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
012화 배금(拜金) (1)
그녀의 눈을 보았다.
용모와 자색을 중시하는 명나라 관기답게 엄청난 미녀이긴 했다.
차가운 눈동자와 매서운 눈매가 옥에 티라면 티랄까.
달기와 측천무후를 연기했던 중국의 유명 여배우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소군이 본명입니까?”
“기녀의 과거는 묻지 않는 게 법도인 줄 아옵니다.”
그녀는 공손하지만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이름을 물었던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영락제가 일부러 저런 이름을 지어주고 보냈을 것 같아서다.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
왕소군을 떠올리도록.
이 시대의 중원에서는 미인에 대한 취급이 그리 좋지 않다.
군주는 미녀를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칠 정도로.
양귀비, 서시, 그리고 4대 미녀엔 선정되지 못했지만 달기나 포사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아름다운 미녀는 나라의 멸망에 영향을 준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온 말이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초선과 왕소군은 달랐다.
초선은 가공의 인물이니 제외한다면 왕소군은 나라의 멸망에 관여하기는커녕 오히려 한나라와 흉노의 평화를 위해 희생되었으니까.
이런 이유로 명나라에서도 그녀를 추앙하는 이가 무척 많다.
외침이 많은 시기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반대급부로 흉노를 비롯한 오랑캐에 대한 분노도 많아지고.
그런데 조선인인 내게 보내는 기녀에 ‘소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도 양갓집 규수 출신일 텐데?
진짜 엿 돼보라는 뜻이다.
“아, 그렇군요. 왕소군과 이름이 비슷해서 여쭤보았습니다.”
“소녀가 어찌 절대 가인에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학문은 아십니까?”
“대인의 발끝에도 미치지는 못하오나 글을 읽을 수는 있습니다.”
학문을 배웠다는 뜻.
숙청된 사대부의 딸이겠지.
만약 교방의 관기 중 그런 기녀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보낼 인간이 영락제니까.
막대하거나 홀대하면 명나라 사대부와 마찰이 생길 테고.
공식적으로는 역적의 딸이니, 귀하게 대접하면 영락제에게 찍힌다.
“그······ 그럼 어디서 머무르실 예정입니까?”
“소녀는 오직 대인만을 따릅니다.”
“혹시 교방에 머물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소녀는 이제 관기가 아니라 대인의 사기(私妓)입니다. 어찌 교방으로 가겠습니까.”
내 개인 기녀가 되었다는 뜻이다.
첩과는 달라서 말 그대로 기녀인데, 오직 한 주인만 따르는 기녀를 말한다.
나중에는 관영 기녀원을 폐쇄하고 출입을 금하자,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집에 기녀를 두는 축기(蓄妓)가 유행한다고.
내가 알아본 게 아니다.
고대의 성문화에 관심이 많은 역사덕후 친구가 자세하게 알려줬다.
신기하게도 이 내용은 따로 적어놓지 않았는데 까먹지를 않네.
“이걸 어쩐다······.”
남경에 남겨두고 원정을 떠나자니, 만에 하나 반란에 연루되기라도 된다면 내 목까지 날아간다.
죽이진 않더라도 이걸 약점 삼아 두고두고 괴롭힐 수도 있겠지.
실제로 영락제 시절에는 반란과 민란, 폭동이 엄청 많이 일어났다.
만약 내가 급격하게 성장한다면, 거짓 반란을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날 연루시킬 터.
조선으로 보내자니 왕소군의 이미지를 이용해 농간을 부릴 것 같다.
진심으로 조선을 공격할 생각은 없겠지만, 군사력 과시 등으로 겁을 주고, 이소군을 이용해 전운을 고조시키는 수를 쓰겠지.
조선을 확실하게 복종시켜 이것저것 뜯어내기 위해서.
실제로 역사를 보면, 영락제는 베트남을 정벌한 다음 곧바로 조선에 공녀와 환관을 요구했다고 하니까.
근데 그게 언제인지 잘 기억 안 난다.
“······잠깐만.”
황태자가 그랬다.
몇 년 안에 대월을 정벌한다고.
설마 대원정과 함께 수륙 협공으로 진행하려나?
아니지.
정화의 원정은 친선이 목적이다.
시작부터 나라를 깨부수고 다니면 친선이 될 리가 없잖아.
그럼 대월 주변국을 조공국을 만들어 대월의 군대를 분산시키려나?
이건 그럴듯하다.
베트남의 역사는 참파와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거기에 현대에도 라이벌인 태국까지 끌어들인다면 대월은 사방이 적이 된다.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도, 태국이나 참파가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위협이 될 터.
베트남 구국의 영웅인 쩐흥다오나 붉은 나폴레옹 보응우옌잡 정도의 인재가 나오지 않는 한, 명나라 군대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대월이 무너지면 다음은 조선이고, 조선 다음엔 여진인가?”
‘내 알 바임?’이라고 여기기도 어렵다.
조선이 굴복하면 영락제는 나를 더욱 괴롭힐 테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락제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는 것뿐이고, 개구리인 나는 거기에 맞아 죽는 꼴이지만······.
