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 백성을 위하여 (2)
“갔군요. 허허허.”
강해인이 사라지자, 치타공의 라자 바룬 칼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연기가 들키면 어떻게 할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잡아떼면 그만이지. 용왕에게 혜안이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겠으나, 그라고 해서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
기야스웃딘은 바룬 칼리 옆에서 담담하게 받았다.
“그런데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명나라와의 무역은 아국의 숙원 중 하나. 거래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명 왕조의 천자는 대외적으로 용왕을 총애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
“이번에 그는 원정대 3만을 맡게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명 왕조는 믿지도 않는 자에게 3만이나 되는 대군을 맡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원정대를 맡기는 대신 창해 주식 상단을 가져가려고 했지.”
또한, 원정대에는 황제의 심복을 가득 심어두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용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즉, 총애는 있어도 신뢰는 없다는 뜻이다.
명 천자는 용왕에게 목줄을 걸고 싶어 하고, 용왕은 목줄을 어떻게든 피하거나 끊고 싶어 하는 상황.
그러니 강해인이 초석을 대량으로 원했겠지.
용왕의 특기인 함포전을 마음껏 치르기 위해서.
“차라리 초석 거래 건을 명 천자에게 알리고, 원정대의 대주를 교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조금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 경우 명 왕조에서 다시 해금령을 내리고 바다를 아예 걸어 잠글 수도 있다.”
“교역으로 이미 큰 이득을 봤는데 과연 그러겠습니까.”
“그쪽 인간들이 생각을 우리의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권력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아무리 큰 이득이라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녀석들이니까.”
라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인도 아대륙과는 다르다.
놈들은 사소한 것까지도 전부 다 통제하고 싶어 하니까.
아니,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엄청나게 집착한다.
만약 벵골 술탄국이 델리 술탄국이 아니라 명 왕조에 속해 있었다면 독립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놈들은 자신들 나라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방이 독립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굳이 용왕을 캘커타로 보낼 이유가 있습니까?”
치타공의 라자로서는 무척 불편한 정책이다.
치타공은 벵골 술탄국은 물론 근방에서 으뜸가는 항구다.
그런데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강력한 경쟁자가 들어선다?
당장은 밀리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안심해라. 치타공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캘커타는 명 왕조 전담 항구이자, 군사용 항구가 될 것이다.”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파이를 늘리자는 것.
치타공의 권리는 확실하게 보장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바룬 칼리는 북부 군벌에 합류할 테니까.
“캘커타에 강력한 해군이 들어서면, 치타공의 안전도 보장된다.”
“과연 용왕이 뜻대로 움직여 주겠습니까?”
“그러진 않겠지. 하지만 용왕은 벵골을 모른다.”
캘커타.
칼리 교단의 본산이자, 광신적인 힌두교도들이 모인 곳.
이슬람을 믿고, 어떻게든 포교하려고 하는 벵골의 지배층으로서는 눈엣가시 같은 곳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피지배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이 캘커타를 중심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만약 용왕이 캘커타를 기대만큼 발전시킨다면…….”
이슬람을 마음껏 포교할 수 있다.
불만을 품은 극단적인 힌두교도들은 캘커타로 향할 테니까.
그리고 용왕은 극단적인 힌두교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되겠지.
보통 힌두교도들은 외국인을 귀족 계급인 크샤트리아로 대우해주지만, 그들은 밑바닥 노예 계급인 수드라로 여긴다.
“용왕이 잘해주었으면 좋겠군.”
“두고 보지요.”
웬만하면 이슬람을 포교하고 싶긴 하지만, 백성들이 원한다면 힌두교를 믿게 두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기야스웃딘에게 있어 힌두교는 무척 미개해 보이는 종교였다.
고리대금업이라든가.
카스트 제도라든가.
물론 금지되었다고 해도, 무슬림들 역시 편법으로 이를 행하기는 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과 대놓고 허용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어떻게든 이 두 가지를 완화하고 싶다.
그래서 더욱 법을 강조한 것이고.
