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1
010화 천하의 주인 (5)
홍문연.
홍문지회.
모두 같은 말이다.
초한쟁패 시기 명장면 중 하나로, 중원의 패권이 항우에서 유방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으로 평가된다.
배경은 이렇다.
진시황이 죽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시기.
회왕은 유방과 항우를 시켜 두 갈래 길로 진나라 수도인 함양을 공략하게 한다.
항우를 싫어하고 경계했던 회왕은 유방에게는 쉬운 길을, 항우에게는 멀리 돌아가면서도 진나라의 정예가 막고 있는 힘든 길로 향하게 했다.
결국,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하고, 뒤늦게 도착한 항우는 분노하여 유방을 공격하려 한다.
이를 전해 들은 유방은 직접 함양 인근 홍문(鴻門)에 주둔하고 있는 항우를 찾아가 해명.
항우의 책사 범증은 이때를 노려 오히려 유방을 죽이기 위한 계책을 짠다.
그러나 유방은 철저하게 비굴하게 굴면서도, 자신이 벌인 일을 항우를 위한 일이라고 포장.
항우의 마음을 돌린다.
이를 눈치챈 범증은 항우의 친척인 항장을 시켜 암살을 명하니, 항장은 연회에서 검무를 추는 척 유방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나 유방은 이미 항우의 삼촌인 항백을 포섭한 상태.
항백은 같이 검무를 추는 척 이를 방해한다.
이어 유방의 심복인 번쾌가 난입.
무장이 연회에 난입하는 것은 반란과도 같은 일.
죽여도 무방했으나, 항우는 번쾌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용서한다.
대신 술 항아리와 돼지 다리 한쪽을 통째로 하사하는데, 번쾌는 그 자리에서 전부 먹었다.
심지어는 안주로 준 돼지고기 다리를 방패에 올린 채 칼로 썰어 먹으며 죽음도 불사하는 태도를 보였고, 항우는 이에 무척 감탄하여 분위기는 풀어진다.
이 틈을 타 유방은 화장실 가는 척 도망간다.
유방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은 범증은 ‘너희 모두 유방의 포로가 될 것이다!’라며 펄쩍 뛰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과연 그의 혜안대로 후에 유방은 항우를 쓰러뜨리고 중원의 패권을 얻는다.
이후로 홍문연은 ‘살벌한 연회’를 뜻하는 관용구가 되었다.
“······.”
창!
황제의 친위대, 젊은 천책위 한 명이 검을 뽑아 들고 내 주변을 돌며 검무를 춘다.
그가 마음먹는다면 찰나의 순간에 내 목이 땅에 떨어지겠지.
어둠이 다가온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지배했다.
“······.”
석피는 무슨 말인지는 이해 못 해도,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하지만 ‘내가 죽더라도 절대 나서지 마라.’라는 명령 때문인지 주먹만 불끈 쥔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얼 하느냐. 네 호위는 번쾌가 아니라 버릇 나쁜 개일 뿐이더냐.”
영락제가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홍문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조선 사람이 명나라 황궁에서 검을 뽑는다?
천자의 암살시도로 몰아서 나를 완전히 말살해버릴 수도 있다.
그 말이 떠올랐다.
‘OOO의 유일한 약점은 한국 국적이라는 것.’
한국인 스포츠 스타가 심판의 농간으로 질 때면 늘 나오는 말.
환생했어도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가······.
“아니.”
놀랍게도 지금 시대에는 조선이 그리 약하지 않다.
특히 태조 이성계부터 문종 이향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조선의 황금기이자 군사력의 절정기.
더욱이 지금은 명나라를 숭배해야 한다는 사상도 없었다.
강국이니까 조금 숙이자는 의견이 대세일 뿐.
반면 명나라는 외적으로 엄청난 성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황태자가 말했듯이 내적으로는 곪아가고 있다.
더욱이 명나라는 북원, 여진, 티무르, 대월, 일본 등 인근 국가 전체를 적국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황.
정화가 말했듯 조선을 무시하거나 적으로 돌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석피.”
“예. 나리.”
상자 속 검을 석피에게 던졌다.
“나를 지켜라.”
“예!”
기다렸다는 듯이 석피가 움직였다.
날 듯이 뛰어, 자신의 검을 잡아채고 내 옆에 착지했다.
“검을 뽑아서도 안 되고, 아무도 다쳐서는 안 된다. 할 수 있겠나?”
