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혁명은 내 취향이 아닌데 (2)
현시점에서 명나라는 초강대국이다.
임진왜란 때의 추태를 생각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믿기 힘들지만, 이 시기 명나라 군대는 그야말로 막강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세계 최강.
이 시기에는 몽골 기병이든, 전투 민족 베트남이든 전부 명나라군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게릴라 전으로만 상대할 정도다.
그리고 영락제는 명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쟁 군주.
사대부에겐 수없이 까이긴 해도, 무관들에겐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명나라를 상대로 혁명을 일으킨다?
자살행위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대로 가다간 찍소리도 못해보고 끌려가서 능지처참당할 판국이다.
얌전히 죽어주느니,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에서 영락제를 역사에서 퇴장시키겠다.
“명나라 군대는 총 120만.”
당연히 징집병까지 포함한 군대다.
“가용 병력은 50만.”
방어군을 제외하고 원정을 보낼 수 있는 군대만 50만이다.
영락제가 빡칠 때면 50만 대군 드립을 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일단 이걸 분리해야 한다.
“역사대로라면 영락제는 북벌을 준비할 터.”
한족 황제 중 유일하게 고비 사막을 넘어 몽골 본토로 쳐들어간 황제다.
이는 영락제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락제는 정난의 변으로 정당한 황제인 건문제를 끌어내리고 황위를 찬탈한 만큼 정통성이 낮았으니까.
그 이후로도 유학의 통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했으니까.
따라서 본인이 잘하는 군사 분야에 한해서는 확실한 업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사대부는 아가리만 잘 터는 샌님.’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본인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자신을 비난하는 사대부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친정을 나가는 거니까, 이번엔 확실하게 50만 대군을 준비하겠지.”
대단한 나라다.
원 역사에서도 사막을 넘어 몽골 본토로 50만이나 쳐들어갔는데도 보급을 유지했으니까.
“그리고 50만이 나가는 순간 수도는 빈다.”
그렇다고 해도 외부에서 공격하는 건 어렵다.
여차하면 남자들을 죄다 징집해서 300만을 뽑아낼 수 있는 나라니까.
따라서 외부에서 공격하면 답이 없다.
하지만 내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쯤 한왕 주고후의 똥꼬가 바짝바짝 타고 있겠지.”
영락제가 정난의 변 시즌2를 예방하기 위해 그를 제거할 거라는 의심을 하고 있을 테니까.
천만다행이게도 한왕 주고후는 나름 군사적 재능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막장 인성도 갖추고 있고.
개막장 주고후라면 분명 명나라에 아편을 풀든, 한족을 배신하고 북원과 손을 잡든 수를 쓰겠지.
“한왕 주고후를 자극해서 힘을 실어주고, 반란을 유도한다면…….”
분명 그 기회를 건문제도 놓치지 않겠지.
영락제에게 불만이 많은 사대부들과 연합하여 어떻게든 황위를 되찾으려고 기회를 볼 것이다.
“음…….”
하지만.
그런데도.
결국, 영락제가 이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과대평가하는 걸까.
“이걸로는 안 돼. 더 끌어들여야 해.”
남해의 국가들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은 마자파힛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옆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명나라의 힘이 꼭 필요한 상황이니까.
……생각할수록 더욱 괘씸하네.
그런 상황인데 나를 방패로 세우고 자기들 이익을 챙겼단 말이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라면…… 일본.”
왜냐하면 무로마치 막부의 현 쇼군이 반명 주의자니까.
“그리고 핵심은 조선.”
현시점에서 조선은 여진족 외엔 적이 없고, 20만의 강병을 갖춘 강대국이다.
만약 조선이 이 판에 끼어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다.
문제는 킬방원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조선과 왕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감정 따윈 안드로메다로 보낼 수 있는 위인인 데다, 계산이 엄청나게 빠른 인간이다.
그를 설득하여 명나라와 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명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여진족을 몰아내고 국경을 확장하려 들겠지.
여진족도 명나라 배후의 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영락제를 도와주는 꼴이다.
“조선을 설득할 방법이…….”
이 일은 실패하면 역모가 되기에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다.
누가 영락제가 보낸 첩자인지 알 방법이 없으니까.
“전하.”
조용히 처박혀 판을 짜고 있는데,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내 집무실로 들어온 이는 마이상 가오궈이.
대만국의 총리로, 제일 먼저 항복한 대만 원주민 부족장 중 하나다.
“바쁘신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피지컬 좋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투 민족인 사모아인 피지컬.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대만의 원주민들이 나를 진심으로 따랐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괜찮아. 무슨 일인가?”
“황궁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이번에 조선에 칙사를 보낼 때, 전하께서 동행하셨으면 한다고 합니다.”
“동행?”
칙사를 보내는 데 내가 함께했으면 한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나는 조선 출신인 데다, 상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무리한 요구는 내가 적당히 중재할 가능성이 크니까.
‘이번에 조선에서 황제 폐하께 바칠 처녀와 화자(火者)를 선발할 때, 그 총책임자로 선정된 사람일세.’
주주총회 때 정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는 건 칙사는 정화.
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는…… 길들이기네.
‘알아서 기어.’라는 뜻.
“그러지. 사신은 내가 맞이하겠네.”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충 상황을 아는지, 마이상 가오궈이는 무척 염려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고말고.”
오히려 고맙다.
조선을 회유할 가능성이 1%라도 늘어났으니까.
***
“무함마드! 무함마드 있나!”
“응? 무슨 일이야?”
“네가 꼭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사실상 무함마드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다.
“뭔데?”
“창해 주식 상단의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라.”