용왕에게 캘커타를 맡긴 이유도 이것이다.
캘커타는 뱅골 술탄국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힌두교도들이 모인 땅.
용왕은 맡은 도시를 부유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땅에 모인 수많은 이들을 잘 통합한다고 들었다.
어쩌면 용왕이 그 땅을 잘 통합시켜주지 않을까 했다.
“그보다 습격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괜찮으십니까?”
바룬 칼리는 말을 꺼내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기야스웃딘을 살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영지에서 벵골에서 가장 존귀한 샤가 습격받았다.
심지어 외국의 귀한 손님인 용왕까지도.
치타공의 라자로서는 큰 약점이 생긴 셈이다.
“이상한 놈들이야. 틈만 나면 습격해오는데, 잡힐 것 같으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죽어버리니까.”
기야스웃딘은 용서해준다는 말도, 책임을 묻겠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룬 칼리의 의도와는 다른 주제로 바꿨다.
“독입니까?”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굉장히 이상하군요. 한순간에 단명시킬 수 있는 독이 있다면, 왜 그걸 표적에 사용하지 않는 겁니까?”
“경고려나. 언제든 널 죽일 수 있다는 경고.”
“위험하지 않습니까. 더욱 몸을 보신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깟 암살자가 두려워 샤가 왕궁에만 박혀 있으라고? 오히려 더더욱 나서야지. 그래야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게 아닌가.”
“…….”
“걱정하지 말게. 정의는 반드시 이기니까.”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에 바룬 칼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게 흠이었다.
바룬 칼리가 친왕파에 합류할 것인지, 북부 군벌에 합류할 것인지 노선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용왕이 따지러 오면 어떻게 대응할까요?”
“오늘처럼 하게.”
잡아떼라는 뜻이다.
별로 좋진 않다.
바다라는 공통점으로 끊임없이 엮일 텐데, 계속 실지증을 핑계로 댔다가는 그와는 어떤 거래도 못 할 게 아닌가.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깔끔 하련만.
어쩌면 이런 식으로 용왕과 자신의 협력을 막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십수 년 동안 항상 정의만을 외치고 실천하는 사람이 그런 얕은수를 쓸 리가 없지.
“알겠습니다. 다음엔 어떤 식으로 착각해 볼까요? 몽골군?”
바룬 칼리의 말에 기야스웃딘의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
“……몽골군은 오늘 했네.”
기야스웃딘은 진지하게 바룬 칼리의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자국의 영지를 떼어주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기야스웃딘은 캘커타를 할양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1. 캘커타는 벵골 술탄국의 땅임을 분명히 한다.
2. 기야스웃딘 아잠 샤는 새로이 캘커타의 라자가 된 강해인에게 완전한 자치권을 보장한다.
3. 캘커타의 라자는 캘커타의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
4. 캘커타가 벵골 술탄국 내의 거래에 참여할 때는 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5. 캘커타는 벵골 술탄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대충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현대의 여러 계약서를 봤던 나로서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조항들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으니까.
함부로 편법을 쓰는 건 좋지 않다.
이 시대에는 ‘당연히 그런 것도 포함이지!’라고 우겨대면 결국 힘 있는 쪽이 이기게 되니까.
하지만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부분을 이용하는 건 이 시대에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 점을 이용하면…….
“그래서 너희 셋이 중요해.”
나는 곧바로 무함마드, 석피, 그리고 춘자를 불렀다.
이 세 명은 창해 주식 상단과 원정대를 통틀어서 ‘아사신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자다.
“신입을 모집해야 하는데, 내 근처에 암살자가 머무는 건 싫거든.”
“그들을 알아보고 떨어뜨리면 되는 거야?”
무함마드가 곧바로 물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 녀석은 사양을 안 한다.
그래서 더 귀중한 인재이기도 하다.
“아니. 능력만 된다면 합격시킬 생각이다.”
“뭣?”
“떨어뜨리고 나면, 다음엔 훈련 안 시킨 놈을 잠입시킬 테니까.”
