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82
82. 다들 너무 고맙습니다
사람이 없는 장례식장.
처음에는 조문만 드리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혼자 장례식장을 지키는 유정이를 보고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우린 돌아가는 비행기를 취소하고, 심야 고속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서빙을 해 주는 도우미는 조문객이 없어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우린 직접 음식을 담아서 자리에 앉았다.
배가 고팠는지, 정진택 팀장은 손으로 떡을 덥석 집어 먹었다.
하지만 박승하 팀장은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저, 부장님. 먼저들 올라가세요.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팀장님은요?”
“전 내일까지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유정이가 걸렸나 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어 쭈그려 앉아 있는 유정이를 바라봤다.
“유정아. 밥 안 먹었지?”
“…….”
“와서 같이 먹자. 잠깐 기다려. 아저씨가 국이랑 데워 줄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사이.
박승하 팀장은 유정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이를 설득해서 어렵게 식탁 앞으로 데려왔다.
“유정아. 아버지도 네가 이러는 것을 원치 않으실 거야.”
“…….”
“조금이라도 먹어. 응?”
“……고맙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유정이.
처음 사무실에 들어와 펑펑 울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에 비해 유난히도 작은 아이가 하도 울어서 실신했고, 말 못 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왜 이렇게 떠오르는지…….
나는 눈물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유정이 밥 좀 먹여 주세요.”
“네.”
나는 장례식장 밖으로 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구 옆 계단에 기대 불을 붙이려는 순간.
짙은 화장에 요란한 정장을 입은 40대 여자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아앗!”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명품 핸드백.
나는 핸드백을 주워, 먼지를 털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 순간.
유정이의 손님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는 내가 내민 가방을 받아 들고,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근데 이런 시골에 있을 외모가 아닌데? 어디서 오셨어요?”
“…….”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녀는 내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어머! 이 슈트 명품이죠? 넥타이 빼고는 싹 명품 같은데?”
“조문 오신 거 아닌가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유정이가 있는 3호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는 떨어진 라이터를 집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잠시 후.
“부장님. 저도 하나만 주세요.”
정진택 팀장이 내가 앉은 계단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가 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배가 뒤집혔답니다. 전복 재배를 하는 작은 관리선이요.”
“사고였군요.”
“네. 참 안됐죠. 같이 배를 탄 사람이 둘이 더 있는데, 둘은 구조가 되고 아버지는 시신만 찾았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못 하니까요. 아마 그래서 찾기 힘들었겠죠.”
“후…….”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진택 팀장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보셨어요? 요란한 옷 입은 여자.”
“네. 봤습니다.”
“유정이 엄마라던데요?”
“엄마요?”
엄마가 딸의 이름을 여러 번 되뇌었던 것인가?
설마 했는데…….
내가 멍하니 있자, 정진택 팀장이 말을 이었다.
“와서 유정이를 끌어안고 서글프게 우는데, 옆에 있기 무안해서 나왔습니다.”
“…….”
“그래도 다행이네요. 엄마라도 찾아서. 유정이도 그렇지만, 우리도 다행이고요.”
“엄마라…….”
“왜요?”
“뭔가 이상해서요.”
“옷이요? 아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보험 영업하시는데, 소식 듣고 바로 달려왔대요.”
나는 담배를 끄고, 계단에서 일어났다.
정진택 팀장은 내 눈치를 보고, 남은 담배를 급하게 피워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를 빠르게 따라붙었다.
조문실 앞.
나는 유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한 표정을 짓는 여자를 바라봤다.
얼핏 보기에는 오랜만에 딸을 찾은 엄마로 보였다.
박승하 팀장까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모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부자연스러운 유정이의 태도와 조금 전 이 여자의 기억이 계속 신경 쓰였다.
“부장님!”
박승하 팀장은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 귀에 속삭였다.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엄마를 찾아서요.”
“…….”
“우린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아이가 엄마를 찾았잖아.
내가 책임질 수도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잖아.
왜. 뭐가 문제인데?
뭐가 걸리는데?
오지랖 부리지 말고, 그냥 내년에 계약된 전복이나 받고 끝내자. 응?
가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말들…….
나는 그 생각을 모두 부정하고, 모녀가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나타나신 겁니까?”
사고를 치고 말았다.
눈 감고 지나갔으면, 그냥 편했을 텐데.
빌어먹을 정의감이 또 나서고 말았다.
나는 잠깐이지만, 이 여자의 기억을 읽은 내 오른손을 원망했다.
“어머. 아까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마치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우리 유경이 아빠 조문객이셨어요?”
급하게 외워서 그런지, 아니면 머리가 나쁜 것인지.
이름을 틀렸다.
“유경이가 아니라 이유정입니다.”
“내……. 내가 언제 유경이라고 했어요?”
“방금요. 어머니가 맞기는 합니까? 아빠 이름은 기억납니까?”
“그럼요!”
“그럼 말씀해 보세요.”
여자는 내 말에, 정색하며 답했다.
“내가 왜 당신에게 말해야 하죠? 친모가 아닌 거 같아요? 유전자 검사라도 할까요?”
“그런 뜻이 아니라.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는 겁니다.”
“당신이 내 딸 찾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완도에서도 제법 큰 전복 양식장을 운영하는 이중석.