“송구하오나 소녀는 조선말을 몰라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알아듣지 말라고 조선말로 한 건데.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소녀의 운명은 대인의 것입니다.”
네 운명은 내 것일지 몰라도, 내 운명은 내 것이 아니라서 그래.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
모르겠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안 돌아간다.
“여기 꿀물을 준비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언제 준비했다니.
마침 무척 목이 마르기도 했던 차.
천천히 들이켰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다.
머리는 여전히 아프지만.
“일단 나갑시다.”
“······예?”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항해에 필요한 약재와 용품들을 구비해야 합니다.”
정화가 상인도 붙여준다고 했는데.
그건 나중에 하자.
일단 남경 관광도 할 겸 밖에 나가고 싶다.
작년에 왔을 땐, 임관한 지 1년 차 되는 말단이었는지라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하오나 대낮에 기녀를 끼고 외유를 하신다면 파락호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생각인데요?”
차라리 여색에 빠져 정신 못 차리리라는 멍청이가 되자.
흥선 대원군도, 독립운동가 김용환도, 박쥐 코스프레하는 대부호도 파락호로 위장하여 발톱을 숨겼다지 않는가.
역사는 결국 과정이나 대의명분보다 결과와 성과, 이익을 더 높게 평가하는 법.
과정과 명분을 더 중시한다면 ‘그 나라’가 신사의 나라로 불릴 이유가 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나중에 내가 대항해시대를 열고 황금 항로의 주인이 되고 나면,
‘아. 그때 강해인 제독이 파락호 행세를 했던 건, 명나라의 견제를 피하기 위함이었구나!’
라고 알아서 포장해줄 터.
또, 어차피 한동안 계속 배를 타야 하니 세간의 평가에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빨리 가지요.”
파락호가 되러.
***
날씨는 쾌청.
죽기 딱 좋지 않은 날씨다.
“쉬어도 된다니까.”
“호위가 어찌 게으름을 피우겠습니까.”
말렸는데도 석피는 기어이 따라 나왔다.
안색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속은 괜찮아? 숙취는?”
“하룻밤 자고 나면 회복됩니다.”
어제 영락제는 연회 내내 석피에게 계속 술을 먹였다.
양으로 치면 소주 30병 정도는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도 숙취가 없다?
인간 맞나?
“가슴 아픈 건 괜찮아?”
“······어찌 아셨습니까?”
“어젯밤에 기억 안 나?”
“죄송합니다. 연회장 바깥으로 나온 것까지는 기억이 납니다.”
슬쩍 석피의 표정을 살폈다.
나한테 반말했던 거, 없던 일로 하려고 구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내가 궁예도 아니고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
넘어가자.
“그런데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이소군이라고 하는데, 폐하께서 하사······ 그······ 맡긴 그······ 훌륭한 여인이야.”
사람을 하사했다고 표현하자니 껄끄럽고.
기녀라고 말하는 것도 뭔가 좀 그렇다.
“······.”
이소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대충 눈치로 짐작했나 보다.
“연회 때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그 여인이군요. 엄청난 미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니미.”
“예?”
“아니야. 아무것도.”
난 이소군이 영락제가 내 목에 달아놓은 폭탄 목걸이로 보인다.
“이쪽은 제 호위로 석피라고 합니다.”
“연회 때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소군이라 하옵니다.”
석피를 향해 다시금 인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분이지만 찬바람이 쌩쌩 부는군요.”
“그게 매력이지.”
“그, 그렇습니까? 뭐······ 제 여동생보다는 낫습니다.”
“응? 여동생이 있어?”
석피의 외모로 짐작건대 중동 미녀 스타일이 아닐까 싶었다.
“예. 워낙 왈가닥이라 누가 데려갈지 걱정입니다. 신부수업을 받으라고 해도 늘 활 쏘고 덫 놓으며 사냥하는 걸 좋아하니 원······.”
“그러고 보니 네 가족에 대해서는 물어본 적이 없네. 다들 평안하셔?”
“제 가족은 부모님과 저, 그리고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전하께서 잘 돌봐주고 계시기에 모두 건강합니다.”
“그렇구나. 여기서 계속 대화하는 것도 그러니 일단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이소군을 보았다.
“일단 가시죠.”
“예. 대인.”
“제가 길을 잘 모르는 데,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근데······.
파락호는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 거지?
모르겠다.
대충 삽시다.
“······.”
“······.”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가 전하께 선발된 거니?”
“백부께서 전하의 가별초(사병)였습니다. 백부님께서 절 추천해주셔서 전하의 눈에 들 수 있었지요.”
“오······ 백부님은 평안하시고?”
“3년 전, 조사의의 난 때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흠칫했다.
조선에서 조사의의 난은 언급해선 안 되는 최대 금기다.
