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90
189화 훌륭한 대화수단 (2)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항전을 택한 건 아니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만 딱 하나, 무장에서는 확실하게 유리하다.
내가 교역품을 판두아와 거래하면서 항상 우선적으로 확보하려고 했던 것은 초석.
그리고 캘커타에 둥지를 틀면서 제일 먼저 만들게 했던 것 역시 화약 공장이다.
또한, 내가 벵골 술탄국에 출발하기 전부터 무함마드를 벵골로 보내 엄청난 양의 화약을 만들게 했다.
일부는 잉와로 흘러 들어갔고, 일부는 습기로 못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충분한 양을 보유 중이다.
아. 하나 더 있다.
돈.
내가 이끄는 본대는 이윤보다는 후속 선단의 편리를 위한 개척을 목표로 한다.
그만큼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자주 터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을 많이 보유하고 다닌다.
천자의 금속인 금은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돈은 이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렇듯 나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지만, 문제는 캘커타의 문무관과 병사들이 나를 믿어줄지 모르겠다.
모든 사정을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있고…….
“응?”
생각해보니까 정보가 퍼진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잖아.
이쪽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적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 오히려 이득이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말씀드리기 외람되옵니다만…… 솔직히 말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차라리 외적이 쳐들어왔다면 그래도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마음가짐이라도 생기겠습니다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외적은커녕 오히려 내 쪽이 외국인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유하자면 오히려 내 쪽이 침략자다.
침략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악질 투기성 외국계 자본 정도로 생각하겠지.
“늦어도 한 달 정도만 버티면 우리가 확실히 이긴다.”
모르는 척.
슬쩍 운을 띄었다.
“네? 한 달 뒤면 뭐가 바뀝니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요소밖에 없습니다만…….”
“아, 그대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나? 지난번 선지자 무함마드 성화(聖畵) 훼손 사건 때, 만약을 대비하여 원정대를 전부 불러들였네.”
원정대 수.
3만.
원정대가 전부 전투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3만이라는 머릿수는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갠지스강을 통해 작은 배를 보내면 적의 후방 영지를 타격할 수 있다.
“한 달 뒤에 오는 건 확실합니까?”
“더 빨리 올 수도 있지.”
범선은 쉽게 움직일 수 없긴 하지만, 소집 명령을 내린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또, 벵골 술탄국에서 동남아시아의 여러 항구 사이의 항로는 검증된 지 수백 년이 넘은 안전한 항로.
태풍이나 쓰나미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앙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올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캘커타는 후방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 성벽도 변변치 않습니다.”
성벽이 아니라 목책이겠지.
그 말은 꾹 삼켰다.
성벽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영주 관저 주변으로 조금 높은 돌담 같은 게 있긴 하다.
하지만 공성 병기 없이도 올라올 수 있을 정도라 아무리 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성벽이 없다면 만들면 되지.”
“지금 말입니까?”
“그래.”
“그……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성을 동원하면 하루면 가능하다.”
“자재를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간입니다.”
“자재가 왜 필요해?”
“예?”
“쌓는 게 아니다. 팔 거다.”
제대로 된 참호를 구축하려면 철조망도 필요하고 지뢰도 필요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어렵다.
특히 현대에서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만드는 철조망은 철사를 뽑아내기부터 쉽지가 않다.
하지만 괜찮다.
다행히 나무는 많으므로 철조망은 바리게이트로 대체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으니까.
중요한 건 장전 시간을 버는 것이다.
어차피 화약이 터지기 시작하면 징집병의 담력으로는 어지간해선 접근 못 한다.
“돈은 충분히 있다. 병사들은 배불리 먹이고, 공사에 참여하는 백성들에겐 충분한 임금을 주겠다. 또한, 섭외 가능한 용병이 있다면 말하도록. 얼마든지 고용하겠다.”
어떻게든 한 달만 버티자.
그러면 전황은 바뀐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늘 그랬듯이.”
***
“아버님. 정말 이게 맞는 걸까요?”
강해인 앞에서는 당당했던 잘랄웃딘이지만, 계속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명 왕조와의 교역은 우리도 원하는 게 아닙니까. 이대로 용왕의 반감을 사게 되면 영원히 물 건너갈 수도 있습니다.”
마른 몸매에 눈덩이가 깊숙이 들어간 인상.
전체적으로 부티가 나지만, 어쩐지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외모의 소유자.
가네샤.
그는 다른 라자들과 확실한 차별점이 하나 있다.
바로 힌두교 브라만 계급이라는 것.
이는 새로이 귀족이 된 이들과 달리 400년간 이어진 부유한 지주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치타공의 라자, 바룬 칼리도 힌두교 브라만 계급이다.
힌두교라고 해서 딱히 이슬람을 차별하진 않았다.
이는 종교적으로 관대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이슬람을 믿는 군주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러 무슬림과도 상당히 자유롭고 친하게 지냈다.
다만 안 좋은 소문이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무슬림을 몰래 살해하고 있다는 소문.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악의적인 소문 정도로 여겨지지만, 소문이 반복되면 진실로 믿는 사람이 생기는 법.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우리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는 게 낫다.”
“예?”
“너도 알다시피 본래 수도 판두아는 우리가 장악했지. 하지만 그 미꾸라지 같은 기야스웃딘은 새로운 판두아를 만들고 그리로 천도했다.”
