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백성을 위하여 (1)
방문이 끝난 후, 기야스웃딘은 치타공의 영주 관저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날 사위로 만들고 싶다는 건 진심인 것 같네.”
다이너마이트와 수석총의 제조법을 알려주면, 벵골 술탄국은 물론 인도를 석권하고 그 전체의 독점 교역권을 주겠다.
사실 이건 의미 없는 공수표다.
힘이 저쪽에 있는 한, 언제든 회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야스웃딘은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그 후대로 가면 권리는 이어지기 어렵다.
그 독점 교역권을 가장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
내가 벵골의 샤가 되면 된다.
……벵골 술탄국이라면서 왜 술탄이라고 안 하고 샤라고 하는 거지.
아직 개종이 덜 됐나?
“넌 어떻게 생각하냐?”
“……므음?”
오른손으로 인도식 빵인 난에 카레를 얹어 먹던 무함마드가 ‘뭐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진짜 잘 먹네.
얜 진짜 어딜 가도 살아남겠다.
“맛있냐?”
끄덕.
맛있긴 하다.
여태까지 먹었던 인도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인도 음식은 영국에서 먹었던 것인데, 왜 정작 영국 음식은 그 모양일까.
향신료를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쑤시고 다녔던 그 나라지만, 그 향신료를 정작 자기 음식에 써볼 생각은 못 했나?
“뭐가요?”
“네가 만든 ‘피 쾃 알라’ 말이야. 그거 제조법을 가르쳐 달라잖아.”
다이너마이트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용왕의 분노’라는 이름으로 굳어져 버렸지만, 무함마드는 처음 이걸 만들고 나서 피 쾃 알라(Fi quat Allah)라는 이름을 붙였다.
알라의 힘이라는 뜻이다.
“괜찮지 않나요?”
“뭐가 괜찮은데?”
“알려줘도 어차피 못 만들어요.”
“이 녀석. 이 나라를 무시하지 마라.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나라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거 만들어서 죽이는 적군보다, 만들다가 죽는 아군이 더 많을 겁니다.”
“그래?”
“나 정도나 되니까 이렇게 만들지, 그거 생각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까딱하면 터져요.”
그렇다고 듣긴 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깃털로 건드려도 폭발할 때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 답을 찾아내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우리도 새로운 걸 만들겠죠.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이야말로 우리 상단의 핵심 사상이 아닙니까.”
다이너마이트보다 더 대단한 걸 이 시대 화학 기술로 만들 수 있나?
더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혁신적인 건 당분간은 나오기 어려울 텐데.
솔직한 말로, 이 시대에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부터 이미 오버테크놀러지다.
“게다가 적어도 우리에겐 큰 위협이 되진 않을 겁니다.”
“그래?”
“생각해보세요. 육지면 몰라도 바다에서 그걸 어떻게 쓰겠어요. 얇게 만들어 화살에 달아서 쏜다고 해도 폭발력은 무척 낮을 텐데.”
그건 그렇다.
대포는 끊임없이 개량 중이고, 사정거리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대포의 사정거리가 화살 비거리의 두 배는 가볍게 넘어가는 시점인 만큼, 현실적으로 다이너마이트가 위협되진 않는다.
……바다에 있을 때는 말이지.
만약 육지에서 자폭 테러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
“기술의 개발자로서의 네 권리는?”
“아유. 됐어요. 혼자 했다면 만들지도 못했을 거. 전하 마음대로 하십쇼. 떡고물이나 잘 챙겨주시고.”
무함마드는 상단의 간부로서 이미 많은 돈을 벌었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빚쟁이에게 쫓길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로.
“근데 넌 고향 언제 가냐? 메카에 내려주면 알아서 갈 수 있겠냐?”
벵골 술탄국도 항해를 자주 하고, 이슬람 국가인 만큼 종종 메카로 성지 순례를 가는 항해 편이 생긴다.
그거 타고 메카로 간 후, 다른 순례길을 이용하면 오스만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배 타고 멀리 돌아서 구라파까지 가신다면서요. 그 배에 타고 로마로 가면 다들 알라의 위대함을 깨닫지 않을까요?”
“신성 모독이라고 너를 붙잡아 화형에 처하지 않을까?”
“저는 언제나 가슴 속에 중요한 걸 보관하고 있어요.”
“뭐? 사직서?”
“아니요. 용왕의 분노요.”
“…….”
“그런 일이 생긴다면 혼자 가지는 않을 겁니다.”
훌륭한 마인드다.
현대 한국인도 이런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면 날 괴롭힌 녀석하고 같이 갈 생각을 해야지, 왜 혼자만 가느냐고.
가슴 아프게.
“그런데 말입니다.”
“응?”
“기야스웃딘 말입니다. 그 왕이 얼마나 갈 것 같나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보기엔 얼마 못 갈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지?”
“데리고 다니는 친위대 내에도 아사신이 있더라고요.”
“……뭐?”
무함마드는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나에겐 무척 큰 충격이었다.
친위대라고 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4대조 조상의 흠결까지 따지는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그 친위대에 암살자가 섞여 있다고?
“진짜냐?”
“아사신들이 하는 버릇이 있어요. 모르고 보면 알기 어렵지만…… 설명하기 어렵네. 봐보세요. 이게 보통 사람의 움직임.”
무함마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평범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건 아사신들의 움직임입니다.”
똑같다.
“확실히 다르군요.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데다, 언제든 튀어나가 멱을 딸 준비가 된 모습입니다.”
옆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석피가 한 마디 했다.
……내가 보기엔 완전히 똑같은데.
“이건 일부러 티 나게 한 거고, 실제로는 이래.”
……여전히 똑같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
“얼핏 보면 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래서 유명한 거군요. 어디 보자…… 이렇게 하는 건가?”