이 여자는 아마도 그 재산이 탐이 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필 지금 나타나서 ‘내가 네 엄마다’라고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유정이를 불렀다.
“유정아!”
유정이는 여자의 손을 떼어 내며 내 옆으로 달려왔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예전에 엄마 본 적 있어?”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엄마랑 전화한 적은 있었어?”
역시 고개를 젓는다.
한 번도 보지도, 통화하지도 않았다라…….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고 물었다.
“이제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유전자 검사하면 되잖아요! 근데 당신 얘 변호사라도 돼요? 뭔데 상관하는 건데요?”
“변호사는 아니지만, 변호사를 대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뭐요?”
가만 보고 있던 정진택 팀장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봐요. 아줌마. 내가 로펌에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전화 한 통 하면 당장 달려올 변호사가 열은 넘어!”
“…….”
“전화할까? 당장 튀어 오라고 전화 때려?”
나는 여자를 무시하고, 유정이를 바라봤다.
“유정아 동네에 아빠랑 친했던 사람 없어?”
“진호 삼촌이요.”
“진호 삼촌?”
“네. 아빠랑 제일 친한 아저씨예요.”
“근데 왜 안 오셨어?”
“아직 병원에 계세요.”
같이 관리선을 타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인가?
“그래. 어느 병원인지 알려 줄 수 있지?”
“네.”
나는 유정이를 박승하 팀장에게 맡기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늦은 밤.
면회가 안 된다는 것을 간신히 졸라, 5층 병실로 올라갔다.
그렇게 들어간 6인실 병실에는 유정이가 삼촌이라고 말한 진호라는 사람밖에 없었다.
“진호 씨?”
내가 부르자,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답했다.
“서울에서 오신 분이죠? 유정이 전화 받았습니다.”
“그럼 좀 더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정이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알고 계시나요?”
“그것도 들었습니다. 가시죠. 가면서 얘기하시죠.”
다짜고짜 함께 가자는 진호라는 남자.
그는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휘청였다. 나는 넘어질 것 같은 그를 재빨리 잡았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그냥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럽니다.”
“…….”
“저기 점퍼 좀 꺼내 주시겠어요?”
나는 옷장에서 점퍼를 꺼냈다.
나는 한참 동안 오른손으로 남자의 점퍼를 잡고 있었다.
최대한 그의 기억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그사이 남자는 링거 바늘을 뽑아 버리고, 점퍼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내가 점퍼를 넘겨주자, 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갑시다.”
“정말 괜찮겠어요?”
“지금 안 가면, 죽어서도 형님 얼굴 못 봅니다.”
나는 남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부축하고, 함께 택시를 잡아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 * *
다시 돌아온 장례식장.
진호라는 남자는 여자를 보자마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야!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머, 진호 씨?”
“당장 안 꺼져?”
“오랜만에 보면서 왜 그래?”
“저번에도 형님한테 돈 뜯어 갔지?”
“내가 언제!”
“거짓말하지 마! 내가 모를 줄 알아?”
대충 상황을 눈치챈, 박승하 팀장은 유정이의 귀를 막아줬다.
그리고 아이를 번쩍 안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유정이가 나간 것을 확인하자, 진호라는 남자가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대충 와서 유정이 엄마 노릇 하면서 형님 보험금에 유산까지 가져가려고?”
“말이 좀 심하잖아!”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어린 핏덩이 던져 놓고 도망가 놓고선. 이제 와서 형님 재산까지 노려?”
“야!”
“에이 천벌을 받을 년.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네년을 유정이한테서 떼 놓을 거야!”
“내가 유정이 엄마야! 당연히 내가!”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이다.
나는 정진택 팀장의 옆구리를 찌르고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을 했다.
“팀장님 진짜 로펌에 있었어요?”
“아뇨. 뻥이죠. 그래도 친한 친구 놈들이 로펌에 많이 있으니까, 절반은 사실입니다.”
정진택은 피식 웃고, 한쪽 벤치에 앉아 있는 박승하 팀장과 유정이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요.”
우리가 다가가자.
박승하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물고, 유정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우린 유정이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갔다.
“그래도 삼촌이라는 분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유산 보고 온 건가요? 친모가 맞기는 하대요?”
“네…….”
“너무 잔인하네요. 근데 부장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느낌이요.”
“하…….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또 느낌이군요.”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저희는 먼저 가 봐야겠네요. 팀장님은 여기 계실 건가요?”
“예. 저는 내일 올라가겠습니다.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 올라가세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요. 제가 더 고맙지.”
박승하 팀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유정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린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가 도착하자.
벤치에 앉아 있던 유정이가 달려와 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를 건넸다.
“그래 잘 마실게. 힘내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알았지?”
“유정아, 힘내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
“유정아.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이 오빠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로펌 출신이야! 너 로펌 알지?”
조문혁 대리와 정진택 팀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캔 음료수 표면에서 들려온 유정이의 기억.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이런 사람들이 많다.
한 번의 인연으로 유정이를 딸처럼 생각하는 박승하 팀장.
갑작스러운 완도행에 한 마디 불만도 않던 조문혁 대리.
계약 때문이라면서, 완도까지 내려와 계약 얘기도 꺼내지 않는 정진택 팀장.
끝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진호라는 남자까지.
비록 아버지는 잃었지만.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유정이는 이런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