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죽음의 상인 (1)
처음부터 라자다릿을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인간이니까.
열 다섯에 아버지인 선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다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와는 사상이 아예 다른 인간과 함께 해봐야 불화만 생길 뿐이다.
라자다릿의 야망에 동참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행동은 해야 한다.
이것을 명분으로 여러 지원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지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영락제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계속 등골에 꽂은 빨대로 쪽쪽 빨아 먹지.
다행히 전쟁에 불참할 명분은 확실하게 있다.
잉와 왕국이 대놓고 영락제의 명을 거부했긴 하지만, 한타와디의 라자다릿도 그리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니까.
공멸을 노렸다는 명분이라면 전쟁에 불참해도 큰 위화감은 없을 터.
나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로 하고 궁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누군가 빠르게 나를 쫓아왔다.
“잠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떼이다?”
“떼이다라고 부르셔도 되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떼이닷이나 떼이다트에 가깝군요. 물론 떼이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잉와의 왕, 민카웅의 동생이다.
후계 갈등으로 한타와디에 귀순한 잉와 왕국의 왕제.
“그래서 무슨 일인가.”
“힘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라자다릿께 했다고 생각한다만?”
“라자다릿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내였지요. 하지만 그것은 민카웅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카웅 왕은 외교와 내정에 능할 뿐, 실질적으로 유능한 지휘관은 그대라고 들었다.”
“잉와의 왕이 전략과 전술에 밝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할 줄 알고, 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능력을 갖췄다면 명장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내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그 이름을 제대로 떨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내가 동남아시아 역사를 잘 모른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애초에 잉와와 한타와디의 국력 차이는 심하게 납니다.”
“그렇게 많이 나는가?”
“한타와디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번에 라자다릿이 준비한 군대의 규모를 아십니까?”
“전투 코끼리 30마리, 기병 1500기, 그리고 1만 8천의 병사라고 들었네.”
방금 말한 거니 당연히 기억한다.
“잉와는 정신없는 이 와중에도 그 이상의 군대를 편성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전투 코끼리 100마리, 기병 2,000기, 그리고 2만 5천의 대군입니다.”
떼이다의 말 대로 국력의 차이가 느껴진다.
……솔직히 조금 부럽긴 했다.
한반도에 쳐들어온 외적 규모를 보면 3만은 대군이 아니라 정찰대 수준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생각보다 기병이 적군.”
“말이 부족하니까요. 보시다시피 말을 쉽게 키울 환경은 아닙니다. 게다가 기병이 활약할 수 있는 전장도 적지요.”
“종합하자면 잉와 왕국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도, 한타와디보다는 강력하다. 그러니 나의 힘이 필요하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가?”
“예. 그렇습니다.”
“민카웅 왕에 대한 분노가 상당한 모양이군.”
떼이다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잉와의 왕은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다음 대 왕위를 저에게 물려주기로요. 그 말을 믿고 목숨을 바쳐 열심히 싸웠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이의 배신이 이렇게 가슴 아플 줄은 몰랐군요. 하하하.”
“다음부터는 그렇게 중요한 일은 꼭 계약서를 작성해 두게나.”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다음을 노릴 수 있다.
명분도 얻을 수 있을 테고, 왕이 약속을 어기면 만달라 체제 같은 봉건제는 크기 흔들릴 수 있으니까.
“잉와는 혈통을 중시합니다.”
“안 그런 곳도 있든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길 겁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건가?”
“예?”
“부모와 자식은 1촌이지. 그리고 형제는 2촌일세. 자네 말대로 혈통을 그렇게나 중요시한다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숨겨진 의미도 있었다.
혈통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네가 복수하겠다며 나라를 저버린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냐.
그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었다.
계약서를 쓰라고 했더니, 가족 간에는 그러는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장모님 딸이랑 그러는 거 아니야.’ 같은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전쟁에 직접 참여할 생각은 없네.”
“직접 관여하시지 않으셔도 전쟁의 향방을 바꿀 방법은 있습니다. 잉와와 한타와디의 싸움은 언제나 보급이 좌우하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나는 전쟁의 향방을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네만.”
“……예? 용왕께서는 신 소부 공주의 후견인이 아닙니까?”
“그렇다만?”
“가족이 위험한데 그걸 보고 계시겠다고요?”
대체 이 인간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 가족을 조지려고 적국에 투항했으면서 웬 가족 타령?
“신 소부 공주는 내가 보호할 걸세. 내 장담하지. 한타와디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리라고.”
“육체는 지킬 수 있어도, 마음은 지키지 못하실 겁니다.”
“그걸 안다면 전쟁을 말리게.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한타와디는 영화를 이어나갈 수 있어.”
“…….”
“전쟁을 고집하는 사람이 별 이상한 걸 다 신경 쓰는군.”
그는 정말 우수한 장군이 맞나?
말하는 걸 보면 덜떨어진 궤변론자 같은데.
한심하게 쳐다보는 내 시선을 알아차렸을까.
떼이다는 이를 악물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라자다릿께서는 1만 8천의 군대로 따라와디로 향합니다. 따라와디를 수복하면, 한타와디의 국경을 확정 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도 별도 첨부]“그런데?”
“당연히 잉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잉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나보다는 라자다릿께 말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네.”
“물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을 결심하신 거고요.”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지만 궁금하긴 했다.
“그 약점이 뭔가?”
