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
001화 운명의 부름 (1)
“사관 강해인은 어명을 받들라!”
전하께서 어명을?
나 같은 일개 사관에게?
“시급히 창덕궁 조계청으로 오라.”
창덕궁이라 하면 이번에 전하께서 새로 지은 궁궐.
그중에서도 조계청은 나랏일을 보는 편전이다.
전하의 전임 사관도 아닌 나를 부를 이유가 전혀 없는 곳.
그런 중요한 궁궐로 부른다?
범상치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다.
“명을 받듭니다.”
조속히 채비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왜 날 불렀지?
작년에 전하께서 사냥 가셨을 때, 낙마하신 걸 사초에 적었던 게 문제였나?
아니면 민인생 뒷담화하던 걸 기록한 게 걸렸나?
사초에 적은 건 태조 대왕께서 오셔도 열람할 수 없다고 들었거늘.
내가 순진하였다.
수많은 공신들과 외척들처럼 나도 잔혹하게 숙청되리라······.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가 금방 따라갈 것 같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선정문을 넘어 조계청 안으로 들었다.
조선의 왕께서 국가 대사를 돌보시기에 그리 큰 건물은 아니나, 염초를 사용하여 만든 청기와와 단청이 무척 아름다운 궁궐이다.
내부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거대한 붉은 기둥에 들어간 염료는 결코 값싸지 않지만, 한 나라의 중요한 궁전이라고 보기엔 분명 소박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다
왜냐하면.
단 한 명의 위엄이 궁궐 안 전체를 꽉 채우고도 남았으니까.
형제를 쳐 죽이고, 왕권에 위협이 되는 공신과 외척을 죄다 숙청한 철혈의 군주가.
“사관 강해인, 전하의 부름을 받고 입궐하였습니다.”
곧바로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느낌을 담아 간절하게.
“······.”
하지만 전하는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으셨다.
대신 상 위에 놓인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계셨다.
일각이 지나도록 계속.
혹여 집중하시느라 눈치채지 못하신 건가 싶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께서는 여전히 상 위에 놓인 무언가에 눈을 떼지 않고 계셨다.
큰 소리를 내자니 일개 사관 따위가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혔다고 위험해질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슬쩍 눈치를 보다가 다시 절을 했다.
아니, 절을 하려고 했다.
“네 이놈!”
내가 허리를 반쯤 숙였을 때, 서슬 퍼런 호통이 내리쳐졌다.
마치 대호(大虎)가 우레와 같은 포효를 내지르는 것처럼.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영혼까지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절을 두 번 하는 건 죽은 자에게 하는 인사일진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되먹지 못한 것이 있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시험이다.
왜 날 시험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하의 성격상 정말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요란하게 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험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워낙 기세가 험악한지라 오금이 저린다는 것.
호통을 치실 때,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처, 처음 절은 인사를 올리는 절이옵고, 두 번째 절은 물러가겠다고 아뢰는 절이옵니다.”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누가 물러가도 좋다고 허하였느냐?”
“영명하신 전하께서 깊이 집중하실 정도이니, 소신이 감히 방해해서는 아니 된다 여겼사옵니다. 죄를 물으신다면 달게 받겠사옵니다.”
알면서 왜 모른 척했냐?
네 잘못인데 죄를 물으면 넌 폭군.
이런 당당한 뜻을 담아 최대한 비굴하게 말했다.
“허허. 그놈 참. 진광불휘라. 보통내기는 아니구나. 천자께서 언급하신 이유가 있었어.”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하께서는 이내 기세를 거두시고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잠깐만.
천자?
“황제 폐하께서 저를 언급하셨단 말씀입니까?”
“네가 작년에 사신단에 참가했을 때 눈여겨보았다고 하시더구나.”
맙소사.
“저는 눈에 띄는 일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그만큼 천자의 안목이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송구스럽습니다······.”
“천재라 하기엔 부족하고, 수재라고 하기엔 기이한 지식과 독특한 안목을 지니고 있으니 묘재라 부를 만하다. 그것이 천자께서 내린 네놈의 평가다.”
젠장할.
전하께서도 무인년의 정사로 이방석 왕세자와 수많은 공신들을 숙청한 피의 군주라 불리지만, 그래도 아랫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따뜻했다.
