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60
159화 조선의 선택 (1)
조선에 있어 가장 큰 외교 행사는 명나라 칙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1년 예산에 10%를 차지할 만큼.
보통 칙사는 요동 거쳐 신의주, 평양, 개성, 한성 순으로 가는데, 도시나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거하게 칙사 대접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조공이나 무리한 요구를 줄이기 위해 뇌물도 잔뜩 쥐여줘야 하고.
그나마 내가 갈 때는 괜찮은데, 바다로 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물포에서 한 번만 잔치를 열어주면, 곧바로 수도인 한성이다.
돈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그만큼 쥐여 줄 뇌물의 양도 많아진다는 뜻.
“대체 나를 뭐로 보고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이냐!”
문제는 정화가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탐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영락제의 신뢰를 받는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당장 치워라. 나는 황제 폐하의 칙사다. 폐하의 명을 수행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배에다 싣기 좋으라고 제물포까지 가져온 듯한데 괜한 짓을 했네.
바리바리 선물을 싸 왔던 조선 관리들이 움찔하며 빠르게 치웠다.
“쯧쯧.”
“조선이 제독을 몰라서 한 일이 아닙니까. 반대로 다른 칙사는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많지요.”
옆에서 살짝 쉴드를 쳐줬다.
미리 호감작을 해둬야 내 목적을 달성하기 쉬워질 테니까.
“그에 관해서는 들었네. 특히 조선 출신인 황엄이 그렇게 재물을 탐한다든가.”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소문은 굉장합니다. 황엄에 비하면 하륜은 청렴결백하다든가.”
“하륜?”
“능력 있는 대신입니다. 능력만큼 탐욕도 어마어마하지만요.”
원래라면 풍악이 울리고 아름다운 청기가 가무를 추어야 하지만, 조선 관리들이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내가 대신 정화를 상대했다.
“조선의 차도 꽤 마실만 하군. 음? 이건 뭔가?”
“수정과입니다.”
“계피 맛이 좋군. 마음에 들어.”
“저는 식혜를 더 좋아합니다.”
초딩 입맛이라.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제가 한 잔 올릴 테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붉은 옷을 입은 당상관이 직접 술병을 들고 상석으로 올라왔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슬슬 조정도 물갈이될 때가 왔나.
“쯧쯧.”
“제독은 회회도라 술을 마시지 않네.”
“그, 그렇습니까. 소, 송구합니다.”
한심하다기보다 안타깝게 여겨진다.
어쩜 이렇게 정보력이 없을까.
정화라면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데.
게다가 조선은 대월이 정복되자마자 바로 승전 축하 사신을 보낼 정도로 명나라의 정세에 민감한…….
민감한…….
응?
앞뒤가 안 맞는데.
“그러고 보니 자네 조선 여자에 대해서는 잘 아나?”
퍼즐을 맞추고 있었는데, 정화가 말을 걸자 집중이 깨졌다.
두고 보자.
킬방원도 생각이 있겠지.
“조선 여자요?”
“그래.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조선 여자를 후궁으로 맞이하시고자 하지 않나.”
사실이다.
명분은 ‘조선 여자가 예쁘고, 음식을 잘한다.’라는 것.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선 길들이기.
그리고 조선의 왕자를 사위로 삼으려는 계획이 깨지면서, 황실과 사돈 관계를 맺은 조선 관리를 조정 요직에 심어두기 위한 계략이다.
“내가 여자를 잘 몰라서. 조선 여자는 대체로 어떠한가?”
“음…….”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보게.”
“솔직히 잘 모릅니다.”
“응? 자네는 조선에서 20년을 살지 않았나.”
“제가 조선 여자를 잘 알았으면, 명나라 여자와 결혼을 했겠습니까?”
대학 가면 애인 생긴다는 소리 하고 있네.
“하하하. 그렇군. 대만국의 왕비도, 후궁도 모두 명나라 여자였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화는 굉장히 뿌듯한 듯했다.
“그러면 공녀를 선발할 때 그리 도움은 못 주겠구먼.”
“그렇지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움은커녕, 공녀 선발 자체를 엎어버릴 생각이다.
킬방원만 동의한다면 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과연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 의문이지만.
킬방원이라면 ‘여자 몇 명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라고 생각하며 그냥 보내버릴 것 같다.
숫자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공녀보다 걱정은 화자다.
어린 나이에 자연적으로 고자가 된 소년이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수술해서 인위적으로 고자를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5할이 죽는다.
그러니까 화자 100명을 보내려면 최소 200명을 선발하고, 100명을 죽여야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하하하.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나게 하십니까?”
대신 하나가 슬며시 다가왔다.
어깨너머를 보자니 가져왔던 선물은 다 치운 듯했다.
“별거 아닐세. 그보다 공녀 후보는 선발해 두었나?”
“그것이…….”
“설마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정화가 살벌한 눈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사대의 예를 따르고자 하고 계십니다.”
음…….
“그대의 이름은 뭔가?”
“아, 저는 병조 판서 윤저라고 합니다.”
병조 판서.
현대의 국방부 장관이다.
“병조? 예조가 아니라?”
“그, 그렇게 되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라고 하기엔 기가 약한 것 같은데.
게다가 6조는 이, 호, 예, 병, 형, 공 순이다.
예조 판서가 병조 판서보다 높다는 뜻.
반드시 예조 판서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예조 판서보다 서열이 낮은 대신을 보내는 건 좀 이상하다.
차라리 왕의 비서실장격인 도승지나 지신사를 보낸다면 몰라도.
