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역사의 기로 (2)
정의 그 자체라 불리는 공명정대한 성군.
기야스웃딘 아잠 샤.
벵골 술탄국 역사에 제일 유명하고 유능한 성군.
잘랄웃딘 무함마드 샤.
업적이 뭔지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둘은 서로 운명적으로 대극에 있다는 것.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잘랄웃딘은 태평하게 웃었다.
미남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총기 있는 눈빛에 호감형 인상이라 훈훈한 느낌을 주는 청년이다.
외모만 보자면 그 엄청난 암투를 벌일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 속내는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의 아버지가 마음대로 한 일일까.
“아니요. 훌륭한 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의적인 의미다.
인도에서 라자는 영주를 의미하지만, 한타와디에서는 왕을 의미하니까.
……한타와디의 크기가 인도의 한 주(州) 정도의 크기니 힘은 비슷할 것 같긴 하다.
“그런가요? 하킴(지사)이면 몰라도 라자는 너무 큰 이름이군요.”
“제 견문이 짧아서 그런데 바투리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수도인 판두아 북쪽에 있습니다. 벵골 술탄국의 북부와 동부 국경을 지키는 요충지죠.”
“판두아요? 벵골의 수도는 다카가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다카가 매우 중요하고 부유한 도시다 보니, 착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수도는 판두아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경제적으로는 다카나 이곳, 치타공이 더 중요하지만요.”
“그렇다면 판두아로 가려면…….”
“육로로는 힘들고 바다로 가시는 게 더 빠르고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교역을 하시려면 이곳 치타공을 추천합니다. 판두아는 그리 발전하지 못했거든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당연히 수도가 제일 발전하고, 제일 기회가 많은 땅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테니까.
아니다.
그건 한반도에서 중앙 집권의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인 신성 로마 제국만 봐도 수도보다 훌륭한 도시가 많이 등장하고, 황제보다 입김이 센 대영주가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황제를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열심히 해 처먹으려는 선제후가 많은 것이다.
그 바지사장 황제 중에 대박을 터뜨린 가문이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이고.
“그래도 샤를 한번 알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다만 이곳 치타공은 완전한 자치령입니다. 샤께서는 어떠한 혜택도 주지 못하실 겁니다.”
벵골 술탄국은 아시아의 손꼽히는 강국이다.
그런데 왕이 이렇게도 힘이 없다니…….
덕분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되면 기야스웃딘을 지원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 아닌가.
“치타공의 라자는 누구죠?”
“제 대부님입니다. 원하시면 안내하겠습니다.”
“흠…… 그러지요.”
정보가 없을 땐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
결정은 일단 뒤로 미루자.
전말을 안 뒤에 결정을 내려도 늦지는 않는다.
어차피 역사는 내 결정과 움직임에 의해 변화될 테니까.
***
쏴아아아.
치타공의 한 장원에서 창문으로 밖을 보자니 엄청난 호우가 쏟아졌다.
치타공 영주와 만남 약속도 호우로 인해 미루어졌다.
“우기도 아닌데 굉장하네요.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봅니다.”
석피가 한마디 하자,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기서 몇 달 살다 보니 계속 비가 와요. 덕분에 습기로 못 쓰게 된 화약이 많죠.”
곧바로 무함마드가 받았다.
이미 알고 있다.
현대에서는 방글라데시의 항구인 치타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은 곳이니까.
“너 혹시 시킨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닌 다음에 습기 핑계 대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만날 사람은 다 만났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장원도 받은 거 아닙니까.”
장원은 단순한 집이 아니다.
논밭이 딸린 지주의 저택이다.
사회적 위치로 보면 지역 유지쯤 되려나.
“시킨 일은 어디까지 했어?”
“일단 약속은 못 받았습니다. 전하께서 방문해 주신 다음에 결정한다고 해요.”
“초석 광산이 벵골 술탄국에 있는 건 확실하고?”
“네. 엄청나더군요. 수도인 판두아와 북쪽 바투리아 지역에 광산이 있는데, 삽으로 긁어내도 나올 정도로 풍부합니다.”
화력 중독자의 나라인 조선이 부러워 죽을 만한 내용이다.
“역시…….”
“뭐가요?”
“아니다.”
내가 아는 유명한 초석 광산은 대부분 인도 남부에 있다.
하지만 인도 남부는 농작물은커녕, 잡초도 제대로 안 자라는 붉은 황무지에 구릉지.
게다가 살인적으로 더우므로 제대로 된 국가 자체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한때 세계 최강 대국이었던 무굴 제국조차도 그 땅으로는 가지 않았을 정도다.
그렇게 척박한 땅이니, 내가 중간 기지를 건설하는 것도 힘들겠지.
역시 안정적으로 초석을 받으려면 벵골 술탄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초석 광산이 왕의 영지와 미래의 찬탈자 영지에 많다라…….
반대인가?
무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다른 소문은 없어? 예를 들면 가네샤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가네샤요? 유명하죠. 무려 400년 동안 벵골 북부를 지배한 대가문이니까요.”
“벵골 북부? 바투리아의 지사 아니었어?”
듣기론 바투리아의 땅은 그리 넓지 않다던데.
“바투리아가 핵심 영지인 건 맞는데, 벵골 북부가 다 그의 세력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군사력도 제일 강해요.”
신기한 일이다.
내가 게임으로 만난 라자 가네샤는 제 영지는 다른 이들에게 위임해놓고 궁정에만 머물던데.
역시 게임과 역사는 다르구나.
