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4
013화 배금(拜金) (2)
양반에게는 권리이자 의무가 두 개 있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제사를 지낼 수는 있으나 평민은 부모의 제사만, 양반은 4대조까지 제사로 모실 수 있다.
딱히 효심이 엄청나서가 아니다.
제사 지낼 땐 가장 귀한 음식을 올리는 법.
게다가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한다.
가문 사람들이 모여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그리하여 인근 백성들을 불러모아 ‘음복’이라는 명목으로 제사 음식을 먹인다.
이는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민심을 얻기 위함이기도 했다.
본인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문의 조상이 얼마나 훌륭한지 권세를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런 제사를 지내기엔 조선 관리의 녹봉은 짜다.
조선에서 제일가는 엘리트인데도 매우 짜다.
굶지 않고 겨우 살 수 있을 정도.
이나마도 임진왜란 이후에는 절반 이하로 준다지?
고관대작도 녹봉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가문의 머슴이나 노비에게 지급해야 하는 쌀을 제외하고 나면, 정1품과 종9품의 녹봉은 엄청나게 차이나지 않으니까.
게다가 녹봉을 쌀, 콩, 베 등 현물로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인근 백성들을 불러모을 정도로 큰 제사를 지낼 수 있을까?
그것도 4대조까지?
그래서 이용하는 게 두 번째 권리이자 의무인 ‘접빈객’.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선물을 받아 재산을 늘리는 방식이다.
권세 있는 대감집은 선물을 주고받는 횟수가 1년에 수천 번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조정에서는 당연히 이를 알고 있지만, 생계를 위해 매관매직이나 부정부패로 빠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눈감아 주는 눈치다.
문제는 바로 나.
천애 고아에 일개 사관인 나한테 선물을 줄 사람은 없다.
제사는 대추랑 차 한 잔, 쌀밥에 숭늉 정도만 올리는 것으로 끝내고, 빈객은 찾아오지도 않는다.
즉, 가난하다.
고관대작은 비단이라도 받는다는데 난 받아 본 적 없다.
정5품 녹봉은 아직 못 받아 봤으니까.
“정말 그리 생각하신다면 운에 맡기어 인생을 걸어보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소군에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것은······.”
“제 전 재산입니다. 은자 열 냥이 들어있지요.”
당연히 내가 모은 돈은 아니다.
내 녹봉으로는 먹고 살고, 종이와 서적을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 사정을 뻔히 아는 우리 전하가 배 타기 전에 챙겨준 돈이다.
역시 킹방원 형님.
아랫사람들을 참 잘 챙겨준다.
사람을 강제로 부려먹는다는 점과 까딱하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단점만 제외한다면 이보다 좋은 상사는 없을 것 같다.
“이 돈을 왜 저에게 주십니까?”
“주는 게 아니라 투자입니다.”
귀뚜라미 싸움을 가리켰다.
“당신이 승자를 맞춘다면 전부 제가 갖겠습니다. 반대로 틀렸다면 저만 돈을 잃고 끝나겠지요.”
나는 그녀의 인생을 모른다.
그렇기에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녀는 운이라는 미신을 믿어서라도 어떻게든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스스로 움직이고자 하는 이에게 손 한번 내밀어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인께서는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라는 걸 배우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때의 변덕이라고 해두죠.”
아무 이유 없다.
하지만 이소군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기에 굳이 이유를 찾아서 말해주었다.
“저는 곧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납니다. 당연하지만 살아 돌아올 거라는 확신은 없지요.”
정화의 원정은 성공적이었지만, 사상자가 없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염병에 걸리거나 죽은 이는 곧바로 바다에 던져 수장했다.
심지어 총사령관인 정화조차도 7차 원정 도중 죽자, 시신을 인근 바다에 던져 수장했다고 한다.
규율을 얼마나 철저하게 따랐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아무리 대비한다고 해도 객사하기 딱 좋다는 뜻.
운을 믿지 않지만, 운이 필요했다.
