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71
71. 이사님 덕분입니다
우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부서원들의 인맥으로 SNS에 PB 제품이 출시될 것을 알렸고.
PB 상품을 활용한 레시피를 제작했으며.
1인용 과일과 신선식품이라는 새로운 상품군도 준비했다.
그렇게 피 말리는 일주일이 지났다.
PB 제품의 포장지가 완성되고, 공장들은 제품 생산에 속도를 올렸다.
김지영 이사의 사무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문이 열리고 밝은 표정의 김지영 이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아니요.”
그녀는 평소 앉던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포장지를 확인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도 잘 살렸고, 디자인도 전체적으로 깔끔하네.”
“네.”
“정이나 씨 이미지 좀 넣지?”
PB 상품의 포장은 단순하고 깔끔했다.
아이보리색의 배경에 마켓 프레시 로고를 올리고, 세련된 필기체로 제품명을 표시한 것이 전부였다.
“넣어 봤는데, 조금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요.”
“그래. 원 부장이 알아서 잘했겠지. 제품들은 내일 올라가지?”
“네. 우유, 달걀, 퓌레, 물만두까지 4종이 먼저 오픈할 겁니다.”
우리가 만든 PB 상품은 총 10종.
이 중에 4종의 상품은 내일 오픈하고, 다른 상품들은 차주 내로 모두 오픈할 예정이었다.
“수고했어. 사업부 분위기는 좀 어때?”
“다들 마무리 작업하느라 바쁩니다.”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네. 다음 주에 최종 오픈하고 팀별로 회식하도록 해 놨어요.”
“그래. 잘했어.”
김지영 이사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다이어리에서 일정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PPL은 금요일 방송부터 나간다고?”
이정우 이사가 소개해 준 대행사들은 방송 스케줄을 빨리 잡아 왔고, 제품의 출시와 동시에 방송 프로그램에 PPL로 나갈 수 있었다.
“네. 6시 시간대, 주부 프로그램부터 나가요.”
“그래.”
“BO푸드 홍보팀은 잘해 주지?”
BO푸드 홍보팀은 이번 프로젝트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김지영 이사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입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님 덕분입니다.”
“나? 내가 뭐?”
애써 모르는 척, 커다란 눈을 깜빡이는 김지영 이사.
나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기는 진짜 못하시네. 다 알아요.”
“뭘 알아? 뭔데?”
“홍보팀장이 말해 줬어요. 이사님이 협박하셨다고.”
“내가? 내가 무슨 협박을 해?”
나는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BO푸드 인사과장이 내 친구라는 말 정도면 협박 아닐까요?”
“왜? 친구를 친구라고도 못 해?”
그녀는 자신의 말이 웃겼는지, 고개를 숙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금요일 오후.
PB 제품의 반응은 우리의 기대만큼 뜨거웠다.
준비한 제품들이 일정에 맞게 런칭했고, 그때마다 우린 홍보팀을 통해 언론에 기사를 배포했다.
—
마켓 프레시, 유통 노하우 집약된 PB 상품 내놓자 ‘대박’ 행진
– 데일리경제
마켓 프레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마프 온리’ 상품 인기
– 대한일보
식품업체 뺨치는 마켓 프레시 PB……. 비결은 ‘MD들의 발품’
– 뉴스24
마켓 프레시 PB 출시와 동시에 대박…… 하루 만에 매출 30억
– 한국와이어
—
마켓 프레시의 매출은 단기간에 10% 이상 상승했다.
그리고 BO푸드의 주가 또한 12%나 상승했다.
“대박입니다! 대박! 완전 기대 이상입니다!”
박대영 차장이 호들갑을 떨며, 내 자리로 다가왔다.
“오늘 PPL까지 나가면 매출이 더 오를 것 같네요. 홍보팀은 잘해 주죠?”
“네. 아주 적극적입니다. 오늘 주간 매거진에 인터뷰 기사도 나갈 예정입니다.”
“인터뷰요?”
박대영 차장은 나를 보며, 몰랐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모르셨어요? 김지영 이사님 인터뷰요.”
“몰랐네요. 언제 인터뷰를 했어요?”
“이틀 전에요. 아무래도 여자 임원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사님께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셨어요.”
