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 worker listening to memories RAW novel - Chapter 94
94. 챙겨 줄 때 받아먹어
“그걸 왜 제가 신경 써야 하죠?”
건강식품 팀이라는 말에, 정진택 팀장은 바로 인상을 구겼다.
그는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
아마 어릴 때부터 자신의 것을 지키고, 불리는 것만 배워 왔기에 그럴 것이다.
“우리 사업부잖아요.”
“우리 사업부요? 건강은 고동수 부장의 팀입니다.”
“아니요. 나는 신선과 건강을 하나의 부서로 묶을 겁니다.”
“……!”
정진택 팀장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보고, 호프집의 출입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김태하 팀장과 최충연 팀장이 나란히 들어왔다.
“충연 팀장도 불렀어요?”
나는 정진택 팀장의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손님을 맞이했다.
“왔어요?”
“네.”
고개를 숙인 최충연 팀장.
회사에서 있던 일 때문에, 그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나는 그의 팔을 툭 치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경위서는 다 썼어요?”
“예.”
“박 대리는 좀 어때요?”
“…….”
“나랑은 말 안 할 겁니까? 왜 다른 사업부의 부장이라서?”
내 말에, 입을 닫고 있던 최충연 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대리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확인도 안 하고 그냥 승인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없었잖아요.”
“아니요. 그건 핑계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확인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최충연 팀장을 잘 안다.
아니, 믿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책상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가득했고, 거래처의 사람을 만나면 그 회사의 볼펜, 명함, 수첩, 다이어리 등을 얻어 왔다.
그리고 얻어 온 물건들을 일종의 기념품처럼 자신의 책상 위에 진열했다.
3주 전 사업부가 나뉘고 자리를 옮기는 날.
나는 유난히 짐이 많은 그를 도왔고, 책상 위의 수많은 물건들에서 그의 기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하는 협력사를 끔찍이 아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그 사람의 물건으로 사람을 대신한 것이다.
스스럼없이 김태하 팀장과 형동생으로 지내는 것 또한, 그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최충연 팀장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박 대리는요?”
“고 부장님이 징계를 내리려 하지만 제가 지킬 겁니다.”
예상하던 대로다.
고동수 부장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팀장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특히 많은 부서원이 따르는 최충연 팀장 같은 사람이 말이다.
이에 고동수 부장은 최충연 팀장의 징계를 피하고자 박 대리를 지목했을 것이고, 최충연 팀장은 이를 거부한 것이다.
기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최충연 팀장은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앉아요. 맥주 괜찮죠?”
내 말에 최충연 팀장과 김태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재문 과장이 출력한 문서 두꺼운 뭉치를 들고 왔다.
그리고 이제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털어놓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맥주로 입술을 적시고, 가장 끝에 앉은 도재문 과장을 불렀다.
“재문 과장, 일단 사업부별 매출표 좀 보여 주세요.”
“아……. 네네“
도재문 과장은 종이를 넘기다, 테이블 가운데 한 페이지를 펼쳐 놓았다.
지난 3주간 매출 15%가 상승한 푸드 커머스.
반면에 7% 하락한 디지털 커머스.
이미 이를 알고 있던 각 팀장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종이를 한 장 넘겨, 사업부가 아닌 팀별 매출을 보이도록 했다.
“푸드 커머스에서 가장 높은 상승을 이룬 것이 신선식품입니다. 반명에 디지털 커머스에서 가장 많이 하락한 것은 건강식품이고요.”
신선식품 팀의 정진택 팀장은 흐뭇한 미소를.
건강식품 팀의 최충연 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 둘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문책하거나 칭찬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
“최 이사님이 디지털 사업부에서 가장 빼고 싶은 팀이 건강식품 팀이고, 내게서 뺏어가고 싶은 팀은 신선식품 팀이라는 말입니다. 거기다 진택 팀장님은 대표님의 아드님이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그 말이 갑자기 왜 나옵니까?”
정진택 팀장이 미간을 구겼다.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둘을 합치겠다는 건가요?”
눈치가 빠른 김명진 차장이 물었다.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사업부를 하나 더 쪼갤 생각이야.”
“……!”
“그리고 그 사업부를 명진 차장이 맡아 줬으면 해.”
“그걸 왜? 김명진 차장님이 맡습니까? 그리고 부장님 마음대로 어떻게 사업부를 또 쪼갠다는 겁니까?”
최충연 팀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구열 이사님이 데려온 사람이니까요.”
“네?”
“자, 입장을 바꿔 보죠. 내가 최구열 이사입니다. 내가 데려온 사람이 부장이 되고, 사업부 내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신선식품 팀을 가져가게 됩니다. 근데, 건강식품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요?”
“…….”
사실, 내 계획은 2% 부족했었다.
하지만 김명진 차장이라는 욕심 많고, 능력 있는 사람이 오면서 완벽해졌다.
“받아야겠죠. 잘못되면 그 사람을 내치고 새로운 사람을 앉히면 되고, 잘되면 자신의 사람이라 챙겨 준 꼴이 될 테니까요.”
최충연 팀장이 답을 못하자, 김명진 차장이 대신 답을 했다.
그는 역시 눈치가 빠르다.
그리고 쿠폰 사업을 매각하면서, 대기업의 정치 싸움에 섞여 본 사람이라 이런 싸움에는 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 아네.”
