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예정된 재앙 (2)
현대의 아주 기초적인 의학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 시대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염병 의사다.
하지만 전염병을 예방하는 게 아니라, 치료하라고 하면 상당히 어렵다.
예를 들어 천연두.
우두를 이용해 예방하면 된다.
근데 천연두를 치료하라고 한다면 그 방법은?
적어도 난 모른다.
또, 항생제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는 건 알고 있다.
최초의 항생제라고 할 수 있는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다고도 알고 있고.
하지만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만 추출하는 방법은?
이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방법은?
먹는 항생제를 만드는 방법은?
바로 이 점이 내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원인을 알고 대충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건 안다.
근데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고, 이를 설득할 방법도 없…….
“현미경을 만들면 되겠네.”
전문적인 현미경이라면 몰라도, 원시적인 현미경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뭐라고?”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보다 곽란이라고 했지요?”
곽란은 콜레라를 말한다.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풍토병.
다행이다.
약을 만드는 방법은 몰라도, 치료법은 안다.
“연회의 맛 좋은 음식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괜찮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데 음식이 중요하겠는가.”
“우선은 사람이 왜 설사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몸이, 몸 안으로 들어온 독소를 몰아내기 위해 보를 터뜨려 수공을 쓴 것입니다.”
근데 이놈의 몸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수분을 마구 쓴다.
어쩌면 주인 놈이 알아서 수분을 보충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설사 몇 번으로 독소를 다 몰아낼 수 있지만, 곽란은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 몸의 물을 억지로 뽑아내는 독소거든요.”
“곽란이 인간인가? 사람을 역이용하게.”
“인간은 아니지만 그런 독소가 있어요.”
“흠…… 계속하시게.”
“따라서 수분을 계속해서 보충해주시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냥 물은 안 되고, 끓인 물에 흑당과 소금을 적당히 녹여 식힌 후 계속 마시게 해야 합니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가?”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해보시고 제일 효과적인 비율을 알려주세요.”
천만다행이다.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내가 지배하고 있는 대만국, 그리고 옆에 있는 류큐는 사탕수수 재배지다.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설탕이나 소금이 쉽게 썩는 물건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괴질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퍼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격리를 철저하게 하고, 손을 항상 깨끗이 씻고, 역학 조사를 통해 진원지를 박멸하는 것까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미심쩍긴 한데, 그래도 용왕이 한 말이니 내 철저하게 따라봄세.”
“시행해보시고 힘들었던 점이나 고쳤으면 하는 점 등을 말씀해주세요. 다른 곳에서 시행해보고, 더 발전시켜야 하니까요.”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콜레라가 창궐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물은 항상 끓여 마시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홍차 판매량이 증가할 거라고 기대하는 나는 쓰레기일까.
***
며칠이 지나 믈라카 술탄국으로 출항할 날이 다가왔다.
다행히 선원 중에서는 콜레라가 발병한 이가 없었다.
격리 구역에는 근처에도 못 가게 했고, 항상 손을 씻고, 물은 끓여서 차로 마시게 했으니까.
“고맙소.”
떠나기 전, 시이저가 직접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해주었다.
“뭐가요?”
“용왕 덕에 괴질이 잡혀가고 있다고 하오.”
“벌써요?”
콜레라에서 회복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고작 5일 만에 차도를 보였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괴질이 없어진 건 아닐세. 하지만 환자의 증가세가 줄었고, 무엇보다 며칠 사이 사망자 수가 급감했네.”
“급감이라고 할 정도면 어느 정도입니까?”
“곽란에 걸리면 열에 대여섯 명은 죽지. 하지만 이제는 두세 명밖에 죽지 않고 있네.”
사망률이 2, 30%인 걸 괜찮다고 할 수 있나?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나게 죽은 겁니다만…….”
“앞으로는 더 줄 걸세. 지금 죽은 이는 그대가 말한 흑당과 소금을 녹인 물을 마시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환자니까.”
역시 링거가 있어야겠다.
하지만 주삿바늘을 뭐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철로 하면 파상풍에 걸릴 테고.
