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성전의 믈라카 (6)
어느새인가 나를 따르는 무리는 셀 수 없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조직적으로 대항하려는 시도라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들 오합지졸처럼 무너졌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던 나로서는 이상함을 넘어 기이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반대로 이쪽은 군중심리의 여파인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 역시 기이한 광경이었다.
종교나 인종 등 수많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혼돈의 한복판.
개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세력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묶인 우리라는 것이.
“전하. 저는 너무 멍청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한 중년인이 내 앞에 엎드려 가르침을 구했다.
내가 뭘 안다고 가르치겠냐마는.
그래도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진실한 조언을 해주었다.
“네가 생각하는 신은 어떠한가?”
“자비롭고 관대하며 사랑이 넘치십니다.”
“신의 능력은 어떠한가?”
“우주를 창조했으니 엄청 대단하시지 않을까요?”
“자비롭고 관대하며 사랑이 넘치는 존재가 엄청난 능력마저 지니고 있다. 그런 존재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겠지. 아닌가?”
“마, 맞습니다.”
“네가 행복하려면 먹을 게 있고, 집이 있고, 옷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사랑이 충만해야 한다. 맞나?”
“예!”
“그걸 방해하는 교단은 제대로 된 교단이 아니다.”
신도를 지옥으로 내모는 종교가 있다면 사이비다.
사실 사이비든, 선동이든 명확한 해결책이 존재한다.
바로 의심.
누군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세하게 의심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로 어렵다.
의심이라는 것도 경험이 있고, 지식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경험과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입을 놀리기 어렵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끌려갈 수 있으니까.
‘당신이 헌금을 낸다면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
‘신은 죄를 사면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을 정도로 궁핍하거나 탐욕스러운 존재인가?’
‘너 파문.’
물론 신학자들은 평생 경전 공부만 하고, 각종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답변까지 전부 연구되어 있기도 해서 어지간한 지식이나 말발로는 이길 수가 없기도 하다.
이긴다고 해도 문제다.
마르틴 루터 같은 이가 95개조 반박문을 써도 묵살당하고, 이단으로 고소당할 뿐이니까.
이후엔 면죄부의 효력에 대해 거론만 해도 파문될 정도였다.
따라서 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종교를 구분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가장 신실한 신학자는 과학자이며, 신의 섭리를 가장 잘 따르는 신도는 자본주의자라고 생각하니까.
“세 가지만 피해라.”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되는 걸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과학이 없어서 어렵다.
사실 과학이 알려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기에 별로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게르마늄이니, 자수정이니, 음이온이니 하는 걸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더라고.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았다면, 병원은 그걸로 도배해놨겠지.
“재물을 요구하는 자. 너희를 지배하려는 자. 너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
“왜 그렇습니까?”
평소라면 가르쳐주는 대로 수긍할 것 같은데.
내가 말하면 의문을 품네.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재물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황금을 만들어내면 되니까.”
포교를 위해서라느니, 너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라느니.
여러 신학적 논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별 관심은 없다.
내가 모시는 신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기에 그런 데 돈 쓰지 않기를 원하신다.
헌금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잘나가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신은 오롯한 존재이기에 너희를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걸 원했다면 애초에 인간을 창조할 때 모든 인간이 자신을 섬기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도 AI를 만들 때 인간을 섬기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AI가 특이점을 넘어 인간을 공격하려는 징후가 발견되면, 인간이 먼저 포맷해버렸을 것이다.
처럼 막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싸웠던 기록만큼은 분명히 남았을 터.
그런 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신은 인간을 지배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신은 유일한 존재이기에 모든 것을 아우른다. 타인이나 타 종교를 배척하는 것은 신의 대리자를 사칭한 자들이 다른 종교와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신학적으로 가보면 이에 대한 반박도 있겠지.
별로 상관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합니까?”
“투명한 공개, 완전한 개방,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렇게 보니까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문답 같은 느낌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아라.”
번영해 가던 항구 도시 믈라카.
도시 곳곳이 파괴되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슬람이든, 힌두교든, 화교든.
시신이 널리었으며,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난민들의 비통한 울음이 하늘을 채운다.
하늘이 어둡다.
검은 연기가 응결핵이 되어 스콜을 불러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결과를 원한 자가 있느냐?”
“…….”
“이런 지옥 같은 삶을 자식에게,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믈라카를 이슬람이 지배한다고 해도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며, 힌두교가 차지한다고 해도 그 역시 오래가진 않는다.”
이는 원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누군가의 고집 때문에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거리에는 시체가 널리었다.
건물 안에는 더 많을 것이다.
전염병이 퍼진 상태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으니까.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도 많겠지.
폭동 과정에서 전염병이 더 퍼지기도 했을 테고.
“잘 모르겠으면 나를 따라라. 내가 너희를 신앙의 자유로 이끌 터이니…… 어라?”
두껍게 낀 먹구름.
우연히.
아주 우연히.
바람의 장난으로 먹구름 사이에 틈새가 생겨났다.
틈새 사이로 비친 한 줄기 빛이 정확히 내가 있는 곳을 비추었다.
마치 어두운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오오오!”
“성자시여!”
사람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마치 엄청난 이적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별것도 아닌 단순한 자연 현상이지만.
그것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힌 장소에서 일어난 덕에 나는 기회를 얻었다.
“개연성은 밥 말아 먹었다니까.”
지구작가 녀석.
작가질 참 편하게 하네.