“서쪽? 어디?”
“먼저 벵골 술탄국으로 가라.”
이럴 줄 알았으면, 기야스 웃딘 아잠 샤까지는 만나고 돌아오는 거였는데.
황태자 주고치가 죽었다는 말에 너무 놀라서 그냥 돌아온 게 실수였다.
“거긴 왜?”
“거기에 초석이 많으니까.”
“내가 만들어야 할 게 화약이야?”
“어.”
그래서 무함마드를 보낼 수밖에 없다.
화약 전문가이고, 오스만에서 여기까지 온 만큼 벵골 술탄국도 방문한 경험이 있을 테니까.
“벵골 술탄국도 화약을 만들 줄 알 텐데?”
“우리처럼 체계적으로 만들진 못하겠지.”
“맙소사. 그 기술을 개방한다고? 공짜로?”
“공짜겠냐?”
벵골 술탄국이 내게 보낸 사신, 이븐 알 하쉬르의 말에 의하면 현재 인도를 지배하는 델리 술탄국이 오늘내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 탓에 곳곳에서 독립 전쟁과 반란, 영주 간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고.
당연히 벵골 술탄국도 안보에 큰 위협을 느낄 터.
이 거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신 초석을, 급할 땐 화약을 수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어…… 전하면 모를까 나 따위가 하는 제안을 술탄이 받을까?”
“받을 거야.”
벵골 술탄국은 강력한 동맹을 원하고 있을 테니까.
내가.
아니, 우리가 쌓아온 명성과 민심은 절대 가볍지 않다.
“벵골 술탄국에서 화약을 만들어서 여기로 가져오면 되나?”
“아니.”
“그러면?”
“한타와디 왕국에 들러서 무다구치 렌야에게 전해줘.”
잠깐만. 이거 괜찮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다구치 렌야라는 이름이 너무 불안한데.
실패해도 타격은 별로 없지만, 무다구치 렌야니까 상상도 못 할 대실패를 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괜찮을까? 밀수업자를 믿을 수 있겠어?”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핵심 목표는 벵골 술탄국의 초석 광산을 확보하는 거니까, 무다구치 렌야가 배신해도 크게 상관은 없어.”
“알았어. 화약을 어디로 전달하라고 하면 돼?”
“따웅우 왕국을 통해 잉와 왕국으로 보내면 된다.”
“잉와에?”
“어.”
“한타와디의 뒤통수를 때리려고?”
“네가 화약을 만들어서 한타와디에 도착할 시기면 라자다릿이 민카웅을 처바른 상태일 거다.”
전쟁에 절대는 없지만, 현시점에서는 잉와 왕국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일 터.
어지간해선 라자다릿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아라칸 왕국 수복 전쟁은 말이지.
“잉와와 한타와디의 전쟁이 끝나더라도, 잉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아.”
북부 샨주에 명나라군이 움직였으니까.
거기다 쓰라고 화약을 주는 것이다.
“잉와와 협조하려 한다면 그 왕세자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럴 생각이야.”
원래 계획이라면 많은 걸 보여준 후에 돌려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고 오면 돼?”
“아니. 하나 더 있어.”
“뭔데?”
“이건 필수는 아닌데, 가능하다면 벵골 술탄국에서 다마스커스 강철로 만들어진 명검 하나만 구해줘.”
“벵골 술탄국에는 없을 텐데.”
“그러니까 필수는 아니라고 했잖아.”
전선은 짧을수록 좋다.
반대로 말하면 전선은 길어질수록, 많아질수록 힘들어진다.
잉와 왕국이 운남성을.
대월 독립 세력이 광동성을.
북원이 명나라 북부를.
일본이 바다를 압박한다.
여기에 조선이 움직이면 명나라는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다.
만약 한왕 주고후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내부까지 흔들릴 테고.
“음?”
“왜?”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그게 있잖아.
이성계의 활.
그걸 이용하면 여진족의 일부 부족도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아무튼, 잘 부탁한다.”
“알았어. 맡겨줘.”
혁명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치열한 경쟁보다는 블루 오션에서 조용히 꿀 빠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영락제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는 반드시 뒤엎어야 한다.
영락제는 장난으로 돌을 던진 것이라도, 그 앞에 있는 나는 맞아 죽을 처지니까.
먼저 자극했으니 모조리 쓸어버려 주지.
쓰나미처럼.
***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괜찮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기회는 몇 번이고 생긴다.
내가 범인이라는 걸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함께 조선으로 향하는 건 처음이지?”
“조선에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요.”
조선 제물포로 향하는 배 위.
정화와 나는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는 몰랐어.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관계는 변했지만, 마음은 변치 않았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참 좋은 눈빛이야.”
“맑은 눈빛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 전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피부가 너무 좋으면 이상하게 보듯이, 너무 맑은 눈도 이상하게 보이나?
“자네의 눈빛을 처음 봤을 때 직감했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하하. 올곧게 나아갈 뿐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
“눈빛은 모르겠지만, 실제로 저는 정치와 그리 어울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가. 그래…….”
나는 매우 이과적인 두뇌를 갖고 있다.
수 계산은 쉽고 빠른데, 감정을 파악하는 건 어렵다.
역사라는 수식에 대입해서 추론하는 것뿐이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하게. 이건 자네를 위해서 해주는 충고야.”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언제까지고 정치에, 특히 명나라의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빛 아래에서는 말이다.
“저기 조선이 보이는군. 남해를 다녀왔더니 무척 가깝게 느껴져.”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가까웠군요. 조선.”
거리는 가깝지만.
그 사이에 놓인 벽이 너무 두껍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 벽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