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만달라 (2)
비취 거북이 여관 본관으로 가보니 보석으로 치렁치렁하게 장식한 뚱뚱한 남자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따에 므노싸 따오꾸테압 짜뜨 크놈 벱 니떼!”
“방촙 캄호엥 롭사 아나꾸.”
여관 주인은 연신 정중하게 대하고 있었으나, 뚱뚱한 남성의 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진상 고객을 맞이하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서비스업의 숙명인가 보다.
“무슨 일인가?”
“전하. 다름이 아니라…….”
여관 주인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 남자는 한타와디 왕국의 봉건 영주, 그러니까 도시국가의 소왕이다.
라자다릿을 만나러 먼 길을 왔는데 숙소가 없다.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별채를 비우라고 했다.
여관 주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별채에는 내가 머물고 있으니까.
그러자 소왕은 저렇게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의 소왕인데?”
“바세인입니다.”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흔한 삼류 악역이니까.
그래도 일차원적인 악역을 보는 건 오래간만이라 신선하네.
“이렇게 전하라. 비록 내가 더 돈이 많지만 미안하다. 돈이 없는 네가 이해해라.”
“예?”
“그대가 소왕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분노를 이쪽으로 돌리는 게 낫겠지.”
여관 주인은 내 말을 통역했다.
말투가 조곤조곤하고, 간단한 말을 길게 늘여서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내 말 그대로 전하지는 않고 굉장히 순화한 듯했다.
“តើអ្នកចង់មានសុវត្ថិភាពសូម្បីតែបន្ទាប់ពីធ្វើបែបនេះ!”
하지만 바세인의 소왕은 더더욱 분노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뭐라고 발음하는지 전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네가 그렇게 해도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냐고 합니다.”
통역이 조금 이상한데.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라고 한 거겠지?
“라자 나가. 그것이 나다.”
“បុរសឆ្កួត!”
“정신이 매우 아프신 분 같다고 합니다.”
미친놈이라고 한 거겠지?
“혹시 저자는 용왕이 누군지 모르는 건가?”
“잘 모르는 듯합니다.”
소국이라고 해도 왕인데…….
국제 정세에 무지하구먼.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말.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야 되겠냐?”
“예?”
“그대로 전하라.”
여관 주인은 다시금 굉장히 순화하여 통역한 듯했지만, 내 말에 바세인의 소왕은 폭발한 듯했다.
“នាំមនុស្សអាក្រក់ទាំងនោះចុះ!”
그의 외침과 함께 소왕의 사병들이 이쪽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나쁜 자들을 모두 쓰러뜨리겠다고 합니다.”
여관 주인은 통통한 몸매에 걸맞지 않게 빠르게 몸을 숨기면서 통역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혼란한 상황에서도 통역을 잊지 않았으니 서비스 정신 투철하다고 해야 하나.
혼자 몸을 숨겼으니 직업 정신이 없다고 봐야 하나.
탕! 탕! 탕! 빡!
미리 준비하고 있던 수석총병들이 방아쇠를 당기자, 순식간에 열댓 명이 쓰러졌다.
석피는 트레이드 마크인 원형 검무를 펼치며 대여섯 명을 거의 동시에 쓰러뜨렸다.
바세인의 소왕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선원들은 그를 끌어다가 내 앞에 무릎 꿇렸다.
“អ្នកគឺម៉ារ៉ា!”
“용왕은 악의 축이라고 합니다.”
몸을 숨긴 여관 주인이 얼굴만 빼꼼 내밀고 통역해 주었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악의 근원이라는 걸.
눈치 빠른 애송이는 싫어하는데.
“너는 축에도 못 끼는 새끼고.”
타국에서 이렇게 소동을 피우면 외교 참사를 걱정해야 하지만, 지금이라면 괜찮다.
오히려 손님 대접을 잘못했다고 역으로 따져도 되는 일이니까.
더욱이 인근에는 원정대 3만이 있고, 원 왕조에 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명의 번왕인 나를 압박할 수 없을 것이다.
