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73
73. 그럼 우린 뭘 얻을 수 있습니까?
오전 8시 58분.
적막감이 감도는 사무실.
단 한 명도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따르릉! 따르릉!
고요한 사무실에 신선식품팀의 전화가 울렸다.
평소 같으면 전화를 받았겠지만, 오늘은 아무도 받지 않았다.
“누가 전화 좀 받아!”
참지 못한 정진택 팀장이 소리쳤다.
“네. 마켓 프레시입니다.”
인턴 직원 하나가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자, 사무실은 다시 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곳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부서는 예전과 같이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
“와아!”
팀장들 자리에서부터 하나둘 환호성이 들려왔다.
마치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처럼.
“와! 대박!”
“올랐다. 20%! 일단 20% 확보했다고!”
“빨간색! 또 올라갑니다!”
“이게 매입하려는 사람들이죠? 와……. 장난 아닌데요?”
우리의 지난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다.
BO푸드의 주가는 오전 장을 시작하면서부터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20분 만에 목표했던 5%가 올랐고, 호가 창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마성근 팀장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던 나 또한 이제 마음을 놓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도 수고하셨어요.”
“부장님. 실검 보셨어요? 오늘은 BO푸드가 실검 2위까지 올라왔네요.”
급격히 오르는 주가에 실시간 검색어까지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네.”
“이 정도면 회장님도 인정해 주시겠죠?”
“약속하셨으니까. 그럴 겁니다.”
사업부에 다시 활기가 생겨났다.
전화를 받는 부서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미팅을 준비하는 부서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자, 내가 오늘은 별 다방으로 싹 돌릴 테니까 가서 인원수대로 다 사와!”
정근영 대표이사의 아들로 가장 마음을 졸였던 정진택 팀장.
그는 개인 카드를 꺼내, 팀의 인턴 직원에게 내밀었다.
“정말 다요?”
“왜?”
“100잔 가까이 되는 걸 다 사 오라고요?”
“무슨 소리야. 우리 팀 12잔 사 오라고.”
“아…….”
나는 피식 웃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여전히 분주한 호가 창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김상만 회장과의 약속한 기간은 60일.
그 기간보다 무려 보름이나 빨리 이뤄 냈다.
나는 볼펜으로 책상을 툭툭 내리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공식품팀을 바라봤다.
“장수민 과장님!”
내 부름에.
가공식품팀의 장수민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네. 부장님.”
“베이커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새롭게 만들어지는 베이커리 카테고리.
TF장인 장수민 과장은 평소 베이커리 관련 거래처들을 담당했었던 인물이다.
사업부 내에서 경험이 가장 많은 그를 팀장에 앉힐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저……. 그게.”
“그게 뭐요?”
“개……. 개발팀. 개발팀에서 다소 늦어진답니다.”
거짓말이다.
개발팀은 카테고리를 늘리는데, 길어야 이틀이면 된다고 했다.
요구사항이 많았던 펫 사업팀의 카테고리도 사흘 만에 만들어졌었다.
“그래요?”
“이번에 개인 정보 관련해서 업무가 좀 많아서, 저희 일이 뒤로 밀렸답니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구나.
지난주에 개인 정보를 담당하는 KISA에서 점검을 나왔고.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망스러웠다.
PB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빼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 진행 사항들 다시 확인하시고 회의실로 오세요.”
“언제요?”
“지금이요.”
장수민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급하게 책상 위의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회의실로 먼저 들어갔다.
* * *
잠시 후.
MD 사업부 회의실.
장수민 과장이 파일철 여러 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컨택한 상품과 수량, 현재 협상 중인 브랜드, 예상 판매 수량과 오픈 이벤트, 배너 구좌 확보와…….”
“그만. 제가 보죠.”
나는 한 손을 들어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을 끊어 냈다.
그리고 대충 쌓여 있는 파일철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하나씩 열어 확인했다.
“OPC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친환경 제품만을 생산하는 베이커리 회사 OPC.
그들은 우리의 취지와 잘 맞았고, 이미 온라인에서도 소문난 인기 브랜드다.
특히 글루텐이 없는 제품은 어느 몰에서건 탐내는 제품이기도 하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파일철에 꼽힌 종이를 한 장 넘겼다.
협상이 어려운가?
수많은 기억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장수민 과장이 아니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다.
나는 파일철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장수민 과장을 바라봤다.
“20% 이상 맞출 수 있습니까?”
“예. 물론이죠. 당연히 그래야죠.”
