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42
141화 예상치 못한 결말 (1)
즉시 간부 소집을 명했다.
세상에 평화로운 곳은 없다지만, 진짜 가는 곳마다 피바람이 부네.
환생하기 전이였다면 이 시기 동남아시아에 이렇게 많은 파란이 있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지금은 조선 최대의 황금기가 시작되는 평화로운 시대로만 알려져 있으니까.
“회의장에 가는 거지? 같이 가자.”
“예.”
회의장으로 향하는 이소군을 마주쳤다.
그녀는 신 소부 공주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못 본 사이 상당히 친해진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니 엄마와 딸……은 아니고,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응? 설마 그녀를 데려가게?”
“그건 아닙니다만…….”
“…….”
내 말에 신 소부 공주는 이소군 뒤에 숨으며, 떨어지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였다.
바깥 일만 하느라, 관계가 소원해진 딸을 보는 느낌이었다.
딸이라고 하기엔 그리 친해진 적도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신 소부 공주는 전쟁을 앞두고 무척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음? 그러고 보니까 둘은 어떻게 의사소통하는 거야?”
“제가 몬족의 언어를 배웠고, 신 소부 공주는 명나라말을 배웠습니다. 서로 가르쳐주고 있지요.”
“이상적이긴 한데, 언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건 아니잖아.”
“이곳에 머무른 기간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기초 회화 정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요.”
언어적 재능이 있다면 그렇게 이상할 일도 아니다.
현대에도 그런 이가 많고.
하지만 그건 언어 학습법이 체계화되었을 때의 이야기.
기초 회화라고 해도, 한 달 만에 의사소통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다.
이소군이야 공부에 익숙하다지만, 신 소부 공주는 어린 나이임에도 집중력이 꽤 강한 듯싶다.
“신 소부 공주는 무척 차분하고 인내심도 강합니다. 다만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는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같이 가지.”
“예?”
“같이 있어 주는 것만큼 확실한 해결책도 없을 테니까.”
신 소부 공주는 중요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라자다릿에게 제대로 뜯어내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후견인으로서 제대로 신경 쓸 필요가 있다.
***
간부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전쟁이라고 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그런데 꼭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이는 해적이나 왜구에 침략당한 것도 아니고, 한타와디에서 선공한 것입니다만…….”
간부의 의견은 지당했다.
억울하게 당한 거라면 보호해줄 명분이라도 있지, 라자다릿은 본인의 야망을 위해 선빵을 날린 거니까.
“우리 상단이 항상 표방하는 게 있다. 그게 뭐지?”
“백성을 위한다…….”
“라자다릿과 한타와디의 수뇌부가 전쟁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건 백성들이야.”
라자다릿은 군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전쟁은 외교의 연장선이라고 하든데, 내가 보기에 라자다릿은 외교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지워버린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라자다릿이나 한타와디 왕국이 아닌, 백성들을 위해 무기를 든다.”
민심.
우리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족쇄.
동시에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이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타와디에서는 ‘백성을 위한다.’라는 전가의 보도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이곳은 타지야. 이곳 백성의 지지만이 우리의 권리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내 재산을 지킬 힘이지만.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일단 막고 대가를 받아낼 테니까.”
이자까지 쳐서.
“이럴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대비는 해놨어. 무다구치 렌야.”
“말씀하십시오.”
“네 능력을 증명할 때다.”
“증명입니까?”
“대마도를 달라고 할 정도면 네 지휘력 정도는 입증해야지.”
“말씀하십시오.”
“어제 항복한 이들과 함께 따웅우 왕국으로 가라.”
예정과는 다르게 신 소부 공주가 있으므로 밀수업자라 하지는 못하고, 항복한 이들이라 표현했다.
“내 서신을 줄 터이니 따웅우 왕국에 보내고, 답을 받아오라.”
“미리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동맹 요청이다.”
“따웅우는 잉와의 속국입니다.”