납은 당연히 안 될 테고.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은 구할 수가 없고.
“너무 마음 쓰지 말게나. 그대가 용왕이라고 해도, 진짜 신이 아닌데 어찌 모든 사람을 다 구하겠나.”
“그렇긴 하죠.”
알고 있음에도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환자들은 내 잠재적인 고객이자, 미래 직원의 부모님인데 말이다.
내게 전문지식이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대는 그대가 잘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네. 이미 그대가 살린 목숨만 해도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을 테니까.”
“제가 잘하는 게 뭐죠?”
“다 잘하지만, 용왕인 만큼 역시 항해가 아니겠나.”
“……그러네.”
나는 항해사다.
공학자도, 화학자도, 역사학자도, 의사도, 약사도 아닌 항해사.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굳이 모든 걸 해내려고 애쓸 필요 없다.
“모두를 살릴 방법은 모르더라도, 열 명 중 여덟을 살릴 방법을 곳곳에 전파한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린 격이 아닐까요?”
“하하하! 그렇겠군. 혹여 다른 곳에서 더 발전된 방법이 나온다면 내게도 반드시 알려주게나.”
“그러지요.”
“그런데 용왕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할 귀한 지식인데, 이를 알려주는 대신 어떤 대가를 원하는가?”
“상단의 고객과 미래의 직원이 많아지겠지요. 대가는 나중에 교역하면서 알아서 챙겨가겠습니다.”
“하하하. 생각하는 게 참 다르단 말이야. 관대하게 부탁하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분명 인구가 크게 늘어날 터.
하지만 맬서스 트랩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이 넘쳐난다 싶으면 그 사람들을 빈 땅으로 이주시키면 되니까.
세상은 넓고, 빈 땅은 많다.
오히려 인구가 폭증하길 바란다.
새로 개척해야 할 땅이 얼마나 많은데, 인구가 없어서 못 하고 있으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독에게 안부 전해주게.”
“그러지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배 위에 올라탔다.
항구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이쪽을 향해 양손을 흔들었다.
참파에서도 느낀 건데, 내 이미지는 조선이나 대만보다 동남아시아에서 훨씬 좋은 것 같다.
이러다 진짜 종교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
배는 순풍을 타고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팔렘방에서 믈라카 술탄국까지는 대충 800km.
속력이 대략 10노트(18.52km/h) 정도인 우리 함대로 가면 이틀이 꼬박 걸리는 거리다.
“이대로 믈라카 왕국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이소군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이제는 그녀도 능숙한 선원이다.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재능을 살려 기함의 선의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래야지. 중간에 기항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없습니까? 여러 항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있긴 있는데, 마자파힛 제국과 독립하려는 세력이 내전을 벌이고 있어서 안전하진 않다고 하더라.”
“포라중(蒲羅中)도 그렇습니까?”
포라중은 싱가포르를 말한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마자파힛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황폐해졌다더라. 항구로서의 이점도 믈라카에 죄다 뺏겨서 지금은 평범한 어촌이래.”
싱가포르가 나중 가면 꿀 땅으로 변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개발이 거의 안 되고, 일 년 중 2/3가 비 오는데, 정작 마실 물은 부족한 척박한 땅이다.
“차차 직원들을 보내 거점으로 개발할 생각은 있지만, 굳이 지금 우리가 들를 필요는 없지.”
“하지만 배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건 다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원들이 밤 항해에 익숙하다고 해도요.”
“그래서 이러는 거야.”
“예?”
“배에서 하루를 보내는 데 더 익숙해져야 하니까.”
나중에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으로 가려면 지금 단련해 둬야 한다.
“그럴수록 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배는 전염병이 발병하기 쉽다는 거 알고 있지?”
“전하의 말씀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명심하고 있습니다.”
“다들 잘 따르긴 해?”
내가 보기엔 잘하는 것 같긴 한데, 내 앞에서만 그러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잘합니다. 주변에서 병마로 고생하거나 죽어 나가는데, 전하의 명을 따른 선원들은 멀쩡하니까요. 효과를 확실하게 봤는데 안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귀찮아서 잘 안 하게 되거든.”
