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빛을 갈망하는 자 (6)
“으아아아악!”
아사신 뒤편에서 비명이 들렸다.
빠각!
두개골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다.
크르르릉.
호랑이가 이를 가는 소리도 들렸다.
벵골 지역은 벵골 호랑이의 서식지.
호랑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덕에 신이 내 기도에 응답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Āpanāra lakṣya phōkāsa!”
“목표에 집중하라네요.”
아사신의 외침을 비디아 신하가 통역해주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근데 얘는 의외로 간이 크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인데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어.
아사신보다 더 광신도처럼 보일 지경이다.
외침과 함께 아사신들이 달려들었다.
제일 앞장서던 이의 이마에서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두 번째로 앞장서던 이의 이마에도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쓰러지는 그의 뒤통수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버텨! 어떻게든 버티면 이긴다!”
아사신들은 우리를 상대할 때 그야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친놈들처럼 달려들었지만, 뒤통수에 화살이 박히기 시작하니 멈칫하는 모양새였다.
“Druta hatyā!”
“‘빨리 죽여!’라고 하네요.”
“고맙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통역해줘서.
크허허허헝!
호랑이의 포효가 울려 퍼지고.
푸슉!
뒤통수가 꿰뚫려 쓰러지는 아사신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났다.
어찌나 빨리 연사하는지, 이쪽은 칼 한 번 휘둘러 보기 전에 다 쓰러지는 수준이었다.
그때.
끼이이이익!
하늘에서 피리 소리가 퍼졌다.
군대에서 신호용으로 쓰는 우는 살, 효시의 소리다.
“칫.”
혀를 한 번 찬 아사신은 나를 불꽃 같은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벵골에 있는 한 도망칠 길은 없다. 비가 오는 날 두고 보자.”
“비 오는 날에는 약속이 많아서.”
수석총도, 다이너마이트도, 심지어 흑각궁도 비가 오는 날엔 제대로 쓸 수 없으니까.
나를 적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비 오는 날에 싸우려고 하겠지.
“운이 좋군.”
“운명이다.”
아사신들은 그대로 협곡을 벗어났다.
대단한 인내심이다.
목표를 눈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리다니.
아니면 언제든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아사신이 사라진 자리.
춘자가 나타났다.
“하나씩 사냥하다가 근처에 호랑이가 있는 것을 보고 끌고 왔습니다.”
“호랑이를 길들였어?”
“아니요. 화살로 쏘아 도발하고 적에게 유도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호랑이는 발도 빠르고, 나무도 잘 타니까 어지간해선 벗어나기 힘들다.
“남쪽에 작은 마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쪽으로 피신하시지요.”
“…….”
물건이야 빌릴 수도 있고, 음식이야 사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마을로 향할 경우 마을 전체가 아사신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는…….”
“이곳은 위험합니다. 적뿐만 아니라 호랑이도 무척 많습니다. 여기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건 사실상 자살 행위입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감이 뛰어난 춘자가 그렇게 말하자, 더욱 고민되었다.
“가자.”
먹을 것만 구해서 빨리 떠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춘자가 안내해주는 대로 남쪽에 있다는 마을로 향했다.
달빛마저 가린 구름 탓에 시야는 극도로 좁았지만, 어떻게든 용케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폐허인데?”
마을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미 버려진 듯했다.
집의 상태로 보아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했다.
“쓸만한 물건 좀 찾아보자. 아궁이가 있으면 불 좀 때고.”
쫓기는 와중에 불을 때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만, 이대로 가면 저체온증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집 안에서 불을 피운다면 상대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마른 장작을 찾아 불을 피웠고,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빛과 온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
그제야 모두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춘자는 호랑이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온몸에 진흙을 덕지덕지 발랐고, 그 탓에 얼굴이 파리한 상태.
수석총병 둘은 다이너마이트 폭발 때 자갈 파편에 맞았는지 온몸에 피멍이 든 상태였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많이 다치신 듯합니다.”
“문제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아픔보다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석피나 무함마드.
그리고 다른 수석총병들은…….
“이 빚은 반드시 갚는다.”
정신없이 도망치긴 했지만, ‘왜’ 도망쳐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다.
조금 강압을 곁들이긴 했어도 좋게좋게 협약 맺은 거 아니었나?
대체 왜 날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 거지?
살짝 여유가 머릿속에서 생각의 뱀이 꼬리를 물며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역시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조만간 확실해지겠지.
내가 캘커타에 돌아가기만 하면, 원정대를 이끌고 머리통을 다 날려버릴 테니까.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는다.
“교대로 쉬자.”
“먼저 쉬십시오.”
“아니. 내가 제일 먼저 불침번을 볼게. 체력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아니요. 제가.”
“쓰읍. 명령이다.”
죽음의 위기로 지능이 올라가 있을 때, 도주 방법을 생각해둬야 하니까.
내 명령에 다들 적당히 누워 잠들기 시작했다.
피곤했는지 모두 빠르게 곯아떨어졌다.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검푸른 세상이 조금씩 색이 옅어졌다.
해가 뜨기 시작한다는 징조다.
“다들 일어나라. 슬슬 움직여야 한다.”
“으음?”
제일 먼저 잠에서 깬 춘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왜 안 깨우셨습니까?”
