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만달라 (1)
순풍이었음에도 3일이 걸려서야 한타와디의 항구, 달라에 도착했다.
현대의 양곤에 해당하는 도시다.
처음 항구에 도착했을 때 느낀 것은 황금.
황혼빛에 반사되어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시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늦어졌네.”
“예?”
한타와디 왕국의 사신, 나이 쉐 키인은 물음표를 띄웠다.
“뭐가 문제인가?”
“생각보다 훨씬 빠릅니다. 저는 이것이 용왕의 가호인가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래?”
“만약 다른 상인들이 용왕처럼 빨리 항해할 수 있었다면, 상업은 훨씬 더 발전했을 것입니다.”
“배와 돛의 성능이 좋기 때문이지. 내 가호가 아닐세.”
“게다가 놀랍도록 바다가 평온했습니다. 배의 흔들림도 적고, 그물침대도 굉장히 편안했습니다.”
“어느 쪽도 가호와는 상관없지 않은가.”
“우연이 겹쳐지면 그렇게 생각이 되기 마련이지요.”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 같기는 한데.
방심하지 말자.
이런 식으로 친한 척한 뒤, 정을 빌미로 엄청난 걸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시간이 늦었네. 왕궁에 방문할 시간은 아니니, 오늘은 숙소를 잡고 쉬겠네. 그대가 알현 날짜를 받아오게나.”
“다른 이라면 모를까, 용왕께서 방문하신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가능합니다.”
“객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숙소를 잡아드리겠습니다.”
본대는 예정대로 불침번을 정한 후, 나이 쉐 키인을 따라 숙소로 향했다.
허가를 받지 않으면 교역을 할 수도 없으니 교역품도 배 안에 둔 채다.
“흐음…….”
“왜 그러십니까?”
“내가 견문이 짧아 그 명성을 들어보지 못했네만, 한타와디 왕국도 크게 발전했군. 조선에서 자고 나란 나에게는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야.”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공통점.
생각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다.
생각보다 전쟁이 잦다.
생각보다 인구가 적다.
현대의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하나 같이 인구가 엄청 많다.
억 소리 나는 나라도 많으니까.
“그런데 믈라카도 그렇고, 파사이도 그렇고 눈에 보이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아. 저녁인 걸 감안해도 그러하네.”
한양의 인구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건가?
아닌데.
조선 중·후기로 가면 모를까, 지금은 수도로 정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리 인구가 많지 않은데.
“과거 원 왕조에 멸망하기 전, 바간 왕국의 인구는 250만 정도였습니다.”
바간 왕국이 100년 전에 멸망했다고 했으니까…….
“지금은 500만 정도 되려나?”
“하하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타와디, 잉와, 따웅우 등 여러 나라로 나누어졌으니까요. 아국만 생각한다면 100만이 안 될 겁니다.”
“그럼 바간 왕국의 영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대충 300만 정도 되겠구먼.”
“아마도 그렇겠지요.”
다시 한번 중국의 사기성을 느낀다.
그 옆에 붙어있는 한반도의 불쌍함도 느끼고.
저 나라는 천 년 전에 백만 대군을 일으켜서 고구려로 쳐들어오곤 했으니까.
조상님들.
어떤 싸움을 해오셨던 겁니까.
“그래도 한타와디는 3만의 정예병을 갖추는 등 인근에서는 상당한 강국입니다.”
“굉장하군! 라자다릿께서 얼마나 훌륭한 정치를 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일세.”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3만의 정예병!
……이쪽은 정찰대로 3만을 보내는데.
지금도 봐봐.
군대까지는 아니지만, 정화의 원정대가 3만이다.
원 역사에서 괜히 정화의 원정대가 해적왕을 잡고, 마자파힛 제국을 녹다운시키고, 스리랑카를 정벌했던 게 아니다.
조상님들.
어떤 싸움을 해오셨던 겁니까.
“만약 원 왕조가 침략해서 학살을 자행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겠지요. 그 점에서 아쉬운 느낌이 있습니다.”