“쉬운 일입니다.”
“믿겠다.”
당당하게 내 자리로 돌아갔다.
천책위가 검무를 추는 척하며 내게로 검을 뻗었다.
의식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 같았지만, 오직 내 자리만을 보며 당당하게 걸어갔다.
창! 창!
칼바람이 목에 닿고,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볼 수는 없었지만 석피가 막아서는 소리겠지.
비단길 위에서 내 자리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선에서 명나라로 향하는 뱃길만큼 길게 느껴졌다.
“······.”
겨우 자리에 앉은 후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겨 연회장 중앙을 볼 수 있었다.
“어······.”
천책위의 검무는 병가(兵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도 있는 무예다.
물론 최정예인 친위대답게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반면 석피의 움직임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무수한 원을 그리는 신기한 무예.
아름다운 춤사위 같다.
발걸음도 흐느적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천책위의 강맹한 공격을 전부 부드럽게 빗겨냈다.
“수박······?”
검술은 처음 보는 것이었으나, 보법은 수박의 그것을 닮았다.
위력은 굉장했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꺾어진 검집.
그 회전력을 이용해 천책위의 대도(大刀)를 탄력적으로 쳐냈다.
“으아아압!”
짜증이 났는지 천책위가 기합을 내지르며 대도를 크게 휘둘렀다.
석피는 받아치는 듯했으나, 이내 힘을 빼고는 뒤로 넘겼다.
“어엇?”
천책위는 균형을 잃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석피는 검집으로 천책위의 목을 툭 쳤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검무를 추었다.
“하하하! 재밌구나. 하지만 홍문연하면 두주불사는 빠질 수 없는 법!”
영락제는 다른 천책위를 시켜 석피에게 술 항아리 하나와 고깃덩이를 하사했다.
두주불사(斗酒不辭).
한 말의 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대에서 한 말은 18L지만, 지금 한 말은 대충 3L 조금 넘는다.
“아니······.”
초한 쟁패 때는 탁주였잖아.
지금은 증류주라고.
현 연회에서 마시는 술은 소흥황주라고 하는데, 도수가 대충 소주 정도 된다.
한마디로 영락제는 지금 석피에게 소주 9병을 원샷하라는 것이다.
“······.”
석피는 명나라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눈치로 짐작한 듯했다.
영락제를 향해 절을 한 후 항아리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멀쩡하게 일어났다.
“하하하! 그저 버릇 나쁜 개인 줄 알았는데, 번쾌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영락제는 대소를 터뜨렸다.
목숨을 건 운동 직후에 소주 9병 원샷.
게다가 석피는 매우 높은 균형 감각을 요구하는 무예를 사용한다.
그런데도.
석피는 천책위의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심지어는 취권처럼 취기를 이용해 함정을 파서 빈틈을 만들고, 몇 번이나 천책위의 목을 검집으로 쳤다.
오히려 술 마시기 전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짐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여겼으나, 오늘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구나.”
영락제는 손을 들어 검무를 중단시켰다.
“조선에서 온 두 사내가 이토록 뛰어난 인재였을 줄이야. 방원이가 부럽구나.”
이전과는 달리 진심으로 부러운 티를 냈다.
“뛰어난 검무를 보여준 항장과 번쾌를 위해 모두 잔을 들어라!”
“······.”
천책위는 검을 거두고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툭 쳤다.
석피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천책위는 예를 거두고 환관이 가져다준 잔을 들었다.
석피 역시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셔라! 대명과 조선의 우애를 위하여! 원정대의 순항을 위하여!”
모두 일제히 들이켰다.
“이제 포상을 해야겠지. 강 사관.”
“예. 폐하.”
“소원이 무엇인가?”
“석피가 천자의 보선에 한 무례를 용서해주셨으면 하옵니다. 결코,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니······.”
“어허!”
영락제는 화가 난 듯이 말을 끊었다.
“짐을 소인배로 보는가! 어찌 이 훌륭한 번쾌에게 벌을 내릴 수 있겠는가. 다른 소원을 이야기하라.”
“송구합니다. 그렇다면 나침반과 간의(簡儀)를 원합니다.”
간의는 천문 관측기구인 혼천의를 간소화하여 만든 것이다.
“무에 쓰려고?”
“바다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알아보기 어렵사옵니다. 하지만 나침반과 간의만 있으면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측정할 수 있으니 항해가 수월해질 것입니다.”
