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65
164화 마지막 정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서로에게 폭탄 목걸이를 걸고, 한쪽이 터지면 반대쪽도 터지는 방식.
언뜻 보면 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절대 공평하지 않다.
페어플레이하자면서, 다윗과 골리앗을 무장해제 한 채 링 위로 올려보낸 격이니까.
“한배를 탄다고 하셨으나, 만약 일이 잘못되면 두들겨 맞는 건 이쪽이겠군요.”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은 군대도 많고, 여차하면 징집되거나 의병이 될 장정의 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대만은 인구수가 극히 적다.
그나마 있는 군대도 영락제가 파견한 군대.
매우 높은 확률로 창을 거꾸로 잡을 확률이 높다.
영락제로서는 둘 다 쥐어패야 하는 일이 생길 때, 일단 대만부터 두들겨 패고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대비는 해놓았지만, 체급 차이가 워낙 커서 이쪽이 승리할 가능성은 무척 낮다.
“대만이 조선보다 약한 거야 내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긴 합니다. 그저 한배에 탔다는 표현을 하시기에…….”
킬방원을 보며 씨익 웃었다.
“원하시는 대로 진짜로 한배에 태워드리고자 합니다.”
“…….”
“배신하기 없깁니다? 진짜로, 확실하게 한배에 태워드릴 테니까요.”
킬방원의 정치력은 역시 상당하다.
나 같은 초짜가 상대하기엔 무척 어려운 상대.
하지만 이쪽은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다.
비록 원 역사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다면 흐름에 몸을 실어 빨리 달릴 수도, 물줄기를 틀어버릴 수도 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으나…….”
“전하께서 패를 보여주셨으니, 저도 패를 보여드리지요.”
“어디 보여봐라.”
“조사의의 난.”
“…….”
“태조께서 사주하신 그 반란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사의의 난이 태조 이성계가 주도했다는 사실이 퍼지면, 조선은 뿌리부터 크게 흔들린다.
첫째는 이성계의 불패 신화가 깨진다는 것.
둘째는 태종 이방원은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셋째는 조선 왕실은 부자, 형제끼리 수없이 칼을 겨눈 콩가루 집안이라는 것.
이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모조리 날려버릴 치명적인 약점이다.
“멍청한. 명 황제가 그 말을 믿는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는 조선 백성들에게 퍼뜨릴 것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쓴다.
“제게 태조의 활과 생전에 남기신 서신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것보다 확실한 증거다.
“‘내 욕심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함길도의 백성들을 어렵게 만들었다.’라고 명명백백하게 쓰여있지요. 그리하여 저보고 그들을 구제해달라는 부탁을 남기셨습니다.”
킬방원의 표정이 변했다.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듯 여유로운 표정에서.
심각한 위협을 느낀 맹수 같은 표정으로.
“이걸 퍼뜨려 조선의 민심을 흔들고, 동시에 명나라에는 조선 침략의 명분을 제공할 것입니다.”
“네가?”
“명나라의 관직을 받고 칭신한 여진족의 소규모 부족들을 잡아 죽이고 오리발을 내미셨지요?”
명나라는 길길이 날뛰었으나, 조선에서는 ‘우리 백성을 죽이고 도망간 도적을 잡은 것뿐이다. 그들이 명나라에 칭신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라고 해명하여 넘어갔다.
“하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진족에 대한 명나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게 우려되어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보복하기 위해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네놈…….”
“그렇게 노려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배에 탔는데 배신의 벌칙 정도는 알려드려야 예의일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뿐이니까요.”
한쪽이 터지면, 반대쪽도 터진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공평하다고 할 수 있지.
“우리 잘해봅시다. 처음. 그러니까 제가 원정대에 합류하기 전, 계획했던 그대로 말입니다.”
***
일을 마치고 태평관에 돌아왔다.
정화는 곧바로 독대를 원했고, 방 안에 단둘이 앉아 차를 마셨다.
“알아낸 것은 있는가?”
“조선으로서도 무척 난감해 보이는 모양이더군요. 아마 공녀 요구를 10년 정도 후에 했다면 받아들였으련만, 아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
“조선 왕은 얼마 전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외척 민씨 가문을 숙청했습니다.”
원 역사와는 다르게 죽이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명백한 과실이 있는지라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 판단.
권세를 빼앗고, 귀양 보내는 정도로 마무리한 모양이다.
다만 귀양 가서도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면 망설임 없이 죽이겠지만.
“게다가 사병을 철폐하고, 호패법을 시행하느라 많은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 여기서 공녀 차출을 강행하면 자칫 왕권 자체가 흔들릴 것 같습니다.”
“그렇구먼.”
정화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아무 반응이 없으니 오히려 더 섬뜩해지는 느낌이었다.
“자네가 추천했던 한확의 누이 말일세.”
“예.”
“그대가 대체 뭘 보고 그녀를 추천하였는지 모르겠네.”
무슨 말이지?
“그녀는 아직 10살도 되지 않았어. 그런 아이를 공녀로 추천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그렇습니까?”
짧은 역사 지식이 문제다.
대충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지,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실제로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니까.
“권영균의 여동생은 훌륭하더군. 조선에서 이름난 미녀이며, 성품이 곧고, 특히 그녀가 부는 퉁소 소리를 들으면 험난한 파도도 가라앉는다지?”
용왕의 무녀냐.
하여간 이 시대 과장법은 손발이 오글거려서 문제다.
“그런데 말일세. 이상한 소문을 들었네.”
