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8
017화 출항
정화의 원정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규모의 항해였다.
그런데도 대항해시대와는 연관성을 찾지 못한다.
서양의 역사관 중심으로 해석해서?
아니다.
대원정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탐험.
정화는 영락제의 명을 받고 원정을 떠난 만큼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정화는 송, 원나라 시기에 상인에 의해 철저하게 검증되었던 항로만을 이용했다.
아프리카도 중동 상인들에 의해 검증된 루트로 간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안전을 지향하며 움직였다는 방증이다.
애초에 목적이 새로운 무역 항로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명나라의 국력을 과시하고 조공국을 늘리는 데에 있기도 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국력 과시라······.”
출항 당일이 되자 경사의 수많은 백성들이 장관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번 원정이 동아시아의 전통의 특수 외교 관계인 조공·책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간접 증거다.
조공·책봉은 명나라의 국력에 도움이 되는 제도가 아니라, 거대한 땅에 사는 수많은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정당성과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제도이기 때문이었다.
“대단합니다. 언젠가 조선에서도 이런 장관을 보게 될 날이 올까요?”
석피는 무척 감탄한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는 않겠지. 할 이유도 없고.”
“예? 왜죠?”
“조선의 서해와 남해는 섬이 너무 많아. 조수간만의 차도 크고. 이런 짓을 하려면 인부들이 죄다 죽어 나갈 거다.”
“부산포 앞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전하보고 부산포까지 행차하시라고 하게?”
“그건······ 어렵겠지만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왕은 수도에서 백 리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이 있으니까.
아직 경국대전이 완성되지 않긴 했지만, 당연히 기본적인 법률은 있다.
지금도 대신들이 열심히 제정 중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거 다 돈 지랄이다.”
“예?”
“국력을 과시해서 뭐 어쩔 건데? 네 살림살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진짜 말 그대로 쇼다.
국력 과시의 대상은 타국이기도 하지만 자국 백성이기도 하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개쩌는 국가다~ 그러니까 너희는 자부심을 느끼고 개쩌는 나라의 주인인 황제를 섬겨라~’
라는 식의 국뽕을 주입하기 위함이랄까.
조공국이 늘어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공 무역 특성상 조공국이 늘어날수록 재정은 악화한다.
그나마 바로 옆에 있는 조선은 여진족을 칠 때 군사적 도움이라도 뜯어낼 수라도 있지.
괜히 조선을 특별 대우해주는 게 아니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를 조공국으로 삼아봤자 실리적인 이득은 없다.
오히려 손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애인대행 서비스, 아니 조공국 대행 서비스 같은 느낌이다.
차라리 무역 협정을 맺어 거래를 트는 게 더 이득이다.
그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웅장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지 않습니까.”
“순수한 청년이네. 그 마음 계속 간직하길 바란다.”
“나리께서는 평소엔 느긋하셨는데, 오늘은 신경이 곤두서 계신 느낌입니다.”
“그런가? 그런 것 같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네.”
왠지 모르게 예민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확실한 이유도 있었다.
세금 살살 녹는 걸 직관하는 느낌이라서.
이전까지는 어차피 남의 나라 일이고, 난 옆에서 빨대만 꽂으면 된다는 생각이라 상관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 대함대에 탑승하게 된다고 하니 어쩐지 내 일처럼 느껴졌다.
“나리.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함선에 저 말똥말똥한 눈은 왜 그려 넣은 겁니까?”
“그러게. 나도 모르겠네.”
한두 척에만 그려 넣은 게 아니다.
모든 배의 선수 부분에 똘망똘망한 눈을 그려 넣거나 달아 놓았다.
차라리 로마의 배처럼 째려보는 눈을 그려 넣던가.
아니면 아래에다 그려서 흘수선 역할이라도 하게 하던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황제 폐하 납시오~”
300여 척의 함선이 한눈에 보이는 단상.
그 위로 영락제가 올라왔다.
만백성이 그 자리에서 엎드렸으나, 원정대원들에 한해서는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는 예로 대체했다.
이제 막 떠나려는 사람을 진흙투성이로 만들지 않기 위한 영락제의 배려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본 목적은 달랐다.
엄청난 예산을 들인 만큼 제대로 국뽕을 주입해야 하는데, 진흙투성이 원정대의 모습을 보이면 속된 말로 가오가 안 사니까.
대신 정화가 단상에 올라 절을 하는 것으로 원정대를 대표했다.
“일어나라.”
말하는 사이 의례적인 예법이 끝났다.
“나의 친우, 심복 정삼보여. 그대를 원정대 제독으로 임명한다.”
이어 금으로 장식된 검은 봉을 하사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바다 건너 수많은 국가에게 천자의 위엄을 떨치고 오겠습니다.”
“만전을 기하라. 그대는 나라의 보물이다. 무사히 다녀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황제는 범인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고독한 자리고, 유일한 아군은 환관뿐이다.
환관은 이질적인 존재로 보통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그들의 권력은 오롯이 황제에게서 나오기에.
하지만 영락제가 정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그런 이해관계를 넘어 애틋함이 느껴졌다.
멀리 떠나는 절친한 벗을 보는 듯한 표정이랄까.
근데 네가 보내는 거잖아.
그만큼 믿을 만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승선에 앞서 제사를 지내겠다.”