그랬구나. 김지영 이사가 또 도와줬구나.
그리고 이틀 만에 오프라인 매거진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다는 것은 홍보팀이 정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랬군요.”
박대영 차장이 자리로 돌아가고.
PC 스피커에서 메신저의 알림 소리가 울렸다.
– 지훈아, 정이나 씨한테 SNS에 글 좀 올려 달라고 했다.
정이나의 SNS에 올라가는 것은.
그 어떤 기사나 홍보자료보다 파급효과가 크다.
이정우 이사는 BO푸드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서서히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 이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 PB 대박이라던데? 정이나 씨가 아보카도 퓌레 얼마나 칭찬했는지 알아?
– 네. 이번에 좀 신경을 써 봤습니다.
– 그리고 이나 씨 다음 주부터 새로 드라마 들어가는데, 거기에도 PPL로 나갈 거야.
정이나는 흥행 보증수표다.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에서 PPL이 들어간다면 이건 무조건 대박이다.
– 비용은요?
– 이나 씨가 집어넣어 준 거야. 이나 씨 우리 사이트 우수 회원이잖아. 그냥 봐서 퓌레나 한 상자 보내 줘.
– 정말 고맙습니다. 역시 이사님밖에 없습니다.
이정우 이사는 단순해서 다루기 참 쉬운 사람이다.
조금만 추켜세워 주면 더 많은 것을 내준다.
– 최시영, 박주연, 김민혁도 SNS에 후기 올려 달라고 부탁해 볼까?
– 정말요?
– 응. 얘네들 팔로워 꽤 많은 거 알지?
– 네 알죠. 정말 대박이겠는데요?
– 알았어. 내가 아는 인맥들은 싹 풀 테니까 나만 믿어.
나는 그의 긴 이야기들에 한참 동안 맞장구를 쳐줬다.
늦은 저녁.
팀장들과 사무실에 남아, TV 프로그램을 같이 봤다.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 장면에서, 요구했던 대사와 함께 제품이 노출됐다.
“저렇게 설명해 주는데, 나 같아도 사 먹겠네.”
“포인트를 정말 잘 짚었네요.”
“부장님. 정이나 씨 SNS에도 글이 올라왔어요!”
생산, 단기 매출, 주가, 홍보.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회의실에서 TV를 보던 팀장들도 나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자 불금인데, 빨리 퇴근하십시다!”
내 말에.
팀장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성근 팀장은 내 옆으로 달라붙어 술을 마시자는 손짓을 했다.
“둘이요?”
“아뇨. 팀원들은 요 앞에 닭갈비 집에서 먹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런 날, 겨우 닭갈비를 드세요? 당장 소고기로 바꿉시다.”
“그럼 부장님이 좀 사주시던가요?”
마성근 팀장의 말을 듣고.
“나도! 나도!”
“저도 같이 갑시다. 특판팀만 편애하십니까?”
김태하와 정진택 팀장이 내 양옆으로 붙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늘은 제가 크게 낼 테니까 갑시다!”
“개인 카드로요?”
“아니 법인 카드로요.”
“그럼 나도 껴야지. 우리 애들도 길 건너 정육식당에서 먹고 있는데 합쳐요.”
함께 가자는 장선영과 김민정 팀장.
그리고 이진성과 최충연, 김경일 팀장까지 이런 날 술 한잔해야 한다면서 따라나섰다.
* * *
이렇게 많았나?
인근에서 회식하고 있던 각 부서원이 모두 한곳으로 모였다.
작은 정육식당에는 40여 명이 줄지어 앉아, 쉬지 않고 고기와 술을 주문했다.
“부장님, 여기 고기 더 시켜도 되죠?”
“시켜! 마음껏 시켜!”
부서원들은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먹어 재꼈다.
김대성은 아예 집게를 들고 가위로 썰지 않은 고기를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쟤는 소고기를 뭐 저렇게 먹어?”
내 눈치를 살피는 마성근 팀장.
나는 그의 앞접시에 고기 한 점을 올려 주며 말했다.
“드세요. 우리 모두 이 정도는 먹을 자격 있잖아요. 그리고 법인 카드라서 괜찮아요.”
“그래도 월요일에 회계팀에서…….”