“내 선조들은 그런 일을 일상처럼 겪었다네.”
“하하하. 상대해보고 나니 선조들은 제대로 실감하셨다고 합니다. 저 나라는 함부로 상대하면 안 되겠다는 걸요.”
이렇게 반성한 미얀마는 수백 년 뒤에 ‘그 나라’를 선빵 쳤다가 나라가 없어진다.
아마 몽골과 대영제국 당대 최강국 모두에게 선빵을 날린 유일한 민족이 아닐까 싶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한타와디에서는 무엇이 많이 나나?”
“보석이 많습니다.”
“응?”
“비취나 홍옥, 월장석도 많고, 많이 채굴되지는 않지만, 금과 은도 적당히 나오는 편입니다.”
“부럽네.”
왜 한반도만 자원 없어…….
“아니지.”
없다고 한탄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자원이 풍부한 땅이 많이 비어있는 상황.
내가 얻어서 조선에…….
조선에…….
그냥 내가 가져야겠다.
나는 자본주의자다.
내 정당한 이익을 위해 살며, 그럼으로써 세상의 발전을 꿈꾼다.
“자, 이곳입니다. 용왕께서 머무르시기엔 부족하지만, 소국의 왕이 머무는 고급 여관입니다.”
“나도 소국의 왕이다만?”
“하하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소국이라 하면 도시국가 수준을 말합니다. 라자다릿 전하와 봉신 관계를 맺은, 말 그대로 소국입니다.”
“그렇군.”
옆에서 하도 대국, 소국 어쩌고 하는 중국이 있어서, 우리도 소국이라 생각했지 뭐야.
“배려 고맙네. 잘 쉬도록 하지.”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왕궁이 이곳, 달라에 있나?”
“예. 하지만 한타와디의 본 왕궁은 북쪽 페구에 있습니다. 달라에 있는 왕궁은 별궁 같은 느낌이지요.”
조선에게는 개성 같은 느낌인가.
“알겠네. 천천히 용무보고 오게.”
“예. 푹 쉬시기를.”
***
조선인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여관은 누추하고 허름하기 그지없다.
주막이라는 이미지니까.
명나라 사신이 올 때면 보통 관청이나 부잣집 집을 대여해주는 식이고 말이다.
하지만 상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5성급 호텔과 같은 고급 여관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내가 머무는 ‘비취 거북이’ 여관도 그러했다.
따로 높으신 분들이 머무는 별채도 준비하고 있으며, 그 별채를 에워싸듯 고용인들의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음식도 좋고, 여러 시종이 붙어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가. 그러면 이 항구를 돌아다니려면 몬족의 말을 익혀야 하는 건가?”
“지식인이나 대외 무역상의 경우 아유타야어를 할 수 있습니다만, 아마 대명어나 조왜어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을 듯합니다.”
통통한 외모의 중년인, 비취 거북이 여관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여관 주인 역시도 상당히 많이 배운 사람으로 보이는데, 명나라말은 할 줄 몰랐다.
다행히 조왜어는 할 수 있었지만.
“몬족의 말은 배우기가 어렵나?”
“크메르어를 알고 계신다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까요.”
크메르는 200년 전,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정복했던 대제국이다.
오늘날 캄보디아이며, 앙코르와트 유적이 크메르 제국의 유산이다.
크메르어 문법은 베트남어와 비슷하지만, 고유 문자를 쓰고 발음도 달라서 익히기 어렵다.
내가 천재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언어를 익힐 수도 없는 법.
솔직히 이제는 어렸을 때 익혔던 여진족 말도 다 까먹었다.
조선어, 명나라말, 일본어, 조왜어.
현재 확실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여기에 아랍어와 튀르크어를 무함마드로부터 배우고 있다.
……유럽에 가려면 그쪽 언어도 익혀야 할 텐데.
지금 유럽은 라틴어가 가장 품격있는 언어려나.
“필요하시다면 통역사를 섭외해 올까요?”