명나라 엉덩이 뜨뜻하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어제 왕궁으로 들어갔던 나이 쉐 키인이 돌아왔다.
타이밍 죽이네.
30분만 일찍 왔어도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 텐데.
“이자는 바세인의 소왕이라고 하네.”
“아, 알고 있습니다. 바세인은 한타와디에서 꽤 강력한 소국입니다.”
“근데 나보고 별채를 비우라느니, 악의 축이라느니 무례를 범하기에 훈계하고 있었네.”
“맙소사…….”
“자네가 돌아왔다는 건 알현 준비가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예. 라자다릿께서는 바로 용왕을 뵙겠다고 하셨습니다.”
“좋군. 이 자는 라자다릿께 선물로 가져가야겠다.”
“……예?”
외교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대로 두면 녀석은 나에게 원한을 새길 것이며, 동시에 주변에 화풀이할 수도 있다.
“내 선물이 부족한가?”
“아, 아닙니다. 일단은 같이 가지요.”
“뒷처리도 부탁하네.”
“예!”
이렇게 보면 사이코패스 같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을 보면, 내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후계 작업.
그다음이 봉신의 약점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나 문화 등에 금기를 잔뜩 만들어 놓아 다양한 트랩을 설치한다.
잔혹한 말이지만, 주군은 신하보다 항상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안 그러면 내란이 일어나고, 다른 나라에 잡아 먹힐 우려가 생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킬방원이나 세종대왕이 흠이 있는 신하들을 끝까지 기용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약점을 감싸주는 대신 죽도록 부려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따라서 선물이라는 말은 진심이다.
한타와디의 봉건 제도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봉신을 합법적으로 잡을 명분을 주는 건 매우 훌륭한 선물이 될 테니까.
***
나이 쉐 키인과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
어제저녁에 항구에 도달했을 때는 도시 전체가 황금으로 보이더니, 지금 보니 하얀색이 많았다.
다만 처마라든가 곳곳에 황금 장식을 달아놓아 각도에 따라서는 왕궁 전체가 황금으로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건축 양식은 인도에서 많이 보던 힌두교 양식과 불교 양식이 섞인 것 같은데…….
“한타와디 왕국의 국교는 불교였든가?”
“예. 대명에서는 어떻게 불리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테라와다 불교라 부릅니다.”
“상좌부 불교라고 부르네.”
더 익숙한 이름은 소승 불교.
하지만 이는 비하, 혹은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을 때가 많아서 사용하면 안 되는 명칭이다.
반면 고려 때 널리 퍼진 교종이나 선종은 대승 불교에 속한다.
둘의 차이는 자신의 해탈을 중시하느냐, 많은 중생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느냐…… 라고 하긴 하는데, 사실은 교리 해석에 따라 다르다.
정확한 건 불교에 정통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
“그러고 보니 조선에서는 불교를 억압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는가?”
“남해에서는 용왕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지 않습니까. 이에 따라 조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요.”
이것도 한류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조류라고 해야 하나?
접두사에 K가 아니라 J를 붙이면 어쩐지 일본 문화 같은 느낌인데.
“불교를 억압하고 있는 건 사실이네만,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일세.”
“그렇습니까?”
“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운 나라가 아닌가. 그리고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는지라 그만큼 폐단이 쌓여있어.”
한국의 절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려 때 사찰은 장원도 보유하고, 군대도 보유했다.
그러면서 세금도 안 낸다.
미친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나중에 가면 유학의 뿌리 역할을 하는 서원도 세금 면제와 장원 소유로 폐단을 낳게 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지. 조선에서 불교는 없어지지 않을 걸세. 수백 년이 지나도 계속 이어지겠지.”
“아,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에는 불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들어서 혹시 얻을 수 없겠냐는 의미였습니다.”
“불교 유물?”
“고려 불화나 대장경판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자께서도 깊은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의외로 고려 시대 때 불교 유물을 원하는 나라가 꽤 있네.