위생의 중요성이라면 현대인들이 더 잘 알 텐데, 잘 안 씻는 사람 많이 봤다.
“후훗.”
“왜 웃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찮아서 위생을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이미 죽고 없으니까요.”
“……설마 네가 담가버린 거야?”
혹시나 하던 얀데레 개화인가?
‘감히 내 남편의 말을 안 들어?’라면서 푹찍한 건…….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병에 걸려 죽었다는 뜻입니다. 전하의 배에 탄 선원 중 감히 왕명을 거역하는 이는 없지만, 각 지부에는 심심치 않게 환자가 나오니까요.”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현대에는 위생이 발전했고, 약도 있으며, 의료 시스템도 발전했다.
여차했을 때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도 하고.
하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게 없다.
오히려 역병에 걸렸다 하면 살 수 있는데도 병을 퍼뜨리기 전에 죽여주는 예도 있다.
실제로 흑사병이 창궐할 때,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중 희생을 최소화한 도시는 다름 아닌 밀라노.
밀라노의 방역 방법은 흑사병에 걸린 병자의 집을 틀어막고 굶어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는 방식이었다.
조선이나 명나라도 역병이 창궐하면 군대를 보내 마을을 봉쇄한다.
그 안의 백성이 억지로 나오려고 하면 죽이기도 하고.
덕분에 절박함은 차원이 다른 모양이다.
이 시대에 역병에 걸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역시…….”
아프리카에 가야겠다.
기름야자 나무를 가져와서 비누를 만드는 것만이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
이틀에 걸친 항해 끝에 도착한 믈라카 술탄국의 수도.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동남쪽에 있는 말라카시에 있다.
신생국인 데다가 대만국과는 달리 북쪽에 아유타야라는 강력한 국가와 국경을 접한 관계로 정세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왕과 왕비가 직접 남경으로 찾아와 영락제를 알현하고 책봉 받았을 정도로.
그만큼 친명 기류가 강하다.
이런 나라가 나중엔 화교를 배척하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쓴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라는 게 참 무섭다.
“괜찮으십니까? 제독.”
당연히 정화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 자네 왔는가. 아니지. 이제는 전하라고 해야겠군.”
“사적인 자리에서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공적인 자리에서만 어느 정도 체면을 챙겨주시면 됩니다.”
애초에 정화가 번왕에게 꿀릴 정도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하세나. 그래도 최대한 예의는 차리겠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따로 마련된 장원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원정대원들.
발열과 오한이 오가고, 두통을 호소하며, 구토해대는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게 말라리아다.
“학질이 보통 심한 게 아니더군. 자네의 말을 떠올리고 개똥쑥을 처방한 덕에 그나마 이 정도야.”
“물웅덩이 근처를 피하고, 모기장을 꼭 치고 자는 게 좋다고 조언 드렸습니다만…….”
“내 잘못이 크네. 미안한 말이네만 자네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어. 선의는 물론 현지 의원들도 모기 때문에 학질이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도 했고. 그 탓에 강하게 말하지 못했네.”
“…….”
“자네의 말을 잘 따른 이들은 학질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았으니, 자네의 말이 입증된 셈이로군.”
그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무능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말라리아라는 병 자체가 나쁘다는 뜻의 Mal과 공기를 뜻하는 Aria의 합성어다.
나쁜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게 상식.
시대의 상식을 생각하면 그나마 내 의견을 잘 반영해준 것에 가깝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한번 겪어보면 다음에는 더 조심하겠지요.”
다행히 내 배에는 약재가 있다.
말라리아를 대비해 개똥쑥을.
괴혈병을 대비해 차와 착채를.
콜레라와 장티푸스를 대비해 소금과 설탕을 넉넉하게 싣고 다니니까.
“이번 기회에 개똥쑥과 개똥쑥을 달인 탕약, 그리고 개똥쑥으로 담근 술 중 어떤 게 더 효과적인지 확인을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