······응?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내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던 동물적 본능이라고 할까.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남만을 정벌할 때 강의 신이 화를 내어 돌아가질 못했다고 했다.”
그건 정사가 아니라 연의인데.
잠깐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화의 세계관에서 남쪽의 이민족은 남만이다.
베트남도, 태국도, 인도네시아도 전부 남만.
조공국을 늘리러 가는 것인 만큼 정벌로 표현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즉, 정화의 대원정 역시 남만 정벌······ 이라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강의 신의 분노를 푸는 방법은······.
“수급을 쌓아 제사를 지내면 화가 풀려 강이 잠잠해진다고 했지. 하물며 바다는 어떠하겠는가.”
가슴이 철렁했다.
포승줄에 묶인 수십 명의 사람이 끌려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단 한 명, 내가 아는 이도 있었다.
이소군에게 복권을 팔았던 상인이었다.
상인들의 상태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는데, 상당히 고된 심문을 받은 듯했다.
“이 자들은 감히 천자의 지엄한 명을 거역하고 채표(복권)를 판매하여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었던 거머리 같은 죄인들이다.”
아이들도 있는데 여기서 죽인다고?
“퉤. 안 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쌍색구에 쓴 돈만 해도······ 어휴.”
“저런 새끼들은 껍질을 벗기고 천천히 죽여야지.”
“그러게나 말일세. 저렇게 죽이면 너무 자비로운 게 아닌가.”
그러나 다들 나와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깜짝 놀라리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모두가 환호했다.
그러고 보니 선배 사관의 말에 의하면, 3년 전에 대규모 숙청할 때는 일부 죄인을 백성들이 구경하는 한복판에서 죽였다고.
명나라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술판을 벌이며 재미있는 쇼를 구경하듯이 즐겼다고 한다.
심지어 죄인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는 망나니에게는 돈을 던져주기도 했단다.
반대로 너무 쉽게 죽여버리는 망나니는 기술이 어설프다고 욕을 하기도 했고.
평소 자신들을 억압한 계층에 대한 복수.
혹은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한 자극과 일탈 같은 느낌이었다나.
“이 자들의 수급을 바쳐 해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순풍과 순항을 기원할 것이다.”
영락제가 손을 올리자, 도부수(망나니)들이 일제히 큰 칼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복권 상인들의 목이 일제히 땅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군주로서는 괜찮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원정대를 보여줌으로써 국뽕을 주입하고.
백성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상인을 잡아 죽임으로써 민심을 얻고.
영락제가 가혹한 세금을 걷고, 폭정을 일삼았어도 20년간 성세를 유지한 이유가 있었다.
“인신 공양은 없어져야 할 풍습인데······.”
“범죄자를 제물로 바치면 신이 더 노하시지 않을까요?”
석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순수한 의문을 드러냈다.
죽이는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은 아직 사람을 생매장하는 풍습인 순장도 남아있는 야만의 시대라고.
“글쎄. 신이 제정신이라면 죄 없는 이를 바치는 걸 더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하긴. 신이 제정신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개판일 리 없지.
신은 없거나.
더없이 잔혹한 존재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려고 하는데, 옆에서는 또 다른 반응이 나왔다.
“아······ 아······.”
새하얗게 질린 이소군.
원래부터 백옥과도 같은 하얀 피부를 지녔으나, 지금은 밀가루처럼 하얗고 탁해 보였다.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았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그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절대 큰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단, 위로보다는 경고를 날렸다.
“살아남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대인. 부탁드립니다. 어디든 좋으니 먼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더는······ 더는 남경에는 있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여자는 배에 탈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 배에 여성을 태우면 불길하다 믿었으니까.
조선이나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다의 여신이 질투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모가 뛰어난 여성이 탑승할수록 더욱 질투 받는다고 믿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거친 뱃사람들 사이에서 여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
뱃사람들이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다가 조직력과 협동력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배 위에서는 여자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어렵다는 것.
현대에서도 남초 밭이던 군대에 여군이 들어오면 화장실 문제부터 온갖 트러블이 발생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자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정대로 복건성으로 가세요.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데려가게나.”
최대한 엄하게 말했으나, 누군가 끼어들었다.
“어차피 이곳에는 그녀를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태감?”
“이제부터는 제독이라 부르게.”
정화는 이어 이소군을 보았다.
“환관이나 기녀는 짐승의 짐승이고, 노비의 노비지.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 불과해.”
“······.”
“주인의 자비에만 기대지 말고,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주인에게 필요 없는 도구는 버려질 뿐이니까.”
그 말을 남기고 정화는 대보선에 승선했다.
그의 뒤를 따라 수많은 이들이 탑승을 시작했고, 우리 역시도 배 위에 올랐다.
“닻을 올려라!”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우리와는 달리 선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실로 들어가자.”
지금은 밖에 나오면 방해만 될 뿐이다.
선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장강을 보았다.
50여 명의 수급을 던져 넣었음에도 강은 푸르렀다.
마치.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라는 듯이.
우리는 모두 선실에 들어갔다.
낮임에도 어두컴컴한 방.
그 안에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출항이다.
“이 소저.”
“예. 대인.”
“그대를 배려하여 개인사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는 알아야겠습니다.”
범상치 않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정화가 선원의 동요를 불러올 수 있는 여자를 탑승시킨다?
그것도 이소군 같은 미녀를?
절대 가벼운 이유가 아닐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