일본에서도 대장경판을 원하는 다이묘가 그렇게 많다던데.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거부하고 있다.
불교 유물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한번 호구 잡히면 이것저것 다 내어줄 것 같다는 이유로.
“국가의 유물을 반출하는 건 어렵겠지만, 대장경판으로 찍어낸 서적을 가지고 오는 정도라면 할 수 있을 듯하네만.”
“오오. 라자께서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걸 선물로 하지.”
대장경판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고려가 망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외적이 쳐들어와서 백성들 잡아 죽이고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데, 부처님 힘으로 막겠다며 엄청난 세금을 들여 사치하고 있는 거니까.
차라리 성을 짓고, 군대를 양성하는 데 썼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지.
‘런’이라는 비폭력, 불복종 전통을 세운 선조도, 그 전통을 이어받았으나 무릎 관절이 부실하여 ‘런’도 제대로 못 하고 무릎 꿇은 인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무척 졸렬하긴 했지만, 백성들 걱정하는 ‘척’이라도 했으니까.
이것이 내가 조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고려보다는 업그레이드된 면이 많다고 보는 이유다.
물론 시대가 다르고, 국제 정세가 다른 만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타와디 왕국은 잉와 왕국과 전쟁 중이라 들었는데, 라자다릿께서는 왕궁에 계시는 건가?”
라자다릿은 용맹한 무왕.
친정을 자주 나간다고 들었는데.
“아직은 소규모 접전일 뿐이니까요. 군대가 모두 소집되고 나면 그때 직접 진두지휘하실 것입니다.”
“그렇군.”
봉건제의 단점이다.
각 영주가 군대를 보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지간해선 머릿수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품질은 보증하지 못한다.
그래도 명나라나 조선처럼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군대는 확연히 적다.
어떤 작가는 이를 두고 슈뢰딩거의 군대라고 하던데.
……신기하지.
지금은 군대가 20만인데, 왜 인구가 2배로 늘어나는 조선 중후기엔 병력이 더 줄어드는가.
우리는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어떠한 궁 앞에서 잠시 멈춰 세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라자를 알현하기 전에 잠시 몸수색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게나.”
나는 매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영락제를 알현하기 전처럼 옷 벗기고 수색한다는 건 싸우자는 소리고.
나이 쉐 키인은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내 몸 곳곳을 톡톡 치면서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되었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을 다 하는군.”
“호위 분들도 몸수색하겠습니다.”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갈 이는 석피뿐일세.”
석피는 편전이 들어간 갑을 건네고, 허리춤에 찬 굽은 검을 풀었다.
“아, 최측근의 검까지는 괜찮습니다. 다만 궁 내에서는 절대 검을 뽑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내가 통역하자 석피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수색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옥좌 위에 위엄있게 생긴 라자다릿이 있었다.
솔직히 잘 생기진 않았다.
사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엄있게’ 생겼다.
왕이라기보다 구르고 구른 베테랑 전사 같은 얼굴이라고 할까.
“명성 높은 용왕을 만나게 되어 무척 영광이다.”
그는 능숙한 조왜어로 말했다.
표준 조왜어라고 하기엔 성조가 들어가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알아듣는 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한타와디를 통치하는 영웅을 뵙습니다.”
“환영한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각종 편의를 봐줄 것이니, 부디 이 나라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란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주인의 예에 맞추어 객의 예를 지킬 것입니다.”
바세인 소왕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 터.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그런가. 그렇다면 그대에게 부탁이 있느니.”
“말씀하십시오.”
“나의 통치도 이제 20년을 넘었다. 따라서 후계자에 대한 걱정이 크다.”
아직 후계자가 없다는 게 더 신기한데.
“따라서 명의 번왕인 용왕의 조언을 구하노라.”
“대명의 책봉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다.”
라자다릿은 한쪽에 서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나는 그대가 내 자녀의 후견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 말에 신하들에게서 놀라움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