표면적으로는 안변부사 조사의가 일으킨 반란이지만, 흑막이 태상왕 이성계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조사의의 난은 처음엔 승승장구했으나, 어느 순간 급격하게 무너지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반란군이 무너지기 직전, 태상왕 이성계의 위치가 확인되었다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
아마도 전하께서는 별동대를 보내 태상왕의 신병을 확보했고, 수장을 잃은 반란군이 뿔뿔이 흩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문제는 태상왕이 반란을 주도했다고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것.
태조의 불패 신화가 부서지는 건 물론, 조선 왕실이 콩가루 집안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린다.
이는 건국한 지 얼마 안 된 조선에게는 치명타.
자칫 고려 부흥 운동 같은 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때문인지 나 같은 신입 사관은 조사의의 난과 관련된 기록을 건들지도 못한다.
“그래. 그렇구나.”
“전하께서는 제가 나리를 잘 보필하면 무관으로 임명해주시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양반으로 신분 상승해주겠다는 뜻이다.
내가 역사로 배웠던 것과 다르게, 조선은 ‘능력’만 있다면 의외로 신분 상승에 관대한 나라다.
능력의 기준이 매우 높긴 하지만.
특히 무관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지 않는 한, 천민이 관직에 오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일개 사관을 잘 보필했다는 공로로 천민을 양반으로 올린다?
아마도 석피의 백부는 조사의의 난 때 태상왕 이성계의 신병을 확보하다가 사망.
그 탓에 대놓고 포상을 못 하고, 내 호위를 명분으로 신분 상승시켜주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럼 내가 죽으면 네 신분 상승도 물 건너가겠네?”
“농으로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리는 제 목숨의 은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보다 먼저 화를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석피는 굳은 얼굴로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좋다.
우리가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니까.
적어도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하하하. 그래. 우리 모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아보자고.”
“예! 나리!”
***
명나라는 의외로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경제’가 번성했다고 한다.
송나라가 산업혁명 문턱까지 갔다면, 명나라는 자본주의의 싹을 피웠다나.
하필이면 청나라가 그 싹을 짓밟았다고.
중국 학자들의 의견인 만큼 어느 정도 걸려들어야 하겠지만, 상당히 번영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면.
“이곳이 경사의 시장입니다.”
상점도 많고, 행상인은 끝도 없었으며, 장을 보는 백성들은 넓은 장터에 꽉 차 있어 발 디디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곳이 과연 3년 전까지 내전을 치렀던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엄청나군요.”
“······태조 고황제께서는 농업을 근본으로 여겨 상업을 엄격히 제한하셨으나, 지금은 점차 완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다.
돈맛을 보게 되면 계속 상업을 장려하게 될 테니.
이 기풍이 유지되어 해외 무역도 계속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해먹을 수 있으니.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일단 돌아보죠.”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면 약재상인데, 마지막에 들르면 된다.
“음? 저건 뭐죠?”
시장 전체에 사람이 많긴 하지만, 어느 한 곳에는 특히나 많았다.
그쪽을 보자 이소군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그러죠.”
가까이 가니 생각지도 않은 게 있었다.
“귀뚜라미?”
“투실솔(鬪蟋蟀)이라고 합니다. 귀뚜라미끼리 싸움을 붙여 그 승패에 돈을 거는 도박이지요.”
귀뚜라미로······?
내가 기묘한 표정을 짓자, 이소군은 살짝 의아한 듯했다.
“조선에는 투실솔이 없습니까?”
“소나 닭, 개싸움은 봤어도 귀뚜라미로 하는 건 처음 봅니다.”
“가축이 죽기라도 한다면 아깝지 않습니까. 반면 벌레는 죽어도 그리 아깝지 않지요.”
오. 나름 합리적인데?
“물론 잘 싸우는 귀뚜라미는 소보다 비싸지만요.”
“아······ 네.”
“한 번 걸어보시겠습니까?”
“아니요.”
내 대답이 또 의외였나 보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그런 거 배웠거든요.”
“······그러시군요.”
어째 실망한 느낌이다.
잠시 구경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귀뚜라미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워댔고, 결국 한 마리가 죽으면서 승패가 갈렸다.
“안 돼에에에!”
“으아아아아!”
“하하하! 오늘은 운수가 좋구먼.”
“안목이 좋은 거겠지. 자네를 믿기를 잘했어.”
동시에 희비도 갈렸다.
승자는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뻐했지만, 패자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했다.
“약속대로 자네의 밭은 이제 내 것일세. 땅문서를 내놓게.”
“아이고. 나리. 밭이 없으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습니다요. 이건 제 전 재산······.”
“나리는 뒈질 놈의 나리야! 얼른 안 내놔?”
내가 뭘 들은 거지?
“벌레 싸움에 전 재산을 건다?”
“일확천금은 누구나 바라는 낭만이 아니겠습니까.”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세상이니까요.”
그녀의 표정은 전과 같지 않았다.
너무 차가운 나머지 오히려 광기를 띤 열기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소녀는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큰 굴곡을 겪었지요. 그 덕에 깨달았습니다.”
결정적으로,
“모든 것은 운. 인간은 거대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동공에 초점이 없었다.
“운에 맡기어 인생을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죽어버린 꽃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