“뭐라도 좋으니 행운이 함께할 거라는 증명을 갖고 싶네요.”
“대인께서는 운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예. 맞습니다. 인과응보.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믿지요.”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저에겐 어떠한 대가도 따르지 않습니다.”
“왜 없습니까?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거지를 주인으로 모시게 될 텐데요.”
그녀는 역적의 딸.
도망가면 바로 죽음이다.
운 좋게 신분을 완벽하게 숨겼다고 해도 위험하다.
치안이 무척 불안하여 건장한 남자도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시기니까.
“그래도 열 냥이나 되는 은자를 내기로 거는 건······.”
“제 인생 값에 비하면 무척 저렴합니다.”
나는 조선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아메리카까지 연결하는, 세계 모든 무역항로의 주인이 될 사람이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투실솔에 걸지는 않겠습니다.”
“······네?”
“어차피 운을 시험할 거라면 차라리 저기에 걸겠습니다.”
이소군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복권.
“작년부터 유행하는 쌍색구(双色球)라는 복권입니다.”
형태가 어째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빨간 공은 1부터 20까지 있으며 이 중 세 개를 맞춰야 합니다. 파란 공은 1부터 10까지 있는 데 하나를 맞춰야 하지요.”
“로또잖아······.”
“조선에도 있습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뒤 계속 룰을 들었다.
사실상 로또다.
로또와 차이점이라면 당첨금이 정해져 있다는 것.
1등 상금은 은자 한 냥이다.
대신 중복으로 당첨된다면 중복된 만큼 당첨 금액의 배수로 받는다.
예를 들어 10장이 당첨된다면 은자 열 냥을 가져간다는 이야기.
아무도 당첨되지 않는다면 주인장이 전부 가져간다고.
“투실솔은 귀뚜라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순수한 운이라고 말하기엔 어렵지요. 하지만 쌍색구라면 정말 운에 맡겼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잠깐만요.”
귀뚜라미 싸움은 그래도 5대 5에 가깝기라도 하지.
이건······.
“빨간 공을 다 맞출 확률은 3x2x1을 20x19x18로 나누면 되겠지.”
얼핏 계산하기에도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확률이 낮다.
“약분하면 60×19분의 1이니까······ 1,140분의 1이네.”
여기에 파란 공 당첨 확률인 10분의 1도 곱해야 한다.
따라서 1/11,400의 확률.
0.00877%다.
어라?
모바일 게임의 가챠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의외로 혜자인 것 같은······.
미쳤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운에 맡기는 건 좋지만, 이건 너무 바보 같은 짓입니다.”
“남자가 결심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망한 남자가 한 둘이 아닙니다만······.”
“자, 가요.”
내가 살짝 당황하자 이소군은 오히려 즐거운 듯이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러세요.”
어차피 파락호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자에 빠져 재산도 탕진하고, 도박도 해줘야지.
게다가 저 돈이 없어도 곤란할 일은 없다.
필요하다면 정화에게 샤바샤바 해서 받아낼 수 있으니.
“이 돈 전부 걸겠습니다.”
이소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은자 열 냥을 걸었다.
“전부 말입니까?”
복권을 관리하던 사내가 깜짝 놀랐다.
은자 한 냥은 동전 1천 개가 표준.
불안정한 시기인 만큼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이라, 민가에서는 동전 1300개 정도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시장에서 은자 한 냥은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고액이다.
돼지고기 한 근의 가격이 동전 20문이라고 하니.
“예. 전부입니다.”
어우. 시원시원하네.
장군감이야.
근데 그거 네 돈이 아니······ 됐다.
“복권은 총 1,300장입니다. 숫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권 한 장에 10문이라.
역시 대륙 스케일이다.
조선에서는 한 장에 1문인데.
백성을 뜯어먹는 스케일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전부 같은 숫자로요.”
“잠깐만요. 다시 생각해봐요.”