“그건 월요일에 생각해도 됩니다.”
잠시 후.
가전팀의 인원들까지 합류하면서, 고깃집에는 50명이 훌쩍 넘었다.
대충 주문한 고기만 70인분.
또 술은 왜 그렇게들 잘 마시는지…….
술과 밥, 찌개를 다 하면 400만 원이 훨씬 넘을 것 같았다.
“부장님. 일이 좀 커지네요. 이거 400 넘겠는데요?”
처음 술을 마시자고 했던 마성근 팀장은, 계산서를 대충 훑어보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이 정도 먹을 자격이 있다니까요?”
“그래도…….”
MD 사업부 부장의 법인 카드는 한도가 없다.
대신, 100만 원 이상 쓸 때 무슨 목적으로 썼는지를 A4용지에 하나 가득 적어야 했다. 또한, 치사하게 인사 평가에도 반영한다는 단서를 달아 놔서 다른 팀장들은 법인 카드를 많이 쓰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빨리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택 팀장이 히죽거리며 마성근 팀장을 놀리기 시작했다.
“마 팀장님 예상외로 새가슴이시네? 하하하.”
마성근 팀장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를 받아쳤다.
“난 정 팀장님 보면 아직도 고구마 큐브 때 생각이 납니다. 그때 놀란 표정이……. 히히.”
“그 얘기를 왜 지금 꺼내요?”
“원래 한잔 들어가면 옛날얘기 나오는 겁니다.”
김경일 팀장은 소주잔을 비우고 씩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 팀장님. 그거 안 불편하세요?”
마성근 팀장은 고개를 숙여.
김경일 팀장이 가리키는 멜빵을 튕기며 답했다.
“멜빵?”
“네. 맨날 궁금했거든요.”
“이건 내 부적 같은 거야. 우리 큰 애가 어버이날에 선물해 준 거거든.”
“아이가 아빠 닮아서 패션 감각이 떨어지나 보네요.”
“야! 김경일!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다!”
“그냥 농담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요새 팀장 달고 말이 많아졌던데?”
“제가 뭘요.”
술은 기분을 좋게도 해 주지만, 반대로 용감하게도 해 준다.
둘이 으르렁대자.
장선영 팀장은 한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서 싸워요. 나가서!”
그리고 사소한 다툼은 하나의 목표 앞에서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휴대폰을 보던 김태하 팀장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대박! 마켓 프레시 실검 1위야!”
“진짜? 진짜?”
“매출은 어때?”
“와 이거 퓌레 30분 안에 매진되겠는데?”
서로를 노려보던 마성근 팀장과 김경일 팀장도 재빨리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관리자 페이지로 들어가 어느새 매출까지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마성근 팀장은 휴대폰을 탁탁 치다가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부장님! 사무실에 좀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왜요?”
“특판 수량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거 이대로 나가면 1시간 이내로 다 품절 걸립니다.”
“네. 그러세요.”
마성근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하게 웃으며 김경일 팀장을 바라봤다.
“야 김경일!”
“왜요?”
“같이 가자.”
“뭘 같이 가요?”
“사무실 불 꺼져 있으면 무섭단 말이야. 전에 준위도 야근하다가 귀신 봤다고…….”
“귀신이 어디 있어요?”
김경일 팀장은 툴툴댔지만, 이미 몸은 반쯤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김경일 팀장의 엉덩이를 밀어서 일어나도록 하고 씩 웃었다.
“경일아. 마 팀장님 잘 모시고 다녀와.”
“알았어요. 알았어.”
김경일은 미소를 짓고, 마성근 팀장의 뒤를 따라나섰다.
나는 김태하에게 담배를 피우러 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식당의 문 앞에서 고개를 돌려, 부서원들을 둘러봤다.
홍보팀을 협박한 김지영 이사.
마지막에 예정에 없던 도움을 준 이정우 이사.
늦게까지 남아서 PB 제품 연구와 홍보에 몰두한 우리 부서원들.
모두가 제 몫을 다해 냈다.
이제 남은 것은 월요일에 열리는 장에서 BO푸드의 주가가 나머지 5%만 오르면 마켓 프레시를 지켜 낼 수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우리 부서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