더욱이 병조 판서는 외교와는 크게 상관이…….
상관이…….
음?
“뭔가…… 뭔가…….”
“왜 그러십니까?”
병조 판서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정화가 정중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미묘한 위화감을 포착했지만, 입에 담기에는 그렇다.
“여기 제독 정화는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는 존귀한 분일세. 모시는 데 실수가 있어서는 아니 될 걸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
연회 시작부터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긴 하지만, 그 뒤 무난하게 잔치는 진행되었다.
***
다음 날, 우리는 한성으로 향했다.
말 타고 후딱 가고 싶었지만, 그놈의 체면 때문에 가마를 탔다.
정화랑 둘이서 나란히.
길은 깔끔하게 닦여 있고, 가는 길마다 오색 종이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보면서 백성들의 노고가 대단했겠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정화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조선의 겨울은 무척 춥군. 연왕부를 떠올리게 할 정도야.”
“연왕부라면 제독의 고향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린 시절에는 운남성에 보냈지. 덕분에 연왕부의 겨울은 어찌나 버티기 힘들던지.”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한성의 추위 때문에 폐병으로 죽을 뻔했지요.”
내가 ‘선비는 사치를 경계해야 한다.’라는 말을 싫어하게 된 계기다.
온돌만 사용하게 해줬어도 그 고생을 안 했을 텐데.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노력했다네.”
“……네?”
“방 안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였어. 그때의 습관 덕에 지금도 무척 건강하지.”
그런 것도 노력으로 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런 것까지 노력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잖아.
편함을 추구하는 본능도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다.
더 쉽고, 편하고, 효율적으로 하려는 본능이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의 게으름은 인류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아. 혹시 통조림이라는 것 말일세.”
순간 긴장했다.
똥조림의 책임을 물으려는 게 아닌가 해서.
“대월을 정복한 장군들에게 굉장히 호평이더군.”
“그렇습니까?”
“덕분에 은밀하고 신속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나.”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겠나?”
“대량이라고 하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
그러더니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50만 대군이 넉넉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농도가 짙게 느껴졌다.
전자오락에 나오는 성우의 목소리 같은 느낌이랄까.
효과는 있었다.
앞에서 말을 타고 가던 병조 판서가 움찔했으니까.
“50만 대군이 먹을 통조림이 필요하다…… 북벌이군요.”
“그래. 가능하겠는가?”
“병사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가능합니다.”
“병사들의 안위?”
“창해 주식 상단에서 만드는 통조림은 철에 주석을 도금하여 만듭니다. 당연히 오래 걸리고, 값도 비싸지요.”
전기로 하는 도금 방법을 몰라서 용융 도금을 하고 있다.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건 알지만, 방법이 없다.
“반면 납으로 통조림을 만들면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병사들의 안위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납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하하하. 자네는 항해할 때는 역전의 맹장보다 용맹한데, 평소에는 사소한 걸 신경 쓰는군. 납이야 여인네들 백분에도 쓰는 게 아닌가.”
예상은 했지만, 신경 안 쓰는 모양이다.
10년 후에는 납 중독으로 다 뒤질 텐데.
“납이나 수은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네만, 자넨 걱정이 너무 많아. 납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야 대명의 강군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네.”
대명의 강군이 문제가 아니라, 중금속 중독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면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납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허가만 있다면야 대량 생산도 가능합니다.”
“전부 사겠네. 최대한 많이 만들게.”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증기기관을 한번 돌려보자.
인력으로 롤러를 돌려서 납 판을 만드는 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더라고.
다칠 위험도 크고.
“예. 황실의 명을 받듭니다.”
납 중독으로 다 죽어도 내 잘못 아니다.
너희가 하라고 했으니까.
하긴.
납 중독으로 죽는 것보다 가혹한 환경과 전염병, 북원 기병에게 살해당하거나 상처가 도져서 죽는 게 더 빠르긴 하겠다.
***
정화와 함께 한성으로 들어갔다.
한성의 여덟 성문 중 하나, 돈의문(서대문)에 도착했다.
그 앞에는 이미 킬방원과 왕자들은 물론, 대신들까지 밖에 마중 나와 있었다.
“이제 시작이로구먼. 조선이 대세를 잘 파악하고, 얌전히 따르기만 한다면 가장 후한 대우를 받을 텐데 말이야.”
정화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안 그렇습니까? 대만 국왕 전하.”
그리고는 예를 갖춰 말했다.
이제부터는 공적으로 대우하겠다는 뜻이다.
“현 조선의 왕은 무척 현명합니다. 따라서 현명한 선택을 하겠지요.”
나는 명나라의 번왕이다.
공식적으로는 내 위로 아무도 없다.
황족을 제외하면.
적당히 존중해주는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지금 정화는 칙사.
영락제의 대리다.
따라서 나도 예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저는 대명과 조선의 우애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저 문은 돈의문. 의(義)를 두텁게 하는 문이라는 뜻이지요.”
의(義)란 마땅히 해야 할 옳은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조선에서는 명나라 칙사를 대접할 때, 항상 돈의문에서 맞이한다.
겉으로는 조선이 명나라에 대한 의를 지키겠다는 뜻이지만, 속내는 너네도 좀 대국의 의를 지켜서 같이 돈독하게 하자는 뜻이다.
유학에서 의(義)는 서쪽을 상징하기에 그런 것도 있다.
과연 공녀와 화자를 요구한 현시점에도 조선과 명나라의 우의가 지켜질지.
조선의.
아니, 킬방원의 선택이 궁금해지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