반면 당금의 명국 천자는 잔혹하고 냉혹하기로 유명했다.
9족이며 10족이며 쳐 죽이는 건 물론이고, 죽이는 방식 또한 처참하기 그지없다.
또한, 숙청한 정적의 여식들을 기생으로 만들었다.
후에 그 딸들이 강제로 겁탈당해 임신했다는 보고를 듣자 대소를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위험한 황제다.
그런 살아있는 저승사자가 나를 눈여겨보았다고?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가.
“천자께서 이번에 대규모 함대를 만들어 남방으로 보낸다고 한다.”
“혹여······ 원정의 제독으로 임명된 자가 삼보 태감입니까?”
“어찌 알았느냐?”
진심으로 놀란 듯, 전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삼보 태감의 본래 이름은 마화.
선제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연왕을 황제로 옹위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워 ‘정(鄭)’씨 성과 ‘삼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때문에 정삼보가 되어야 하지만, 나에게는 이 이름이 더 익숙하다.
정화.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이르렀다는 전설적인 제독이자 탐험가.
문제는 이 미래를 말하면 괴력난신을 믿었다는 이유로 해코지할 것 같단 말이지.
“삼보 태감은 천자께서 가장 신뢰하시는 측근이자, 종교에 매우 관대한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그는 회회도(回回徒 : 무슬림)입니다. 그런데도 유교, 불교, 도교에 능통하며 그 문화를 존중할 줄 알지요. 삼보라는 이름도 불교식 이름이 아니옵니까.”
“네 말의 뜻인즉슨, 이번 대원정의 목적이 정벌이 아니라 친선이다?”
“원을 몰아내고 명국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원정이라 생각되옵니다.”
“······.”
말을 하다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 전하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또 무슨 짓을 한 거냐.
“송구하옵니다. 뱀이 용의 뜻을 알겠사옵니까 마는······ 그저 소인배의 헛소리라 여겨주시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신이 어찌 감히 천자 폐하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도 된다. 이곳에는 그대와 나밖에 없으니.”
사관 민인생이었다면 저 병풍 뒤에 숨어있을 것 같은데.
“그대라는 사관을 불렀으니 다른 사관은 필요 없다 알렸다. 이곳엔 아무도 없다.”
전하께서는 눈치가 빨랐다.
금방 얕은 근심을 덜어내 주셨다.
······제일 위험한 사람과 단둘이 가장 무거운 근심이지만.
괜찮을까?
표현의 자유는 있어도, 표현 이후의 자유가 없는 시대인데.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말해보라.”
당금 황제는 조카이자 선황제인 건문제를 힘으로 몰아내고 황위에 올랐다.
당연히 정통성이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 중 하나로 판단되었다.
문제는 이걸 솔직히 말할 수 없다는 것.
눈앞의 전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보위에 오르셨으니까.
“괜찮다. 네가 이곳에서 한 어떤 발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그리 약조하지.”
“조공국을 늘려 더욱 확고한 정통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최대한 돌려 말했다.
‘약한 정통성을 능력으로 보여준다.’가 아니라 ‘정통성을 더 보여준다.’라는 말로.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전하께서 대노하실 것 같으면 바로 엎드려서 빌어야지.
······나 따위가 엎드리는 거로 화가 풀릴까?
“그런 것이라면 내정을 안정케 하고, 북원을 몰아내는 것으로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 왜구를 처리하여 바다를 안정케 하고, 명국의 조공국이 늘어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대외 과시용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응유진유, 지대물박이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중원에 다 있다.
중원에 없는 것은 다른 곳에도 없다.
한 마디로 결핍이 없다는 뜻.
결핍이 없으니 나설 이유도 없다.
“겨우 그걸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인단 말이냐?”
“중원은 광활하여 백성을 통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심력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이를 매우 쉽게 만들어주는 비책이 있지요.”
“그게 무엇이냐.
“조공과 책봉입니다.”
주변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게 되면 확실한 명분이 생긴다.
주변국들이 모두 인정하는 유일한 황제.
하늘의 아들.
따라서 너희도 나를 섬겨야 한다.
중원의 백성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
“실리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중원은 오랑캐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원은 언제나 혼자서 이를 이겨내야 했지요.”
