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이베리아의 운명 (4)
“하하하. 걱정하지 마시게 친우여. 다행히 우리나라는 교황 성하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 내 잘 말해줌세.”
교황이라는 단어를 듣고 심각한 내 표정을 봤는지, 주앙 1세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 갓 독립한 포르투갈이 말한다고 해서 딱히 큰 효과는 없을 것 같은데…….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잠깐만.
지금 교황이 누구더라?
“아!”
주앙 1세의 근거 없는 자신감 덕에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죽어라 유럽에 오려고 했던 이유를.
조선에서는 명나라의 간섭 때문에.
명나라는 황제의 권력이 너무 강한데다, 숙청의 영락제가 집권하는 시기라 뭔가 해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역사를 잘 몰라 환생자 특전을 살리기 어렵고.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특히 대항해시대가 열리는 15세기에서 16세기의 역사는 상당히 잘 아는 편이라 자부한다.
게임으로 배운 역사에, 사학과를 나온 친구의 지식이 곁들어져 꽤 상세하게 아는 편이니까.
“왜 그러나?”
“어떤 교황과 친하십니까?”
“……뭐?”
“현재 교황은 세 명이지 않습니까? 아비뇽, 피사, 로마. 어느 교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유명한 아비뇽 유수 때문에 교회의 대분열 시기다.
이 혼란이 수습되는 건 1450년쯤으로 알고 있다.
1450년 전후로 참 많은 일이 일어나네.
인도에서도 그때쯤 무굴 제국이 건국되는데.
“그, 그게…….”
내가 이제 막 포르투갈에 도달한 내가 유럽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주앙 1세는 말문이 닫혔다.
“아버님. 귀인께서는 지식이 매우 풍부하십니다. 잉글랜드의 역사와 지리까지 꿰고 계시더군요.”
옆에서 베아트리스가 약간 놀리듯이 주앙 1세에게 말했다.
주앙 1세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나 보다.
아까 자신을 소개할 때 사생아라고 대놓고 말한 것도 그렇고.
포르투갈과의 거래를 잉글랜드로 틀어버리려는 것도 그렇고.
“…….”
주앙 1세가 베아트리스를 살짝 매섭게 노려보았으나, 베아트리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집안싸움은 알아서 하시고.
난 바쁜 사람이므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어느 쪽입니까?”
“…….”
“제가 답해드리지요. 어느 쪽이든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무슨 뜻인가?”
“어느 쪽도 진정한 교황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소매에 먼지가 잔뜩 묻은 이가 신의 대리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실제로 그러하다.
현재 대립하고 있는 세 명의 교황이 누군지는 기억 못 하지만, 서방교회의 대분열을 종식한 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카톨릭 공의회에서 새로 선출된 교황이다.
“즉, 교회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제 판단입니다.”
이어 두아르테를 보았다.
“아까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려 드는 오스만 놈만 아니면 된다고 하셨지요?”
무함마드의 존재를 영원히 비밀에 부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창업 때부터 함께한 그를 내칠 생각도 없다.
“딱 한 명이긴 하지만 오스만 술탄국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극동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중해를 횡단하는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정말 제가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이슬람 국가와만 교류하길 원하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저는 유럽에 오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덕분에 4차 십자군 원정 때 있었던 일 또한 알고 있습니다.”
수상할 정도로 경제를 잘 아는 역사 유튜버의 영상이 떠올랐다.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4차 십자군이 모였는데, 이집트로 원정 떠날 돈이 없었다.
그러자 베네치아의 군주 엔리코 단돌로가 옆 도시 자라를 약탈하라고 사주했고, 자라는 기독교 도시였음에도 4차 십자군에게 공격당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당연히 당시 교황은 극대노.
즉시 4차 십자군과 엔리코 단돌로를 파문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파문은 휴먼임을 파문하는 것과 같다든가.
이왕 배린 몸이 된 애니멀들은 베네치아에 망명 와있던 비잔틴 제국 황족을 도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를 황제로 세웠다.
망명했던 했던 황족이 자신을 도와주면 돈도 주고, 로마 교황과 잘 이야기하여 파문도 철회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전 황제를 쫓아내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봤더니, 전 황제가 도망갈 때 금고를 싹 비웠던 것.