“생각할 게 많아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궁리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무사히 캘커타로 갈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했다.
“물을 끓여놨어. 마셔. 몸이 조금 더 따뜻해질 거야.”
인도라고 해서 조금 방심한 면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겨울이 춥다.
“먼저 드심이…….”
“난 충분히 마셨다.”
춘자와 수석총병, 비디아는 번갈아 가며 물을 마셨다.
“마시면서 들어. 우리가 있는 곳은 오디샤 왕국의 국경이다.”
수바나레카강 하구 서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
위기만 아니었다면 물놀이를 즐기고 싶을 만큼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해변이다.
“여기서 두 갈래가 있는데…….”
“잠시만요.”
춘자가 무기를 꺼내며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옵니다.”
“아사신?”
“피 냄새가 진하게 나지는 않습니다만…… 잠시만 대기해주십시오.”
춘자는 몸을 낮춘 채 조심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군입니다!”
“뭐?”
밖으로 나갔다.
정말이었다.
왕궁 외곽에 대기해두었던 수석총병 100여 명.
그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이쪽을 바라보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어떻게 잘 빠져나왔군.”
“그게…….”
“음?”
“그냥 보내줬습니다.”
“뭐?”
“처음에는 회유하려 하더니, 모두가 결사 항전하려고 하자 그냥 보내주더군요.”
“기야스웃딘이?”
“예.”
무슨 생각이지?
화해의 제스처인가.
아니면 이 일에 기야스웃딘은 관련되지 않았고, 그 밑에 있는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꾸민 일인가.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목표에 집중하면 된다.
살아남는 것.
캘커타로 돌아가는 것.
수석총병도 합류했으니 일이 확실히 쉬워졌다.
“동쪽으로 간다.”
원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쪽으로 가서 오디샤 왕국의 협조를 구하려고 했는데.
수석총병과 함께라면 아사신 정도는 어떻게든 된다.
그렇게 우리는 정비를 마치고 동쪽으로 걸었다.
비디아 신하의 체력이 걱정되긴 하지만, 달리지 않고 걸은 덕분인지 앓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
“전하라면 분명 바다 쪽으로 향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폭발음이 들려서 근방을 수색했습니다.”
“잘했다.”
이소군이 말하길.
나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실력 있는 인재가 계속 들어오고, 능력이 좋을수록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더니.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석피와 무함마드의 생사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분했다.
계속 걸어 수바나레카강 하구에 도착했다.
가장 얇은 강폭도 1km는 되어 보인다.
“어떻게 건넌다…….”
“강 하구 끝, 남쪽으로 가면 저희가 타고 넘은 배가 있습니다.”
“그 배는 어디서 났고?”
“빌렸습니다.”
“주인의 허락은 받았고?”
“나중에 더 크게 갚으면 되지요.”
그 사장에 그 직원이네.
이렇게 보면 완전히 양아치가 된 기분인데.
“가자.”
캘커타에 돌아가더라도 한동안 바쁘겠네.
이번에 쌓인 빚을 갚아주려면 말이다.
남쪽으로 갔다.
수석총병들이 말한 대로 저 너머에 나룻배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드디어 희망의 빛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고 여겨졌을 때.
“전하!”
저 멀리서 흙먼지를 뿌리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기병이다.
그리고 아군 중에는 기병이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탁 트인 지형에서 기병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
보병으로 기병을 막으려면 ‘미리 대비한’ 숙련된 창병이 필요하다.
다이너마이트는 다 썼고.
총은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다음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여기까지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하!”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
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그 태양 아래로.
용왕기를 단 수백 척의 배가 바다를 가득 메우며 나타났다.
“원정대다.”
“원정대다!”
수석총병들이 환호한 것과는 달리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대로면 기병이 먼저 도착한다.
“전부 나룻배로 달려!”
“예!”
우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나룻배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기병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우리가 배에 타기 전에 따라잡혔다.
진짜 끝인가 생각했을 때,
“잠시만!”
선두에 선 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다름 아닌…….
기야스웃딘이었다.
“미안하네.”
기야스웃딘은 말에서 내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모든 일은 내 책임일세.”
“……무슨?”
“자세한 것은 왕궁에서 말해주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원정대에서도 배를 대충 대고, 원정대원들이 배에서 내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앞에는 갑옷을 입은 이소군이 있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안정을 얻은 나는 기야스웃딘을 노려보며 말했다.
“말씀하실 게 있다면 이곳에서 하시죠. 며칠 전에 겨우 탈출했는데, 그곳에 어떻게 갑니까?”
“그도 그렇군.”
기야스웃딘은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샤로서 항상 당당했는데, 오늘은 자신감이 무척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부하들을 단속하지 못하여 그대를 위험에 처하게 했네. 진심으로 사죄하네.”
기야스웃딘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일국의 왕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역사에 몇 번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
하지만 그 정도로 화가 풀릴 정도였으면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죄송하면 책임을 지셔야겠지요.”
“나는 언제나 정의롭기를 바랐고, 벵골 술탄국이 정의롭기를 원했네. 그토록 갈망했건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구먼.”
기야스웃딘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나를 보고,
“책임지고 샤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비디아 신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를 벵골 술탄국의 샤로 추대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