말이야.”
전화를 끊은 이정우 이사가 소파의 상석에 앉았다.
“괜찮습니다.”
“음료는 뭐 할래?”
“비서분 어디 보내신 거 아니에요? 급하게 나가는 거 같던데?”
“아 맞다. 우리 딸기 좀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어.”
“딸기요?”
“응. 강아지. 미용 맡겨 놨거든.”
비서에게 미용하는 강아지를 집에 데려다 놓으라고 했구나.
나는 미간을 구기며, 그에게 말했다.
“이사님, 이러다 지금 오신 비서분 또 그만두십니다.”
“왜? 뭐가 어때서? 이런 일 하는 게 비서 아니야?”
“아니거든요.”
“그리고 쟤 별로 맘에 안 들어, 내가 여기 안 치우고 그냥 가만 보고 있는데, 전혀 치울 생각을 안 하잖아.”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 위.
볼펜과 수첩들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다.
“이건 이사님이 치우셔도 금방이잖아요.”
“아 몰라. 그만두면 또 구하면 되지 뭐. 근데 무슨 일이야?”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PB 상품 준비하는 것은 들으셨죠?”
“그래. 맞다 PB. 너 진짜 그럴 거야? 왜 그러는 건데?”
그는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당겨 앉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대세는 바론이야.”
“회장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건 나도 들었어. BO푸드의 시총을 올리겠다고 했다면서?”
“네.”
“역시 원지훈. 깡다구 하나는 일품이야. 어떻게 돈밖에 모르는 노친네를 설득했대?”
“운이 좋았죠.”
“근데 내가 널 도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난 하루라도 빨리 바론에 넘기고 이 바닥을 뜨고 싶으니까.”
역시 이정우 이사는 시작부터 선을 그었다.
그리고 더 다가오면 물어 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다.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 있는 볼펜, 수첩 등을 정리하는 척했다.
그렇게 들은 이정우 이사의 기억.
최구열 이사와 손을 잡았다고 하지만, 100% 신뢰하지 않는다.
이정우 이사는 의심이 많은 인물.
그의 의심을 이용해 보자.
나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저희 새로운 PB들 PPL 좀 넣어 주세요.”
“안 할 거라니까.”
“이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뭐가?”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는 건 이사님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플랜 B를 준비하셔야죠.”
“플랜 B?”
역시 단순한 이정우 이사가 조금씩 넘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바론에서는 계속 깎으려만 하죠?”
“아…… 아냐!”
“언제부터 그렇게 최구열 이사님을 믿으셨어요?”
“……!”
“이번 기회에 대표님에게 살짝만 발을 걸치세요. 이사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은 절대 대표님에게만 조용히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 최구열 이사님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정우 이사는 주머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깊게 들이마셨다.
“아니. PPL 들어가면 내가 했다고 생각할 거야.”
역시 방법이 없는 것인가?
이정우 이사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서 명함을 모아 둔 앨범을 가져와 내게 던져 줬다.
“PPL 대행사 두 개 있을 거야. 네가 인터넷 보고 설득한 거로 해.”
“그럴 거면, 제가 왜 이사님을 찾아왔겠어요?”
“알았어. 담당자에게 말해 둘 테니까, 그 이후론 네가 알아서 해!”
“예. 고맙습니다.”
이정우 이사는 전자 담배를 깊게 빨고,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원지훈. 약속 지켜.”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