“속국이라고 해도 방대한 자치권을 받은 만큼 외교권도 갖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실제로 그러하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봉건 사회의 특징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타와디와의 동맹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잉와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될 테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적국과 대놓고 내통한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고.
“누가 동맹의 대상이 한타와디라고 했나?”
“예?”
“동맹의 대상은 대만국이다.”
“해내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다. 자금을 지원해줄 터이니 지금 바로 출발하라.”
무다구치 렌야는 회계를 담당하는 간부와 함께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괜찮겠습니까?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배신해도 상관없고.”
“예?”
“전쟁이 끝난 후를 대비한 방책 중 하나이며, 녀석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일 뿐이니까.”
앞만 보는 자는 매우 높은 확률로 단기에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웃는 자는 대부분 넓은 시야로 대비하는 자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다.
늘 대비하느라 늘 걱정하니까.
“다시 전쟁으로 돌아와서. 이라와디강을 따라 철저하게 방어하면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다.”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바다는 내 영역이니까.
보선이 통과할 수 있는 큰 강도 마찬가지다.
“……슈웨다곤 파고다.”
조용히 듣고 있던 신 소부 공주가 아주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응?”
“다곤에 있어. 슈웨다곤 파고다.”
다곤은 달라 바로 위쪽에 있는 도시다.
사실상 같은 도시다.
달라가 강남, 다곤이 강북 같은 느낌이랄까.
입지적으로는 다곤이 더 좋지만, 방어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지금은 달라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잉와 왕국도 불교를 믿는다. 녀석들이 슈웨다곤 파고다를 파괴하지는 않을 거야.”
“석가세존의 머리카락. 가져갈 수도 있어.”
불교도에게 석가가 남긴 것은 모두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스님에게 머리카락이 중요한가?
“부처님의 머리카락은 둘째 치고서라도 달라만 방어하면 다곤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입니다. 그곳에 사는 백성들도요.”
“물자를 태우고 백성들을 이주시켜. 살아남기만 하면 다음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청야전술은 매우 상투적이고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런데도 전쟁사에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사에 획을 그은 천재라는 나폴레옹도 결국 러시아의 청야전술에 무너졌을 정도다.
“전하.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들의 생계 수단을 파괴해버리면 효과가 반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나가서 싸우자고? 얼마나 죽을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패배할 수도 있다.
지상전은 내 영역이 아니며, 변수가 너무 많으니까.
“아니면 잉와 군을 이쪽으로 유도하면 됩니다.”
“어떻게?”
“다곤에 전력을 집중하면 달라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도 급하게 오느라 군량이 부족할 테니까요.”
“달라는 어떻게 막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적이 달라로 향한 이후에 그 뒤를 치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음…….”
거의 확실히 이길 수 있고, 인명 피해는 극단적으로 적지만, 재산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청야전술.
승산은 높지만,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재산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으리라 예상되는 포위섬멸전.
후자가 훨씬 더 어렵지만, 만약 잘 성공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적의 전력을 확인한 후에 결정하지. 일단 전쟁 준비를 해놓도록.”
“예!”
***
“왔다.”
라자다릿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멀리 민카웅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
속도를 우선했는지 병사들의 군기도 형편없고, 척후병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이곳에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민카웅 왕과 왕세자 민예에 쪼쯔와를 잡으면 잉와의 왕위는 공석.
떼이다를 앞세워 여러 영지와 각종 이권을 빼앗으면, 한타와디는 잉와를 상대로 확실한 주도권과 우위를 잡게 된다.
수십 년간 바라고 바랐던 염원을 이루고, 20년 동안 이어진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직전이다.
역사는 자신을 가리켜 바간 왕조 멸망 이후 이 땅의 혼란을 수습하고 재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군주라 기록하겠지.
“그러니까 약속대로 하셨으면 이럴 일 없지 않았습니까…….”
떼이다는 범의 아가리로 들어오는 잉와의 군대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분노를 매개로 야심을 불태웠다.
저 자리는 나의 것이다.