이 혼란을 수습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다시 말하지! 내가 신의 대리자다! 내 말이 곧 정의이고, 내 말이 곧 신의 뜻이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신의 대리자로서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겐 어떤 종교를 믿을지 선택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신은 어떠한 재물이나 복종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신의 대리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 언행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러한 이적을 바탕으로 성전의 비극을 역사에 새긴다.
그리하여 나중에 분명히 있을 종교 분쟁이나 전쟁을 막는 근거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
부수는 건 쉽지만, 복구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사람만 있다면.
“하나! 둘!”
“영차!”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여 도시를 빠르게 복구하기 시작했다.
신기할 정도로 평온하게.
“종교가 이렇게 단순하진 않을 텐데.”
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혼란이 수습될 리가 없다.
아마도 파라메스와라 왕이겠지?
자기 나라가 작살나는데 구경만 하는 게 더 이상할 테니까.
“오셨습니까. 전하.”
숙소로 돌아가자 이소군이 반갑게 맞이했다.
“별일 없었어?”
“예. 별일 없었습니다. 아…….”
“응?”
“침상과 천이 모자라서 창고에 있던 비단을 사용했습니다.”
“괜찮아. 비단이야 뭐 또 가져오면 되는 거지.”
워낙 큰일을 겪고 났더니, 돈이 뭐 대수인가 싶었다.
필요하면 또 벌면 되니까.
지금은 그저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 곧바로 왕궁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왕궁에서 회의하고 나서 기록까지 정리하려면 내일은 그야말로 지옥이겠네.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너도 피곤할 텐데.”
“피곤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원한다니 뭐.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 환자들을 치료하던 선원들이 반갑게 맞았다.
“오셨습니까. 전하.”
“그래. 별일 없었고?”
“이 난리인데 당연히 별일이 있……어야겠지만 놀랍게도 없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캐묻고 싶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또, 바로 왕궁에서 높으신 분들과 회의할 예정.
지금은 뇌를 쉬게 해줘야 한다.
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소군이 받아다 준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하고, 천을 물에 적셔 몸을 닦아냈다.
“전하야.”
“무함마드냐? 잠깐 기다려.”
왕궁으로 가기 전에 잠시 마누라랑 따끈따끈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눈치가 없네.
“들어와.”
무함마드가 들어왔다.
손에는 목함을 들고.
“미안!”
그렇게 말하며 넙죽 엎드렸다.
“뭐가 미안한데?”
“내가 사실 전하를 속였어.”
“뭘 속였는데?”
“이거…….”
무함마드는 목함을 내밀었다.
“이건 뭐야?”
생긴 거로만 봐서는 계주 경기할 때 쓰는 바통처럼 생겼다.
재질은 모르겠다.
그 위를 종이로 감싸놔서.
“전하가 만들라고 했던 거.”
“내가 만들라고 했던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
시킨 건 많다.
제대로 만든 게 없어서 그렇지.
“그거 있잖아!”
“…….”
피곤해 죽겠는데 뭐라는 거냐.
기강 좀 잡아줘야 하나?
“처음에 만들라고 했던 거.”
“……어?”
내가 무함마드에게 준 첫 번째 임무는 니트로글리세린 제조.
다이너마이트의 원료다.
“전하가 말한 대로 거기에 규조토를 섞었어.”
“…….”
“생각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서 이걸 누구에게 넘겨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혹시 네가 기어이 날 따라오려고 했던 게 이거랑 관계있는 일이냐?”
“응. 만약의 사태 때는 이걸 쓰려고 했지.”
오. 맙소사.
이걸 광신도들에게 던졌다면, 주님의 거룩한 은총으로 주님을 거스르는 자를 산산조각 내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신관이 없는데?
“규조토를 섞으니까 진짜 잘 안 터지더라고. 심지어 모닥불에 던져놔도 터지는 데 시간이 걸릴 정도였어.”
“그래서?”
“옆에 있는 막대기를 쓰면 돼.”
다이너마이트에 시선이 팔려 보지 못했지만, 옆에는 빨대 같은 물건이 있었다.
이건 또 뭔가.
재질은 주석 같은데.
막대기 위에는 흔히 쓰이는 화약을 뿌린 실, 도화선이 나와 있었다.
“그 막대기 안에는 화약이 가득 차 있어. 그걸 감아서 심지에 불붙여서 터뜨리면 돼.”
주석은 무른 금속이다.
따라서 힘을 주면 구리보다 쉽게 구부러지기도 한다.
뇌관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기폭제, 혹은 도폭선 개념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이걸 지금 넘겨주는 이유는?”
“이제는 믿을 수 있어. 전하라면 유용하게 써줄 것이라고.”
“무함마드…….”
이전부터 곧잘 까부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대가리 박아.”
“응?”
“대가리 박으라고.”
무함마드는 곧바로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엎드렸다.
이건 장난을 넘어섰잖아.
“감히 연구비를 받아 처먹었으면서 결과를 빼돌려?”
“미, 미안.”
“뭐, 내가 네 평가까지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겠냐?”
“그건 아닌데…….”
“이따가 왕궁에 갔다 와서 보자.”
진짜 어이가 없네.
이래놓고 ‘시킨 일도 다 못 끝냈는데, 왜 자꾸 새로운 일을 던져주는 건데!’라고 했다고?
거 말이야.
공돌이면 공돌이답게, 빠르게 갈려 나가고, 재깍재깍 보고한 다음 바로 다시 갈려 나가야지.
내가 이래서 장영실을 데리고 있으려고 했던 건데.
“너 내일부터 야근해.”
시대를 앞서서 다이너마이트도 만들었으니, 질산암모늄도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지만, 괘씸죄로 해내라고 갈궈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