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
인간관계에 있어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항목은 매우 중요하다.
깊은 관계를 맺기는 힘들어지지만, 대신 파국으로 향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은 예방해주니까.
인생은 마라톤인 만큼,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러한 적당한 거리감을 익힐 필요가 있다.
사실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건 섬나라 주민들이 잘 익히는 미덕이다.
섬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으므로 갈등이 극으로 가면 공멸로 향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섬나라 사람들은 지도자를 신성하게 여긴다나.
대신 정말 큰 사고가 터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약속한 것처럼 외면하게 되는 단점도 생긴다고 한다.
근데…….
그 나라는 섬나라인데 어쩌다 그런 식으로 변해버렸을까.
이에 대해서 예전에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의 답변은 이러했다.
‘그 나라는 섬나라가 아니니까.’
‘영국이…… 섬인 걸 모를 수도 있어……?”
‘그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대영제국이야.’
‘다른가?’
‘그 나라 안에 섬 왕국도 있는 것뿐이야. 그 나라 안에는 인도나 캐나다도 있는데, 거기를 섬나라라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
그 말을 듣고 ‘역시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고 감탄했었지.
추가로 이런 말도 했었다.
‘어떤 일이든 숟가락을 얹으면, 항상 얻어먹을 게 생긴다.’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을까?’
‘귀찮은 일은 뒤로 미루면 돼. 정 힘들 것 같으면 잡아떼면 되고. 어떻게든 껴들기만 하면 콩고물이든, 체리피킹이든 먹을게 생겨.’
‘괜히 오만 곳에 끼어든 게 아니구나.’
‘대영제국이 침략한 나라가 몇 개일까?’
세계사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나라를 찍으면 된다고 하니까 상당히 많겠지만…….
나는 역사 전공이 아니므로 정확한 숫자는 몰랐다.
‘몇 갠데?’
‘22개.’
‘생각보다 별로 없네?’
‘전 세계 200개 이상의 국가 중, 침략하지 ‘않은’ 나라가 22개야. 그놈들이 이득도 안 되는데 오만 곳에 껴든 줄 아냐?’
사실 그동안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진다고 억울해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항상 무언가를 얻었다.
이제 동북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이어지는 바다는 사실상 내 상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타와디에서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한타와디의 해상 무역권은 거의 독점하다시피 가져올 수 있겠지.
운이 좋으면 달라 항구를 사실상 지배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고 해도 썩 유쾌하지는 않다.
나는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게 개인과 개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이나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매우 중요한 완충재라고 생각하니까.
깊이 연관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즉, 민카웅은 한타와디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뜻이렷다?”
하지만 ‘신 소부의 후견인’이라는 명목으로 거의 의무적으로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실은 나나 창해 주식 상단의 힘을 원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민카웅은 명군이니까요.”
라자다릿의 질문에 처음 보는 인물이 대답했다.
아마도 이 사람이 떼이다인 듯했다.
민카웅 왕의 동생이자, 얼마 전까지 사가잉 영지의 소왕이었던 자다.
외모는 평범한 동남아인 같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눈.
눈빛이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는데, 어쩐지 순수하고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난 떼이는 거 싫어하니까.
아재 개그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아이한테 좋다더라.
“샨주야 자체적으로 병력이 있으니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군대를 잃은 아라칸은 생각보다 빠르게 장악되리라 생각하오.”
아라칸의 왕, 민소몬이 말했다.
그는 잉와에게 왕국을 뺏긴 뒤, 한타와디에 망명한 상태다.
“따라서 지금이 적기라 할 수 있소.”
“흐음…….”
“라자시여. 군대는 신속이 중요한 법이오. 지금 망설이면 민카웅은 금방 재정비하여 방비를 튼튼히 할 터. 하늘이 주신 기회를 날려버릴 생각이외까?”
“나라를 되찾고 싶은 그대의 열망은 잘 알고 있느니. 하지만 군대는 신속뿐만 아니라 준비도 중요하다.”
“시간은 당길 수 없지만, 전쟁 준비는 앞당길 수 있소.”
“이미 그러고 있다.”
“더 당길 방법이 있소. 그렇지 않소이까?”
아라칸의 왕, 민소몬이 나를 바라보았다.
“본의 아니게 지옥에 떨어진 자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향할 생각은 있어도, 스스로 지옥으로 뛰어든 자에게 발목 잡혀 끌려들어 갈 생각은 없습니다.”
“전쟁은 지옥이 아니오. 지극히 현실적인 위협이지. 다음번엔 그대가 될 수도 있소.”
주먹으로 내 가슴을 퉁 하고 쳤다.
“잉와가 과거 바간 왕조의 위세를 되찾더라도 내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아직은…… 이라고 생각하지 않소이까?”
“영원히 불가능하다.”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용왕은 그대의 영화가 영원히 존재하리라 믿소?”
“영화는 내일이라도 당장 사라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기록과 사상은 영원히 남는다. 적어도 500년 이상은 갈 테니까.”
내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하자, 아라칸의 왕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같은 왕이라고 해도 그는 엄연히 망명한 왕.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실세다.
설사 아라칸이 점령되기 이전이라고 해도, 왕의 격이 다르다.
이쪽은 초강대국의 번왕.
그는 구 바간 왕조의 번왕인 격이니까.
“전사는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 소문에 의하면 용왕은 불패의 신화를 썼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내지 않았다.”