새로 천도한 수도인 만큼, 그곳에는 기야스웃딘의 세력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
가네샤를 비롯한 북부 군벌의 힘은 북부에서 나오니까.
“하지만 새로운 판두아는 갓 지어진 도시입니다.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리 생각하지. 샤가 악수를 둔 것이라고. 샤와 라자 사이의 힘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질 테니까.”
“아닙니까?”
“변수가 없었다면 그랬겠지.”
작은 어촌 마을인 캘커타에 둥지를 튼 용왕.
그 이름값도 무겁지만, 그의 뒤에 있는 세력은 더욱 대단하다.
동방의 대제국이라 불리는 명 왕조가 아닌가.
단 한 번도 붙어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만든 물건을 통해서 국력이 만만치 않음은 짐작하고 있었다.
본래는 땅에만 관심을 가졌던 대지의 종족이 이제는 바다로 나오려고 하고 있다.
잘못 대응하면 기야스웃딘이 그들과 협력하여 벵골 술탄국을 중앙 집권제로 전환할 수도 있다.
그런 일 만큼은 확실히 막아야 한다.
“안심해라. 나도 용왕을 완전히 적대할 생각은 없으니까. 사로잡은 후 은의를 베풀 생각이다.”
“가능할까요? 배를 타고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아들의 말에 가네샤는 방긋 웃었다.
“아들아. 명심해라. 도망친 라자는 다시는 신뢰받지 못한다. 기반이라도 든든하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녀석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외국인에 불과해.”
도망치는 순간, 다시는 벵골 술탄국에서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리라.
“소문에 의하면 그가 시바의 화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라트카루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고요.”
“헛소리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무척 동요하고 있습니다.”
친위대와 상비군은 괜찮다.
하지만 징집병들은 본래 농민이었던 무리.
그들에게는 용왕에 대한 좋은 소문만 퍼져 있는지라 너무 쉽게 동요되었다.
신자에게는 번영과 명성을.
적에게는 죽음의 저주를.
죽음의 저주도 본인에게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자식에게 내려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아이가 있는 병사들의 동요는 상당했다.
“그런 헛소문 따위 단번에 깨부수면 금방 잠잠해질 것이다.”
“……예.”
그 밖에도 여러 소문이 있다.
용왕이 분노하면 화산이 폭발한다든가.
3만의 원정대가 다가오고 있다든가.
어느 것도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소문은 아주 약간일지라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될 상대.
하지만 계속 우려만 말해서야 아버지에게 겁쟁이로 낙인찍힐 수 있다.
잘랄웃딘은 입을 다물었다.
“보여주자꾸나.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벵골 술탄국이라는 것을.”
“예!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
북부 군벌은 캘커타 성에서 10리(4km) 정도 바깥에 진을 쳤다.
덕분에 시간을 번 캘커타는 백성들을 독려하여 참호를 파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매우 허접하기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잠시만 지연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로 준비를 마친 상태.
“와아아아아아아!”
적의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갑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병사들.”
징집병이라고는 해도 무장이 처참하다.
보통 바이샤 계급만 되어도 전쟁에 나갈 때 자비로 방어구를 맞추기 마련인데, 저들은 방어구를 갖출 돈도 없는 수드라 계급인 모양이었다.
“그런 만큼 사기는 낮을 터.”
준비는 되었다.
피를 원한다면, 피를 흘리게 해줘야겠지.
“쏴.”
콰쾅!
성벽 위에 설치해둔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제대로 된 포탄을 쓰는 건, 그야말로 돈 낭비의 극치.
굴러다니는 자갈을 모아다 그물로 묶은 포도탄이다.
대포에서 나간 포도탄은 그물이 찢어지며 자갈 세례로 변했다.
퍼버벅!
방어구라도 제대로 갖췄으면 피해가 덜했으련만.
조잡한 창 하나 들고 달려들던 징집병들은 우수수 쓰러졌다.
바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전사가 아니다.
접근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 날아온 자갈 세례를 맞고도 용기 내어 달려들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다시금 전진했다.
용맹해서가 아니라, 뒤에 있는 독전관이 무서워서.
콰콰쾅!
다시금 포성이 터졌다.
그와 함께 태양을 가릴 듯이 쏟아지는 자갈 세례.
징집병들은 사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분명 대포는 한 번 쏘고 나서 다음 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용왕이 쏘는 대포는 너무나도 재발사 되었다.
제대로 된 방어구도 없는 징집병들로서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들은 몸 곳곳에 검보라빛 멍이 든 채로.
혹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로 진영으로 돌아갔으나 돌아온 것은 호된 질책뿐이었다.
심지어 제일 먼저 도망친 이는 목이 잘렸다.
“대포는 계속 쓰지 못한다. 화약은 무척 귀할뿐더러, 계속 쏘면 대포 자체가 버티질 못하니까. 가라! 성공하면 큰 보상이 내려질 것이고, 도망치면 죽을 것이다.”
전쟁은 인도적인 것이 아닌,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
어느 정도 무장을 갖춘 바이샤 계급 징집병이나, 심혈을 들여 키운 상비군을 투입하기 전까지.
적의 힘을 최대한 빼놓아야 한다.
그렇게 독전관들의 서슬 퍼런 채찍질에 힘없는 징집병들은 두려움을 가득 안고 다시금 적진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들이 대포를 쏘지 않았다.
대신.
은화가 우수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