1,300장을 전부 다른 숫자로 한다면 확률은 1,300/11,400.
11.4%의 확률로 은자 한 냥이라도 건질 수 있다.
2등 이하의 당첨금까지 생각하면 은자 2~3냥까지도 회수 가능이다.
자동 선택도 없는 이 시대에 경우의 수 1,300개를 언제 다 쓰냐가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운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맡기지요.”
“······그러세요.”
속으로 결심했다.
앞으로 이소군에게는 돈을 맡기지 말자고.
그녀는 당당하게 빨간 공 숫자 세 개와 파란 공 숫자 하나를 골랐다.
복권 담당자는 나무 패 하나에 숫자를 써서 넘긴 후 장부에 ‘1,300배(壹千參百倍)’라고 적어두었다.
“참 신기합니다.”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행운을 바라며 복권에 동전 10문을 쓸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심지어 복권을 산 이들은 대부분 행색이 좋지 않았다.
하층민이라는 뜻.
삶이 너무 퍽퍽하기에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다.
“저들은 운을 믿지 않습니다.”
“예?”
“돈을 숭배할 뿐이죠.”
“소저는 운이라는 미신을 믿습니까? 아니면 돈이라는 가짜 신을 믿습니까?”
“송구하오나 먼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대인께서는 돈을 숭배하십니까?”
“아니요.”
매우 중요하다고는 생각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만한 것도 없다.’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여겨지고.
하지만······.
“돈은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요?”
“지배해야 할 대상이죠.”
국가, 종교와 더불어 인간이 만들어낸 3대 발명품 중 하나일 뿐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점점 쌍색구 복권으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남경 시장에서도 가장 북적이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군요.”
“본래 복권은 인기가 많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제가 많은 돈을 걸었기에 과열된 것뿐이지요.”
“······설마 이걸 노렸습니까?”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을 보기 위해?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부족한 소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온 세상이 불타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녀처럼.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당첨 번호를 추첨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다시 이소군을 보았다.
“이제는 소저께서 답할 차례군요. 운이라는 미신을 믿습니까? 아니면 돈이라는 가짜 신을 믿습니까?”
“소녀는······.”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
“운명을 믿습니다.”
이소군은 복권 패를 내밀었다.
패를 받자, 내 눈은 자연스럽게 번호가 쓰인 게시판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단 하나의 숫자도 맞지 않았다.
“이것도 능력이네.”
단 하나의 숫자도 맞지 않을 가능성은?
19x18x17을 20x19x18로 나눈다.
이건 계산이 쉽네.
17/20.
여기에 9/10을 곱하면 된다.
76.5%
······하나도 안 맞을 만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이 없으니 구경만 하다 돌아가는 거지요.”
그녀는 담담한 척 애썼지만,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향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복권을 통해 점친 것처럼.
반면 나는 태연했다.
이 확률이면 당첨되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저를 벌하시진 않습니까?”
“왜요?”
“대인의 돈을 모두 잃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허락한 일이니까요.”
허락 없이 주인의 돈을 썼다면 당장 쫓아냈겠지만.
“다만······ 행운의 여신은 아름답고 풍성한 머리를 가진 소저에게 좋은 감정이 없나 봅니다. 앞으로는 운을 믿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복신(福神)이 여성이라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거니와 머리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도 처음입니다.”
“머나먼 곳의 민담입니다.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어서 지나가고 나면 잡아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세요. 뒷머리를 잡아챌 수 없는 건 행운의 여신만이 아닙니다.”
“······.”
“운만 탓하며 낭비하기엔 시간과 젊음의 가치 역시도 황금 못지않으니까요.”
이소군에게 멋지게 말한 후, 진지한 표정으로 석피를 바라보았다.
“석피야.”
“예. 나리.”
“나 은자 한 냥만 꿔주라.”
너 돈 많잖아.
영락제에게 받은 은자 백 냥.
아니지.
이제 나보다 돈 많으니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제발.”
거울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내 표정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