“무슨 소문입니까?”
“그녀가 공녀로 선발되기 전, 배를 타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고 하네.”
“……네?”
원 역사에 없던 일이다.
“모르는 일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혼담을 가지고 대만국으로 향했다고 하는데 정말 모르나?”
“…….”
킬방원 이새끼.
아주 골고루 해놨네.
“강해인.”
“예. 제독.”
“마지막일세.”
“네?”
“내 호의는 이게 마지막일세. 공녀의 일은 북벌 이후로 미루지. 자네는 자네가 해야 할 일을 하게. 그리고…….”
정화는 어떠한 화도 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오직 폐하의 명에만 집중하게.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 두지 말고.”
그것은 겁주기 위해 수없이 남발했던 최후통첩과는 달리, 마지막 인정을 베어내는 칼의 잔영 같았다.
***
강해인이 사라진 자리.
검은 손가락을 지닌 동창 요원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렇게 돌아가시면 제독께서 위험해지십니다.”
“동창의 임무는 건문제를 찾는 것, 그리고 내부의 반란을 예방하는 것이다.”
내부의 반란을 방지하는 것에 집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명 제국은 세계 최강이다.
내부의 혼란만 없다면, 작은 나라 몇 개가 연합하든 너끈히 이겨낼 수 있다.
어차피 어설픈 약속으로 묶인 오합지졸들.
한두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면 알아서 고개를 숙일 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만약 놈이 눈치채고 도망간다면, 그리하여 대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세력을 키운다면 두고두고 우환이 될 것이니.”
“그러니 어떤 대가를 감수해서라도 처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강해인을 쳐낼 수 없다.”
북벌, 연왕부로의 천도, 대운하 증설, 그리고 후계 작업.
이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매우 예민한 시점에서 까다로운 적을 늘릴 수는 없다.
20만 강병을 가진 조선도 그렇지만, 해전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강해인도 쉽지 않은 상대인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대로면 제독은…….”
“장부는 뜻을 세운 신념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이 길이 대명에, 그리고 폐하께 결국 큰 기쁨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
동창 요원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자는 너무 위험한데.
대체 왜 황제 폐하께서는 저렇게 위험한 자에게 큰 권력을 주고, 제독께서는 그를 감싸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답을 구할 필요는 없다.
동창 요원은 도구의 도구.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니까.
***
와장창!
과거 중원의 핵심이라 불렸던 관중 지역.
수많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대도시 장안의 궁궐에서는 오늘도 큰 소리가 들렸다.
시녀와 환관은 바짝 엎드려 몸을 떨고, 무관들은 미친놈처럼 날뛰는 자신의 주군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대체 왜! 왜에에에에!”
장안에 자리한 한왕부의 주인, 한왕 주고후는 눈에 보이는 귀중한 물건을 다 깨버려도 성이 차지 않는지 계속 씩씩 거렸다.
“내 덕에 육관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잖아! 무너진 비단길도 재건되기 시작했고! 근데 왜에에에에!”
한왕 주고후가 미친 듯이 날뛰는 까닭은 수도인 남경에서 도착한 한 줄의 소식 때문이었다.
그 노망난 아버지가 기어이 일을 벌였다.
이렇게 장성하고 검증된 아들을 두고, 겨우 일곱 살 난 애송이를 후계자로 둬?
이는 나라가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 못 한다느니, 그 말이 옳다.”
나이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황위에 오른 장본인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가 있지?
“다들 물러가라.”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한와 주고후의 책사, 장원기는 여유롭게 그를 말렸다.
장원기가 한마디 하자 벌벌 떨던 환관과 시녀는 물론,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무관들도 밖으로 나갔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고정하시지요. 전하.”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나?”
“분개하시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장원기는 사람 좋게 웃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면, 다시 깨닫게 해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뭐, 뭐?”
천하에 무서울 게 없다는 한왕 주고후조차 말을 더듬을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였다.
역모를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듣자 하니 남경은 물론, 곳곳에서 병사와 물자를 모으며 북벌을 준비하고 계시다더군요.”
“그러니 위험하다는 것이다. 북벌에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그 강력한 병사를 어찌 당해낼 것인가.”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해산시키지는 않는다.
모은 병사를 이용해 황권을 강화하려 들 터.
오랜 역사 동안 늘 있었던 일이다.
“반대로 북벌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패하면 기회가 생긴다.
현재 누구도 아버지의 말에 거역하지 못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군사 재능 덕분이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공포가 깨진다면 슬금슬금 딴생각하는 이가 나오게 된다.
그들을 포섭하여 무시 못 할 세력을 형성한다면, 충분히 다음 제위도 노려볼 수 있다.
“너는 아버지를 모른다. 그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킬 거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뭐?”
“북벌에 성공하게 되면 북방의 위협이 정리되었다는 뜻. 연왕부로의 천도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겠지요.”
“그걸 말이라고!”
“어느 쪽도 대비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역시 최선은 그것이겠지요. 북원과 북벌군이 공멸하는 것.”
그 말에 한왕 주고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장원기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황태자 주고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계략가다.
심지어 황실 어의조차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누군가 독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장원기이기에 한왕 주고후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북원과 북벌군이 공멸하고 나면, 남경은 텅텅 빌 터.”
장원기는 사람 좋게 웃었다.
“그때가 되면 전하께서 천하를 손에 넣게 되실 것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한왕 주고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야심을 불태웠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 따윈 필요 없다.
이제는 스스로 증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