일이 더 복잡해진다.
차라리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는 걸 비밀로 하고 그들을 통제하는 쪽이 낫다.
“그건 그렇지만…… 괜찮겠어?”
“안 괜찮아. 안 괜찮지만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런데 음…….”
“또 뭐?”
“알다시피 아사신은 이슬람에서도 극단적인 광신도를 훈련시켜 만든 집단이야.”
“알아.”
현대에도 악명을 떨친 중동의 테러단체는 광신도를 훈련시켜 만든 단체니까.
그들을 육성하도록 대대적으로 지원을 했던 건 미국이었다.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정작 소련이 해체되고 나니, 그들이 새로운 적으로 미국을 선택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인간은 강력하고 명확한 적이 있을수록 내부적으로 확실하게 결집할 수 있으니까.
보통 인간과 광신도의 차이점이라면 보통은 미국 같은 세계 최강대국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겠지.
“그리고 캘커타에는 힌두교 광신도들이 있어.”
“알아.”
지금은 물론, 600년 뒤에도 관광객을 잡아 인신 공양하는 미친놈들이다.
“그들을 한곳에 몰아넣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일어나겠지.”
“알면서도 한다고?”
“일단은 갈등을 중재할 거야.”
“어떻게?”
“돈으로.”
잃을 게 없을수록 극단적으로 빠져들 확률이 높다.
반대로 잃을 게 많아질수록 겁쟁이가 되어, 최대한 몸을 조심하게 된다.
“광신도들은 돈으로 매수하기 어려울걸?”
광신도의 골치 아픈 점은 돈으로 매수가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서 엄청난 돈을 퍼부어도 정상화가 안 된 이유다.
“매수하려는 건 아니고…… 보면 알아.”
미국이 실패한 건 인권을 너무 따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은 누구나 천부의 인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원 사상과는 달리,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권도 존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안 되면?”
전생에 자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사회 갈등을 없앨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갈등이라는 게 꼭 악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냥 방구석 비전문가로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뿐이다.
그리고 답을 도출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은 항상 ‘이대로 가면 주옥 된다.’라는 위기감이 생기면 한발 물러서서 타협을 모색했다.
국제 연합도 세계 대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전신인 국제 연맹과는 달리 공산주의 국가도 받아들이고, 전범국도 받아들이는 등 정말 많이 양보했다.
핵무기까지 나온 시점에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지구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도저히 중재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갈등이라면, 더욱 부추겨야겠지.”
‘이대로 가면 다 죽어.’ 상태가 되면 그제야 양보하게 되겠지.
유럽에서 30년 전쟁 이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된 것처럼.
“맙소사.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열치열, 이독제독, 이이제이.”
광신도는 광신도로 제압한다.
나는 극단적인 사상에 물들지 않은 선량한 시민들만 보호하면 된다.
“잠시 진통을 앓을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게 백성을 위한 일이다.”
“……잘될까?”
“우린 이미 믈라카에서 한 번 겪었잖아.”
그 엄청난 혼란이 생겼던 믈라카 왕국도 이제는 많이 완화되었다고 들었다.
믈라카 왕의 수완이 좋은 건지, 이전보다 훨씬 평화롭다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훌륭한 대화수단의 존재를 알았다는 거겠지.”
“미리 말할게. 나는 전하…… 아니, 대장의 여러 인품과 전망을 보고 따라다니기로 한 거야. 하지만 만약 대장이 극단적인 길을 걷게 된다면…….”
“극약 처방이 필요한 곳에서만 그럴 뿐이야.”
“응. 그러니까. 만약 대장이 초심을 잃고 극단적인 길을 걷는다면, 나는 여길 떠날 거야.”
“그건 네 판단이고, 네 자유다.”
자유라는 말이 어색한지, 무함마드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자. 여태까지 대장의 말대로 안 된 일이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잘 되겠지.”
안 된 일 많은데.
“그럼 시작하자.”
인도의 거점이자, 유럽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정비를 할 수 있는 항구.
캘커타의 건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