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제2차 주주총회 (1)
“이제 사신 응대는 다 끝난 건가?”
“기항하신 후에도 바쁘시네요.”
증기기관 확인을 마치고 집무실에서 느긋하게 앉아있자니 허신애가 차를 갖고 들어왔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대만국에 도착한 후에는 허신애에게 시간을 양보하기 같은.
“아직 국가의 체제가 안 잡혀 있어서 사신 응대를 맡길 수가 없네.”
일단 이 시대의 공용어라고 할 수 있는 명나라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
창해 주식 상단의 선원을 제외하면 장군인 척찬궁과 총리인 마이상 가오궈이 뿐.
물론 사신들도 대만국 사정을 뻔히 다 알고, 대만국이 아니라 나를 보러 오는 것인 만큼 그리 빡빡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발언권을 유지하려면 그만한 메리트를 줘야 한다.
“그래도 무척 뿌듯해 보입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성과가 나오고 있으니까.”
“조선 사신이 가져온 그 선물이 그리도 마음에 드십니까?”
허신애도 그렇고, 이소군도 그렇고.
이젠 내 표정만 봐도 마음을 짐작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무척 편했다.
이런 게 결혼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일찍 했어도 좋았을 것을.
전생에 일찍 결혼한 친구나 선배들이 ‘집보다 회사가 편해.’라고 말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무척 마음에 들지.”
“전하께서 이렇게 기뻐하신 것은 총을 처음 보셨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좋은 거니까.”
“예전에 제가 가져온 수석총을 보시고 평등의 상징이라고 하셨지요.”
“가녀린 아녀자도 전장에서 단련된 뛰어난 전사를 죽일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조선의 사신이 가져온 물건은 무엇입니까?”
허신애는 활용성이 아니라 역할을 묻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적 의미.
“자유의 촉매.”
“예? 자유……요?”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해. 그에 따라 책임과 의무도 따라오지만.”
아직은 자유의 개념이 발전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설명해줘야 한다.
만약 이곳이 유럽이나 중동이었다면, ‘노예가 필요 없어진다.’라고 설명했겠지.
실제로 기계의 발전은 노예제 폐지를 촉발했다.
유럽인들이 단체로 머리에 총 맞아서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삼는다는 건 도덕적으로 말이 안 돼!’라고 각성한 게 아니다.
노예를 사고, 관리하는 비용보다 기계를 굴리는 게 더 저렴하고, 품질 좋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 않지만,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화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는 ‘기계는 고귀한 백인만 다룰 수 있다.’라는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동아시아의 노비는 노예와 결이 다르다.
사유재산도 소유할 수 있고, 다양한 차별과 억울한 대우는 있었지만, 백성으로 인정받기는 했으니까.
“예를 들어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농민이, 대장장이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대장장이가 되는 게 보통이잖아.”
“당연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하면 사람들은 본인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거야.”
“그게…… 좋은 걸까요?”
“응?”
“업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다.
아니지.
이 시대의 상식이라고 해야 하나.
천하의 안정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시대니까.
“대대손손 업을 이어받는 게 정도라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정도가 아니겠지.”
“누구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개척하라는 뜻은 아니고, 개척자가 만든 다양한 길 중에서 선택하는 거지. 부모의 업을 물려받는 것보다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자기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는 어떻게 알죠?”
“교육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지.”
“전하의 이상이 드높고, 그 이상을 이룰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신애는 굉장히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모두가 전하 같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길은 누군가에게는 혼란과 방종만을 가져다줄 수가 있어요. 오히려 명확한 정도가 있어야 천하가 안정됩니다.”
“정도라면 있어.”
“예?”
“열심히 하면 그만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
내가 만들어 나가고 싶은 두 개의 원칙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8시간 근무 시간, 8시간 자유 시간, 8시간 수면 시간.
대신 주 5일제 같은 건 없다.
“지금 고민해야 하는 내용은 아니야. 수십 년은 걸릴 일이니까. 그저 꿈을 꾸는 거지.”
“전하께서 성품이 어질다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만…….”
“내가?”
나는 내가 착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정의 그 자체라고 생각은 했어도.
착한 것과 정의는 엄연히 다르다.
“왜 그렇게 백성을 위하시는 겁니까?”
“그런 적 없는데.”
“예?”
“민심은 수단이다. 목표가 될 순 없어.”
복잡한 이야기다.
기업이 판매량을 높이려고 이미지 마케팅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사람들이 참 순진해.”
“그렇……습니까?”
“매우 순진해. 조금만 잘해주면 전하~ 전하~ 하면서 목숨 바쳐 떠받들어 주거든.”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진짜로 목숨 바쳐서 일한다.
“이제는 내가 명령하면 이역만리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 정도로 넘어갔어. 웃기지? 고용주와 고용인의 계약일 뿐인데,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창해 주식 상단의 선원들은 국적이 다양하다.
명나라나 대만국 선원이라면 왕의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동남아 출신 선원들은…….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 그만한 대가와 보상을 챙겨줄 뿐.”
