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죽음의 상인 (4)
“이게 정말 라자다릿이 보낸 서신이란 말인가?”
“유감스럽지만 사실입니다. 라자의 인장도 찍혀 있지 않습니까.”
나이 쉐 키인은 송구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대체 라자다릿은 나를 어떻게 보기에 이런 서신을 보낸단 말인가?”
서신에는 어떻게 잉와를 지원할 수 있냐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민카웅의 군대는 분명 보급이 없을 텐데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용왕께서 밀수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상업에 중요한 건 변수지. 변수를 없애기 위해 알아본 것뿐일세.”
“어쨌든, 라자다릿께서는 크게 분노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래도.”
난 정말 억울하다.
그러려고 했지만, 아직은 안 했으니까.
상황이 조금 더 심각해지면 하려고 준비해놓기는 했다.
“그렇다면 성의를 보여주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성의?”
“용왕 전하께서 라자다릿을 지원해주신다면 의심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나를 협박하는 건가?”
“의심을 풀 방책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나 이 새끼.”
“예. 어쩐지 평소와 발음이 다른 느낌이군요.”
“기분 탓일세.”
잠시 생각해보았다.
라자다릿에게 무죄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증거도 없이 이런 무례를 저지른 라자다릿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나중에 영락제가 추궁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된다.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대체 어떤 놈이 내가 하려던 걸 먼저 한 거지?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지.”
“예?”
“진짜 원인을 밝혀내면 내 무죄도 자연스럽게 증명될 게 아닌가.”
나이 쉐 키인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정면에서 노려보았다.
“내가 만약 무죄를 증명하면 라자다릿도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명심하게.”
“무,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라자다릿께 서신을 보내게나.”
“예!”
나이 쉐 키인은 자연스럽게 내 저택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잠깐.”
“말씀하십시오.”
“서신을 보내고 곧장 돌아오게.”
“……네?”
“옆에서 확인하고 증언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진범을 밝혀내도, 조작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라자다릿의 심복이 필요하다.
“미리 말하지만, 거부권은 없어.”
“예. 알겠습니다.”
나이 쉐 키인이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간부들을 소집했다.
“……이런 이유니까 다들 입단속 잘하고.”
무다구치 렌야를 보았다.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명나라의 번왕과 밀수업자의 발언권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조금 곤란해질 뿐이지, 위험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입장은 확실하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좋아. 따웅우 왕국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겠나?”
매우 높은 확률로 거기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따웅우 왕국과는 한 번쯤은 접촉할 필요가 있으니까.
“큰돈을 벌려면 역시 소나 말을 끌고 가야 합니다.”
“소나 말을 끌고 가려면 건초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하지 않은가?”
“예? 소나 말은 초식동물입니다.”
“아무 풀이나 먹으면 병에 걸릴 수도 있네.”
“필요 없어지면 먹으면 되지요.”
“……수레는 누가 끌고?”
“이곳의 소는 이곳의 풀에 익숙합니다. 정 안 되면 중간중간 마을에서 조달하면 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무능해 보이는데.
정말 능력 있는 거 맞아?
“게다가 모기가 많아. 우림에서 함부로 자다가는 학질로 객사할 것 같군. 이질을 생각하면 물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터인데.”
“하하하. 모기랑 학질이 무슨 상관입니까?”
“…….”
“그리고 학질은 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건 정신력 약한 자들이나 엄살떠는 병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대책이 없다.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대책 없는 근성론자라는 평가가 새겨지고 있었다.
“사실 용왕께 추천할 만한 길은 아닙니다. 저는 부하들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내가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을 선원들에게도 시키고 싶지 않네.”
“…….”
무다구치 렌야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줄은…….”
“그대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들은 따웅우와 달라를 왕복합니다.”
“이곳을?”
“달라 항구는 한타와디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니까요.”
미래에는 강 바로 너머에 있는 다곤, 그러니까 양곤이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잉와로부터 방어하기 쉽기에 달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따라서 달라에 있는 그들의 숙소를 급습하면 보다 정확한 사정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내 무죄를 증명할 단서가 나올 수도 있겠고.
“어디에 있는지는 아는가?”
“물론입니다.”
***
나는 석피와 100여 명의 수석총병, 그리고 무다구치 렌야, 나이 쉐 키인과 함께 밀수 상인들의 아지트로 향했다.
시 외곽에 있었던 무다구치 렌야의 집과는 다르게, 밀수업자들의 아지트는 달라 시 한가운데에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집 같다.
“…….”
“왜?”
“아닙니다.”
석피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잡으려고 애썼던 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있을 줄은…….”
나이 쉐 키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겉보기보다 상당히 컸는데, 인근의 집을 사서 개조한 듯싶었다.
“텅 비었네?”
“이상합니다. 밀수업자들은 따웅우로 향할 때도 경비를 둡니다만.”
“본거지를 완전히 비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정보가 샜다는 뜻이다.
근데 정보가 샐 곳이 없는데.
창해 주식 상단은 한타와디 밀수업자와 연관이 있을 리가 없고.
무다구치 렌야가 이들과 관계있었다면 처음부터 아지트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겠지.
나이 쉐 키인에게는 이 아지트를 급습할 거라고 말해주자마자 바로 온 만큼, 몰래 알려줄 틈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험해볼까?