라자다릿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나도 놀랐다.
그러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전설적인 업적을?
“심지어 그중에는 열세 척의 배로 해적왕 진조의의 1만 군세를 몰살시킨 전투도 있지.”
해적왕 진조의는 믈라카 해협 일대를 중심지로 하여 활약했으므로 당연히 한타와디에도 악명을 떨쳤다.
적은 병력으로 악명 높은 해적왕의 군단을 단 한 번의 전투로 쓸어버린 업적.
세대가 바뀌기 전에는 한동안 계속 회자되겠지.
“그런 용왕에게 묻겠다. 지금 싸우면 우리가 이길 수 있겠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대의 군대를 모르고, 잉와의 군대를 모릅니다.”
“그대의 현재 생각을 듣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이라면 무기 없는 병사는 싸울 수 있어도, 배고픈 병사는 싸울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용왕은 오기보다 손무의 사상을 따르는가?”
이 시대에는 병법을 읽는 것도 기본 소양에 속한다.
병법의 최고는 태공망의 육도와 삼략을 포함한 무경칠서가 최고 존엄.
무경칠서 중에서도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을 투톱으로 본다.
둘을 합쳐서 손오병법이라고 할 정도로.
손자병법은 전략과 보급, 오자병법은 용병술과 전술을 기술하는데, 오자병법은 유실된 부분이 많아서 확실히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손자는 확실한 준비를, 오자는 신속을 중시했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아니요. 나는 경세제민을 중시합니다.”
“나는 전쟁을 말하고 있다만.”
“뛰어난 무기, 충분한 보급, 확실한 명분. 이것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그렇다 치지만, 확실한 명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보는가? 명분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한다만.”
“매우 중요합니다. 병사의 명예를 지켜주고, 사기를 드높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괜히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고 할까.
이는 내 주장이 아니라, 현대 최강 미군이 주장하는 바다.
베트남전의 패배에서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목표가 흔들리고, 목표가 흔들리면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걸프전에서는 압도적이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현대전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그 뒤 감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박살 냈다가, 베트남전 때의 경험을 반복하게 되지만.
“명분은 확실하다. 한타와디 왕국의 완전한 독립. 아라칸의 수복.”
“확실한 명분은 단점도 존재합니다. 명분을 넘어서는 일을 하면 부작용이 찾아온다는 점이지요.”
네가 원하는 게 정말 독립뿐이냐.
잉와 왕국을 집어삼켜서 미얀마 통일 왕조를 세우려는 건 아니고?
라는 질문이었다.
게임에서야 명분에 해당하는 전쟁만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니까.
‘상황 봐서.’ 혹은 ‘하는 김에 더!’라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타와디의 완전한 독립과 아라칸의 수복에 한해서는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인가?”
“라자다릿께서는 용감무쌍할뿐더러 무척 완고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협력을 구하는 데도 능숙하셨군요?”
“위대한 전사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뿐이다.”
“스스로 전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만약 누군가가 그대나 그대의 가족을 핍박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전사가 아니라고 해서 얌전히 당해줄 정도로 온순하진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싸우기로 결의했다면 전사다.”
그렇게 따지면 키보드 워리어도 전사…….
전사긴 하지.
“말씀드리자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라자다릿이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 할 때, 제지할 명분도 생깁니다만 괜찮겠습니까?”
“하나가 되지 않으면 싸움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하나가 되어도 싸움은 멈추지 않습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떠올리면, 오히려 힘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사상이 더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전쟁을 끝낼 수 있겠는가.”
“모두가…… 아니, 구 바간 왕조의 국민 8할 이상이 공감할 수 있는 미래를 제시하면 됩니다. 이상을 제시하고 그걸 달성한다면 싸움은 없을 것입니다.”
“용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타와디의 백성을 위해서 전쟁이 필요하다. 정말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안보 위에 세워진다. 잉와는 분명 온다. 이제 남은 것은 한타와디뿐이니까.”
“잉와는 통일을 원하겠지요.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그 야망을 꺾을 수 있습니다.”
“왜 다른 방식을 생각해야 하지?”
“죽음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항복하라는 게 아니다.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도 선택지에 넣으라는 뜻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음을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다른 이의 죽음에 연민도 갖지 못할 테고.
“모든 생명은 죽는다. 공포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느니, 차라리 코끼리처럼 당당하고, 범처럼 용맹하게 나아가겠다.”
“전쟁은 외교의 연장선이며 군주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전쟁은 이기든 지든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니까.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라자다릿은 터무니없는 이상론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단념하는 표정을 지은 걸 보면.
“전쟁은 일어난다. 우리는 그 외에 다른 방법 따윈 배우지 않았다.”
라자다릿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큰소리로 외쳤다.
“전 영지에 일러라. 전투 코끼리 30마리, 기병 1500기, 그리고 1만 8천의 군대를 소집하라.”
“예!”
“이번이야말로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의 종지부를 찍겠노라.”
그 말에 아라칸의 왕, 민소몬과 왕제 떼이다가 복수의 불길을 태웠다.
라자다릿은 군대 소집을 명했다.
내가 말리긴 했지만, 실은 내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준비하던 것.
나의 말 한마디로 막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따지고 들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대왕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저를 억지로 말려들게 한다면, 저도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라자다릿은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만이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말을 증명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