“그렇다면 전하께서 말씀하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래야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줄 테니까.”
“더 많은 돈을 계속 백성들의 삶에 보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래야 더 우수한 인재가 들어올 테니까.”
“계속 뛰어난 인재를 모아서 무엇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 저 멀리 구라파까지 포함하여 온 천하의 질서를 바꿀 거야.”
나를 중심으로.
“하늘을 중심으로.”
허신애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제 남편에 걸맞은…… 흠흠. 원대한 포부입니다. 어쩌면 대대손손 도전해도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내 선에서 모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난 2년간, 여러 천운이 따라준 끝에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는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허신애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대대손손 번영을 누리도록 노력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응? 아…….”
“오늘 밤도 열심히 노력해볼까요?”
***
남경의 황궁은 오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태자가 한 일이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다시 봤어. 내가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었나 보구나.”
“태자 전하께서는 능력은 폐하를, 인품은 황후마마를 닮았다는 평가가 많았지요.”
“그 푸짐한 살은 누굴 닮은 건지 모르겠다만.”
“…….”
“불효막심한 놈.”
아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다.
아비를 두고 먼저 가는 것.
더 걱정인 것은 아내인 황후다.
안 그래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황태자가 죽은 일로 충격을 받아 아예 쓰러져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줄초상을 치를 판국이었다.
“정화야. 역시 고후는 후계자로 좋지 않겠지?”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한왕 전하는 그…… 글을 모르십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한왕 주고후는 문맹이다.
황후가 공부하라고 그렇게 권했음에도, ‘영웅은 공부 따윈 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헛소리를 하면서 늘 사냥하러 다녔다.
“반면 황태손께서는 무척 총명하시고, 어지실뿐더러, 무예도 뛰어나십니다.”
그야말로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훌륭한 자질을 지녔다.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도 많이 하고.
단점이 있다면 외모가 매우 볼품없다는 것.
명 태조 주원장부터가 생김새가 매우 고약했긴 하지만, 황태손 주첨기는 못생긴 것에 더해 관상으로는 최악으로 치는 검은 피부에 들창코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검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무언가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
하지만 어떤 의원도 이상을 찾지는 못했다.
“첨기가 뛰어나긴 하지. 하지만 너무 어려. 과연 첨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짐이 살아있을지 의문일세.”
“폐하께서는 강건하십니다.”
“후우…… 짐도 그렇게 생각했네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어. 이대로 가다간 곧 과로로 죽을 것 같네.”
엄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승상제를 폐지한 탓에 황제의 업무는 역대 어떤 왕조보다 많았다.
여기에 새로이 생긴 남해의 막대한 업무까지 추가되니 잠잘 시간조차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황태자 주고치가 많은 양을 부담해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
오히려 후계 작업을 새로이 할 걸 생각하면 더 늘어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녀석이 내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으련만…….”
“대만 국왕을 말씀하십니까?”
“녀석에게 막대한 힘을 실어준 것은 실로 본의가 아니었다.”
급한 후계 작업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리 걱정되신다면 다시 해금령을 내리시는 것은 어떠하십니까?”
“다시 해금령을 내린다면 그 야망은 영원히 끝난다.”
“정말로 강해인이 폐하를 중심으로 온 천하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못 하겠지.”
“…….”
“호랑이를 그리다 실패하면 고양이라도 그려질 것이 아닌가. 온 천하의 질서를 재편하진 못하더라도, 씹어먹을 원나라에는 질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는 영락제는 고개를 흔들었다.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영락제는 정통성이 매우 부족하다.
부족한 정통성은 업적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족 황제로서 가장 확실한 정통성은 오랑캐 왕조를 뛰어넘는 것이다.
“제가 봐온 강해인은 믿을 만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언제 변할지, 가슴 깊은 곳에는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최소한의 목줄은 채워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강해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 대책 없이 놔뒀다가 강해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하기라도 한다면, 결국 한쪽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 대상은 분명 강해인이 되겠지.
지음이자 제자가 역사에 반역자로 기록되길 바라지는 않았다.
“정화야.”
“예. 폐하.”
“잠깐 배 좀 타야겠다.”
정화는 고개를 숙였다.
이심전심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단박에 알았다.
“예. 대만으로 가서 이번에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가하겠습니다.”
저번에 황궁의 전각을 빌려서 치렀던 1회 주주총회와는 달리, 2회는 대만의 왕궁에서 열린다.
황궁의 상황이 외국 사신을 추가로 받고, 상인들의 출입을 허용할 정도로 한가하진 않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말했지. 주식 상단의 주인은 주주라고. 그 말이 맞는지 확실하게 검증하고, 사지로 밀어버려라.”
본인이 한 말을 지키는지 확인하고, 확실하게 겁을 줌으로써 이 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각인시키라는 뜻이다.
“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면 이를 명분으로 왕위를 박탈하고, 얕은수로 빠져나오려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정화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황제 폐하를 위협할 능력이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