“에이. 허탕이네.”
“어떻게 할까요?”
“어쩔 수 없지. 불태우자.”
“……네?”
“밀수업자의 아지트라며. 혹시 모르니까 불태우자고.”
“이곳은 대만국이 아니라 한타와디 왕국입니다. 아무리 용왕이라고 하셔도 마음대로 이런 일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나이 쉐 키인이 당황해서 답했다.
“무다구치 렌야. 이곳이 밀수업자들의 본거지가 맞지?”
“예. 맞습니다.”
“라자다릿이 화난 이유가 몰래 보급해주는 곳 때문이라며. 그러니까 그 근거지를 부숴주겠다고.”
“범인은 따웅우 왕국입니다.”
“그럼 범인이 따로 있는데 나한테 화낸 거네? 이거 외교 문제 맞지?”
“…….”
“됐고. 보이는 거 전부 다 부시고 불태워.”
“자칫 달라시 전체에 대화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 미리 잘 대비해서 태우면 깔끔하게 목표물만 태울 수 있어.”
대기는 오염되겠지만, 그런 건 신경 안 쓸 테니까.
“왜 꼭 태우려고 하시는 겁니까?”
“불 타죽기 싫으면 쥐새끼들이 뛰쳐나올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집 구석구석에서 숨어있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렇지?”
분명 아까 둘러봤을 때 사람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지하에도 시설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기둥 사이에 공간이 있든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명나라말 잘하네. 외모도 익숙하고. 화인인가?”
“그렇소.”
“그렇소? 말이 짧다?”
중국어에 존댓말은 따로 없지만, 붙임 말을 통해 정중한지, 건방진지 알 수 있다.
“멋대로 들어온 불청객이 예의를 바라는가?”
“응. 너희 때문에 내가 오해를 받았거든. 그래서 너희 싹 다 잡아가려고 하는데, 예의를 차려야 정상참작이라도 되지 않겠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런 이야기다.”
손날로 옆에 있던 나이 쉐 키인의 목을 세게 후려쳤다.
“크악!”
“잡아.”
석피가 빠르게 그를 제압했다.
……기절시키려고 했던 건데 영화처럼은 안 되는구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가 여기를 태우려고 할 때 너만 반대하더라?”
“한타와디의 궁정 관리이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님 말고.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예?”
“라자다릿이 먼저 나에게 무례를 범했다. 그러니 그 신하에게 화풀이해도 별 상관은 없어.”
생각해보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이 생기긴 하겠네.
“아니다. 그냥 밀수업자와 싸우다 죽은 것으로 하자.”
“……이런 사람이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속고 있군요!”
“내가 믈라카에서 느꼈던 게 뭔지 아나?”
“…….”
“큰 소리로 떠드는 몇 놈만 처리하면 조용해진다는 거야.”
다양한 의견은 꼭 필요하다.
의견의 농도를 알 수 있도록 때로는 극단적인 의견도 필요하고.
하지만 극단에 선 자의 목소리가 크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극단에 선 자가, 목소리가 크고, 높은 지위에 있다면 더욱 위험하고.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네가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하길 원한다고 했을 때부터.”
“예?”
“그다음에 곧바로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그리고 권력은 덧없으며, 어떤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부터.”
어떤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전쟁을 원한다.
그때부터 이 녀석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굳이 해코지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내부 첩자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가장 의심되는 사람부터 차례로 쳐내다 보면 걸러낼 수 있다.
지금은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따지지 않는 시대니까.
“죽기 전에 말해봐. 밀수업자들에게 미리 몸을 숨기라고 알려준 거…… 너지?”
“…….”
“미리 말하지만 아님 말고다. 네가 살 방법은 없어.”
죽기 전에 시원하게 속풀이하고 죽느냐.
아니면 당장 죽고 밀수업자들에게 당한 것이 되느냐.
그 차이다.
“크흐흐흐. 하하하!”
나이 쉐 키인은 탐정만화의 범인이 자백하기 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웃었다.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용왕 전하.”
틀렸나 보네.
그럴 수도 있지.
“그래. 잘 가라.”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가장 화려할 때 진다.”
“응?”
“그것이 인생이며 예술이 아니겠습니까?”
‘예술적으로 가고 싶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대체 무슨 개소리를 씨불이는지.
***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이 지루한 눈치싸움이 지속되는 전장.
“연기가 적게 나는군.”
라자다릿은 며칠 간의 관찰 끝에 확신했다.
적진에서 올라가는 밥 짓는 연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이는 군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퇴각한다.”
“예? 그럼 지금까지 무엇을 기다리신 겁니까?”
“이제 녀석들은 본대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 말씀은…….”
“배를 타고 프로메로 간다.”
[지도 별도 첨부]프로메.
프롬이라고도 불리는 잉와의 요충지.
이곳을 뚫으면 이라와디 강을 통해 잉와의 수도까지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다.
그야말로 이 전쟁에 종지를 찍을 수도 있는 한 방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적군이 페구로 직접 올 수도 있습니다.”
“페구는 군량도 없는 잉와가 쉽게 함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니면 달라로 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괜찮다.”
라자다릿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때를 위해 용왕을 남겨두고, 명의 책봉을 받기로 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