“바다를 통해 오랑캐의 배후에 조공국을 만든다?”
“이이제이입니다. 북원은 어렵지만, 현재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티무르국의 경우 막강한 배후가 있습니다.”
티무르 제국의 황제인 티무르는 넉 달 전에 죽었다 들었지만, 그 군세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당분간은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오호. 그래?”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십니까.
오줌 지릴 것 같사옵니다.
“그······ 저도 대국에 가서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들어보자. 네가 언급한 그 막강한 배후가 어디냐?”
“파사에 맘루크 술탄국, 천축에 델리 술탄국이라 불리는 강국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을 회유하여 티무르국을 견제케 한다는 뜻이더냐.”
“예. 전하. 그 나라의 지도층이 회회도(무슬림)지요. 삼보 태감을 보내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도 있다고 사뢰되옵니다.”
정화는 이슬람 신자니까.
“네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그럴듯하구나.”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전하는 곧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천자께서는 태조 고황제의 해금령을 백지로 돌릴 것이라 생각하느냐?”
태조 고황제란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를 일컫는 말이다.
전하께서 해금령에 관심을 둔다?
왜?
“제가 어찌 천자의 심중을 알겠습니까마는······ 해금령은 다시 내려지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대원정을 준비하면서 바다를 금지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폐하께서는 수도인 남경을 무척 싫어하십니다. 그리하여 연왕부가 있는 북경으로 천도를 생각하고 계시지요.”
“들었다. 남경의 궁전을 모방하여 거대한 궁궐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도 들었지.”
“하오나 화북 지방은 이미 토지가 지력을 잃었습니다. 현재 농작물이나 세금의 상당수가 장강 이남에서 나오는 상황입니다.”
북경으로 천도를 하게 되면 세금 운송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운하가 있지 않으냐. 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대운하 말이다.”
“수량을 조절하기 어려워 운하가 자주 막힌다 들었습니다. 하여 바다를 이용할 때가 많지요.”
“그런데?”
“천하의 주인인 대명제국의 세운선입니다. 왜구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흠······.”
왜구의 악명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의 태조께서도 홍건적과 왜구를 소탕하면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쌓지 않으셨던가.
“천자께서는 분명 북경으로 천도하시면서 경항대운하를 보수하고 증설할 것입니다.”
“어째서지?”
“경항대운하를 완벽하게 보수하고, 증설한다면 바다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중원에 있으니, 바다를 활용하는 것은 쓸데없이 외부 위협을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명나라에는 북원, 토번, 티무르 등 배후 위협이 많다.
내 대답에 전하께서는 다시금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간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당당하게 최대한 어깨를 폈다.
눈은 바닥을 보고.
“천자는 관심이 없을 수 있어도 나는 관심이 많다.”
“······예?”
“중원에는 다 있겠지만, 조선에는 없는 게 많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명을 따랐다.
“보아라.”
그제야 나는 전하께서 집중해서 보고 계시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선과 명국, 그리고 왜의 지도를 총망라하여 만든 천하의 지도, 혼일강리역대국지도다.”
인도, 중동, 유럽 등 구대륙 전체를 담아낸 세계 지도.
심지어는 나일강이나 알렉산드리아 등대도 표시되어 있으며 지금은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비주(아프리카)의 형태까지 그려져 있을 정도로 정밀했다.
명나라와 조선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고, 일본은 이상한 위치에 그려져 있긴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매우 정교하다 할 수 있었다.
세계로 뻗어 나간 적이 없는, 심지어 나갈 생각도 없는 조선이 대체 왜 이런 지도를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조선의 미래가 바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그렇습니까?”
“조선이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엔 국력의 차이도 심하고, 희생도 클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북쪽으로 가기엔 너무 춥고.”
“전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하지만 명 태조 고황제의 해금령 때문에 나갈 수 없었지. 형식적이나마 조선은 명의 제후국으로써 명령을 따르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맛있는 사냥감을 발견한 범처럼.
“따라서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이니라.”
“······.”
다 좋은데 이 이야기를 왜 하찮은 사관인 나에게 꺼내는 것일까.
“사관 강해인에게 명을 내리노라. 명나라의 원정에 참여하여 천하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해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