“그렇게 해주겠는가?”
“다만 인성과 경력이 검증된 인재 중 대명어를 할 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조왜어를 할 줄 아는 이만 있을 뿐이지요.”
“충분하네. 그리고 혹시 이쪽의 화폐를 구할 수 있겠나?”
그렇게 말하며 은자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참고로 여관비는 한타와디 왕국 이름으로 달아두었다.
라자다릿의 호의라나.
“대명의 은자라면 화폐 중 최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공식 환율은 없기에 감히 제가 교환할 수는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사들이는 것이라면 가능합니다.”
“부탁하네.”
“예. 감사합니다.”
정화가 먼저 방문한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조공 질서를 세우면서 환율도 정해두었으니까.
난 정해진 질서를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파사이 술탄국에서는 믈라카 왕국의 룰을 따랐고.
새삼 이국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동방과 직접 교류를 해본 적 없는 유럽.
우리의 존재조차 모를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 교역하려면 얼마나 많은 난관이 기다릴까.
그래서 더 기대되었다.
어렵지만, 성취한다면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아침 식사 후에 통역사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러게나.”
“식사는 언제 준비할까요?”
“시간은 귀하니 빠르면 좋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여관 주인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언어도 품격있게 하고, 예법도 훌륭한 것을 보면 상당히 배운 사람 같다.
“외출하실 생각입니까?”
“응. 왕궁에 가기 전에 기본적인 분위기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모르면 당한다.
미얀마의 왕국들은 원나라에 당한 게 있는 만큼 명나라의 번왕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평시라면 몰라도 현재 한타와디 왕국은 전쟁 중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타국의 첩자가 전하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호위를 충분히 준비할게. 소군도 외출할 일 있으면 꼭 호위를 데려가. 한 10명 정도.”
“명심하겠습니다.”
그녀를 보다 보니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석피야!”
“예!”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석피가 재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네 여동생의 무예가 꽤 뛰어나다고 했던가?”
“상당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사냥꾼으로서 뛰어날 뿐, 건장한 남자를 상대로는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감각만 있으면 돼.”
감각이 있고, 총만 쏠 수 있으면 누구든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감각이라면 충분합니다.”
“혹시 내가 등용할 수 있을까?”
“예?”
“이소군이나 여성 간부의 호위가 필요해서.”
“조선에 귀환하게 되면 물어보겠습니다만, 아마 곧바로 승낙할 것입니다. 전에 조선에 갔을 때 여행담을 이야기해줬더니 자기도 가고 싶다며 졸라댔었거든요.”
“그래? 왜 말 안 했어?”
“싸가지가 없…… 흠흠. 워낙 천방지축이라 전하께 민폐를 끼칠까 봐 그랬습니다.”
현실 남매네.
“괜찮아.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여전사가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기왕이면 가르치는 능력도 있으면 좋은데. 여성 간부는 더욱 늘어날 테고, 여자 호위의 필요성도 늘어날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런 능력은 없다고 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짐승 같은 감각으로 움직이는 녀석이거든요. 아마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문제는 석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석피가 가르쳤던 이들도 모두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개인의 무예는 석피가 뛰어날지 몰라도, 병사 양성 능력은 척찬궁이 압도적으로 위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아침 먹고 잠시 나가자.”
“예. 평소대로 시장에 가십니까?”
“시장을 보면 대충 나라 사정이 짐작되니까.”
얼마나 다양한 물건이 있는지.
화폐로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시장 주인과 고객의 옷차림은 어떠한지.
등등.
이런 것을 보면 국력을 간접 추정할 수 있다.
“도엥 따 크놈 체아 아나크네아!”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데 밖에서 매우 큰 소리가 났다.
여관 본채에서 별채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데.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누군가 굉장히 화난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알아볼까요?”
“몬족 말이나 조왜어는 할 줄 알고?”
“……아니요.”
“됐다. 같이 가보자.”
소왕도 머무르는 고급 여관에서 소동이 일어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