“정말 가능하세요?”
“네.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꼭 맞춰서 들고 오겠습니다.”
또 잠깐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이구나.
그는 아예 시장의 분위기 자체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TF 팀원들 다 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두 번 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장수민 과장이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고.
나는 다른 파일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파일철 안의 종이에서 들리는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누굴까?
잠시 목소리의 주인을 생각하는 사이.
장수민 과장이 TF를 함께 진행한 팀원 7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앉아요.”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는 파일철을 내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회의를 시작했다.
“김도진 대리. 리브 베이커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
“그럼 누구죠?”
“황영익 씨가 리브 베이커리와 협상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앉아 있는 팀원들을 둘러봤다.
황영익.
음료팀의 팀원인 것 같은데,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황영익 씨. 리브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내 말에, 가장 끝에 앉아 있는 퉁퉁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리브 베이커리와의 협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물량과 수수료 모두 수용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다.
모든 파일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
너무 평범한 외모라 기억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파일을 넘겨보며 물었다.
“서종식품은 이번에 사고 터진 곳 아닙니까? 왜 이들의 파일이 안에 들어가 있나요?”
“아, 그건 이전 서류가 잘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전 서류요?”
“네. 죄송합니다. 영익아! 내가 저거 빼라고 했잖아. 하핫.”
어색한 웃음을 짓는 장수민 과장.
뭔가 석연치 않다.
나는 고개를 들어 황영익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익 씨가 말해 보세요.”
“저…….”
눈치를 보는 황영익.
나는 파일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았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요.”
“서종의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벤더가 고의로 유통기한을 수정했고, 규모가 작은 서종이 방어하지 못한 겁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서종식품.
그들은 유통기한을 고의로 수정해서 판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곧바로 조사가 들어가 제품을 유통하는 벤더의 짓이라는 결과가 났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서종의 제품을 믿어 주지 않았다.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소비자가 서종을 외면했습니다.”
“너무 억울한 거 아닙니까?”
“야! 황영익!”
황영익이 열을 내자.
장수민 과장이 미간을 구기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장수민 과장을 보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너무 바락바락 대들어서, 하여간 요즘 애들은…….”
나는 한 손을 올려, 장수민 과장의 말을 끊고, 황영익을 바라봤다.
“계속해 보세요.”
“부장님. 이런 일은 서종뿐만 아닌 다른 제조사들도 충분히 터질 수 있는 일입니다. 벤더들은 이름만 바꿔서 나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 식품 회사들은 사장에 임원들까지 신상이 털리고, 심지어 가족들까지 노출됩니다.”
“그래서요?”
“저희도 이런 벤더들의 장난에 놀아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통기한에 민감한 베이커리는 벤더들과의 거래를 모두 끊고, 제조사와 다이렉트 계약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요놈 봐라?
재미있어지는데?
나는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삼키고, 크게 소리쳤다.
“황영익 씨! 끝까지 서종을 포기 못 하겠다는 겁니까?”
“예. 서종은 100명이 넘는 제빵사들이 전부인 회사입니다. 언론에 대응할 힘도, 정정 기사를 홍보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요?”
“저희가 도왔으면 합니다.”
“어설픈 호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BO푸드의 홍보팀이 나서만 준다면 금방 언론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부장님. 도와주십쇼.”
“그럼 우린 뭘 얻을 수 있습니까?”
황영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서종에는 100명이 넘는 제빵사들이 있습니다. 제품이 팔리지 않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단 한 명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회사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
“네. 언젠간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노력을 알아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들도 우리에게 보답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당한 황영익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TF의 일 대부분을 처리했고, 가치관 또한 확실하다.
왜 이런 직원을 몰랐던 걸까?
100명에 가까운 직원이라 그랬다고?
아니, 그건 핑계다.
너무 나태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팀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기한을 늘릴 수 없습니다. 이번 주 내로 오픈할 수 있도록 하세요.”
“네. 밤을 새워서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수민 팀장이 얄팍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보고, 다시 TF 팀원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새로 온 인턴들 5명을 임시로 TF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황영익 씨.”
“네?”
“잘할 수 있죠?”
황영익은 현재 TF의 막내.
그가 직접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부서원은 인턴들이 전부다.
내 말을 이해한 황영익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요일까지 준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부장님.”
“네?”
“서종……. 서종식품은 어떻게 할까요?”
“홍보팀에 도움 요청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황영익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비자의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절대 입점은 불가합니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