그 탓에 이왕 배린 몸인 애니멀들에게 줄 돈이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걷으려고 하자, 다시 반란이 일어났고, 그 황족은 황제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살해당했다.
그리고 새로이 황제가 된 장군은 이왕 배린 몸인 애니멀들에게 배 째라고 선언.
애니멀들은 분노하여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도시 전체를 약탈했다.
그 여파로 비잔틴 제국은 잠시나마 멸망했고, 지금 있는 비잔틴 제국은 다른 왕조가 세운 제국이다.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베네치아와 거래를 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말씀하심은…….”
나는 미소를 지우고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
“아무래도 포르투갈은 저와 거래할 생각이 없는 듯하군요.”
그렇게 말하고는 베아트리스를 보았다.
“혹시 잉글랜드도 무슬림 선원이 있는 선단과는 교역하지 않습니까?”
내 말뜻을 이해한 베아트리스는 환하게 웃었다.
일부러 색기를 뿜어내며 웃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이 훨씬 더 괜찮은 것 같은데.
“잉글랜드는 귀족의 자치권이 강하고, 자유 도시가 많습니다. 귀인을 인정해주는 항구와만 거래하시면 됩니다.”
“좋은 이야기로 군요. 하지만 오늘은 오랜 항해로 피곤하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내일 숙소로 찾아가겠습니다.”
주앙 1세와 두아르테가 충격을 받아 제대로 대처를 못 하는 사이, 나는 베아트리스와 약속을 잡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
“괜찮으시겠습니까? 거래가 잘 안 된 모양입니다만.”
숙소로 향하는 길.
석피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슬쩍 이소군을 보았다.
반면 그녀는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해?”
“전하께서 하신 일이니까요. 화난 척을 해서 더 좋은 조건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알아보네.
이것이 아내의 힘인가.
“기독교는 이슬람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실제로 두 종교 세력 간에 몇 번이고 큰 충돌이 있었을 정도지.”
그리고 그 갈등은 600년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영원한 숙적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이슬람교는 힌두교랑도 사이가 안 좋은데.
지하드 교리 때문인가?
“이곳은 그 충돌의 최전방이다.”
“여기가요? 충돌은 무함마드의 고향에서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만.”
“거기는 동부 전선이고. 여기는 서부 전선. 좁은 해협만 넘으면 바로 이슬람 국가…….”
아니지.
아직 스페인 통일이 되기 전이다.
통일 직전이기는 하지만.
“바로 옆에도 이슬람 국가가 있어. 그라나다 왕국이라 하지.”
[삽화 별도 첨부]그라나다 왕국은 바스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기 직전에 멸망한다고 알고 있으니, 아마 70년은 더 연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만큼 이슬람에 대한 증오는 상당해. 어영부영 저자세로 넘겼다가는 앞으로 두고두고 발목 잡힐 염려가 있어.”
“아아. 일부러 화를 내서 다시는 말을 못 꺼내게 하시려는 거군요.”
“바로 그거지. 겸사겸사 이익을 더 뜯어내면 좋고.”
먼 길을 왔는데, 고생한 선원들에게 짭짤하게 챙겨줘야 다음에도 말을 잘 듣지 않겠냐.
이번에는 멀기는 해도 항구와 쉼터가 제대로 있는 유럽이지만, 다음 갈 곳은 항구도 제대로 없는 아메리카와 호주인데.
“그런데 말입니다.”
“응?”
“꼭 이 나라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기독교 국가가 우리를 적대한다면 이슬람 국가와 손을 잡고 견제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오호. 너도 외교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구나.”
석피를 얕보는 게 아니라, 그는 원래 이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척 의외였다.
“맞아. 그렇게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야.”
“왜죠?”
“상황으로 보아하니 한동안은 이슬람 국가가 강세가 될 것 같으니까. 이슬람 세력이 너무 강해지면, 인도 쪽에서 우리를 방해할 수도 있어.”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국이다.
화약을 잘 이용해서 화약 제국이라는 이명도 있고.
그런 나라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건 골치 아픈 일이다.
영락제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말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숙적인 유럽에 힘을 실어줘서 강대한 제국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슬람 국가랑만 거래하면 돈이 안 되잖아.”