김명진 차장은 내 모든 계획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이제 원하는 것을 요구할 텐데…….
나는 그가 줬던, 커피, 볼펜, 문서에서 이미 그가 원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이 순간에 뭘 요구할지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오프라인 쿠폰 사업부에 도재문 과장을 주십시오. 쿠폰 쪽 사업을 확장하려면 도 과장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제 속마음을 말하는구나.
나는 김명진 차장이 도재문 과장이 만든 빅데이터 예측 시스템에 놀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는 쿠폰 사업에 이 빅데이터들을 활용할 계획을 했다.
“도재문 과장. 어떻게 할래요?”
“……!”
내 질문에.
도재문 과장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빅데이터를 수집해서 오프라인의 사업에 적용해 보세요. 이미 신선식품에서는 각종 데이터가 다 만들어져서 필요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김명진 차장의 설명에, 도재문 과장은 정진택 팀장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좋은 생각인데요?”
“그렇죠? 팀장님?”
정진택 팀장의 맞장구에 김명진 차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을 답했다.
“네, 재문이가 책상에서는 여포인데, 밖에만 나가면 멍청이가 돼요. 하하“
“팀장님!”
도재문 과장이 소리쳤지만.
정진택 팀장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재문아, 어떤 팀장이 자기 밑에 부하 직원의 승진할 기회를 날리도록 할까?”
“…….”
“챙겨 줄 때 받아먹어. 마음 변하기 전에.”
“……팀장님.”
가만 얘기를 듣고 있던 김태하 팀장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내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부장님은 김명진 차장 밑으로 3개의 팀을 두려는 건가?”
“맞아. 신선, 건강, 쿠폰.”
“그럼 쿠폰 쪽 팀장으로 도재문 과장을 생각하는 거고?”
“맞아.”
김태하 팀장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후……. 계획대로 될까?”
“계획대로 안 될 건 또 뭔데?”
나는 말을 마치고, 술잔을 들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것만 마시고 들어갑시다.”
나는 사람들과 일일이 잔을 부딪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김태하 팀장이 달려와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럼 넌?”
“난 따로 계획이 있어.”
“나한테도 숨기는 건가?”
“확실해지면 말해 줄게.”
김태하 팀장은 내 어깨를 잡은 손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었다.
* * *
12시가 넘은 시간.
나는 이 계획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 줄 사람을 기다렸다.
“야! 원지훈!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고급 세단의 열린 창문 사이로 김재열 사외이사가 소리쳤다.
“여기 주택가인 거 몰라요?”
“그래서?”
“좀 조용히 좀 말씀하시죠.”
“내 맘이지 왜?”
“술 마신 거 아니죠?”
김재열 사외이사는 운전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안 보여?”
“하긴.”
그의 철칙 중 하나.
술 마시면 절대 운전을 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는 음주 운전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철칙만은 지킨다.
“근데 왜?”
“커피 한잔할까요?”
“이 시간에 문 연 곳이 있나?”
“저기 편의점 있던데.”
“그래, 가자. 일단 타.”
우린 차로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사서, 밖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 마주하고 앉았다.
“사무실 이사 준비는 잘돼 가요?”
“아니 강남에 들어갈 만한 곳이 없어. 아무래도 분당이나 판교까지 나가 봐야 할 거 같은데?”
“그럼 창고랑도 가까워지고 좋겠네요.”
“근데 너나 다른 사람들 집이 좀 멀어지잖아.”
“뭐 조금인데요. 오히려 강남보다 길이 덜 막혀서 좋을 수 있어요.”
그렇게 우린 별로 영양가 없는 얘기를 나눴다.
김재열 사외이사는 이런 얘기가 지루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이제 본론을 말하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번에 이사님이 말씀하신 거요.”
“뭐?”
“장상익 이사님 지분을 사라는 말이요.”
내 말에, 김재열 사외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거 다 네 돈 맞지? 이 졸부야!”
“알고 계셨잖아요.”
며칠 전, 김재열 사외이사는 BO커머스의 주식을 사 주겠다고 했다.
예전 체인마켓의 대표였던 장상익 사외이사가 가진 4%를.
그가 요구했던 금액은 80억.
하지만 나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이를 깎기 위해 한 발 물러나는 척을 했다.
“힘들까요?”
“아니. 아마 이 소식을 들으면, 당장 달려올 거야. 장 이사가 돈이 좀 필요하거든.”
“그래요?”
“응, 선박회사를 인수한다고 저번에 나한테까지 돈 빌려 달라고 하더라고. 그 인간 전공이 컨테이너잖아. 아무래도 자기가 잘하는 사업체가 매물로 나오니까 욕심이 난 거 같아.”
“그럼 빨리 설득할 수 있겠군요.”
“알았다. 내일 오전에 물어보고 말해 줄게.”
김재열 사외이사는 남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로 걸어가다가, 뒤로 돌아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지훈아. 나 하나만 묻자.”
“네.”
“내가 아는 너는 절대로 손해 보는 인간이 아니거든. 근데.”
“근데 뭐요?”
“제값보다 더 주고 급하게 사려는 이유가 뭐야?”
나는 김재열 사외이사의 앞으로 한 발 더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번에 형님이 말씀하셨죠. 챙겨 줄 때 받아먹으라고.”
김재열 사외이사는 내 팔을 툭 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