석피도 평소와 똑같이 걸었다.
“대단하네. 한 번 보고 따라 하다니.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 건가?”
“그만.”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싫다.
KGB 출신은 언제든 권총을 사용하기 위해 걸을 때도 오른손을 움직이지 않는다던데.
그건 듣고 나서 딱 알아봤는데, 이건 정말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야스웃딘의 친위대에 아사신이 있다. 그렇게 알아두면 되는 거지?”
“확실합니다. 근데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했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겠지.”
그걸 감수할 정도로 기야스웃딘을 위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아직 확실한 아군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가지 제안을 합니다.”
“뭔데?”
“하나는 그의 말대로 사위가 되는 겁니다.”
“싫어. 다음.”
“공주님 미모하고 인성을 한번 보고 생각해보는 게 어때요? 여기 미녀들을 보면 정말 눈 돌아갈 정도로 예쁩니다.”
“나도 외모의 영향을 받지만, 외모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야.”
“외모뿐만이 아니라, 벵골 술탄국을 확실하게 아군으로 두면 항해가 펀해진다니까요.”
그건 그렇다.
대만에서 명나라 물건 떼다가 벵골 술탄국에 팔고.
벵골 술탄국에서 곧바로 희망봉으로 갔다가, 그대로 유럽까지.
이 시대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길이다.
한타와디의 달라나, 인도 서남쪽 캘리컷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니 위험하고.
“다른 제안은?”
“아사신을 한번 만나보죠.”
“……너 전에 위험하다고 안 된다고 했잖아.”
“아사신을 직접 만나는 게 아니라, 아사신과 거래하는 녀석을 만나자는 겁니다.”
“그게 누군데?”
“누구겠습니까.”
치타공의 영주는 아닐 거다.
자기 영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봐야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뿐이니까.
왕이 자기 목숨을 노리라고 의뢰하지는 않았을 테고.
남은 용의자는…….
“가네샤.”
***
평소에도 항상 호위를 대동했지만, 이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사신들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아무리 대비해도 모자랐으니까.
치타공 영주 관저로 향할 때도 호위를 충분히 데려갔다.
치타공 영주 관저는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건물 양식은 비슷했다.
전체가 붉은 벽돌로 되었고, 아치 형태가 눈에 띄었다.
건물에 따라서는 아랫부분은 회색 벽돌을 쓴 곳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구분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따로 물어보고 기록해 둬야지.
치타공의 영주와의 만남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딱히 대단할 게 없다는 평가가 대다수였으니까.
다만 기야스웃딘의 대처만이 궁금했는데…….
“에…… 그러니까 바닷속에서 오셨다고?”
치타공의 영주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눈에는 총기가 전혀 없었다.
“바닷속이 아니라 배 타고 왔다.”
“그렇지. 배. 배. 그러니까 아바스라고 하셨나?”
아바스 왕조는 신라나 고려와도 교류했던 이슬람의 강대국이다.
200년 전에 몽골에게 멸망 당했다.
압바스 칼리파라는 지도자의 존재가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실권은 맘루크 술탄국이 잡고 있고.
“서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맙소사! 몽골이군. 그 악마의 군대가 또 왔어! 이번엔 배를 타고!”
미친놈인가.
“죄송합니다. 라자께서는 현재 실지증을 앓고 계십니다.”
그의 수행원이 난처하다는 듯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실지증은 치매를 말한다.
“건강도 안 좋은 분이 왜 후계에게 넘기지 않고…….”
“맙소사! 몽골이 나에게 양위를 강요하고 있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그래. 몽골 기병은 코끼리로 상대해야 한다고 했어. 얼른 코끼리를 준비하라!”
“…….”
“나는 잔학무도한 유목민에게 내 영지를 절대 넘길 수 없다! 어디 호라즘처럼 해보아라! 우리는 끝까지 항전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옆에 있는 기야스웃딘을 보았다.
“하하하. 이거 따지러 왔는데, 영주가 이런 상태라면 죄를 묻기도 어려운걸?”
그도 허탈하게 웃었다.
“괜찮겠습니까? 옆에 아라칸 왕국의 상황을 보면, 치타공 영지는 언제든 대비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대비는 영주가 하는 거고.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샤는 라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네. 법에도 나온 항목이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문제일세.”
“태평하시군요.”
“법이란 지켜져야만 하지.”
평화의 시대에는 그렇지만…….
“전시 상황에 따른 예외 법률은 없습니까?”
“있네. 하지만 말 그대로 전쟁이 터졌을 때나 가능하지.”
어느 나라를 가든 내 마음에 쏙 드는 나라가 있겠냐마는.
내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국가인 벵골 술탄국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건 매우 뼈아프다.
현재 초석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중국과 인도밖에 없다.
명나라에서 구하려면 영락제가 때찌때찌 할 테고.
인도에서는 평화로운 곳이 여기 밖에 없고.
그렇다고 이 시대에 태평양을 가로질러 칠레나 페루에서 캐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진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그냥 영락제의 개로 살까?
아니지.
차라리 성군으로 유명한 황태손 주첨기라면 모를까, 그 미친 싸이코 새끼의 개로 살면 제 명에 못 죽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그 명언이 떠올랐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고.
내가 만들지 않는 한,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도 없다.
“기야스웃딘 아잠 샤.”
“말하게나. 라자 나가.”
“캘커타를 맡겠습니다.”
내 대답에 기야스웃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하네. 친구.”
“잘 부탁하지요.”
역시 대화로 풀어나가려면 아무것도 안 된다.
훌륭한 대화수단(대포)이 필요하다.
오늘부로 나는 그 나라.
아니, 대영제국의 길을 걷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