유럽에서는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향신료와 비단, 도자기지만, 중동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비싸기는 한데, 겨우 몇 배 수준의 이윤밖에 내지 못한다.
유럽에서는 최소 60배인데.
어떤 사람에게,
‘네가 만약 2008년으로 돌아간다면 암호화폐를 살래? 아니면 전기차 관련 주식을 살래?’
라고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암호화폐를 살 것이다.
그게 더 돈이 되니까.
“하지만 저들이 힘을 키우면 우리를 무력으로 겁박하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그건 그래.”
무슬림들은 옛날부터 동북아와 교역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도 해주고,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반면 유럽은 그런 적당한 거리감이 없으므로 수틀리면 훌륭한 대화수단을 쓸 게 분명하다.
만약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복수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러니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면 적당히 줄타기해볼까?”
힘의 균형은 유지되어야만 하니까.
***
다음 날.
나는 선원들에게 ‘짐을 싸는 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타고 온 보선은 유럽의 배와 확연히 다르고, 선원들의 외모도 유럽에서는 보기 극히 드문 아시아인인지라 확연히 눈에 띌 터.
분명 항구 관리가 주앙 1세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과연 포르투갈은 어찌할 것인가.
당연히 내 마음을 돌리려 애쓰겠지만, 만에 하나 배짱 장사를 한다면…….
그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때는 이베리아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통일 스페인 왕국에서.
레콩키스타 시즌2로.
“전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빨리도 왔네.
“누구라더냐?”
“그게…….”
말하기 어려운 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해서…….”
“아.”
생각해보니까 우리 선단에서 유럽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차를 타고 온 여자인데, 가슴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베아트리스네.
이따가 따로 연락하려고 했는데, 몸이 달아올랐나 보다.
해가 뜨자마자 찾아온 것을 보면.
그녀의 눈에는 나와 주앙 1세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일 테니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만나보겠다.”
“예. 전하. 손님은 1층에 홀에 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리스보아에서 손꼽히는 고급 여관이다.
리스본은 북해와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상당히 발전했는데, 그동안 머물었던 숙소 중 가히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믈라카일까.
믈라카와 차이점이라면 이곳은 고층 건물을 쓴다는 것.
우리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데, 나는 그중에서 최상층인 5층을 썼다.
보통 이 시대에 고층은 오히려 저소득자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 여관은 물이나 음식을 가져다주고, 화장실은 요강으로 대체하므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선원의 안내에 따라 1층의 홀로 나갔다.
그곳에는 두 명의 시녀와 함께 온 베아트리스가 있었다.
“간밤은 평안하셨는지요.”
“무척 잘 잤습니다.”
사실 잘 못 잤다.
포르투갈을 어떻게 뜯어먹을까 행복한 망상을 하느라.
“아침부터 오신 걸 보면 저와 할 거래가 그리도 기대되셨나 봅니다.”
“예. 간밤에는 달아오른 몸을 식힐 방법이 없어서 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베아트리스는 사생아라고 자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족이고, 백작 부인인데 왜 자꾸 야한 농담을 하는 건지.
혹시 롤 모델이 클레오파트라인가?
“현재 저는 동쪽으로 갈지, 북쪽으로 갈지 고민 중입니다. 부디 제가 북쪽으로 갈 수 있도록 좋은 조건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관세 면제는 당연하고.
가격을 잘 쳐준다거나.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 준다거나.
아무튼 포르투갈이 자극받을 만한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양쪽에 줄타기하면서 더 뜯어내지.
“잉글랜드는 현재 로마 교황에 줄을 대고 있습니다. 아비뇽 교황은 프랑스의 꼭두각시라 생각하지요.”
“그런데요?”
“로마 교황에게 청을 올려 기독교 국가와의 거래 허가증을 받아오겠습니다.”
어제는 내가 ‘교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파벌이 되었든 교회의 정식 허가를 받는다는 건, 일단 무조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말이지.
“귀인께서 타고 온 배를 보니, 무장이 굉장하더군요.”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개척하여 온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베아트리스는 은밀하게 웃었다.
“잉글랜드 왕실에서 발행하는 공식 사략 면장을 드리겠습니다.”