“따라와디는 한타와디의 수도, 페구와 무척 가깝습니다. 여차하면 이라와디 강을 이용해 배로 보급하는 방법도 있지요. 반면 잉와의 수도와는 매우 멉니다.”
“알고 있네.”
비밀조차 아니다.
그냥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또한, 이라와디 강이 한타와디의 수군에 의해 봉쇄되어 있으며, 아라칸 왕국 정벌과 샨주 반란 진압 등으로 제대로 된 보급을 챙기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대의 말대로 민카웅이 대단한 명장이라면, 당연히 대비하지 않았겠는가.”
“따라와디에는 나름대로 방비가 되어있고 군량도 쌓아놓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합니다. 따라서 민카웅은 단기 결전을 노릴 것입니다.”
떼이다가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전쟁에 절대는 없지만, 이 전쟁은 어지간하면 패할 리 없는 ‘이겨놓고 시작하는 전쟁’이다.
그러니까 도와줘라.
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도록.
“글쎄. 나는 영 내키지 않네. 자네의 진심도 모르겠고.”
“……대체 어떻게 하면 이보다 더 진심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까?”
“내가 답해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닐세. 그대가 생각해야 할 문제지.”
전쟁은 땅따먹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통성 때문에 하기도 한다.
라자다릿도 그렇고, 떼이다도 그렇고 순수하게 보급만 원한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건 어떤가.
명나라의 번왕이자 남해의 주도권을 잡은 용왕이 ‘나’를 인정했다.
따라서 내가 정당한 지배자다.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
딱히 손해 보는 건 없지만, 어떻게 쌓은 이름값인데 공짜로 빌려줄 생각도 없다.
“난 이만 가지. 하나 말해주자면, 자신의 마음도 정리하지 않은 사람이 남을 설득할 수는 없네.”
“…….”
머리를 쥐어뜯던 떼이다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
나는 신 소부 공주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의외로 궁에서는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후견인이라는 직위는 생각보다 피후견인에 대한 권리가 다양하고 큰 모양이었다.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상단의 간부들을 모았다.
“이소군이 신 소부 공주를 봐줘.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
“이소군?”
“예? 예. 알겠습니다.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다 들었네.
무의식의 영역 같은 건가.
“시장은 어땠어?”
“전쟁을 앞두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찼습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엿보였습니다.”
“상당히 부유한 나라로 보입니다. 보석도 넘쳐나고, 먹을 것도 풍족합니다.”
“농사도 잘되고, 무역 역시도 잘 되는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부 중 하나는 손으로 부채질하는 시늉을 했다.
“무척 후덥지근하다는 점을 제외하면요.”
시기는 어느새 10월이다.
1406년 10월.
내 기억이 맞는다면 미얀마에서 10월은 우기다.
6월에서 8월이 우기의 절정.
10월은 우기가 끝나가는 시점.
이제 곧 건기가 시작된다.
다르게 말하면 전쟁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뜻이다.
“신의 축복은 인간에게 독일 수도 있지.”
“예?”
“자원이 너무 없어도 싸움이 일어나지만, 풍족해도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현대에도 그 자원 때문에 내부 갈등이 심각해서 발전하지 못하는 나라가 적지 않으니까.
자원의 저주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특별한 점은 없었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도 좋아.”
브레인스토밍이다.
기본 골격은 잡아놨는데,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특이한 점이라면…… 대체로 온화하고 친절한 편이더군요.”
“저도 그 점이 의아했는데, 불교가 백성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아~ 알아요. 그래서 그런지 절이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승려는 여러모로 존중을 받는다고 합니다. 함부로 대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도 하는군요.”
“세속 5계라는 계율도 있는데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술과 음약을 금하는 계율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은데요.”
“전에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면, 현실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에 종교에서는 더더욱 금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치안은 좋지 않나요? 다른 나라에서 겪었던 소매치기 같은 것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가장 특이한 점이었다면 숫자 9를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군요. 어느 나라든 행운의 숫자는 있지만,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9를 좋아합니다.”
간부들은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불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업의 흐름 같은 걸 원했는데.
브레인스토밍 중이라고 해도 대화가 너무 불교 쪽으로만 향하는 것 같다.
흐름을 바꿔줄 필요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국경을 오가는 상인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다행히 브레인스토밍을 끊기 전에,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꾼 이가 있었다.
“국경을 오가는 상인? 지금은 전쟁 중이다만?”
아직은 아라칸에서나 산발적인 교전이 일어나는 정도지만, 그래도 엄연히 전쟁 중이다.
그런데 상인이 오고 간다고?
“배를 타고 이라와디 강을 따라서 물건을 파는 이도 있지만, 자신들만의 특별한 길을 이용해 국경을 넘나드는 이도 있다고 하더군요.”
본능적으로 느꼈다.
범상치 않다는 것을.
“그들은 군수물자만 골라서 판매하고 유령처럼 사라진다고 합니다.”
“흔한 괴담 같은 이야기군.”
괴담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마약 상인 관련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과 접촉할 수 없으면 큰 의미는 없어.”
“어쩌면 접촉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응?”
“왜구였다가 믈라카의 용병이 되었다가, 한타와디까지 흘러들어온 상인이 있다고 합니다. 외지인인 만큼 배척받는 편인데, 항상 잘 먹고 잘사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 역시 범상치 않네.
“그게 누군데? 만나러 가보자.”
“달라 시장 외곽에 있는 괴인입니다. 이름이 확실히…… 무다구치 렌야라고 들었습니다.”
“……?”
형이 거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