“그럼 군사력도 강하고, 치타공과의 연계도 있으니까 경제력도 풍부하겠네?”
“아니요. 치타공의 영주는 중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와도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지요. 굳이 말하자면 가네샤와 가장 가깝기는 한 것 같습니다만…….”
“대기업 총수 포지션이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벵골 술탄국은 기야스웃딘 아잠 샤를 중심으로 하는 친왕 세력, 가네샤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군벌, 치타공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상인들이 3대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치타공은 아웃이다.
가까이 지낼 필요는 있지만, 전력으로 도울 필요는 없다.
이 시대는 무력이 장땡이니까.
남은 건 기야스웃딘과 가네샤 중 누굴 지원할 것이냐 하는 건데…….
남의 나라 권력 다툼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초석을 지원받으려면 벵골 술탄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될 필요가 있다.
곧 암투로 왕이 잇달아 사망할 텐데, 그걸 내버려 뒀다가 중요한 순간에 지원을 못 받게 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가네샤를 지원했다가 당장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도 않고.
언제 영략제가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한, 항상 일정 수준의 대비는 해두어야 하니까.
이게 문제다.
그 새끼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기가 너무 힘들어.
“그리고 이건 특급 기밀인데요.”
“뭔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여기서 이방인인데, 이방인이 얻을 수 있는 특급 기밀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
“여기에 아사신 교단이 들어와 있습니다.”
“……뭐?”
“전에 한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사신 교단이 맘루크 술탄국과 손을 잡고 그쪽으로 피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맘루크 술탄국은 튀르크계 노예 기병들이 주축이 되어 건국한 나라다.
오늘날 튀르키예 바로 아래부터 이스라엘, 이집트, 수단, 그리고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 해안 차지하고 있는 강국.
우리 선단이 오스만 술탄국과 직접 접촉을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함마드야 메카에 내려주면 알아서 가겠지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 생각해보니 말씀드리려고 할 때 뭔가 일이 생겨서 말이 끊겼던 것 같네요.”
“잠깐만. 아사신 교단이 벵골 술탄국에 들어와 있다고? 어디에? 수도에?”
“수도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어요. 저도 비밀스러운 표식을 겨우 알아봤습니다.”
믿기지 않지만, 무함마드도 한때는 아사신 교단 소속으로 훈련을 받은 적 있다고 했다.
비밀 표식을 알아봐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데 석피는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저 검이라도 숨겨야 해요.”
“왜?”
“그거 진품이라면 상징성이 미쳤다니까요. 아사신 교단 간부들이 얌전히 고개 숙이진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용하려 하거나, 죽이고 빼앗으려 하겠죠.”
“흠…….”
아사신 교단이 벵골 술탄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앞으로 벵골 술탄국의 샤는 기야스웃딘을 시작으로 줄줄이 암살당한다.
기야스웃딘 이후로는 세 명의 왕이 재위 기간이 보통 1~2년일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아사신 교단의 존재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오히려 우리가 아사신 교단을 삼키는 건?”
“맙소사.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우리 모두 불귀의 객이 될 겁니다. 진짜 무서운 놈들이에요.”
“일단 하인들을 전부 해고하고 내보내. 한동안은 창해 주식 상단에 벵골 술탄국 출신의 신입은 뽑지 않는다.”
역사로 밝혀지기를, 아사신 교단의 주요 암살 방식은 하인으로 위장 취업해서 주인을 죽이는 방식이니까.
탈출도 못 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럼 현지인 하인을 고용 안 하면 될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고용 안 하면 일이 안 돌아갔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왜요?”
“……너 아사신 교단 출신 맞니?”
“어렸을 때 탈출하긴 했지만 맞긴 맞습니다.”
“아무튼, 내 말대로 해. 그렇게 하면 암살당할 위험이 현저하게 줄어들 테니까.”
“그럴 리가요.”
“음?”
“요즘 아사신들은 칼 쓰는 애들 많지 않아요. 폭탄으로 자폭하지.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깔끔하게 끝나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주로 그런 교육을 받았고요.”
“……MZ하네.”
“네?”
“아니야.”
15세기에 자폭 테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라의 요술봉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제 검이 어떻다고요?”
잠시 대화가 멈추자, 옆에서 조용히 있던 석피가 물었다.
“아, 말씀 안 해주셨습니까?”
“응.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고, 네가 착각했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잊어먹었지.”
“석피, 네 검에 있는 문장 말이야. 니자리파의 암살 교단의 상징이다.”
“니자리파가 뭔데?”
“이슬람에는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어. 시아파에도 여러 계열이 있는 데, 그중 7이맘파를 이스마일파라고 해. 그 이스마일파에서 갈라져 나온 신도들로 구성된 신도가 니자리파야.”
“……뭐? 뭐? 이맘? 뭐?”
전문 용어가 막 나오니, 석피가 렉 걸린 고양이처럼 버벅댔다.
“이맘이란 ‘이끄는 자’라는 뜻으로 이슬람의 지도자를 말해. 유대교의 랍비같은…… 아니지.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높은 사람.”
“어쨌든 이 검이 이슬람 계열의 어떤 종파의 상징이라는 거지?”
“그렇지. 그러다 원나라에 의해 멸망했다가, 잔존 생존자가 일 칸국의 재상이 되었다가…….”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결론만 말해주면 안 돼?”
“간단하게 말하면 그거야.”
무함마드는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석피를 보았다.
“그 검이 진품이라는 가정하에, 너랑 네 여동생이 아사신 교단의 정당한 후계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