“그대는 정녕 항해에 목숨을 걸었구나.”
정확히 말하면 목숨을 잃기 싫어서 원하는 것이다.
이 시대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데.
항해사 출신인 내가 괜히 바다로 가는 걸 싫어했던 게 아니다.
“좋다. 들어주마. 허나 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소원을 말하라. 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 말이다. 무엇을 원하느냐.”
내 욕망.
군주들의 결정에 따라 내 운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뀌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장난감처럼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이 시대에는 언제든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겠지.
계속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만의 기반이 필요하다.
현재 제일 큰 난관은 바다의 위험이 아닌 ‘해금령’.
영락제가 죽고 나면 명나라는 해금령을 선포하니까.
심지어 정화가 죽으면 정화의 원정기록은 대부분 말살되고, 보선은 파괴되거나 해안가에 썩어 침몰하며, 조선공과 선원은 신분을 감춘 채 숨죽여 살아야만 한다.
단, 이 해금령에도 두 개의 구멍이 있다.
하나. 조공 무역과는 달리 민간 무역은 허용하는 예가 많았다는 것.
이는 명나라의 재정 상황과 조공 무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원정을 중지하고 해금령을 내렸다는 뜻이다.
반대로 ‘바다가 이익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면 ‘황실에 이익을 준 선단’에 한해서는 무역을 허용해줄 가능성이 크다.
둘. 북로남왜(北虜南倭).
명나라가 쇠퇴한 ‘외부 요인’을 뽑을 때 항상 나오는 말.
북쪽은 유목민, 남쪽은 왜구의 침략을 의미한다.
원나라 시기에는 대운하가 파괴된 상태라 바다로 세금을 운반했다.
원나라 지배층은 몽골족, 바다를 접해본 적 없는 유목민.
하필이면 이때 일본은 남북조 시대라 지방의 통제권을 잃었을 때였다.
이런 혼란한 배경 덕에 왜구는 원나라의 세운선을 털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수천의 왜구가 내륙까지 쳐들어 와 약탈과 학살을 일삼을 정도로.
신기하게도 조선 건국과 일본의 남북조 통합이 같은 해에 일어나면서 잦아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이지, 왜구의 약탈은 계속되었다.
영락제도 킬방원과 협력하여 대마도 정벌을 추진한 것을 생각하면 왜구에게 얼마나 골머리를 썩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내가 왜구를 소탕해서 바다를 안정시킨다면······.
청나라 시기 유럽 상인들처럼 대외무역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려면 역시 나만의 선단이 필요하다.
최소 바다에서만큼은 절대적인 무력을 지닌 최강의 함대가.
영락제가 죽기 전까지, 혹은 영락제의 마음이 변하여 해금령을 내리기 전까지가 시간제한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기반을 쌓아서 해금령이 내려지더라도 ‘나만은’ 무역을 허용할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저만의 배를 원하옵니다.”
“배를? 왜?”
“배를 타고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발톱을 숨기자.
그저 세상을 알고 싶은 호기심 많은 탐험가로 위장하자.
“파사국을 말하느냐?”
“파사(페르시아)를 넘고, 비주(아프리카)를 돌아, 구라파(유럽)에 있는 대진국(로마)은 물론, 그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땅까지 탐험하고 싶습니다.”
영락제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몇 척이나 원하느냐.”
“한 척이면 충분합니다.”
영락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의 명령에 따라 ‘재미있는 기담’을 쓴 사관 강해인에게 새로이 건조되는 세 척의 보선을 하사한다. 이는 모두 강해인의 소유이다.”
보선을 건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2~3년.
그때가 오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조선 사관 강해인, 대항해시대를 열다.’라고.
나는 이미 충분한 경험과 앞으로 600년 동안 수많은 천재와 위인이 쌓아 올릴 지식을 지니고 있다.
필요한 건 내 경험과 지식을 시대에 맞게끔 조정하는 것뿐.
정화라는 강력한 조력자.
영락제라는 추진력 하나는 일품인 후원자.
내 보선이 완성될 때까지 몸을 낮추고, 두 호랑이를 최대한 이용하자.
이 기회에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인맥을 넓히며, 독자적인 노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때가 오면.
심지어 해금령이 내려진다고 해도.
명의 황제도, 조선의 왕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세계의 신이 될 것이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은 더더욱 빛을 감추고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