라자다릿에게 상당한 이권을 양도해야 하긴 하겠지만, 10년 정도면 그 이상을 가져올 자신이 있다.
잉와의 군대가 점점 가까워졌다.
눈이 좋은 사람이라면 선두에서 다가오는 병사의 얼굴마저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역시나 보급이 넉넉하지 않았는지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으며,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무척 초췌해 보였다.
이겼다.
잉와 군이 가까워질수록 한타와디 군의 사기는 조용히 드높아졌다.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으니까.
그리고.
친위대에 둘러싸인 한가운데.
화려한 갑옷을 입은 사내가 보였다.
의심의 여지도 없다.
잉와의 왕, 민카웅이다.
“조금만 더.”
라자다릿은 저 멀리 있는 화려한 갑옷을 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가장 확실한 순간을 잡기 위해.
위이이이잉.
귀찮은 모기가 자꾸 주변을 돌며 귀찮게 했지만, 라자다릿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었기에.
“앗.”
반면 야심을 태우던 떼이다는 목에서 느껴지는 순간적인 따끔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 있는 화려한 갑옷을 보았다.
형이다.
그토록 위했고.
그토록 선망했으며.
이제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혈육을.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는 확실하게 죽겠지.
“…….”
민카웅의 얼굴이 선명해질수록, 떼이다의 눈동자는 점점 더 심하게 떨렸다.
옛 추억이 떠올랐다.
장남의 견제로 인해 민카웅과 떼이다는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야 했다.
선왕의 배려로 작은 절에서 배우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를 의지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어릴 때의 약속.
언제부터 그때의 순수를 잃어버리고 더러워졌을까.
과연 혈육의 피를 묻혀가면서까지 얻어야 할 정도로 왕위가 값진 자리인가.
그렇다면 왜 석가세존께서는 왕세자로 있었으면서 카팔라 소왕국의 라자 자리를 포기했는가.
“모든 것이…… 덧없도다.”
그때가 좋았다.
생각을 비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마음의 수양을 쌓던 나날들.
떼이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모두가 놀랐지만, 매복 중인 만큼 소리를 내지 못했다.
라자다릿은 민카웅에게만 집중하느라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떼이다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모두 도망쳐라!”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는 위험하다! 어서 도망가!”
그 목소리에 라자다릿의 집중이 깨졌다.
떼이다의 목소리는 잉와의 군대까지 닿았고, 반 시체처럼 걷던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곧 엉성하게 걸쳤던 무기를 꺼내 들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대비했다.
“빌어먹을! 전원 공격!”
아직이다.
놈들은 대열을 갖추지 못했어.
지금이라면 회생 불가의 타격을 줄 수 있다.
라자다릿의 외침에 유능한 장군들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저놈을 잡아라.”
라자다릿은 노기를 억누르며 제압된 떼이다에게 다가갔다.
“왜 그랬나?”
“노기를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보니, 혈육의 목숨마저 제물로 바쳐 왕이 되고 싶진 않았소.”
전에 용왕이 물었다.
잉와에서 혈통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면, 너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냐고.
그때는 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의 아픔과 욕망에 눈이 잠시 멀었노라고.
라자다릿의 눈썹이 꿈틀했다.
떼이다는 진솔한 답변을 한 것이었지만, 사실상 자식의 목숨을 볼모로 잡고 이 기회를 만든 라자다릿에게는 비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 전투가 끝나면 곱게는 못 죽을 것이다.”
“각오했소.”
“너는 왕위도 목숨도 헛되이 버린 것이다. 민카웅은 오늘 죽는다.”
“그 또한 부처님의 뜻이겠지요.”
라자다릿은 떼이다를 지나쳤다.
적은 매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여 대비하지 못했다.
전열은 흐트러졌고, 사기는 낮다.
따라서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전쟁에 부처의 자비는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하나.
오직 승리뿐.
라자다릿은 직접 전장으로 향했다.
민카웅을 죽이고 2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 목적은 변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